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01화 (401/538)

401. 챕터53. 영위하다 (4)

안 그래도 대리와 밀약을 맺고, 메콩강 하류에 조차지를 건설할 계획을 짜고 있던 조선 아닌가.

해남도-현항-성항-미래의 사이공으로 이어지는 조차지는, 조선이 청도-상해-대만섬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만든 것과 똑같은 상황.

있으면 무조건 이득인 거지.

“그런데 현항이나 성항이나 그들이 어떻게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지 않나? 이미 우리가 다 알아서 하고 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다만 연오랑이 그리 반문하자, 이순지는 떫은 표정을 지으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항(다낭)은 조선의 손에 진작 들어와서 발전을 거듭한 상황.

여긴 대월의 압박에 못이긴 참파가 떠넘기듯이 넘긴 지역이고, 그 탓에 말이 조차지지 거의 현 하나 크기의 해안가 땅이 조선에 떨어졌다.

이곳에선 자립을 위해 전답을 개간하는 한편, 땅이 남아돌아서 상품작물과 과실수를 중심으로 키웠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커피가 대박을 쳤다.

성항(깜라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참파조정에서 압박하고 조선이 신형전함을 앞세워서 화포로 위력시위를 하며 밀고 들어왔는데, 성항 인근을 다스리던 지방토호가 무슨 수로 버틸 수 있을까.

조선이 그저 더 깊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넙죽 엎드려 땅을 내어줬다.

“조차지가 완성되면서 결국 그들이 바라던 대로 대월의 공세가 약해졌고, 숨 돌릴 틈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제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생겼다는 거지?”

“그렇죠. 이제 코앞의 일에 급급한 게 아니라, 미래를 볼 여유가 생긴 거죠.”

“음...”

대월은 조선이 참파를 지원한 걸 알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

그저 조차지 인근으로 병력을 보내지 않고, 다른 곳에 집중해야하는데... 현항(다낭)의 위치가 너무 절묘했다.

격전지이자 전선 한복판에, 떡하니 중립지대가 형성되어 버린 꼴.

참파가 조차지를 아슬아슬하게 들락날락거린다고 해서, 대월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나. 그저 항의나 조금 할 수 있을 따름인데, 그거로는 씨알도 안 먹혔다.

‘애초에 그렇게 써먹으려고 조차지 땅을 엄청 떼어준 거니까.’

조선 입장에서도 애매해진 게... 땅이 너무 커서 연대병을 동원한다고 해도 다 지킬 수가 없고, 굳이 대월의 손을 들어줄 필요도 없다.

그러니 “여기 오지 말고 니들 땅에서 싸워라.”라고 참파를 어르는 게 고작인데, 목숨이 달린 참파로서는 조선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넘나들 수밖에 없는 거지.

그 결과. 대월과 참파의 전선 상황은 지지부진해졌고, 참다못한 대월은 진공방향을 틀어서 참파보다는 란쌍(라오스)방면으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었다.

‘보나마나 대리와 함께 손을 잡고 움직이는 것 같은데... 뭐 어찌됐건 우리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단 말이지.’

대리는 남방비단길을 재건하고, 메콩강 일대를 점령하며 남하하고 있다.

메콩강을 중심으로 해서 서쪽은 대리가, 동쪽은 대월이 차지하려는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지.

이리하여 대월과 참파의 전쟁이 얼추 소강상태에 접어드니, 이젠 참파가 제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현 상황을 판단할 여유가 생겼다.

“문제는 지금 상태가 고착되면 참파가 견디지 못할 거라는 거죠. 향신료를 팔아넘기는 것도 한계가 있고, 가지고 있는 귀금속을 파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음...”

이렇듯 계획대로 다 잘됐는데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조선이 너무 일방적으로 참파를 뜯어먹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조선인들이 와서 떼돈을 벌고, 그걸 감당하기 위해 참파조정이 백성들을 쥐어짜면 그 불만이 어디로 튈까.

참파조정보다는 외국인인 조선에게 튈 가능성이 높지.

친조선파가 많아져야 중국과 대월 등지를 견제할 수 있는데, 이래서는 조선의 이미지만 나빠진다.

더불어 조선이 계속 무역을 통해 이득을 얻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참파시장이 완성되고 구매력이 유지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가져와 본들, 그걸 살돈이 없으면 무용지물 아닌가.

조선이 가져오는 물건은 사치품도 많지만, 강철이나 면포와 같은 생필품의 양도 만만치 않다. 고객층이 단순히 참파의 부자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렇다고 미래처럼 광산 등의 개발권을 외국기업에게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대가 일러도 너무 일러서, 제국주의시대의 식민지 경영방식은 씨알도 안 먹히는 시대.

결국 지금이야 사정이 급하니까 가만히 있는 건데, 무역적자가 계속 심화된다면...

‘당연히 문제가 터지겠지.

“돈이 문제라는 거군.”

“그렇죠. 안 그래도 참파조정에서 욕심을 부려 광산을 무리하게 개발해서 금은을 넘기고 있는데, 지방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슬슬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벌써?”

조선이 조차지를 건설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소리가 들려오나.

연오랑이 살짝 눈썹을 찌푸리자, 이순지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뻔하죠. 뭐. 참파조정에게 불만이 있던 지방토호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저희가 성항(깜라인)에 조차지를 만들자, 그곳을 통해 거래하면서 이런저런 말을 흘리더라고요.”

“거참...”

더 설명하지 않아도 읽어진다.

조선을 만나보지 못했던 지방토호들은 조선조정의 생각을 모르지 않나.

참파조정과 거래한다면 자신들이 거래를 하지 못할 이유는 또 뭐람. 조선을 뒷배 삼아, 참파조정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거지.

“맞지?”

“예.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니까, 참파조정도 나름 급해져서 이것저것 뒤져서 돈이 될 만한 걸 찾아냈는데...”

“찾아냈는데?”

이순지가 말을 흘리자 연오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로 보아, 어째 진짜로 쓸만한 제안이 들어온 모양이다.

“목재를 팔겠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바라는 규격대로 얼추 선가공을 해서 말이죠.”

“허!? 목재라...”

“꽤 잘 찾아냈죠?”

“그러게.”

한방 먹었다는 표정을 짓는 이순지를 보며, 연오랑도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목재라... 하긴 티크나무가 좋긴 하지.’

그거라면 충분히 특산품으로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원래 역사에서 대항해시대가 열렸을 때, 미래의 베트남은 서방의 선박제조기술을 받아들여 서양의 범선 못지않은 배를 만들어냈던 나라다.

시대가 훨씬 이르니 이건 해당사항이 없지만, 잊지 말아야할 건 현재나 미래나 범선에 사용되는 목재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

참파의 밀림에 넘쳐나는 티크나무는 범선을 만들기에 딱 좋은 재료다.

“목재라... 남하주의 선소에 대한 소문을 들은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국배가 워낙 유별나지 않습니까. 그치들도 아국배를 멀리서라도 보면서 배우기 위해 눈을 굴렸을 테고, 참파의 조선기술도 대월 못지않으니까... 어렵지 않게 해결책을 찾은 거겠죠.”

“흐응.”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남주도의 남하주(가오슝)에선 대규모 선소가 건설되어, 벌써부터 배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곳은 미래에도 군항으로 사용되는 곳일뿐더러, 대만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는 산맥의 끝자락이 닿아 있는 곳.

원시림이 아직 남아 있는 탓에 나무는 남아돌았고, 남하주강(애하)를 이용하면 벌목장에서 해안가로 손쉽게 목재를 옮길 수 있었다.

해서 그곳에 선소를 짓고 전함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지.

“현항도 그런 식으로 만들고 싶은 거군?”

“현항 뿐만 아니라 성항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재를 옮기면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놓고 참파조정과 지방토호가 티격태격하겠지만, 뭐가 됐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음... 참파조정의 관원이 조차지 근처를 계속 돌아다니면, 나름 통제와 관리도 쉬워질 테고?”

“사람이 모여서 목재운송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개발도 함께 진행되겠죠.”

‘그쪽 땅도 지랄맞긴 하니까... 어차피 벌목을 하면 개간할 땅이 늘어날 거 아냐? 손해 볼 건 전혀 없겠네.’

미래의 베트남이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을 한 건, 해안가와 내륙을 관통하는 거대한 밀림이 존재하기 때문.

여길 넘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라서 자연적인 국경선이 형성될 정도니, 조선에게 팔 나무를 구하는 건 땅 집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일 거다.

“게다가 이 방법을 통해서 참파조정도 남쪽을 확실히 차지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여차하면 성항 말고 다른 곳도 조차지로 넘겨줄 의향을 보이던데요?”

“우리에게 조차지를 떼어주는 방식으로 지방토호를 압박하려고 말이지?”

“예.”

“헌데 어차피 미공하(메콩강)하류로 진출하면, 굳이 더 받아야할 땅도 없지 않냐?”

“그건 그렇지만... 조차지가 늘어나는 게 손해는 아니니까요. 저희가 아쉬울 건 없습니다.”

연오랑은 고개를 끄덕이는 이순지를 보며, 머릿속에 지도를 떠올려봤다.

이 시기의 인도차이나반도 남부는 각국의 영향력이 약하게 미치는 공백지와 흡사했다.

수세기에 걸쳐 대월은 참파를 공략하며 남하했고, 참파는 계속 남쪽으로 밀리면서 지방토호를 흡수하고 남부를 개발해나갔다.

끝내 대월이 참파의 영역을 다 집어삼키고 보니, 사이공이 위치한 발전된 남부까지 차지한 거지.

허나 조선이 개입함으로서 훨씬 이른 시기에 그 과정이 멈췄고, 당연히 참파의 남부개발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

북쪽의 위협이 얼추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참파조정은 자발적으로 남부의 토호를 때려잡고 힘을 축적할 생각인가 보다.

대월과의 싸움은 조선 때문에 잠시 미뤄진 거지, 끝장을 본 게 아니니까.

“어쩌면 우리의 계획과 겹칠지도 모르겠네?”

“미공하 하류까지 오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지 않겠습니까. 아마 저희가 더 빠를 겁니다. 만약 현항과 성항에 선소를 세워 목재를 수급 받을 수 있다면, 그 기간은 더욱 단축될 거고요.”

“음...”

대리와 밀약을 맺은 지 벌써 삼년이 지났지만, 조선은 아직도 사이공 일대로 진출하지 못했다.

이유야 별거 있나.

처음 예상대로 다른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거기까지 손을 쓸 여유가 없었고, 예상치도 못한 성항(깜라인)을 차지하면서 더욱더 미뤄진 거지.

대리가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고는 허나, 남방무역로를 부활시키기 위해선 남부보단 서쪽의 파간(미얀마)를 공략하고 회유하는 데 더 힘을 쏟고 있는 상황.

역시나 대리의 제안은 공수표에 가까워서, 메콩강 일대의 점령 작업은 시원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조선이나 대리나 서로 계획대로 못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고, 서로 눈치만 보면서 때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하지만 참파조정은 남부내륙에 위치한 토호를 다 정리해야하고, 우린 바다를 통해 이동해서 메콩강 하류의 해안가 일대만 정리하면 된단 말이지. 당연히 우리가 더 빠르고 쉬울 거야.’

이순지의 말대로 겹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

“배를 직접 만든다라...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전함을 만들려고?”

“그건 조금 힘들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신형어선과 조운선을 만드는 게 좋아 보입니다. 남하주 선소에서 만들 물량을 그곳으로 돌리면, 남하주에선 전함건조에 열중할 수 있겠죠.”

“음... 선소라.”

연오랑은 생각만 해도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조차지는 조선땅이자 조선인만 사는 곳. 일용직 인부라고 해도 참파인을 부려먹는 건 불가능하다.

아예 귀화를 하면 모를까. 대패질 하는 것조차 다 기술인데, 이 시대 최고의 첨단기술인 범선 건조기술을 참파인들에게 알려줄 수 없는 노릇.

결국 본토의 조선인 장인들을 조차지로 보내서 정착시켜야 하는데,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다.

“참파인들은 생각만큼 귀화를 잘 안하고 있는데... 인력충원이 잘 되려나 모르겠네?”

“대학이 설립된 후로 본토에선 열심히 장인을 키우고 있잖아요? 조정이 나서서 조차지의 선소를 운영하면 그곳에서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진 않을 겁니다.”

“군함을 건조하는 선소가 아니니까, 언젠가 민간에게 넘길 거라고 믿고 말이지?”

“예.”

이순지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조선의 선소는 민간선소와 관선소로 분류되고 있었다.

관선소에서는 신형전함과 무역선등을 만들고, 민간선소에선 신형조운선이나 신형어선을 만들었지.

다만 조선소는 워낙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라서, 집안들이 힘을 합쳐서 기업을 꾸렸다고 하지 않았나.

헌데 조정이 나서서 이 밑작업을 미리 다 해둔다면, 나중에 선소를 더 싼값에 사들일 기회를 얻게 되지 않을까?

기존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어선과 조운선을 만드는 선소를 굳이 조정이 운영하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귀화인 말씀을 하셨는데, 그치들은 차라리 안 받는 게 나아요. 백지나 마찬가지인 남주도 원주민이 낫지, 참파의 문화는 너무 이질적이라서 말이죠.”

“저 이역만리에 살던 서방인도 조선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참파인이 왜?”

“음... 정확히는 민족이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조차지라서 문제죠. 이미 광주와 자동 조차지에서 문제가 터진 걸 보지 않았습니까.”

“끄응...”

이순지가 살벌하게 눈을 흘기자, 연오랑은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참파는 힌두교가 대세인 나라라서, 이슬람 문화와 불교 문화가 섞인 동남아시아의 소국과는 또 달랐다.

조선입장에선 퍽 이질적이었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게 아니다.

그간 조차지에서 귀화인을 받아들이면서 꾸준히 발생했던 문제는, 귀화인들이 조선화교육을 제대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

고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조차지에서 살다보니... 기존의 관습과 문화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컸고, 낯선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심심치 않게 도망갔다가 나중에 다시 받아달라고 떼를 쓰는 일이 흔했다.

뭐랄까. 꼭 조선에서 돈을 벌고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떵떵거리면서 살려고 하는 얌체 같은 모습을 보인 거지.

이래서 귀화인들을 아예 도망치지 못하게 죄다 조선본토로 데려가는 걸로 방법이 바뀌었고, 조차지에는 조선본토에서 넘어온 조선인만 거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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