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 챕터53. 영위하다 (8)
‘확실히 이젠 자리를 잡은 것 같네.’
연오랑은 연대병들과 관원들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만족스런 미소를 숨겼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개에 대해서, 그와 조정이 각별한 관심을 쏟는 이유는 여럿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조선 사냥개가 꽤나 돈이 된다는 사실이다.
조선백성들이 타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처럼, 중국 백성들도 조선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저 어렴풋이 조선은 고려를 계승했고, 고려는 옛 고구려에서 왔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지.
헌데 고구려는 수,당과 싸웠던 나라고, 고려는 요,금과 싸워 이겼던 나라다.
수백년 전의 사건이지만 사서에 남아 이어져 왔고, 이 시대의 중국 백성들은 조선의 군력이 막연히 강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매우 흔했다.
지금 역사에선 조선이 온 사방을 다 두들겨 패고 다니면서, 이 착각이 현실이 되어버린 판국이지.
이런 용맹과 무투 정신에 대한 착각과 동경은 여러 방향으로 확산됐고, 그 중 하나가 조선 사냥개를 통해 사냥하면서 간접적인 대리만족을 느끼는 걸로 변질되었다.
‘게다가 지금 중국이 분열된 것도 영향이 있을 거야.’
더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암묵적인 권력층으로 군림하던 지방호족과 상인이, 양지로 올라와 진짜 권력층이 됐다.
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길 바라며 특권층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일반 평민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이걸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부를 과시하는 건데, 지금은 눈치 볼 조정이나 사람도 없이 마음껏 사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그러니 옛 귀족들의 문화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연오랑은 중국 상황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특권층은 옛 귀족신분제이니, 원나라나 고려의 귀족들이 즐겼던 문화를 모방하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 된 상황.
조선의 사냥매와 사냥개는 중국 부자들의 사치를 위해서,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은 상태였다.
이런 대외적인 이유가 있다면, 더 중요한 대내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 시대엔 전 세계적으로, 개를 먹는 게 흔한 문화였다.
다만 개고기가 별미라서 즐긴 게 아니라, 조선의 경우에는 섭취할 수 없는 육고기의 한계가 있으니 가장 쉽고 싸고 접근하기 편한 개고기를 많이 먹었다.
한마디로 먹을 가축이 없어서, 개를 먹은 거지.
그런데 이렇게 일상적으로 먹던 개고기를 식량의 범주에서 빼버리면, 이걸 대체할 고기를 찾아야 하지 않겠나.
연오랑과 조정은 더 많은 농장과 목장 설립을 장려하고, 절인생선의 섭취를 독려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거지.
‘이 정책이 시행된 지 벌써 십년도 더 지났는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잘 먹혔단 말이야.’
그는 다시금 속으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문화가 바뀌어버렸으니까.
아까 말했듯 식량으로서 개의 위치는 네발달린 가축 중에서 최하위고, 심하면 닭이나 오리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절인생선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륙백성들은 바다생선을 먹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 당연히 선호했고, 돼지, 양, 소 등의 가축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젠 굳이 맛도 없는 개고기를 찾아서 먹을 이유가 없어진 거지.
‘게다가 이젠 일반 백성들도 자본이라는 걸 인식한 상황이잖아?’
조선 사냥개를 잘 키워서 품종견으로 만들어 중국에 팔면, 농담이 아니라 일확천금을 벌 수 있게 됐다.
이 판국에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개를 팔지 않고 잡아먹겠나.
돈을 좇는 상인과 기업들은 조정이 길을 터주기 무섭게, 다들 맹렬하게 달려들어서 품종견을 만들고 훈련시키고 있었지.
돈이 되는 이런 품종견은 당연히 관아에서도 키우고 있었는데, 이 녀석들은 경계임무 외에도 아주 막중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어떠냐? 풍토가 다른 곳에 왔는데, 여기서도 쥐를 잘 잡냐?”
“물론입니다. 저녁마다 풀어놓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자랑하듯 잡은 쥐를 늘어놓더군요.”
“맞습니다. 쥐뿐만 아니라 두더지나 다른 야생동물들도 알아서 잡더군요.”
연대병들은 앞서거니 두서거니 하면서, 자기가 본 걸 떠들어댔다.
“오...”
연오랑이 작게 감탄을 흘리자... 컹컹! 칭찬을 용케 알아듣기라도 한 것 마냥, 군견은 작게 울었다.
곡물창고의 최대 적이 습기와 쥐라고 하지 않았나.
이 쥐가 파먹는 곡물양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괜히 곡물창고를 석재로 짓고 바닥을 높이 올린 게 아니지.
여기에 추가로 쥐를 사냥할 목적으로 사냥개를 곡물창고 근처에서 키웠는데,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꽤 좋았다.
“고양이보다 더 잘 잡냐?”
“에이. 말해서 뭐합니까. 고양이보단 사냥개가 여러모로 쓸모가 더 많죠.”
쥐 잡는 게 고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서, 연오랑은 조용히 되물었건만... 이순지를 필두로 모두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시대에도 고양이는 흔하게 있었고, 야생고양이 뿐만 아니라 애완용으로 키우는 녀석들도 존재했다.
다만 고양이는 쥐 잡을 때 빼곤 쓸모가 없지만, 사냥개는 다용도로 사용이 가능하지 않나. 굳이 관아에서 고양이를 키울 필요까진 없는 거지.
“게다가 고양이는 이미 해군과 선원들이 다 털어가서, 키울만한 녀석도 없을 걸요?”
“에이.”
그게 뭔 허풍이냐는 듯 연오랑이 피식 비웃자.
“진짜라니까요. 요샌 항구나 포구 근처에서 보던 고양이들도 죄다 집어간다고요. 배에서는 개를 키우는 것보다 작은 고양이를 키우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하던데요?”
이순지는 농담이 아니라는 듯, 눈에 불을 켜고 답을 했다.
쥐가 곡물을 파먹는 건, 육지뿐만 아니라 바다 위에서도 마찬가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조운선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건, 흔하진 않지만 드문 일도 아니었다.
헌데 이젠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물동량이 늘어나고, 심지어 한 달 가까이 배를 타고서 대양을 항해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나.
제한된 식량을 보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해군과 무역선에선, 더욱더 쥐를 잡는 일에 열중할 수밖에 없는 바.
무섭도록 불어나는 함선 숫자에서 맞추기 위해서, 야생고양이까지 죄다 잡아다가 배에서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 수고해라.”
“옙!”
“충성.”
연오랑은 자신의 손을 자꾸 핥으려는 사냥개를 마지막으로 쓱쓱 매만져 주고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담벼락을 통과하기 무섭게 새로 만든 곡물창고가 줄줄이 이어져 있었는데... 창고 앞은 하나같이 백성들로 가득했다.
“...”
“...”
연오랑과 이순지는 괜히 번잡스럽게 만들기 싫어서, 조용히 한쪽 구석에 숨어서 하는 짓을 지켜봤다.
백성들은 싣고 온 쌀가마를 관원에게 넘겼고, 관원은 양을 확인한 후에 주화로 바꿔주고 있었다.
모든 곳이 다 똑같은 건 아니었다. 어디서는 도정이 된 쌀을 파는 경우도 있었고, 도정되지 않은 쌀을 파는 창고도 있었다. 그 외에 쌀 말고 다른 곡물을 파는 백성도 부지기수였지.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복잡하고만...”
“경작한 땅이 더 늘었으니, 해가 지날수록 계속 번잡해질 겁니다.”
“창고가 부족하진 않겠지?”
“글쎄요... 다른 잡화창고가 비워질 테니까, 곡물창고가 남지 않을까 싶네요.”
“음.”
연오랑과 이순지는 조용히 대화를 나눴지만, 누가 봐도 수상해 보였나 보다. 특히나 관원들은 연오랑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으니 말이 들어가기 마련.
구석에 비켜서서 잠시 구경하기 무섭게, 부리나케 은행장이 달려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는 방금 전까지도 일을 하다가 왔는지, 관복조끼의 속주머니에서 연필이 비어져 나와 덜렁거리고 있었다.
“대감! 어쩐 일로...?”
은행장은 이순지를 보며 “왜 미리 말을 안 했어?”라고 말하듯 눈을 흘겼지만, 녀석은 히죽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냥 구경나왔다.”
“그렇습니까...”
그의 싱거운 대답에, 은행장은 얼굴이 흐려졌다가 얼른 펴졌다.
“돈 가지고 있는 거 있냐?”
“여기 있습니다.”
역시나 일을 하다가 온 게 맞는지, 은행장은 바지주머니를 뒤져 주화를 꺼내 연오랑에게 내밀었다.
‘봐도 봐도 잘 만들었단 말이지.’
그는 철전과 은전,금전을 번갈아가며 만지고 두들기면서, 속으로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이건 그가 열심히 키우고 훈련시킨 세공장인들이 만든 주화 아닌가.
연오랑도 비단길을 타고 서방에서 흘러들어온 은화와 동남아시아를 통해 넘어온 인도의 은화를 직접 봤는데, 조선주화만큼 훌륭한 주화를 보지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주화를 살피면서 질문을 던졌다.
“백성들은 어떠냐? 화폐에 익숙해지는 것 같냐?”
“물론입니다. 원주민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그렇게 교육을 시켰고, 강남이주민은 저희보다 화폐를 더 잘 사용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서 수거한 홍무통보와 마제은이 심심치 않게 있었으니까요.”
“음.”
이건 연오랑도 보고 받은 사안이라서, 고개가 냉큼 끄덕여졌다.
‘원주민은 본토와 처지가 달라서 어려움이 있을 줄 알았는데... 큰 문제가 없나보네. 역시 편한 게 좋은 건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창고만 가득한 곳이 뭔 은행인가 하겠지만, 조선의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
조선에선 쌀과 면포가 곧 돈이었으니, 진짜 화폐를 유통하기 위해선 민간에서 화폐대용으로 쓰이고 있던 쌀과 면포를 다 수거해서 바꿔줘야 했으니까.
더불어 남주도는 백성들이 수확한 쌀을 도매해서, 다른 지역에 파는 미곡상조차 없지 않나.
그렇다보니 개별적으로 은행에 찾아와서 세금을 제한 나머지를 금액을 주화로 바꿔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관아와 은행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지.
“본토보다 더 빠르게 적응하는 걸 수도 있단 말이군?”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뒤쳐지진 않을 겁니다.”
“흐음...”
“...”
“주화가 부족하진 않고?”
“예. 작년에도 해왔던 일이고, 그 때의 문제점을 충분히 보완했습니다.”
“그래야지.”
은행장은 혹여나 책잡힐까 싶어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답을 했다.
쌀과 면포와 같은 대용화폐를 사용하다가 금속화폐를 사용하는 건,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말이 대용화폐지 사실상 물물교환이나 마찬가지니까.
허나 개혁 전과 개혁 후의 조선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확장된 상태. 물물교환은 성장세의 발목을 잡는, 주요한 요인이 되어버릴 정도였지.
그리하여 태종 때에 실패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은행설립과 화폐유통은 무려 오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정교하게 가다듬어져 준비되었다.
준비기간이 길어진 건 주화의 보유량을 충분히 채우려는 것도 있었지만, 백성들이 “쌀 들고 다니면 무거워 죽겠는데, 그 조선통보라는 건 대체 언제 나오는 거냐?”라는 불만과 요구가 빗발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작년에 전격적으로 이 열기를 소나기처럼 식혀줄 주화 유통이 시작됐다.
당연히 온갖 시시콜콜한 문제가 터졌지만... 문제점을 예상해 놓고 해결한 방안을 준비해 놨었기에, 큰 틀에서 보면 순탄하게 진행된 편이었지.
이곳 남주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으니, 올해는 더욱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시장에 풀리는 수량이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있나?”
“글쎄요... 적어도 남주도에서 만큼은 다른 곳으로 세지 않고 잘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주도(해남도)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거긴 사람이 더 적으니까?”
“예.”
지금은 경애도, 미래에는 해남도라 불리는 섬은 조선땅이 되었으니, 당연히 이름도 새로 붙여야 하는 법.
조정에선 그곳을 해주도로 명명했고, 남주도에서 머무는 관료들이 해주도까지 함께 관할하고 있었다.
해남도의 개발과 개간이 끝나면 그곳도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떨어져 나가겠지만, 아직까진 한참 시기상조였지.
천만다행이도 둘 다 문제는 없어 보인다.
“아국의 주화가 타국상인에게 빠져 나가는 일도 없고?”
“예. 철저히 관리하고 있고, 엄벌을 내리겠다고 엄포를 내놨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연오랑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금 확답을 바라자, 은행장은 신병마냥 몸을 바로하고선 고개를 숙였다.
중국에 은,금화가 유출되는 것에, 조정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은행장 아닌가.
중국이 은을 빨아먹기 시작하면 조선의 은을 다 빨아먹을 게 분명하기에, 혹여나 조선은화가 넘어가면 화폐제도가 자리 잡기도 전에 실패할 거다.
“으음... 주화의 수량에 큰 변화가 없다는 건, 방구석에 잠들어 있는 주화가 없다는 뜻이겠지?”
“그렇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연오랑의 속뜻을 냉큼 알아차린 이순지와 은행장이 동시에 답을 했다.
“여기에서만 그럴 거 같냐? 아니면 본토에서도 그럴 거 같냐?”
“글쎄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그래도 은행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잠자고 있는 주화가 없을 겁니다. 그만큼 많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집안과 기업이 흔치 않으니까요. 명부를 만들어서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연오랑은 둘의 대답을 들으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종의 화폐개혁이 실패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고, 그 중 하나는 화폐가 양반가나 부잣집에 흘러들어가 나오질 않아서 화폐의 유통수량이 고갈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거였다.
그 시절 화폐는 쌀과 면포였으니 당연히 장기보관이 불가능했고, 이 때문에 가산을 유지하고 늘리기 위해서 영속적인 땅을 소유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나.
헌데 태종이 뿌린 금속화폐는 보관성이 뛰어나니, 시장으로 돌지 않고 그냥 창고에서 나오지 않고 잠들어 버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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