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10화 (410/538)

410. 챕터54. 살펴보다 (2)

“색이 제멋대로이긴 한데... 전부 대리석은 대리석이란 말이지?”

“넵. 대리국의 진짜 대리석만큼은 못하지만, 이곳의 대리석도 품질이 나쁘지 않으니까요.”

대만섬에는 미래에도 유명한 대리석광산이 있었고, 선발대가 대만섬에 진출하기 무섭게 택리부 관원들은 각종 광물지대를 찾아내지 않았나.

그곳에서 채석한 돌들은 꾸준히 신도시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는데, 그걸 여기에서도 써먹고 있었나 보다.

‘지저분한 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순지의 말대로 이곳 대리석은 눈처럼 하얀 대리석부터 우중충한 회색빛을 띈 대리석이 혼재했다. 그래서인지 다리는 색이 다른 돌이 다 섞여서, 옆에서 보면 꼭 퍼즐을 맞춘 것처럼 보였다.

‘대리석이 물에 약하다는 말을 들어본 것 같은데...’

그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냉큼 지워냈다.

대리석도 엄연히 돌인데 강물에 녹아 없어질 일은 없다. 나아가 이게 무슨 역사적인 건축물도 아니고 그냥 다리인데, 변색이 조금되는 게 무슨 상관일까.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연오랑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따라, 시선을 더 멀리 돌려봤다.

“저기로 계속 가면 남항주가 나오냐?”

“예. 협곡을 따라서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데, 산맥을 넘어가려면 결국 산을 타아죠.”

“길은 냈고?”

“포장도로는 못 만들었고, 그냥 잡풀을 치워둔 정도예요. 남항주를 개발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니까요.”

“음.”

‘맞는 말이야.’

연오랑도 보고를 받은 사안이기에, 그는 쉽게 납득했다.

몇해전에 대만섬 정복작업을 시작할 때. 남항주(기륭) 일대에 살던 산악부족을 싹 쓸어버리지 않았나. 움막과 토굴과 다름없던 거주지는 싹 밀어버렸고, 임시숙영지만 새로 건설해서 남겨 놨다.

“아직은 저길 개발할 여유가 없단 말이지?”

“예.”

“금광맥을 찾았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그런데... 아국이 지금 은,금이 부족한 건 아니잖아요? 나중에 서부해안 개발이 완료되면, 그때 가서 진출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흐음...”

연오랑이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이순지는 얼른 말을 덧붙였다.

“남주도는 일단 원주민들을 조선인으로 만드는 게 더 시급하니까요.”

“맞는 말이야.”

은,금은 지금도 충분하고, 아직 본토에서도 개발하지 못한 광산은 남아돈다. 남항주(기륭)의 금광산을 개발하는 건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리지.

‘지금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대만 원주민은 아직 완벽한 조선인이 되지 못했고, 그걸 위해 억지로 신도시에 몰아넣고 생활하고 있지 않나.

헌데 남항주를 개발해 분리하면, 당연히 행정능률이 떨어지고 조선화교육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보나마나 살던 대로 살려고 미적거리게 될 텐데... 그럼 서부지역과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져서, 원주민들 사이에서 분열의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

‘남항주도 이런데, 동부지역은 언제쯤 개발할 수 있으려나...’

연오랑은 저 멀리 산맥 너머에 있을 남항주를 떠올리다가, 쓱 고개를 돌려 동부산맥을 굽어봤다.

지난날 산맥너머를 토벌하고 난 후에도, 조선은 동부해안가로 진출하지 않았다.

그곳에 살던 원주민을 전부 서쪽으로 끌고 왔고, 반대로 산맥 서쪽지역까지 바짝 진출해서 산악부족을 동쪽으로 쫓아냈다.

그 결과. 동부산맥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산악부족은 부쩍 줄어서 오천명 정도 될 거라 추측됐는데...

‘그들이 힘을 합쳐서, 골칫거리가 될 일은 없을 거야.’

연오랑은 자연스레 이런 전망을 내놓았다.

한차례 거칠게 몰아붙였는데도 응집하지 못했다면, 느슨하게 밀어붙이는 지금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미래에는 산악부족을 민족별로 큼지막하게 분류할 수 있다지만, 지금은 그런 동질성도 없지 않나.

이들은 그저 조상만 같거나 비슷할 뿐이지, 적게는 백명. 많게는 오백명정도의 마을단위로 뿔뿔이 흩어져 숨어살고 있을 따름.

“그렇지?”

“보고 받은 게 정확하다면 그럴 겁니다.”

이순지는 연오랑의 설명을 듣고서 물끄러미 호위기병을 바라봤고, 호위기병들은 서로 눈을 맞추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산을 타고 순찰할 때도, 서부지역에선 쉽게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발견하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동쪽으로 이주한 경우가 더 많지 않겠습니까? 산에서 발견한 빈 마을을 불태워버리곤 했으니까요.”

“음.”

연오랑은 대표로 말을 하는 호위기병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산악부족을 대하는 조선의 반응은, 옛 시절 여진부족을 대하는 것과 흡사했다.

고개 숙이고 들어와서 조선인이 된다면 받아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말발굽으로 짓밟고 터전을 불살라 버리는 거지.

“동시에 동부해안가의 토벌은 계속 진행하고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동부해안가 전체가 미끼가 된 셈이란 말이지.’

이렇게 서쪽에서 밀어붙이면 자연스레 동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바. 헌데 아무리 산악부족이라고 해도, 평지로 내려와서 사는 게 살기 편하지 않나.

조선군이 싹 쓸고 지나간 동부해안가는 원래 원주민이 살던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이주한 산악부족이 빈 마을에 들어가서 거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

그리고 조선군은 흡사 수확하듯, 일년에 한번씩 동부해안가를 쓱 훑으면서 산에서 내려온 산악부족을 사로잡고 있는 중이었다.

“못해도 오년쯤 되면 정리가 될까?”

“글쎄요. 산악부족도 바보가 아닌 이상, 산을 내려오면 잡혀간다는 걸 알게 될 텐데... 무턱대고 산을 내려올까요?”

“흐응.”

동부해안가로 내려와 사로잡히는 산악부족이 많아질수록, 산맥 내부의 영역은 헐거워질 게 당연.

사냥터 경쟁이 약해질 테니, 굳이 산맥을 내려올 필요성도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저희가 저 첩첩산중을 다 뒤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결국 지금처럼 강경책과 유화책을 함께 쓰는 게 필요하겠네.”

“그게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까놓고 말해서 산악부족은 제대로 된 날붙이도 못 만드는 야만인들인데, 아국과 거래하는 걸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선진문물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아국에 귀화하려는 이들도 생겨날 거고요.”

“음.”

‘역시 아직은 한참 무리야.’

게다가 동부개발을 막는 또 다른 장애물이 있었다.

‘태풍도 문제지.’

태평양에서 발원하는 태풍의 경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대만섬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통과해서 조선이나 일본으로 흘러가거나, 남쪽에서 발원해 필리핀과 대만섬 사이를 통과해서 중국남부로 향했지.

끝으로 대만섬을 관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면 동부해안은 난장판이 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하늘 높게 솟은 동부산맥에 태풍이 부딪치면서 세력이 약화되어, 서부지역은 그나마 피해가 덜하다는 점.

이러니 서부지역도 개발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동부까지 건드리는 건, 대만섬 전체의 성장에 오히려 손해만 나는 거지.

“건너가자.”

“...”

상념을 끝마친 연오랑이 다리를 건너가자, 다들 줄줄이 따라 나섰다.

다리를 건너 한참을 나아가자 눈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초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만섬 선발대가 남주에 진출한 후. 그들은 본대에 속한 전마의 말먹이를 위해 광활한 초지를 만들지 않았나.

지금 밟고 있는 땅이 그 때 만들어 놓은 그 초지였다.

이곳에 있던 나무는 죄다 잘라서 건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조선에서 가져온 생초를 심어놓은 탓에. 눈에 보이는 모든 지역이 온통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초지를 구경하며 나아가고 있자, 관복을 입은 이가 말을 타고 손살 같이 달려왔다.

아마 망루에 올라 초지를 살피던 모양인데, 낯선 연대병들이 다가오자 “저건 뭔가?” 싶어서 확인 차 달려 왔나 보다.

“어... 대감!”

그는 멈춰서기 무섭게 연오랑을 바로 알아보고선, 얼른 말에서 내려 고개를 숙였다.

“여긴 어쩐 일로...?”

“그냥 구경 왔다.”

“예...”

무역은행에 박혀서 놀고만 있던 연오랑의 행차가 꽤나 부담스러웠는지, 관원은 이순지와 눈을 마주치며 눈빛인사를 살벌하게 나눴다.

아마도 은행장이 그랬던 것처럼, 왜 미리 연락을 안했냐고 타박하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오랑은 느긋하게 나아갔고, 이내 곧 초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말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어... 저건?’

그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다른 전마보다 덩치가 살짝 크고, 털색이 고운 모래빛을 하고 있는 녀석들이다.

연오랑은 직접 목마장을 운영하고 있고, 그곳에서 키우는 말들은 하나같이 최상품의 한혈마와 종마들 아닌가.

척하면 척이라서, 못 알아 볼 수가 없다.

“한혈마도 있네?”

“그렇습니다.”

용케도 연오랑이 보고 있던 전마를 알아본 걸까? 관원은 냉큼 말을 받았다.

“본토에서도 부족할 텐데, 여기까지 왔단 말이지?”

“풍토가 다른 이곳에서도 키워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건 그런데...’

“게다가 요샌 한혈마도 수입이 꽤 많이 되고 있어서, 지방의 관영목장에도 꽤 많은 수가 들어찼습니다.”

“그래?”

“예. 딱히 남주도만 특별 취급을 한 건 아닙니다.”

“오...”

연오랑은 관원이 자랑스럽게 답을 하는 걸 보며, 자기도 모르게 살짝 감탄을 흘렸다.

조정에 축산부가 생기고 나선, 사복시를 비롯한 속아문들이 전부 통폐합되어서 통합관리가 되고 있었다. 이들은 민간목장과 경쟁하면서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지만, 질적으로는 꽤나 성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조선군 편제가 기병으로 도배가 되었으니, 아무리 민간목장에서 전마를 수급한다고 해도 관영목장이 손을 놓을 수 없는 법.

해서 관영목장은 전마훈련장을 겸하면서 진짜 전마만 키우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마의 최고봉인 한혈마의 육성에 힘을 기울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

“수입이 많이 된다고 했는데, 전과 달라진 게 있냐?”

“비단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 여파가 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중개무역으로 돈을 번다고 해도, 소칸국들은 자기만의 특산물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아...”

연오랑은 축산부 관원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 곧장 알아차렸다.

중앙아시아의 소칸국들은 조선이 의도한 대로, 독립연방체로 성장하는 발판을 차곡차곡 밟아나가고 있었다.

그냥 유목민으로 두루뭉술하게 뭉치는 게 아니라, 각 지역별로 정체성을 만들어 독립국가를 형성하면서, 그 내부에서는 대부족간의 연맹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지.

이걸 위해선 조선의 정책 및 행정적인 조언도 필수지만, 그보다는 노예를 사올 돈이 더 중요했다.

북쪽 시베리아로 나아가 모피를 챙기는 것 외에도, 소칸국들은 각자의 특산품을 사방에 내다팔기 시작한 거지.

그 중 대표적인 게 바로 한혈마.

과거. 티무르제국이나 킵차크 칸국의 영향력 하에 있던 부족들은 한혈마를 키우면서도 쉽게 팔수가 없었다. 뭐랄까 전략물자 취급을 받았다고 할까?

헌데 지금은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한혈마를 사서 너희가 키우겠다고? 그래. 가서 한번 키워봐라. 대신 말을 판 돈으로, 우린 더 많이 키우겠다.”라고 방향을 바꾼 거다.

“맞냐?”

“그렇습니다. 서방에 가까운 소칸국에서는 아예 대놓고 한혈마 육종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종마가 팔려서 한혈마의 개체수가 늘어나는 건 막을 수가 없으니, 그럴 바엔 아예 원조를 자처하는 저들이, 말시장 전체를 키워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유출되어 경쟁자가 생기는 걸 막을 수 없다면, 깨작깨작 팔지 않고 아예 파이 전체를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튼 거지.

“흐음... 그건 유목민들이 할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대답을 들은 연오랑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숨기지 않고 묻자.

“저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조정이 개입한 것 아닐까요? 그치들은 어떻게든 돈을 더 벌고 싶어서, 아국관원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테니까요.”

“음.”

축산부 관원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듣는 사람도 없는데 비밀을 알려주듯 목소리를 죽였다.

‘거참. 나는 피똥을 싸가면서 한혈마를 들여왔는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고만?’

그는 개혁이 시작되기 전부터 한혈마를 구하기 위해서, 행상, 요동상인, 우랑카이3위, 몽골상인을 다 엮느라 개고생을 하지 않았나.

격세지감이 절로 느껴진다.

과연 일개기업이 움직이는 것하고 나라가 움직이는 건, 스케일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모양이다.

“우리가 아무리 한혈마를 많이 키워서 판다고 해도, 자신들의 시장을 침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네?”

“그렇지 않을까요? 굳이 아국의 한혈마를 서방까지 가져가는 건...”

“무리도 한참 무리겠지.”

“저희에겐 중국시장이 있으니까요.”

축산부 관원은 무역로를 머릿속에 그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서방의 소칸국들이 보기에도, 중국에 집중하는 조선의 말시장과 서방에 집중하는 자신들의 말시장이 겹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을 거다.

걸음을 옮길수록, 더 많은 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눈에 밟혔는데 또 다시 낯선 모습이 걸려든다.

“저거...”

“낙타입니다.”

연오랑이 손가락을 들어올리기 무섭게, 관원이 히죽 웃으며 말을 끊었다.

“낙타가 필요해서 가져오진 않았을 거고... 전마 훈련 때문에?”

“예.”

일행은 조금 더 다가가서, 낙타와 함께 걷고 있는 전마무리를 살펴봤다.

낙타 몇몇이 다가갈수록 전마 무리는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는데, 목자로 보이는 관원들이 고삐를 잡고서 진영을 맞추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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