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04화 (404/538)

404. 챕터53. 영위하다 (7)

“돌아서 가자.”

“예.”

저 난장판에 낄 필요가 있나. 둘은 방향을 틀어 다른 문을 통해 관아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진짜 많이 커졌네?”

“에이. 아직도 못 지은 건물이 많죠.”

눈앞에 3층 전각이 가득하건만, 이순지는 태평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직도 부족하다고?”

연오랑이 의아해서 되묻자,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남주는 남주도의 주도主都잖아요? 당연히 더 커져야죠.”

“흐음...”

‘여기가 이 정도면 한성은 얼마나 더 크게 만들려는 거야?’

연오랑은 대만섬에 머무는 동안, 공주가 있는 용연현만 오갔고 한성은 가보지도 않았다.

그러니 재개발로 인해서, 과연 얼마나 변했을지 감도 안 잡혔다.

“행궁도 지어야 하니까.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여기도 임시딱지를 때고 정식으로 부가 되어야죠.”

“음.”

그러거나 말거나 이순지는 계속 흥얼거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감독하는 분야라서 그런지, 할 말이 꽤 많은 모양이다.

‘이야... 예전 관아의 모습은 찾아보기도 힘들겠어.’

이야기를 들을수록, 연오랑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잡직관원이 없어지고, 향리와 같은 지방관아와 관원이 완전히 중앙조정에 종속되지 않았나.

육조체제가 부서제로 확장되면서 관원이 늘어날수록, 지방관아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관원도 늘어나기 마련.

여기에 난잡했던 행정구역을 현으로 통일하고, 도를 중심으로 부를 편성했다. 남주도는 아직 정리가 안돼서 임시로 기존행정조직인 목으로 칭했지만, 부로 승격될 예정이었지.

그리고 주도인 부에는 착호군을 이끌던 태종이 머물면서, 행궁을 짓는 게 새로 생긴 관습처럼 변하지 않았나.

‘이 먼 대만섬까지 왕족이 올 일이 있을까 모르겠다만... 뭐 만들어서 나쁠 건 없겠지.’

낭비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든 써먹지 않을까? 행궁이 없다는 이유로, 조선본토에 비해 낙후되고 차별받는다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거다.

아무튼. 사정이 이렇게 변한 만큼 지방관아는 거대해서, 허드렛일을 하는 계약직 관원까지 합치면 남주에만 오백명 가까이 근무하고 있었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네.’

원래 역사에서 작은 조정을 추구하던 조선의 모습은, 이것만 봐도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외성도 없는 판국에, 이건 꼭 내성이 생긴 것 같잖아?’

연오랑은 시선을 돌려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관아의 담벼락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담벼락도 그냥 담벼락이 아니라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두텁게 쌓아올린 벽 아닌가. 어쩌면 저건 담벼락이 아니라 성벽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정신없이 이어져 있는 전각들을 지나쳐 외곽으로 향할수록, 점점 거대해지는 창고 건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씁...”

헌데... 전례 없던 엄청난 창고단지를 보고 있건만, 연오랑은 어째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요?”

“언제까지 관아가 장사를 해야 되는 거냐? 빨리빨리 해결되면 좋겠는데 말이지.”

“에이. 여긴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연오랑의 불평에 이순지는 피식 웃으며 흘려 넘겼다.

이런 난장판을 어디 하루 이틀 보나. 관아의 전각으로 써야할 저 건물들은 앞으로도 몇 년간은 창고로 써먹어야 할 거다.

“본토에서는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여긴 아직도 한참 부족하잖아요? 본격적으로 상단이 만들어지려면, 남주도가 본토의 지원 없이 자생할 정도로 커야겠죠.”

“음...”

‘틀린 말은 아니야. 사실 이것도 생각보다 빨리 되고 있는 거잖아? 본토의 민간상단이 여기까지 오는 건 쉽지 않겠지.’

연오랑은 혼자 너무 앞서나가는 듯 싶어서, 아쉬움을 얼른 털어냈다.

조선은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조정이 직접 관리하는 유통망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기업의 공인과 더불어 공노비의 해방이 이뤄지면서, 기술과 경험이 있는 공노비들이 죄다 기업으로 빨려 들어갔다.

결국 조정이 부릴 수 있는 인력만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물동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됐지.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운선을 옮기는 일.

거의 십년 전부터 한계를 느끼고서, 조정은 민간유통기업에게 하도급을 맡기고 야금야금 넘겨왔었지.

그럼에도 조선의 생산량을 유통이 따라오지 못해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광흥창이 만물창고가 되어버린 지 한참 지났는데도, 여긴 아직도 이 모양이란 말이지.’

조선본토에서는 이 문제가 얼추 해소된 걸로 보였는데, 남주도는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 지금 연오랑이 보고 있는 창고가 바로 남주도판 광흥창이니까.

상인을 거쳐서 시장에 바로 풀려야 할 상품들이, 시장으로 가지 못하고 관아에 가득가득 쌓여 있던 거지.

“무역상단이 등장하지 못해서 그런가...?”

“그렇죠. 솔직히 남주도까지 배를 몰고 올만한 상단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들 본토에서 활동하면서 자본력을 쌓아 덩치부터 먼저 키워야죠. 배가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자신만만하게 도전하는 기업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에이. 중국배로 깨작깨작 옮겨봐야, 조정이 부리는 무역선에 상대가 안 되잖아요? 바다 건너 여기까지 오는 게 오히려 더 손해일 거예요.”

“흐응...”

연오랑은 충분히 이해가 돼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아까 말했듯이 유통, 물류기업이 등장하면서, 가장 먼저 진출한 분야가 바로 조운을 운반하는 일이다.

이 조운선은 사실상 내륙수송선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실을 수만 있다면 뭐든 실어서 수로를 따라 물건을 옮겼지.

이로 인해 내륙수로와 조선본토의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는 유통상단은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아직까지도 바다를 건너려는 무역상단은 등장하지 못했다.

조정이 외국과 거래하는 무역상단을 뒤늦게 허가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순지가 말한 대로 조정의 운송능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

“신형무역선이 풀리지 않으면, 사실상 무역상단이 등장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는 거군?”

“배도 물론 그렇지만, 더 큰 걸림돌은 따로 있죠.”

“...?”

“남주도는 아국땅이니 조차지와 달리 제약이나 세금 문제가 없지만, 본토와 다르게 이곳에선 조정이 직접 생필품을 풀고 있잖아요? 그 양을 줄이지 않으면, 남주도로 진출하려는 상단은 없을 거예요.”

“시간이 답이겠네.”

“그렇죠.”

대만섬은 조선이 정복한 땅이고, 원주민을 불만 없이 조선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먹고살 걱정을 해소시켜주는 게 전제조건이다.

그러니 본토에서 생필품을 구입하고 운송하는 건 시장논리를 따르더라도, 그걸 이곳으로 옮겨서 원주민에게 배분하는 건 시장논리를 따를 수가 없다.

이러니 민간상단이 힘들게 배를 띄워서 물건을 실어오면 뭐하나.

조정이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을 더 싼값에 시장에 풀고 있으니,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거지.

더불어 가까운 강남상인을 통해 어지간한 물건은 남주도 관아에서 직접 사들이는 상황.

결국 조정이 직접 생필품을 운반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상, 남주도로 직접 올 상단은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이곳이 완전히 자생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건데...”

“그래도 오래 안 걸릴 겁니다. 여긴 땅에 비해 사람이 적고, 대신 본토와 북방에 없는 특산물이 많으니까... 결국 상단이 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게다가 벌써 남주도 내륙을 돌아다니는 유통상단이 생겼잖아요?”

“그게 상단이냐. 그냥 덩치 큰 행상이지.”

“에이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차차 덩치를 불리겠죠.”

연오랑이 툴툴 거리자, 이순지는 히죽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본토에서 상단이 오지 않는 문제도 있지만, 남주도 내부의 문제도 존재했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원주민을 모아놓은 탓에, 남주도 내에는 굵직굵직한 큰 도시만 있지 점처럼 흩뿌려진 작은 도시가 없다.

동쪽산맥 지대에 위치한 공업기업도시들을 제외하곤 죄다 서쪽 해안가에 신도시가 몰려 있고, 이곳은 남주로 들어온 생필품을 조정이 직접 나서서 운반하고 있다.

남주도 내부를 돌아다니는 상단의 경쟁자가 곧 조정인데, 누가 조정과 경쟁을 하려고 하겠는가.

배가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설령 배가 있더라도 신형무역선과 경쟁해야 하니 알아서 꼬리를 만 거지.

그래서 남주와 산맥도시를 돌아다니는 자잘한 행상들만 등장한 상태였다.

“그래도 조금씩 줄어들곤 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결될 겁니다.”

“그래야겠지.”

희망찬 미래를 상상하며 둘은 걸음을 계속 이어갔다.

창고부지를 지나쳐 은행부지와 가까워지자, 방금 전에 지나친 창고보다 더욱더 거대한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새로 만든 곡물창고냐?”

“어때요? 특이하게 생겼죠?”

“어.”

이순지는 자랑하듯 떠벌렸고, 연오랑은 “저게 뭔가?” 싶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양전사업이 진행될 때. 조선의 모든 곡물창고. 예컨대 과거의 의창, 군자창과 같은 관창을 전부 하나로 묶어 통합 관리했다.

이는 세수를 하나로 합치기 위함도 있었지만, 기존의 곡물창고를 새롭게 개보수하려는 의도도 있었지.

둘은 냉큼 문이 닫혀 있는 곡물창고로 다가가 살폈다.

“단이 원래 이렇게 높은 거냐? 아니면 남주도라서 높인 거냐?”

“원래 이렇게 높죠.”

“음...”

연오랑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건물 주춧돌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곡물창고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아예 땅바닥과 이격해서 바닥을 만들었다.

돌과 벽돌. 삼물회로 완전히 다져서 바닥을 통으로 높게 올리고, 벽면 또한 나무와 벽돌을 섞어서 지붕을 더 크게 만들었다.

기존 조선가옥은 기둥이 무게를 지탱하는 것에 비해, 이건 서양건축양식처럼 벽면전체가 무게를 지탱하는 형태였다.

이래서 창문을 만들기가 힘들어 답답한 면이 있지만, 반대로 더 높고 크게 건물을 지을 수가 있었지.

여기까지는 조선본토와 크게 다를 게 없는데, 지금 보이는 건물은 특별한 구조물이 하나 더 들어갔다.

“저기 보이시죠? 저게 이번에 새로 만든 풍탑입니다.”

“오...”

한참을 뒷걸음질 친 연오랑의 눈에, 검은 기와지붕 위로 불쑥 튀어나온 굴뚝들이 보였다.

“이야... 저걸 진짜 만들었네?”

“흐흐. 서방의 기술이 제 손에 의해서 재탄생했죠.”

“잘했다.”

연오랑은 이순지의 자랑에, 오랜만에 크게 동조를 해줬다.

지붕 위로 튀어나온 구조물은 사실 굴뚝이 아니라, 중동아랍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풍탑이었으니까.

풍탑은 대류현상을 이용해서, 강제로 공기의 흐름을 이끌어내어 내부를 서늘하게 만드는 건축양식이었다.

비단길을 부활시킨 후에, 조선은 서방의 온갖 서적과 기술을 긁어오지 않았나.

당연히 건축에 관한 서적도 많이 흘러들어왔는데, 이순지는 건축장인의 도움 없이 책만 보고서 저걸 만들어낸 거지.

“서방인 장인이 직접 보고 평가를 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에이. 본토에서 만든 방식 그대로 제가 따라 만들었는데, 문제가 있겠어요? 본토에선 서방인 장인이 검수했으니 별 탈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저게 효과가 있긴 있는 거냐?”

“만든지 얼마 안 되서 검증이 안됐는데...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죠. 뭐.”

“그야 그렇겠지...”

‘하긴 손해 볼 건 없으니까. 풍탑 만든다고 돈이 엄청나게 더 드는 것도 아니고.’

연오랑은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굳이 곡물창고에 저걸 설치한 건, 곡물을 보관할 때 최대의 적이 습기와 쥐였기 때문.

물론 풍탑으로 인해 엄청난 효과를 보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나. 있어서 나쁠 건 없다.

‘중동에선 천연 에어컨처럼 써먹는 물건이니, 안 그래도 더운 대만섬에는 있어서 나쁠 건 없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는 동안, 순찰을 돌고 있던 연대병 몇이 쫄랑쫄랑 다가왔다.

컹컹! 옆에는 목줄을 묶은 개도 함께 데리고 있었는데, 산책 겸 순찰을 같이 돌고 있던 모양이다.

“충성!”

“오냐.”

연대병은 연오랑을 바로 알아보고선 경례했고, 그는 히죽 웃으며 받아줬다.

대신 격한 반응은 군견에게서 나왔다. 녀석은 연오랑이 신기하기라도 한 듯, 그의 주변을 돌면서 킁킁 냄새를 맡아댔으니까.

“관리를 잘했네?”

“옙!”

연오랑이 검은 털을 가진 군견의 머리를 쓱쓱 만져주며 입을 열자, 냉큼 대답이 튀어나왔다.

“창고를 지키는 군견이냐?”

“그렇습니다.”

“훈련은 시키고 있고?”

“옙!”

연오랑이 개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걸 아는 걸까? 연대병은 망설임 없이 술술 대답을 이어갔다.

‘흐음...’

그는 군견의 입술을 들춰 이빨을 살피고, 다리를 주물럭거리면서 몸 상태를 살펴갔다.

덩치는 진돗개와 비슷한 크기의 중형견인데, 생김새는 진돗개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달랐다.

그가 열심히 품종을 개량한, 늑대와 비슷하게 생긴 라이카 계열의 사냥개 일종으로 보였다.

“여긴 더워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떠냐?”

“여름에는 더위를 많이 타기는 한데... 그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훈련을 따라올 정도는 되니까요.”

“다행이네.”

조선개들은 아무래도 추위에 잘 적응하는 편이라서 걱정했는데, 훈련을 따라올 정도면 대만섬 날씨는 가뿐히 견뎌내는 모양이다.

“순지야.”

“예.”

“요새도 원주민들 중에서 개를 잡아먹으려는 사람들이 있냐?”

“글쎄요... 딱히 못 들어봤는데요? 애초에 남주도에는 개가 얼마 있지도 않았잖아요?”

이순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연대병에게 시선을 돌렸고, 다들 동의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만섬에는 원래 살던 토종개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흘러들어온 중국강남의 개들이 있었는데, 그 수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리고 조선이 대만섬에 진출하면서 그러한 들개나 번견들을 싹 잡아다가 쓸만한 녀석들만 골라냈고, 나머지는 다 도축해버렸다.

과격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미 조선에서도 시행했던 일이고, 오히려 이걸 통해서 개량된 품종의 개들이 더 많아진 상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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