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챕터54. 살펴보다 (3)“효과는 있냐?”
“물론입니다.”
“재정부에서 우는 소리를 했을 텐데?”
연오랑이 다 안다는 듯이 피식 웃자, 축산부 관원 또한 히죽 웃고 말았다.
“남주도에선 낙타가 필요 없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군부의 요청을 마냥 무시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게 마냥 허황된 의견도 아니고요.”
“음.”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그는 그리 생각하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낙타와 전마무리를 계속 바라봤다.
전마 훈련에 있어서 낙타가 왜 필요하나 하겠지만,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었다.
말이 낙타를 무서워하고 심하게 경계하기 때문.
적응을 시켜놓지 않으면, 낙타가 등장했을 때 전열과 진영을 무너뜨리고 제멋대로 날 뛸 가능성이 충만했다.
뭐랄까. 화포의 굉음에 적응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지.
“물론 남방이나 중국에서 낙타를 볼 일은 없지만, 이곳 목장의 전마가 꼭 여기에만 머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미리미리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다.”
축산부 관원의 이어지는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낙타적응 훈련을 한다는 건, 가상의 적이 낙타병을 활용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허나 낙타병은 몽골이나 서방으로 가야 볼 수 있지, 남방에선 만날 일이 없지 않나.
허나 이 또한 간단한 이유가 있었다.
남주도에서 키우는 전마는 남주도에서만 쓰이는 게 아니고, 순환근무를 하는 연대병을 따라서 언제든 본토나 북방으로 옮겨질 수 있으니까.
나아가 전마가 부족한 지방으로 옮겨질 수도 있는 거고.
“지금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통일성을 맞추는 게 더 낫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지금의 조선군은 극도의 효율성과 통일성을 추구해서 모든 걸 규격화하고 있는데, 이는 전마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기조다.
북방에서 하는 훈련을 남방에서도 해야. 나중에 서로 섞였을 때 불협화음이 벌어지지 않고, 두번일 하지 않을 것 아닌가.
‘이미 훈련을 마친 녀석들을 또 훈련시키는 것보단, 차라리 어릴 때부터 시키는 게 더 낫겠지.’
어떤 면에선 말도 사람하고 똑같았다.
말은 나름 똑똑한 짐승이라서 훈련에 익숙해지면 자극에 무덤덤해진다. 나이를 먹어 경험을 축적하면, 새로운 경험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기 쉽다.
어린아이를 키우듯이,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시켜서 환경적응력을 높이는 거다.
결국 이리저리 주판을 튕겨보면, 지금 투자를 하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이득인 셈이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낙타병 육성계획은 폐기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
“예.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음.”
조선이 창주를 열고 몽골과 무역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낙타병에 대한 소문도 흘러들어왔다.
사막이 있는 중동아랍 및 북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몽골초원에서도 어느 정도 낙타를 키웠으니까.
조정입장에선 어차피 낙타를 들여온 김에 다양한 용도로 써보려고 했고, 결국 낙타병으로도 시선이 쏠렸는데... 실패로 돌아갔다.
낙타는 말보다 덩치가 커서, 낙타병의 경우 기병에 비해 위치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허나 반대로 덩치가 크다보니, 올라타서 무기를 휘두르는 게 쉽지가 않았다.
못할 건 없지만, 뭐랄까. 앉는 자세가 잘 안 잡힌다고 할까?
그 외에 대양한 이유에서 낙타병은 기병의 기민한 움직임을 따라오기 힘들었고, 궁극적으론 범용성에 있어선 전마가 월등했다.
조선이 사막지형이라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그건 또 아니니까.
“맞냐?”
“그렇습니다. 어차피 상대적으로 값싼 전마가 있는데, 굳이 낯설고 비싼 낙타를 쓸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소수의 낙타병이 대규모 기병사이에 껴 있는 건, 전술운용에 있어서 역효과가 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저 대적군으로 상정해서, 소수의 낙타병만 운용하고 있죠.”
“대적군이라...”
낙타를 기병으로 쓰는 건, 몽골초원의 부족 중에서도 극소수지만... 해놔서 나쁠 건 없지 않나.
‘쓸데없는 우려지만 혹시 또 모르지. 서방의 소칸국들 중에서 낙타병을 육성하려는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그럴 가능성은 적어보이지만,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미리미리 준비해 놓는 건 나쁠 게 없어 보인다.
“군에서 그렇다면 민간에선 어떠냐? 낙타를 처음 들여왔을 때는 인기를 조금 끈 걸로 알고 있는데?”
“음...”
연오랑의 물음에 축산부 관원은 잠시 기억을 들췄다.
낙타가 처음 들어왔을 땐, 나름 이목이 집중됐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짐승이기도 하고, 낙타 한 마리가 노새 4,5마리 분량의 짐을 옮길 수 있으니, 효과가 없다고 할 순 없었지.
“하지만 요즘에는 예전처럼 확장하진 못하고, 그냥 현상유지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관에서도 그렇고, 민간에서도 그렇죠.”
“이유는?”
“아무래도 산간도로가 조금씩 정비되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호오...?”
‘아... 이게 또 이렇게 이어지는고만.’
충분히 이해가 돼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양전사업의 핵심 중에 하나는 조선의 빈약한 도로사정을 조금이나 개선하는 것에 있었다.
유통 및 물류가 활성화될수록 도로의 필요성은 증대되니까.
그 결과. 산책로와 크게 다를 게 없던 기존의 산길도 조금씩 정비되어 갔고, 도로가 넓어지면 자연스레 마차나 수레의 활용도도 커지는 거지.
“어차피 마차를 사용할 수 있다면, 낙타나 말이나 큰 상관이 없단 말이군?”
“예. 애초에 등짐을 싣기 위해서 낙타가 필요했던 거지, 마차를 끌기 위해서 낙타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낙타는 힘이 좋은 것도 있지만, 뼈대가 튼튼해서 짐을 많이 짊어지는데 특화된 가축이니까. 허나 등짐을 아무리 많이 실어봐야, 마차의 수송량에 비할 수가 있나.
“전과 비교했을 때, 도로 사정이 그 정도로 나아졌나? 정비를 하지 못한 곳이 아직도 태반일 텐데? 얼마나 변했는지 알아?”
축산부 관원과 이순지는 눈을 맞추고선, 그간 다른 관원들에게 들었던 소식을 떠올리며 머리를 굴려댔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1할 정도는 포장되지 않았을까요? 이건 평지의 도로 뿐만 아니라 산길도 포함된 거니까...”
“1할이라.”
‘10퍼센트면... 엄청 많이 된 거잖아? 이야... 알아서 잘 만들고 있었네.’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히죽 미소가 지어지고 말았다.
양전사업을 진행했으니, 평지의 도로를 넓히는 건 큰 문제가 아닐 거다. 하지만 산길을 넓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고, 이걸 포장한 자갈도로로 만드는 건 또 다른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평지 말고 산길이 유독 넓어졌다는 거네? 공사가 보통 힘든 게 아닐 텐데?”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도로가 필요한 곳은 물류량이 많은 곳이고, 산길은 이미 그 조건을 충족하고 있던 곳이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산길이 생길 일도 없잖아요?”
“흐음.”
‘아... 당연한 거였나?’
나름 도로건설에도 일가견 있는 이순지가 연오랑의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줬다.
도로사정이 개판이고 물류의 이동이 적었던 조선인데, 그런 상황에서도 산길이 만들어져 있다면... 그게 군용이든 민수용이든 어쨌든 그 도로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허나 조선군이 완전기병편제로 전환되면서 도로의 필요성은 더욱 증대됐고, 시장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민간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
나라에서 억지를 부려 마구 밀어붙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로가 확장되고 정리될 수밖에 없는 거지.
“뭐. 그렇다고 해도 자갈도로가 깔린 건 아니고... 그냥 나무와 잡풀을 깎아서 도로폭을 넓히고, 땅을 다져놓은 울퉁불퉁한 흙길이 태반일 겁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포장은 둘째치고, 길이 넓어진 것만으로도 대단한거다.”
“그런가...?”
아직 한참 멀었다고 말하는 이순지를 보며, 연오랑은 과거를 떠올리곤 피식 웃고 말았다.
이 녀석이 말하는 걸 보면, 예전에는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개혁세대들은 생각이 트여 있다는 뜻이겠지. 도로 만드는 데 한두푼 들어가는 게 아닌데, 이렇게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까.’
그는 왠지 모르게 스스로 뿌듯해졌다.
석회도로는 한성을 비롯한 몇몇 항구와 대도시에만 건설된 최첨단 신문물이다.
말 그대로 돈을 땅바닥에 던지면서 대규모 투자를 강행한 건, 자갈도로나 흙도로로 남겨두는 것보다 석회도로로 포장하는 게 궁극적으로 이득이었기 때문.
석회도로는 그저 보기 좋고 편하다고 깔 수 있는 게 아니고, 냉정하게 주판을 튕겨봤을 때 수지타산이 맞아야만 깔 수 있는 값비싼 물건이니까.
‘따지고 보면, 자갈도로도 마찬가지일 거야.’
자갈도로는 그나마 돈이 적게 들지만, 그래도 많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수차와 인력으로 자갈을 파쇄하는 것도 시간과 돈이 들지만, 그전의 기반작업이 더 힘들다. 땅을 1,2미터씩 파고 들어가서, 바위.자갈.모래를 차곡차곡 채우고 마지막 표면에 자갈을 까는 거니까.
그럼에도 10퍼센트쯤 완성했다는 건, 나름 고무적인 성과다.
‘관료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도로를 까는 게 이득이 되니까 깔았다는 거 아냐?’
그는 다시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 말인 즉. 도로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잉여생산물이 나오고, 각지의 특산물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전에는 만져보지도 못했던 특산물을 구입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백성들이 늘어났다는 뜻.
도로의 확장은 지금의 조선이, 과거의 조선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성장했다는 증거였다.
“그런 산길이 닿아 있는 곳은 당연히 수참이나 역참과 연계된 지역일 테니, 사람이 많이 돌아다닐수록 자연스럽게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군.”
이 시대엔 터널이나 협곡을 관통하는 다리가 있을 리 만무. 자연스럽게 고개를 빙빙 타고 올라가는 고갯길이 만들어졌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이 좁아지긴 하겠지만, 적어도 산 아래에서는 도로가 확실히 늘어진 모양이다.
“그렇죠. 사실 짐마차를 끌고 와서, 낙타나 말에 옮겨 싣고 산을 타넘는 것도 웃기는 일이잖아요? 짐마를 대여해주는 사업의 성장세가 꺾이는 건 당연한 말이고, 낙타의 수요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겠죠.”
“그렇겠네.”
개혁초창기에는 그런 특이한 기업도 등장했는데, 슬슬 기세가 꺾이고 있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걸음을 옮기다보니, 뜬금없이 푸른 벌판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서방에서 들여온 귀리와 밀, 보리입니다.”
“호밀?”
“아! 그렇게도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오...”
연오랑은 축산부 관원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비단길이 열린지 몇 년이나 됐다고, 벌써 종자를 남주도까지 가져와서 심어 놨나.
확실히 농사에 진심인 조선인들이라서, 이렇게 발빠르게 움직인 모양이다.
“저건 기후가 비슷한 북방에서 잘 자란다고 들었는데?”
“그렇다고는 들었는데 여기서도 키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업부 관원들이 관리하고 있는데, 편의를 위해서 이곳에서 키우고 있습니다.”
“사료로 쓰려고?”
“예. 서방에서 그렇게 쓴다고 해서, 저희도 해보려고 합니다.”
“음.”
이 부분은 연오랑이 관심을 가지고 따로 보고를 받았기에, 냉큼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료작물이라... 낯설긴 하지?”
“아무래도 그렇죠?”
“그렇긴 합니다.”
넌지시 질문을 던져보니, 축산부 관원과 이순지 모두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나도 정확히 몰랐던 건데, 조선인들이라면 더욱 낯설게 느껴졌겠지.’
그는 말없이 조용히 옛 기억을 더듬었다.
조선의 목축기술을 까놓고 말해서 그리 대단할 게 없었고, 어떤 면에선 여진이나 몽골이 더 뛰어난 면이 있었다. 아무래도 가축과 더 밀접한 건 그들이었으니까.
다만 연오랑 덕택에 나름 기업체로서 미래의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게 됐고, 이후 몽골과 여진을 흡수하면서 그들의 기술까지 접목시키게 됐다.
헌데 이런 발전을 이뤘음에도, 유럽 및 중앙아시아의 목축기술이 뛰어난 점이 적지 않았다.
‘유럽이 이 정도로 목축에 진심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도 여기 와서 알았는데... 유럽의 기후는 농지보단 초지에 더 적합한 기후와 풍토를 가지고 있었고,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밀을 주식으로 삼았고,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적어서 목축을 하는 데 부담이 없었다.
더불어 밀은 쌀에 비해 필수영양소가 적게 들어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육류섭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사실상 농사보단 목축이 주류로 발전하게 된 거지.
‘게다가 유목과 목축이 이렇게나 차이가 날 줄 몰랐지.’
가볍게 볼 땐, 어차피 풀 먹여서 가축을 키우는 건데 뭐가 그렇게 다르나 싶었는데... 막상 뚜껑을 까보니 엄청난 차이가 났다.
유목이라면 초지를 다 뜯어먹고 다른 초지로 떠나면 그만이지만, 목축은 한자리에 눌러앉아서 꾸준히 가축을 먹여살려야 했다.
다만 초지의 생초만으로는 충분한 영양소를 제공할 수 없으니, 가축이 먹을 사료곡물을 따로 키워야 했지. 당연한 말이지만, 사료곡물이 사람이 먹는 곡물보다 손이 더 가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법.
해서 대충 키워도 알아서 잘 자라는 보리,호밀,귀리등이 선호되고, 이걸 계속 개량하면서 사료곡물을 발전시켰다.
보리나 귀리등이 농노나 하층계층이 먹는 곡물이 된 건,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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