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02화 (402/538)

402. 챕터53. 영위하다 (5)

“그러니 지금 당장 급하다고 대충 처리했다가는 나중에 역풍을 맞을 겁니다. 지금도 야금야금 귀화하고 있는 참파인들은 죄다 조선본토로 보내는 게 맞아요.”

“알았다. 그럼 선소를 만드는 걸로 상신하겠다는 거군?”

“예. 결정은 한성조정에서 하겠죠.”

‘일이 커지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라.”

연오랑은 결국 동의를 하고선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문뜩 딴 생각이 떠올라 얼른 입을 열었다.

“아. 귀화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색목인들은 잘 지내고 있냐? 풍토가 달라도 너무 다를 텐데, 다들 문제는 없지?”

“속사정이야 모르겠지만... 다들 만족하면서 지내는 것 같던데요?”

“그래?”

“예. 보셨잖아요?”

“내가 보고 있을 때와 안 보고 있을 때, 차이가 나니까 그렇지.”

윗사람이 보고 있으면 당연히 좋게 보이려고 노력할 텐데, 그게 진짜 실상이겠나.

연오랑은 당연한 말을 왜 하냐는 듯 눈을 흘겼지만, 이순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볍게 넘어갔다.

“아닐 걸요.”

“진짜 맞아?”

“맞다니까요.”

“...”

‘흠... 이거 참. 내가 편견에 빠져 있던 건지, 이 시대가 원래 이런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는 이순지의 밍밍한 반응에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미래인인 그로서는 조선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기 마련.

이 세상에서 산지 벌써 삼십년이나 지났으니, 미래인의 물이 쫙 빠지기도 했지만... 낯선 사건을 접할 때면, 자연스레 미래의 기억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허나 이번 일을 통해서 다시금 깨달은 건. 조선이라는 나라는 너무 오래 유지됐고, 근 오백년이라는 세월은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다는 점.

‘까놓고 말해서 이 시대는 막연히 생각하던 조선보단, 고려에 더 가까운 걸지도 모르겠어. 개혁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그는 이런 결론을 홀로 내리며, 지난 일을 떠올렸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조선 백성들이 루스인 노예에 대해서 생각 외로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스인 노예들이 조선으로 들어온 지 벌써 삼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백명 안팎으로 오다가, 지금에 이르러선 한번에 천명 가까이 올 정도로 규모가 커진 상태.

겨울에는 이동이 힘든 탓에 자주, 많이 데려올 수 없지만, 그걸 제하고도 일 년에 7,8천명씩은 왔다고 볼 수 있지.

그렇게 창주에 도착한 루스인들은 잘게 쪼개져 만주신도시로 흘러들어갔다.

만주신도시는 사실상 여진인을 강제로 정착시켜 모아두고, 그들의 기존 관습과 문화를 조선문화로 효율적으로 덮어씌우기 위해 만든 도시다.

근 십년이 지난 지금은 세금을 걷어도 충분할 만큼 자생력을 갖췄지만, 여전히 주목적은 여진인의 정체성을 지우고 조선인의 정체성을 심는 거였지.

그런 만큼 조선화교육에 있어서는 최일선을 달리는 곳이니, 한줌도 안 되는 루스인들 또한 여진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밟으며 조선인으로 변해갔다.

‘이건 당연히 예상을 했던 일이지만... 생각보다 거부감이 없다는 게 놀랍다는 거지.’

원래 역사에서의 조선은 폐쇄적인 역사가 오래 되서, 백인들을 보면 코쟁이, 하얀 도깨비 등등으로 부르며 놀라지 않았나.

헌데 만주신도시에서의 반응은 생각 외로 격하지 않았다.

뭐랄까. 처음에 놀란 건 사실이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냥 피부색이 다른 이민족이구나?”라고 대충 흘러 넘기고 만 거지.

‘어쩌면 온전한 백인뿐만 아니라, 별의별 민족이 다 섞여서 와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

그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조선으로 오는 서방인은 슬라브족이 주류가 된 루스인 뿐만 아니라, 코사크도 함께 오지 않나.

문제는 코사크가 민족, 인종으로 묶인 집단이 아니라는 점.

그렇다보니 슬라브인, 게르만인, 발트인이 섞여 있었고, 킵차크 칸국의 지원을 받은 크림 타타르가 서쪽으로 활개치고 다니면서 그리스인, 발칸인, 로마인들까지 끌고 왔다.

흔히 생각하는 금발벽안의 백인만 끌려 온 게, 절대 아니라는 거지.

‘게다가... 사실 따지고 보면 만주땅에 사는 이들도 온전한 조선인이 아니잖아?’

만주에는 여진인, 몽골인, 조선인, 일본인, 고려인, 요동인이 섞여서 살고 있었고, 심지어 조선이 하얼빈 북쪽에 펼쳐놓은 그물이 걸려서 시베리아의 토착부족이나 이미 나라가 망한지 한참 된 거란인들까지 조선에 흡수되고 있는 판국.

온갖 출신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무덤덤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조선화 교육을 끝마친 서방인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기존 직업과 특기에 맞춰서 가족단위로 찢어서 조선 전국에 퍼트렸다.

그 결과. 이 멀고먼 남주도까지 조선화 교육을 받은 서방인 가족들을 보내게 된 거지.

“문제라면 본토로 들어간 사람들인데...”

“예?”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연오랑이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자, 이순지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답을 했다.

“아니. 색목인들 말이야. 이곳까지 보냈으면, 본토에도 갔을 텐데... 뭐 특별히 들려온 소문 같은 거 없냐?”

“글쎄요.”

연오랑의 부연설명을 들은 이순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었지만, 결국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놀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일 테지만, 그래도 문제를 일으키거나 적응을 못했다는 소문은 못 들어봤는데요? 이번 일은 조정이 각별한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으니까, 제가 못 들어봤으면 실제로도 별 일 없을 겁니다.”

“그런가...”

연오랑은 충분히 이해가 돼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루스인 귀화 작업은 수십년을 내다본 대계다.

인구가 부족한 조선은 사람을 채울 방법으로 서방을 지목했고, 당연히 이 계획이 잘 풀려나가길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다.

이건 대충 눈 가리고 얼버무리거나 뒤로 미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지방관아에서는 중앙조정이 무서워서라도 어떻게든 해결했을 거다.

“그렇단 말이지.”

“색목인이 낯선 건 사실이지만 개성이나 평양, 전라도의 서해안 도시만 가도 회회인 출신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잖아요? 경상도나 강원도라면 모를까, 다른 지역에선 엄청나게 낯설진 않을 겁니다.”

“음...”

‘하긴, 이건 원래 역사와 크게 달라진 부분이니까.’

고려에는 원 말기에 중국에서 넘어온 회회인들은 원래 있었는데, 명이 망하고 나서는 그 수가 부쩍 늘어났다.

그 시절엔 이제 막 태종이 집권해 기틀을 잡던 시기고, 중국은 온갖 군벌 및 호족, 상인세력, 뜨내기 유민들이 난장판을 일으키던 시기.

본래부터 상인출신이 많았던 회회인들은 메뚜기 떼처럼 뜯어먹으려는 한족들의 공세를 피해 사방으로 도망쳤는데, 바로 코앞의 조선으로도 상당수가 넘어왔다.

밀입국하듯이 온 이들도 있고, 정식으로 귀화한 이들도 있었는데... 조선도 반란이 터지는 등의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어서 전부 관리하지는 못했었지.

‘그리고 나선...’

“양전사업이 영향을 크게 주긴 줬나 보네.”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이건 이순지가 꼬꼬마 시절에 겪은 일이라서 그런지, 냉큼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조선으로 들어온 회회인들은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면서 살다가 개혁이 시작되면서 다 박살났고.

양전사업이 진행되자 다른 백성들처럼, 가족단위로 찢어져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중앙집권을 방해하는 폐쇄적인 마을공동체를 조정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까.

“그게 벌써 십년 가까이 지난 일이잖아요? 어지간한 현마다 회회인 출신이 살고 있었을 테니까, 생각만큼 낯설진 않을 겁니다.”

“회회인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해서 그렇지, 실상은 온갖 민족이 다 섞여 있었을 테고 말이야.”

“예. 아마 루스인과 비슷한 외모를 하고 있던 백성들도 상당할 걸요? 머리칼이 요란한 색을 하고 있는 걸 빼면 말이죠.”

“음.”

이건 연오랑이 돌아다니면서 직접 본거라서, 충분히 납득이 됐다.

회회인은 이슬람교도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로, 어쩌면 당연하게도 민족구성이 다양했다.

인도에서 온 이들, 중국의 위구르지역에서 온 이들,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들, 심지어 중동아랍에서 온 이들도 있었지.

그들의 후손이 중국과 고려에 터 잡고 태어난 2,3세들을 보통 회회인이라 부르는 편이었으니까.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잖아요? 처음에야 신기해서 구경하긴 했지만, 요즘은 그냥저냥 함께 섞여서 지내는 중인데... 본토라고 해서 뭐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음.”

이것도 연오랑에게는 살짝 의아했던 일이다.

대만섬 원주민이 색목인을 처음보고 놀란 건 당연한 건데... 조선이 대만섬에 진출하면서 이미 외부세계에 대한 낯설음의 벽이 한층 낮아진 상태.

거기에 대만섬이 기어들어와 살던 강남이주민들은 복건, 광동출신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오래전부터 회회인들과 함께 살던 사람들 아닌가.

머리색깔이 다른 걸 빼면, 솔직히 말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더 놀랐으니까... 오히려 이들이 더 익숙한 게 당연한 걸지도 몰라.’

연오랑은 복건의 자동상인들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도 인도인이라면 막연히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상 와서 직접 보니 백인에 가까운 이들이 대다수였다.

지금의 인도는 개판이지만... 크게 보면 북인도와 남인도로 구별할 수 있고, 북인도인들은 흔히 아리아인 계열이라 불리는 인종이었다.

지금의 티무르 제국 백성을 형성하고 있는, 고대 페르시아인들과 같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는 거지.

이 고대 아리아인들은 이란지역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쭉쭉 남하하면서 정착해나갔고, 미래의 방글라데시 근방까지 영향력을 넓혀 뿌리를 박은 상황.

그리고 중국과 가장 무역을 활발히 하던 상인들이 바로 이들이었으니, 말이 인도인이지 사실상 백인이라고 봐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이래서 오히려 편견을 가지고 있던 연오랑이 놀랐던 거고.

“뭐... 남주도 원주민들 입장에선 조선인이나 색목인이나 얼마나 차이가 나겠어요? 어차피 다른 민족인 건 마찬가지인데. 그냥 익숙해지면 그만인 거죠.”

“...”

속편한 소리를 한다 싶어서,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흘겼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순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조정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잖아요? 머리카락 색이 다르든 말든 어차피 조선인으로 만들어야할 이민족이죠. 막말로 설주의 야인여진이나, 남주도의 산악부족이나, 색목인이나 가릴 게 있겠습니까. 어떤 면에선 나라라는 걸 경험해 본 색목인이 더 교육하기 편한 면도 있죠.”

“끄응...”

‘어이가 없긴 한데... 내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더 할 말이 없네.’

연오랑은 전혀 조선인처럼 보이지 않는 이순지를 보며, 작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원래 역사의 조선인이 봤다면 기겁을 했을 반응이지만, 개혁 이후 조선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지 않았나.

나름 여기저기 돌아보고, 살짝 경직된 관원생활을 오래한 이순지조차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조정관원들의 생각 또한 대동소이할 거다.

이민족에 대한 거부감이나 배타심은 있을지 몰라도, 중화사상에 입각한 오랑캐 구분법은 확실히 없어진 모양이다.

“아. 그리고 생각해보니, 본토는 이곳보다 상인들이 더 많이 돌아다니잖아요? 그것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전조 때에 상인으로 활동하던 회회인 집안이 꽤 됐고, 그치들이 다시 상단을 만들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들은 기억이 있네요.”

“그럴 수도 있겠네.”

‘하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게 영향을 더 크게 줬을지도 모르겠네.’

연오랑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상 중에서도 회회인 출신이 있었을 거고, 기업이 공인된 후부터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유통, 무역상인의 길에 뛰어들 수 있었다.

조선이 들어선 후에 짓밟혔던 개경출신 상인들도 기업으로 부활했는데, 중국과 대외무역을 하던 회회인 집안이라고 사정이 다를 건 없을 터.

그들이 조선을 싸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일반 백성들도 낯선 백인에 대한 경계심이 옅어지고 무덤덤해졌을 거다.

“이럴 거면 그만 놀고, 직접 확인하시죠?”

“높은 사람이 돌아다니면 아랫사람들이 피곤해진다.”

귀찮음에 찌든 연오랑이 한소리하자, 이순지는 발악하며 목청을 높여댔다.

“차라리 피곤한 게 낫죠. 어르신 눈치를 보는 사람이 어디 한 둘입니까? 신임목사가 왜 직급도 낮은 저한테 와서 하소연을 하냐고요!”

태평한 연오랑과 반대로, 이순지는 병아리마냥 빽빽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연오랑은 정식 관직도 없으면서도 총사령관이자 군정총괄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건, 지금껏 해온 일에서 굉장한 성과를 보였고 또 세종과 태종이 믿고 맡겼기 때문.

뭐랄까. 스타터팩으로서는 최고의 카드라고 할까.

허나 남주도가 조선의 강역이 된지 3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 조정의 관할에 들어올 때가 지났고, 자연스레 신임목사를 비롯한 행정관료들이 파견되어 순환근무를 시작했다.

문제는 연오랑이 그림자가 너무 짙다보니까, 목사조차도 일처리를 할 때 은근히 그의 의견을 묻거나 검토 비슷한 걸 받으려고 한다는 점.

이러니 군정을 위해 파견됐던 관료들과 이번에 조정에서 파견한 정식관료들은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껴서 피곤이 두 배가 됐고, 그 하소연을 연오랑과 친분이 깊은 이순지가 다 받고 있었던 거지.

정인지라도 있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정인지는 향교개혁방안을 들고 조정으로 향한지 오래.

본의 아니게 이순지만 죽어나가고 있었다.

“알아서 하라고 해도 그러네.”

“그게 그렇게 됩니까! 일 하기 싫으면 다른 곳에 있지, 사람들 눈치 보이게 왜 꼭 여기에 있는 거예요?”

“전망 좋잖냐.”

툴툴거리는 이순지를 보며 연오랑은 여유롭게 커피잔을 들어 보이며, 저 밑에 보이는 시장거리를 가리켰다.

“전망은 개뿔.”

“...”

연오랑이 슬쩍 눈을 흘기자, 이순지는 못 본척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차피 은행도 가봐야 하잖아요? 빨리빨리 해치우고 집에 가서 쉬시죠.”

이순지는 낑낑거리며 연오랑을 일으키고선 연신 재촉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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