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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412화 (412/538)

412. 챕터54. 살펴보다 (4)

반대로 동아시아에서는 농사가 주류였으니, 사료곡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고 사람이 먹고 남은 곡물을 먹이는 게 고작.

심지어 지푸라기로 죽을 만들어 주는 것조차, 땔감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서 힘들지 않았나.

‘나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했으니까. 뭐...’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가 미래의 지식이 있으면 뭐할까.

과학적으로 개량된 작물, 전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다양한 사료, 수치화해서 계량할 수 있는 보조기구, 항생제나 영양제 등등.

그냥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었던 것들이 아무것도 없고 만들 수도 없다.

결국 구조적인 부분은 미래의 방식을 차용할 순 있어도, 실무로 들어가면 부족한 부분이 태반이었다.

예컨대 농지와 초지의 비율을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 이 시대에 주로 쓰이는 사료작물이 뭔지, 절기에 맞춰 바꿔 길러야할 작물이 뭔지. 그 작물의 알맞은 생육방법은 뭔지 등등.

이러한 빈 구멍을 서방의 목축기술을 통해서, 얼추 메울 수 있게 된거지.

작물밭을 지나치자, 이번엔 조금씩 형태가 다른 초지가 눈을 가린다.

“생초들?”

“예. 총 5개의 생초를 가져와서 키우고 있는데. 남방에 적응하는 품종도 있고, 죽은 품종도 있고 그렇습니다.”

“흐응.”

아무리 잔디와 같은 생초들의 생존력이 끈질겨도, 사시사철 기온이 높은 남쪽에선 쉽게 적응하지 못하나 보다.

“서방에서 들여온 거지?”

“대부분 그렇습니다. 루스국 일대 말고, 바다 건너의 서방에서 가져온 품종도 있습니다. 듣기로는 서방 상인들만 신났다고 하더군요.”

“큭. 그야 그렇겠지.”

연오랑은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훤히 보여서, 피식 웃고 말았다.

유럽인들 입장에선 길가에 널려 있는 잡풀을 뽑아다가 판 꼴 아닌가. “저걸 돈 주고 왜 사가?”라며, 조선관원들을 바보취급 했을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북방에서 들여온 생초와 비교해보면 어때?”

“이곳에서는 아직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지만, 북방에서는 효과를 보였다고 하더군요. 특히나 겨울잔디나 토끼풀이 북방의 기후에 잘 맞아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겨울잔디는 말 그대로 겨울에도 푸르게 자라는 잔디류를 말했다. 이게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메마르는 겨울에 사료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었다.

“오... 눈에 띌 정도로 차이가 난단 말이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유의미한 차이는 분명히 있는 걸로 들었습니다.”

“흐응.”

‘몽골에서 들여온 것하고는 확실히 품종이 다른 모양이야.’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과거. 조선을 말박이의 나라로 만들기로 마음먹을 때부터, 이미 요동 및 몽골초원에서 자라는 생초들을 가져와 조선본토에 심어오지 않았나.

그것도 나름 내한성이 뛰어나서 조선 토종 생초보다 효과가 좋았는데, 역시 목축 전문가들답게 유럽산 생초는 효율이 더 좋은 모양이다.

“남방의 잔디나 생초는 어때? 잘 찾아보고 있냐?”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이곳이나 남방소국에서는 말을 많이 안 키우지 않습니까. 소먹이 풀은 몇몇 있는 걸로 아는데, 전마에 어울리는 풀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기병을 운용하는 곳이 없다시피 하니, 당연히 건초나 생초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거다.

그나마 물소가 있기는 한데, 여긴 워낙 야생물소가 많아서 소먹이풀을 걱정하진 않았을 거고.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겠지.’

“그럼... 전마나 소 말고 다른 가축은 어떠냐? 잘 적응하냐? 사료작물은 문제없고?”

“물론입니다. 녀석들이야 아국 말고도 남방에서도 사는 짐승들이니까요. 보시겠습니까?”

“어.”

연오랑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축산부 관원은 앞장서서 축사로 일행을 이끌었다.

한참을 초지를 가로질러 나아가자 빼곡하게 박힌 창고건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으...”

“...”

동시에 코를 찌르는 오물냄새도 함께 날아든다.

이순지가 자기도 모르게 코를 부여잡자, 축산부 관원은 피식 웃고 말았다.

“오물은 따로 관리하고 있지?”

“예. 대부분 거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분뿐만 아니라 짐승똥오줌으로 거름을 만드는 건, 오래전부터 해왔던 일. 인분 만드는 기술이 이쪽으로 흘러갔을 테니, 전보다 더 나은 거름이 나오고 있을 거다.

“다만 땔감용으로는 잘 만들어지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기후가 습하고 더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충분히 이해가 돼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조선본토에선 말똥,소똥을 바싹 말린 땔감이 어느 정도 땔감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

당연히 여기서도 똑같이 해봤는데, 잘 마르기보다는 썩는 경우가 빈번한 모양이다.

“억지로 고생해가면서, 잘 말릴 필요까진 없을 테고 말이야.”

“예. 이곳에선 난방보다는 취사용이나 기업용으로 땔감이 쓰이는데, 그 정도는 석탄이나 목탄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거름을 쌓아놓은 지역을 지나치자 진짜 축사가 등장.

축산부가 관리하는 축사답게, 조선본토의 축산기업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염소, 양, 닭, 오리, 토끼, 사슴, 메추리. 심지어 꿩과 여우농장까지 눈에 들어온다.

“다른 가축들은 본토와 딱히 다를 것 없이 잘 크고 있습니다. 이곳에 살던 토종가축들도 있어서 교배를 시켜봤는데, 아직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더군요.”

울타리를 따라 지들끼리 뭉쳐 있는 가축들을 보고 있자, 축산부 관원이 하나둘씩 집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땅이 남아도는 남주도이니 당연히 목장이 많이 들어섰고, 이곳 역시 그나마 초기자본금이 적게 드는 토끼,닭,사슴,오리를 키우는 축산기업이 주류를 이뤘다.

“일전에 말씀하신 오리농법 있지 않습니까? 그걸 알음알음 해보려는 기업도 몇몇 등장했습니다.”

“그거 쉽지 않을 텐데...”

“...”

나름 친환경농법에 대해선 전부터 연오랑이 일러줬지만, 조정에선 이걸 국가사업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민간에 기술을 전파하는 걸로 그쳤다.

까놓고 말해서 이 시대엔 친환경논법이라는 게 이점이 크게 없었으니까.

“효과가 있어?”

그러니 연오랑은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섞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뭐... 특별하진 않지만, 없는 것보단 나은 수준 아니겠습니까? 그냥 새끼오리들 사료값을 아끼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거죠.”

“흐응.”

“오히려 미꾸라지농법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 농부들이 꽤 보이더군요. 그나마 손이 덜 가니까요.”

“그것도 쉽지 않을 텐데... 본토에서 가져온 거냐?”

“그런 것도 있고, 이곳에서 자생하던 토종도 있습니다.”

‘나쁘지 않네.’

연오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효과가 크게 없으면 뭐 어떤가. 이렇게라도 스스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거다.

조정이 강제하지 않아도 민간에서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 자체가. 근면한 민족성으로 발전하고, 조선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거니까.

“염소,양,사슴농장도 나름 성과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본토에 비해 미흡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

“아무래도 따뜻하다보니 양털이 촘촘하게 자라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

“하긴.”

조용히 뒤따르고 있던 호위병들조차도, 쉽게 납득하고서 고개를 끄덕여댔다.

조선에 흔치 않던 양을 본격적으로 키운 목적은, 고기가 아니라 모직사업을 키우기 위함이지 않나.

날이 추워야 털이 더 풍성하게 자라고 그래야 모직물로 만들었을 때 품질이 좋다. 사시사철 온난한 대만섬에는 전제조건부터가 틀려먹은 거지.

“그런 식이라면, 사슴농장도 크게 재미를 못 보겠네?”

“가죽은 강남상인들에게 쏠쏠하게 팔리겠지만, 녹용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나지금이나 중국에선 신발이나 장갑을 만들 때, 사슴가죽을 최고급재료로 꼽곤 했다. 하지만 사슴뿔은 추운지방에서 더 크고 잘 자라는 탓에 돈벌이가 안 되는 모양이다.

토끼도 마찬가지. 토끼털로 만든 모피는 품질이 떨어지겠지만, 지금 조선의 토끼농장은 모피농장이 아니라 고기농장에 더 가깝지 않나.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라서, 크게 문제는 없나 보다.

“쟤들도 사료를 먹여서 키우냐?”

“이것저것 해보고 있습니다. 보통은 도정하고 남은 겨를 먹여서 키우는 게 일반적이고, 이따금씩 곡물사료를 주고 있습니다.”

“본토와 크게 다를 게 없군.”

“아무래도 돈이 문제니까요.”

축산부 관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을 했고, 다들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건 과거와 체질이 달라진, 지금 조선의 딜레마니까.

초지와 농지의 비율을 조절해가면서, 조선이 필요로 하는 곡물량과 사육가축량의 적정선을 맞추는 건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목장을 운영하는 게 농사를 짓는 것보다 손해라면 아무도 가축을 키우지 않으려고 할 거고, 그 반대라면 쌀농사에서 손 떼고 사료작물만 키울 테니까.

이 밸런스를 조절하기 위해서, 수확하고 남은 볍씨하나까지도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지.

“그 다음으론...”

축사를 지나쳐 다음 울타리로 넘어가자, 이제 눈에 익은 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물소들은 성질이 더럽다고 하던데, 그건 또 아닌가 보네?”

연오랑은 울타리 밖으로, 얌전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 물소를 보며 중얼거렸다.

“개체별로 차이가 있긴 한데, 조선소처럼 풀어놓고 키우면 거칠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코뚜레를 뚫어서 축사에 묶어놓고 키우면 조선소와 큰 차이가 없더군요.”

“오...”

과거. 조선이 물소사육에 실패한 건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선 사육방법을 제대로 몰라서 조선소처럼 키우다가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빈번해서 때려치운 경우도 있었다.

허나 물소를 잘만 키우고 있는 강남인들에게서 사육방법을 배워왔지 않나.

지금은 완전히 가축화되어 잘 적응하고 있었다.

“몇 마리나 되지?”

“남주도 전체로 보면, 대략 팔천두 정도 됩니다.”

“와...”

“그렇게나 많이?”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들어왔잖아?’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고 말았다.

남주도의 인구가 이십만이 못되는데, 물소가 팔천마리면... 한집 걸러 한집마다 소가 있다는 뜻 아닌가.

조선본토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비율이다.

“아국이 남주도에 진출한 후에, 꾸준히 물소를 수입하지 않았습니까. 공돈을 벌 기회를 놓칠 리가 없죠. 가장 많이 가져온 건 광서와 광동상인들이지만, 심지어 대월과 참파에서도 물소를 가져왔으니까요.”

“흐응.”

‘일이 또 그렇게 이어졌네.’

변변한 수출품이 없는 대월과 참파 입장에선, 물소 수출은 무역적자를 메꿔줄 요긴한 상품이 된 꼴.

그치들은 이미 물소를 농사일에 써먹고 있고, 야생물소도 넘쳐났을 테니... 아마 좋다고 팔아댔을 거다.

“각궁재료로 쓰이기도 하니, 아낌없이 사들였을 거고?”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어쩌면 이쪽이 더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헌데... 그렇게 물소를 살피고 있는 와중에, 뭔가 특이한 소가 연오랑의 눈에 걸려들었다.

‘잠깐...?’

아무리 생각해도 그간 전혀 보지 못한 소라서 발길이 절로 끌렸고, 울타리에 가까이 다가가 살피자...

“허!?”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고 말았다.

조선황소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어째 물소마냥 긴 뿔을 달고 있는 소가 몇 마리 있는 것 아닌가.

‘저게 왜 여기 있어?’

그가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입을 쩍 벌리고 있자, 축산부 관원은 괜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을 늘어놨다.

“이번에 서방에서 가져온 소입니다.”

“허... 용케도 가져왔네?”

“저것뿐만 아니라 다른 품종의 소도 꽤 가져왔습니다. 서방은 소국으로 쪼개져 있지만, 중국 못지않게 다양한 지형과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보면 볼수록 별의별 품종이 다 있어서, 주치칸국에 나가 있는 관원들은 쉬지도 못하고 있을 겁니다.”

“...”

연오랑은 다 알면서도, 오뚝이마냥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가 공녕군 이인을 통해서 주문하고 시킨 일인데 모를 리가 있나.

‘그래도 빨라도 너무 빨라. 종자씨나 작물도 아니고, 가축까지 벌써 가져와서 이 먼 대만섬까지 보냈단 말이야?’

조정에서 이 일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두 눈으로 실감하고 말았다.

“긴뿔소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어...”

‘그렇겠지. 저거 원래 이름이 롱혼 아닌가?’

그는 자신과 눈을 마주친 소를 보며, 말을 흘렸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건 롱혼 품종으로, 흔히 텍사스 롱혼으로 유명해진 소였다.

롱혼은 스페인산 소인데, 대항해시대 이후 아메리카로 건너가 그곳에서 자생하며 개량되어갔다.

아메리카는 땅은 넓은데 사람은 없으니, 초지나 목지로 쓰기에 딱 좋은 땅 아닌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그 넓은 평야를 죄다 초지로 만들어서, 엄청난 수의 유럽 품종 소를 풀어서 키웠다.

미래에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손꼽히는 목축업의 나라가 된 건, 이때부터가 시작이었지.

“설마 뿔 때문에 가져온 건 아니지?”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농우나 육우로 쓰기에도 나쁘지 않다고 하더군요. 흐흐. 그래도 저 녀석과 물소를 교배하면, 꽤 멋지고 큰 뿔을 가진 소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하!”

‘이 미친 활쟁이 민족 같으니라고.’

연오랑은 실실 웃는 축산부 관원을 보며, 기가 질린 나머지 허탈한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보지 않아도 킵차크 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눈에 훤하다.

조선은 보잘 것 없는 잔디종자씨 마저도, 사들이는 나라다.

해상국가 상인들은 눈이 뒤집혀서 유럽의 온갖 것을 다 가져와서 “이거 어떻습니까? 사시죠? 제가 왕창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라며 아부를 떨었을 거다.

이곳 여진인들에게도 엄청나게 풀려서, 이들은 지겹도록 북어국을 먹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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