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09화 (409/538)

409. 챕터54. 살펴보다 (1)

“으...”

“큼.”

그렇게 전답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말을 몰아가기 무섭게, 둘 모두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전답 한쪽에 큼지막하게 만들어진 창고부지에서, 고약한 악취가 흘러나왔기 때문.

“오물수거기업?”

“예. 이번에 하나 더 생겼습니다. 벌써 여덟 개째예요.”

“그렇게나? 전부다 유지가 돼?”

“남주로 이주하는 백성들도 늘고 있고, 무역항을 드나드는 상인은 점점 늘어가고 있으니까요. 무역항에서 나오는 오물만 수거하는 기업도 따로 생겼죠.”

“오...”

‘하긴 이제 자리를 얼추 잡았으니까.’

무역항이 정식으로 문을 열고, 제대로 된 건물들도 착착 들어서지 않았나. 기존에 자주오던 광주, 자동상인들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일본상인들도 오고 있는 중.

면적당 인구밀도만 따지면, 무역항에 드나드는 유동인구가 남주에 사는 백성들보다 훨씬 많다.

무역항만 담당하는 오물수거기업이 등장하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지.

‘다만...’

“타국인들은 아무데나 똥을 싸지르는 게 일상이잖아? 어때? 화장실을 쓰는 것에 불만이나 불편은 없고?”

“지들이 있으면 어쩔 겁니까.”

“...”

저렇게 말하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연오랑은 슬쩍 눈을 흘기며 핀잔을 줬다.

“농담이고요. 타국인이라고 해도 무역항을 자주 드나들었던 이들이니까요. 이젠 눈치를 봐서라도 그렇게 쉽게 바지를 까진 못하죠.”

“음...”

화장실 문화는 분명 선진적인 거고, 다른 나라사람들이 이에 익숙하지 못한 건 당연한 말.

허나 남주도에 무역항을 연지 벌써 3년이 넘었다.

배를 띄울 수 있는 무역상인은 사실상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 남주도의 무역항은 분명 낯설어도, 기존의 조차지와 무역항을 오가던 이들은 얼추 조선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지.

“그래도 멋모르는 신입선원들이 있을 텐데?”

“포도군사가 순찰을 돌고 있고, 타국상인들이 자체적으로 단속하고 있습니다. 벌금을 비롯해서 불이익을 주는데, 어쩌겠습니까.”

“...”

처음에는 “뭔 똥오줌 싸는 것까지 뭐라고 하냐!”라고 은근히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조선관원들이 “싫으면 꺼져! 오지마!”라고 단호하게 대처하는데 뭐라 할 말이 있을까.

울며 겨자 먹기로 선원들을 단속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도 똑같은 사람 아닌가.

조선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깨끗하고 냄새나지 않는 거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이젠 알아서 척척 잘 따르고 있었다.

“오물수거기업에 대해서 묻지는 않고?”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인분을 활용해서 거름으로 만드는 방법은 알려지지 않았죠. 그것도 나름 비법 아닙니까.”

“그렇겠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거름을 만들어 쓰고 있지만, 조선만큼 체계적으로 인분비료를 만들어 쓰는 나라는 없다.

별 거 없어 보이는 이것도 나름 시대를 거스른 혁명이니까.

해서 기술이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 조차지에선 오물수거기업을 만들어 놓고도 거름으로 만들지 않고 그냥 죄다 바다에 버리고 있었다.

“그래도 깨끗한 거리에 익숙해지면, 고향에 가서도 따라해 볼 법 한데 말이야.”

“에이. 그게 쉽게 되겠습니까.”

이순지는 피식 비웃었지만, 연오랑은 한번 더 되짚었다.

“전에 남상주에서 역병이 퍼졌던 소문을 들었잖아? 그게 오물 때문에 생긴 걸 알았으면, 얼추 대비를 할 텐데?”

대만섬 진출 초창기에 대규모 전염병 사태가 터졌고, 남주에 드나들던 상인들도 그 소문을 접하고 두려움에 떨었었다.

허나 그 원인과 해결책을 곧장 알아내서 역병을 잠재우자, 조선의 대처능력을 꽤나 신비롭게 바라보기도 했었지.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쉽게 하진 못할 걸요? 저 땅 넓은 중국내륙 어디에선 지금도 역병이 퍼지고 있을 테니, 그러려니 할 거고... 오물수거기업을 유지하는 게 한두푼 드는 게 아니잖아요? 돈이 되지 아니었다면, 아국백성들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흐음...”

‘맞는 말이야.’

이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라서, 고개가 끄덕이고 말았다.

더러운 똥오줌을 치우는 건 노비들이나 하는 일로 받아들일 텐데, 이걸 조정에서 강제했다면 쉽게 정착됐을 리가 없다.

“인분거름을 만들 줄 모르는 한, 본격적으로 도시정화사업을 하긴 힘들다는 말이군.”

“예. 한두푼 들어가는 게 아닐 테니... 체면 차리고 유난떠는 호족장원이라면 모를까, 도시전체에서 하긴 힘들 겁니다.”

오물수거기업을 지나치면서도 둘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럼 저곳에서도 이제 인분거름이 나오고 있겠네?”

“제가 담당하는 업무가 아니라서 정확히 모르지만...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왔으니까, 올해는 더 많이 생산되지 않을까요?”

“흐응.”

인분거름은 푹 삭혀야 제대로 효과가 나오기 때문에, 최소 일 년은 묵혀야 한다.

다만 이곳은 조선본토와 기후 및 풍토가 많이 달라서, 본토에서 하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다.

과거 만주땅을 개척했을 때도, 북방기후에 맞는 거름 만드는 방법을 따로 연구하지 않았나. 이곳도 마찬가지라서, 오물을 모아 이것저것 실험하느라 시간이 걸렸지.

얼추 자리를 잡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될 것 같았다.

“구충제는?”

“지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죠. 연구원들과 의약부 관원들은 이곳의 토종약초를 가지고 더 다양한 약재를 만들고 있을 걸요?”

“잊지 않고, 잘 하고 있고만.”

“에이. 그 끔찍한 기억을 어떻게 잊어먹어요. 다들 인이 박혀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걸요.”

연오랑이 히죽 웃으며 말하자, 이순지는 치를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인분거름과 세트로 함께 묶이는 건, 역시나 기생충을 억제할 구충제다.

이건 인분거름이 나올 때부터 선을 보였던 물건이고, 이순지도 자기 뱃속에서 지렁이만한 회충이 똥과 함께 나온 걸 직접 목도하지 않았나.

모든 관원이 그 끔찍한 경험을 공유했기에, 절대 소홀히 하지 않고 구충제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구충제만 전문으로 만드는 약재기업이 등장했을 정도니까.

“크큭. 니들이 치를 떨 정도면, 원주민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겠네?”

“말해서 뭐 합니까. 승려들이 아주 개고생을 했죠. 뭐... 덕분에 사찰이 더 쉽게 자리 잡았지만 말이죠. 같이 봤으면서 다 잊어버렸어요?”

“어.”

연오랑이 계속 웃어대며 말을 이어가자, 이순지 또한 과거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나름 문명화되었다는 조선인들도 난리가 났는데, 대만 원주민의 반응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뱃속에서 회충이 우르르 떨어지자,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냐.” “뭐 잘못된 거 아니냐.” “잡신에게 빌어야 한다.”등등. 난리도 그런 난리가 또 없었지.

의약부 관원들이 원리를 알려줘도 알아먹지 못하는 원주민들을 다독여 준건, 의약과는 관련도 없던 승려들이었다.

원주민들은 이걸 무슨 미신이나 저주 비슷한 걸로 받아들였기에, 그 여파가 어째 요상한 방향으로 튀고 말았지.

“그래도 지금은 꼬박꼬박 잘 먹고 있지?”

“예. 그냥 날을 정해서 먹는 걸로 바꿨잖아요? 이제 다들 익숙해졌습니다. 오히려 이걸 무슨 만병통치약인 것 마냥 마구 먹고서, 죽다 살아난 이들도 있었으니까요. 특히나 강남상인 중에서 그런 이들이 몇몇 있었죠.”

“아... 그건 나도 들어본 것 같다.”

“하여간 한족들은 몸에 좋은 거라면, 가리지 않고 먹으려고 한단 말이죠.”

‘그건 너희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연오랑은 한껏 비웃는 이순지를 보며, 피식 쓴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언제부터 조선인들이 보양에 무관심했다고, 저런 양심 없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냥 없는 말도 아닌 게... 진짜로 구충제를 만병통치약처럼, 사기 쳐서 팔려는 강남상인이 몇 있기도 했었다.

뭐... 덕분에 구충제는 꾸준히 쏠쏠하게 팔리는 상품이 되기도 했고.

‘그럼...’

오물수거기업을 놓고 생각의 끈은 계속 이어진다.

“거름이 생산되기 시작했으면, 염초도 나온다는 말이겠네?”

“예. 아마 올해부터 나오지 않을까요?”

아직 염초밭을 만드는 방법은 완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거름을 만들고 남은 흙을 모아서 염초를 만들고 있었다.

이건 거름을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삼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슬슬 생산되려고 하는 거지.

“유황은 문제없을 테고, 목탄은 남주도의 나무를 가지고 이것저것 실험하고 있으니까... 이제 남주도 자체적으로 화약을 생산할 수 있겠네.”

“그렇게 되겠죠? 들어보니 이곳의 석류황의 품질도 나름 괜찮다고 하던데요?”

“...”

둘은 말을 하다가 말고,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동쪽으로 돌아갔다.

남주 바로 위쪽에는 화산이 존재했고, 조선이 오기전에도 몇몇 원주민 부족은 이걸 캐서 중국상인에게 파는 이들이 있었다.

지금은 본격적인 광산기업이 등장했고, 원주민을 사원으로 고용해서 열심히 파고 있는 중이었지.

대만에는 생각보다 온천이 많았는데, 자연히 노천유황광산도 상당수 존재했으니까.

‘다만...’

“유황광산 사원들의 건강은 계속 신경 쓰고 있는 거지?”

“예. 그 부분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난리가 나면 기업이 풍비박산 날 텐데, 마구 부려먹을 수 있나요. 사실 유황광맥에 대해서만큼은 원주민이 더 잘 알고요.”

유황광산은 유독가스가 흘러나와서, 오래 일하면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운 곳.

원주민들은 여길 무슨 저주받은 땅처럼 생각하다가, 강남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이게 돈이 된다는 걸 알고서야 조심스럽게 접근했지 않나.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채굴한 유황을 정련하는 건 조선의 기술이 뛰어나도, 채굴 그 자체는 원주민들의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처우가 개판이면 다른 기업으로 가버릴 테니, 가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름 잘 대해주겠지.’

연오랑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살포시 고개를 흔들었다.

어째 지금 시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용유연성이 확보된 것처럼 보였으니까.

적어도 남주도 만큼은, 일거리는 넘쳐나는 데 사람은 부족한 곳 아닌가. 옛 시절처럼 사원들을 쥐어짜는 짓은 절대 못하고, 백성들 또한 어리숙하게 시키는 대로 참고 버티지도 않을 거다.

오물수거기업을 지나쳐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자, 남주강의 물줄기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쪽으로 향하는 큰 물줄기는 동부산맥에 닿아 있는데, 그 끝에는 제재기업, 광산기업, 자기기업등이 밀집한 공업도시가 위치해 있었다.

반대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물줄기는 미래의 기륭. 지금은 남항주로 이름 붙인 지역과 닿아 있는 산맥으로 이어지지.

둘은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줄기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새로 만든 다리지?”

“옙!”

이순지가 직접 설계해서 만든 다리 아닌가. 녀석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랑을 하고 싶어서 입술이 씰룩거렸다.

“남쪽에 다리를 놓는 건 무리지?”

“아무래도 그렇죠? 수로를 막아버리는 게 더 손해니까요.”

동쪽의 공업도시에서 생산한 모든 제품은 뗏목이나 수송선에 실려서 남주로 오고 있었다.

남주에도 공작기업, 조선기업등의 온갖 기업이 외각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 원재료는 끊임없이 흘러 들어와야 하는 법.

건너기 편하겠다고 다리를 만드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다.

“강폭이 너무 넓기도 하고?”

“그런 점도 있고요.”

이순지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

계속 나아가 다리에 닿자,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완성됐을 때 이미 보긴 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봐도 놀랍기 그지없다.

‘생각보다 엄청 잘만들었단 말이지.’

북쪽 강줄기는 수로로 잘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다리를 놓았는데... 그 크기에 먼저 압도당한다. 다리의 폭이 아무리 못해도 거의 10미터는 될 법한, 초대형 다리니까.

형태 또한 지금까지 본 것과 다르다.

강 중간중간에 기둥을 세우고, 작은 아치형구조를 이어 붙인 형상이었는데... 이건 꼭 미래에 봤던 서양의 고대다리를 연상케 했다.

“이게 로마국의 다리란 말이지?”

“흐흐. 핵심만 뽑아서 제가 새로 설계했죠.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더라고요.”

“그건 너니까 가능한 거고.”

“헤헤.”

연오랑의 칭찬에 이순지는 헤실헤실 계속 몸둘바를 몰라 했다.

틀린 말이 결코 아닌 게, 인간계산기인 이순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뚝딱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했을 거니까.

비단길이 열리고 서방의 온갖 기술서적 및 장인을 뽑아먹지 않았나. 그 직접적인 효과가 이렇게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아무리 강폭이 넓지 않아도 그렇지. 이게 이렇게 쉽게 될지는 몰랐는데 말이야.’

그간 조선의 다리를 보며 한탄을 금치 못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럴 듯한 다리를 만들어냈다.

“건축일지는 조정으로 보냈지?”

“물론입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지를 적었으니까. 그걸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제가 만든 것과 얼추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걸요?”

“잘했다.”

연오랑은 다시금 공치사를 늘어놓고선, 성큼성큼 말을 몰아 다리로 다가갔다.

석재를 조립해서 만든 다리답게 군데군데 색이 달랐는데, 겉 표면만큼은 그래도 매끈하게 포장되어 있다.

“삼물회를 발랐냐?”

“토대는 깎기 쉬운 대리석으로 쌓고, 마감은 삼물회로 했습니다. 로마국에서도 삼물회 비슷한 걸 쓴다고 했는데, 이곳에서는 똑같이 만들기가 힘들더라고요. 화산재가 섞인 흙을 쓴다고는 하는데... 연구를 더 해봐야 할 거 같아요.”

이순지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아까 봤던 유황광산지대로 눈을 돌렸다.

저 화산 덕택에 화산재가 섞인 흙이 널려있으니, 노가다반복작업을 계속하다보면 뭐라도 하나 얻어 걸리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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