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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399화 (399/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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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챕터53. 영위하다 (2)


예전이라면 군역이니 세금이니 하면서 걱정을 했겠지만, 지금은 상비군 직업군인 체제로 바뀐 지 오래.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예전의 기억은 깡그리 잊어버렸는지, 전쟁이 나든 말든 관심 없다는 분위기를 강하게 풍겨댔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건, 가루 형태로 만들어서 주둥이가 큰 호리병에 담은 설탕.

비록 당밀이 많이 포함되어 색이 진하지만, 덩어리 형태보다 수분을 더 많이 날린 물건이라서 단맛이 보다 강하게 나는 게 특징이었다.

백설탕의 경우에는 보급형이 아닌 막대형태와 가루형태로만 소분해서 만들었다.

이걸 큼지막한 보급형으로 만들면 누가 사먹겠나. 비싸도 너무 비싸서 어쩔 수 없이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계속 지켜보는 동안 작업은 슬슬 끝이 났다.

잘 굳힌 설탕은 기름먹인 한지로 잘 싸서 포장을 끝마치고, 호리병에 담은 가루설탕도 흡사 술병마냥 기름종이로 입구를 싸맸다.

“그나저나... 자네는 사탕병을 바꿀 생각이 없나?”

“왜?”

문뜩 묻는 제당소 사장을 보며, 사탕수수밭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씨네는 사탕병을 바꾼다고 하더라고. 보다 고급지게 말이야. 이게 몽골을 거쳐 서방까지 팔리는 거 알고 있지?”

“아...”

사탕수수밭 사장은 무슨 말을 하는지 곧장 알아차렸다.

“알긴 아나보군. 서방인들이 아국의 자기라면 아주 눈이 돌아간다고 하던데, 그 안의 내용물이 사탕이라면 어떻게 되겠나?”

“음...”

‘일리가 있긴 한데...’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고심에 빠졌다.

남주도에서 생산한 설탕은 당연히 몽골을 거쳐 비단길을 타고 흘러갔다.

유목민으로 구성된 소칸국은 소금도 없어서 난리인데, 설탕을 제대로 본 적이나 있을까.

그럼에도 거부감 없는 단맛의 결정체는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순식간에 조선을 대표하는 수출품으로 자리 잡았지.

서방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에서도 설탕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 물건이고, 얼마 되지 않는 양은 인도와 오스만을 통해서 수입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조선산 설탕이 등장했으니, 눈이 뒤집힐 수밖에.

“단순한 설탕용기가 아니라 아예 서방에 팔 목적으로 자기를 고급지게 꾸미라는 거군?”

“맞네. 가는 길이 멀어서 설탕이 다 굳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거야 가면서 열심히 흔들면 되는 거고... 먹는 건 서방인들이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쯧쯧.”

제당소 사장은 대책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반대로 사탕수수밭 사장은 서방인이 호리병 안에 담긴 설탕을, 얇은 꼬챙이로 쿡쿡 찔러 부수는 상상을 하며 혀를 차고 말았다.

‘하지만 마냥 흰소리는 아닌데...’

그러면서도 머릿속 한쪽에선 긍정의 마음이 치솟았다.

“안 그래도 여기서 만들어지는 과실주가 서방까지 팔려나간다고 했지?”

“보진 못했지만, 무역항 관원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네.”

“음...”

서방인의 눈으로 보기엔 밥그릇이든, 접시든, 술병이든, 찻잔이든, 전부 고급스러운 조선도자기다.

뭐가 됐든 가져가기만 하면 비싼 값에 팔리는 물건이라서, 어차피 호리병을 사용해야만 하는 양주기업에서는 냉큼 고급화 전략으로 나아갔다.

지금도 남방의 열대과일로 만든 과실주는, 과일을 접할 일이 없는 본토의 북방에 대부분 팔려나가는 상황.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도 처지는 마찬가지라서, 과실주 또한 비단길을 타고 서방으로 흘러갔다. 이러니 술병을 고급지게 바꾼 것만으로, 몇 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거지.

“생각해보겠네. 어차피 올해는 끝났으니까.”

“그러게. 나야 뭐 어떻게 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지금처럼 사탕만 계속 수확하면 좋겠군.”

“...”

히죽 웃는 제당소 사장을 보며 사탕수수밭 사장은 다시금 쓴웃음을 머금었고, 이내 인부들을 재촉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밤이 깊도록 설탕 만드는 작업은 이어졌고, 인부들은 제당소에서 밤을 꼬박 샜다.

남주도는 안정됐고 거지나 도적이 돌아다니진 않지만... 그래도 이 비싼 설탕은 아무렇게나 내버려 둘 순 없는 법.

번을 서가며 설탕을 지킨 인부들은 아침이 되고서야 긴장이 풀어졌다.

올 때는 스무대가 넘는 수레를 끌고 왔지만, 제당소에서 나갈 때는 수레 하나가 고작.

허나 이 정도면 중국방식으로 만든 설탕보다 많이 생산된 거고, 신형 압착기를 사용하면서 작년보다 많이 나온 상태.

다들 다시금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고, 사장은 수레를 지킬 인부들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날은 청명하고, 바람은 선선했고, 햇살은 따뜻했다.

모두는 자기도 모르게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옮겼다.

남주도는 워낙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길도 솔직히 필요가 없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땅이 굳어지는 법.

“여기도 슬슬 본토 티가 나는군?”

“그렇지요?”

낯선 풍경도 어느덧 눈에 익어서 일까? 사장과 부하직원은 경기도 출신이라서 그런지, 자기도 모르게 고향과 비교하고 말았다.

양전사업과 도로확장작업이 함께 진행되면서, 조선본토에는 대로를 따라 가로수를 심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법으로 정해진 내용이라서 그런지, 허허벌판인 남주도에서도 대로는 만들어졌고, 대로를 따라서 가로수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버드나무군?”

“아무래도 가로수로 삼기에는 이게 꽤 편하지 않습니까. 손을 많이 안 써도 알아서 자라고, 쓸모도 많으니까요.”

“하긴...”

고향에 있을 때도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내는 이들을 수도 없이 봤었는데, 여기서도 같은 일이 펼쳐지지 않을까.

다시 하루를 꼬박 새워 걸음을 옮기자, 서서히 남주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오...”

“와!”

도시에 들어서기도 전에, 물을 빼서 바싹 밀어버린 평야가 눈에 들어오자... 다들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질렀다.

원주민 출신들은 작년에도 이 모습을 봤지만... 봐도 봐도 놀라울 따름.

수평선이 훤히 보여 하늘이 반으로 쪼개져 위쪽은 푸르렀지만, 아래쪽은 전부 볏짚이 깔려 누렇게 변해 있었다.

조선이 이 땅에 오기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크기의 전답이 눈을 사로잡았다.

“여기도 수확을 다 끝낸 모양인데요?”

“정신없겠는데...”

허나 사장과 부하직원은 감탄이 지나가자 걱정이 밀려왔다.

수확한 벼를 도정하고 나면 은행이 소유하고 있는 곡물창고로 죄다 들어갈 텐데... 그 양이 어마어마할 테니, 밀려드는 쌀가마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있을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자, 눈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병들이 느긋하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여섯기의 기병이었는데, 검은두정갑이 아닌 짙은 청색의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포도군사군.”

“여기서도 이제 보게 되는 군요.”

“그러게.”

‘확실히 안정이 되긴 됐나보네.’

연오랑이 조직한 포도청은 규모가 상당해서, 전국에서 동시에 조직될 수 없었다.

애초에 포도청이라는 조직 자체가 없었으니 온갖 시행착오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한성부에서 임시적으로 운용하지 않았나.

그 후 성과를 확인하고 효과를 인정받자 경기도로 확장해서 시행. 이내 속속 도를 중심으로 점차 늘려나갔다.

삼년이 지난 지금. 바다 건너에 위치한 남주도에도 포도청이 완성됐다는 건, 이제 이곳도 얼추 본토와 같은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뜻 아니겠는가.

사장은 왠지 모르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뿌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꼭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비주류에서 주류사회로 들어온 느낌이랄까.

“안녕하십니까.”

“남상주에서 왔나?”

“예.”

수레에 큼지막하게 달린 기업문양과 깃발을 알아본 걸까? 서서히 속도를 줄여 마주한 포도군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는데 특별한 건 없었고?”

“포도군사님들이 순찰을 도시는데 문제가 있겠습니까.”

“큭.”

사장이 아부 아닌 아부를 떨자, 말 안장에 장도를 올려놓고 쉬고 있던 포도군사들이 하나같이 피식 웃음을 흘려댔다.

“사탕?”

“예.”

사장이 그리 답을 하자, 포도군사 중 한명이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말 타는 모양새가 뭔가 미숙한 걸로 보아 원주민 출신이 분명해 보이는데... 사장이 포도군사들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딱! 선임으로 보이는 이가 원주민 출신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렸다.

“...”

“...”

굳이 이 미묘한 분위기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뭔가 줘야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설탕은 비싸도 너무 비싼 물건. 뇌물로 한줌 쥐어주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포도군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보는 눈도 없으니 그저 인사치례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만약 사장이 억하심정을 가지고 관아에 이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선은 여전히 뇌물수수금지법인 여수구죄법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고, 아직 조선물이 덜 든 남주도 백성들에게 본 떼를 보여주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

잘못 걸렸다간, 이제 막 창설된 남주도 포도청은 풍비박산날 거다.

“조심히 가게.”

“예. 군사님들도 수고하시죠.”

결국 어색한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들고,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전답을 지나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오물수거기업을 여럿 지나치자, 드디어 남주가 눈에 들어왔다.

만들어진지 고작해야 삼년 밖에 지나지 않은 도시건만, 고향에서 본 모습보다 더욱 번화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였다.

비록 성벽이 없어서 뭔가 허전하지만, 아예 맨땅에서 모든 걸 만든 도시 아닌가.

격자무늬를 그리며 만들어진 넓은 대로를 따라서, 똑같은 형태로 지어진 기와집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어째 여기가 본토보다 더 잘 만든 것 같단 말이지?”

“비슷하긴 한데... 이곳 집이 고향집과는 조금 달라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럴 거야.”

경기도 지역은 양전사업이 가장 먼저 진행된 곳이니, 실험적인 가옥이 은근히 많이 만들어진 곳이다.

다만 착호군과 건설기업은 전국을 돌면서 집을 지어왔고, 십년 가까운 세월동안 집만 주구장창 지었으면 경험이 축적되는 건 당연한 말.

이곳의 가옥들이 더 좋아 보이는 건, 그런 과정을 통해 기술이 발달하고 장인들의 숙련도가 쌓였기 때문일 거다.

‘이곳의 가옥은 본토남부의 가옥보다 더 개방적인 까닭도 있을 거고.’

사장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납득했다.

“그나저나 역시 사람이 많네요.”

“그러게 말이야.”

가옥을 구경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섰다.

남주는 계획도시답게 주거지구, 상업지구 등이 나눠져 있는데, 주거지구에 들어섰는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온 사방에서 마차와 수레를 끌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쌀가마 뿐만 아니라 별의 별 상품작물이 다 실려 있었다.

“여기가 이럴 정도면, 상업지구는 난리도 아니겠군.”

“예. 대로를 따라가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남주의 중심이자 대로의 중앙에는 남주관아가 위치해 있는데, 거길 지나쳐 항구로 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

저 행렬에 꼈다가는 날이 샐 때까지 무역항에 도착을 못할 것 같다.

“밖으로 돌지.”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일행은 방향을 틀어서 주거지역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대로를 따라 나아갔다.

한참을 그렇게 외각으로 빠져나가 해안가로 향하자, 어느덧 낯선 풍경이 눈앞을 가렸다.

남주에서 보기 힘든 높은 담벼락이 주거지역 밖으로 줄줄이 이어져서, 부두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

허나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담벼락 저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흘러나왔다.

“오늘도 사람이 많나보네?”

“저희 말고 다른 기업들도 슬슬 수확을 끝마치지 않았습니까? 보나마나 강남상인들이 왔을 겁니다.”

“음...”

남주에 무역항이 생긴 지 벌써 삼년이 지났다.

조선군이 대만섬을 점령 및 개척하는 동시에 무역항 건설이 시작됐고, 초창기 무역항에는 그저 허허벌판 위에 임시막사만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타국상인이 머무는 숙소와 창고가 완성되어, 담벼락 너머로 높게 치솟은 3층 전각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조선의 기조에 따라서 무역항과 거주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고, 지금 이들의 앞을 가리는 담벼락이 그 경계선이었던 거지.

담벼락을 끼고 방향을 튼 이들은 다른 수레들과 함께 천천히 이동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아가는 이들을 보아하니, 무역항에 물건을 팔러 온 게 분명.

다들 길이 막힐 걸 예상하고서 이쪽으로 온 모양이다.

한참을 그렇게 담벼락을 나아가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

조선식 건물로 보기에는 뭔가 단단하고 묵직해 보이는 회백색 담벼락과 건물이 일행을 맞이했다.

목재보다는 석재와 벽돌을 더 많이 사용한 건물이었는데, 벽면 전체가 옅은 회색빛을 띄고 있는 터라 시선이 주목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포도군사도 아니고 연대병이 앞을 지키고 있으니, 더욱더 눈에 띌 수밖에.

이곳은 무역은행이자, 무역항을 운영하는 무역관아의 역할을 겸하는 곳.

조선은 여전히 조정에서 무역항을 관리했지만, 조선땅에 위치한 무역항에선 일반상인이 점포를 빌려 거래할 수 있었다.

다만 입출입과정도 나름 까다롭고, 점포도 돈을 내고 빌려야 했기에, 얼추 체계가 잡힌 기업들만 직접 장사하는 상황.

다만 남주도의 경우에는 조선땅이 된지 얼마 안 되서, 기업들의 기반이 미약하지 않나.

해서 일반적으로 기업은 무역관아에 물건을 팔았고, 조차지에서처럼 관원이 상인역할을 겸해서 외국상인에게 물건을 팔았다.

잠시 기다리기 무섭게 이내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고, 상인은 공책과 연필을 든 관원에게 다가가 냉큼 고개를 숙였다.

살짝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 밑이 시커먼 게, 적잖게 피곤한 모양이다.

보나마나 잠도 못자고 일을 한 게 분명해 보이는 터라, 사장은 눈치를 살피며 얼른 입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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