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챕터54. 살펴보다 (7)
“에이.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물어보면, 뭐라고 답 합니까.”
어색한 침묵이 감돌자, 이순지가 연오랑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핀잔을 줬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반색하며 얼굴이 밝아진다.
여기 와서 감히 만나보지도 못했던 연오랑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몇 번 얼굴을 마주한 이순지가 그나마 훨씬 대하기 편하니까.
“...”
그가 슬쩍 눈을 흘기자, 녀석은 자기가 하는 걸 지켜보라는 듯이 대신 입을 열었다.
“집은 어떠냐? 고향에서 살던 집보다 좋지?”
“음...”
“그야 당연한 말씀입니다.”
“맞습니다.”
답하기 쉬운 세세한 질문을 던지자, 다들 말문이 트여 이런저런 말을 내뱉었다.
‘음... 내 생각보다 훨씬 열악한가 보네. 하긴 유럽이라고 해도, 한참 변두리라서 그런가?’
연오랑은 더듬거리며 옛 이야기를 푸는 이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개혁 이전 조선의 가옥은 초가집이 보편적이었으니, 사실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허나 이들이 살던 집은 그보다도 뒤떨어져 보였다.
유럽의 도시는 나름 석재로 지어진 고층건물이 많다지만, 그건 잘 발달된 도시에서나 그러는 거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조선과 똑같이 초가나 목재로 지은 집이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유럽의 중심부도 아니고, 변경 중에 변경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다? 움막이나 판잣집에서 살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일 거다.
더불어 축사와 집을 한 덩어리로 사용하는 편이라서, 위생적인 측면에서는 한참 뒤떨어졌지.
그에 비해 지금 조선의 가옥은 대다수가 기와집으로 재건축되고 있다.
건축기업이 등장했고 이들이 최고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규격화와 모듈화를 통해서 집을 최대한 빨리, 많이 짓는 것 아니겠는가.
그 결과. 조선의 집은 죄다 비슷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지게 됐다.
담벼락으로 둘러싸여서, 앞마당과 한두채의 가옥이 이어져, 여러개의 방으로 나뉘는 형태가 보편적이고 일반적이게 된 거지.
물론 돈 많은 집안이라면 전각이 수십채씩 들어가겠지만, 평범한 양민이라도 방 서너개는 있는 기와집에 사는 게 지금의 조선이었다.
그러니... 비록 한옥의 형태와 구조가 낯설더라도, 이들이 싫어할 리가 있나.
아마 자신들 스스로도, 살아생전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난방도 그렇겠지?”
“그럴 걸요? 너희 온돌하고 한증막을 처음 겪어봤지? 좌식생활도 처음 해봤을 거고?”
연오랑의 말을 받아 이순지가 되묻자, 다들 고개를 마구 끄덕여댔다.
“예. 처음에 봤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은 그거 없이는 못 살죠.”
“그나마 따뜻한 남방으로 와서 나아진 거지, 북방에서는 꽤 힘들었습니다.”
“흐흐. 그럴 거야.”
다들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지난날의 고생을 털어놨고, 이순지는 실실 웃어대며 괜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온돌하고 한증막을 퍼트린 건 난데, 왜 자기가 잘난 척이야?’
괜히 심술이 난 연오랑은 한소리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온돌과 한증막이 조선 전국에 퍼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만주보다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우크라이나 지역 아닌가.
그곳에서 온 이들이라면, 조선의 겨울을 버텨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허나 온돌은 땔감을 많이 먹는 것 빼고는 장점이 많아서 북방에서는 필수적이고, 한증막 또한 겨울을 이겨내게 도와주는 필수품이 된지 오래.
여진, 요동인은 물론이고, 추위에 잘 견디는 몽골인조차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루스인이라면 더욱더 반겼을 거다.
“그럼 이제 목욕하는 것도 익숙해졌냐?”
“그... 그렇습니다.”
“예.”
연오랑이 슬그머니 질문을 던지자, 다들 각이 잡힌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여댔다.
“너희 원래 잘 안 씻었잖아? 맞지?”
“그... 이제는 아닙니다. 나리.”
“맞습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젠 저희도 압니다.”
그가 가자미눈을 하고서 되묻자, 다들 손사래를 치며 극렬하게 반응했다.
가만 놔두면 옷을 홀랑 벗고, 깨끗한 몸뚱이를 증명할 기세다.
‘음. 하긴 우리가 조금 유별난 거지, 다른 나라에선 일반적일 테니까...’
연오랑은 안절부절 못하는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하며 생각을 이어갔다.
고려의 문화가 남아 있던 조선인들은 그나마 잘 씻는 편이었고, 개혁 이후에는 더욱더 열심히 씻었다. 괜히 한족이나 몽골인들이, 조선인을 보며 혀를 내두르는 게 아니지.
그리고 이건 유럽이나 중동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종교적인 이유든, 문화, 환경적 요인이든, 씻는다는 건 생각보다 번거롭고 심지어 수고와 돈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조선에 끌려온 서방인들이, 목욕 문화를 거부할 수 있었을까. 안 그래도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두려워서 덜덜 떨고 있는데, 거지 취급까지 더해지면 제대로 살 수가 없다.
울며 겨자 먹기든, 다른 백성들의 눈치를 봐서든, 도끼눈을 한 관원들의 강제에 의해서든, 어찌됐건 목욕문화에 익숙해졌을 거고...
‘그럴수록 스스로가 생각해도, 깨끗한 게 더 낫다고 느꼈겠지.’
조선인들도 같은 과정을 거쳐서 의식이 개선됐는데, 똑같은 사람인 루스인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전엔 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살았지?’라고 회상하며, 의식구조가 변했을 거다.
“옷은 어떠냐?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예. 이런 옷은 처음 봤습니다.”
“흐흐. 처음에 봤을 때는 말로만 듣던 비단인 줄 알았습니다.”
“저희가 입던 옷감보다 훨씬 낫더군요.”
이순지가 화제를 돌려 다른 걸 묻자, 이번에도 역시나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감촉이 좋다느니, 색감이 좋다느니, 등등 하나같이 열변을 토하며, 감탄을 아낌없이 털어놨다.
‘역시...’
연오랑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에 봤던 보고서에 다시금 확신을 더했다.
서방에서 면포는 나름 비싼 물건이고, 농노를 비롯한 자유민은 쉽게 접할 수가 없는 물건이다.
뭐... 조선도 그랬던 시절이 엊그제지만, 지금은 모든 백성들이 옷을 여러벌 해 입을 정도로 생산량이 늘어나지 않았나.
끌려온 루스인들은 옛날의 조선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 그저 지금 조선이 엄청나게 부자인 나라처럼 보였을 거고... 말은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론 눈이 뒤집혀서 면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거다.
‘거꾸로 우리는 린넨을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말이야.’
조선관원들은 아마씨를 조선으로 가져와서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아마를 기르던 색목인들을 데려와서 기술을 뽑아냈으니, 지금쯤이면 꽤나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을 거고... 시험재배가 끝났으니, 이제 전국적으로 아마를 어떤 식으로 재배하는 게 좋을지 논의하고 있지 않을까.
‘게다가 모피와 모직물도 있지.’
모피가 비싼 건 이곳이나 서방이나 마찬가지.
허나 상대적으로 더 귀하게 취급받는 건 유럽과 중동이다.
그쪽은 하도 숲을 밀어대는 바람에, 모피를 얻을 수 있는 짐승의 씨가 말랐으니까. 중동은 사막지대가 많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모직물은 그나마 조금씩 볼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쉽게 접할 수 없다. 산업혁명 전에는 서방의 모직물 생산량 자체가 많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연오랑 덕택에 원시적인 기계식 방적기, 직조기가 등장하면서, 일인당 생산량은 조선이 서방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앞으로 목장이 계속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나라 전체의 생산량이 서방을 압도할 지도 모르는 일.
어찌됐건 그 수혜를 이제 막 조선에 도착한 루스인들이 받고 있으니, 이들이 두손두발을 다 들 정도로 놀랄 수밖에.
의식주 중에서 의와 주를 논했으니, 마지막으로 물어볼 건 식.
“그럼... 밥은 어떠냐? 이것도 퍽 낯설 텐데?”
“음...”
“흐음.”
다들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적어도 먹을 게 다양하니까요.”
“하긴... 전엔 먹지도 못하는 풀인 줄 알았던 게 많으니까.”
“게다가 향신료도 마음껏 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 그럼.”
누군가 먼저 말문을 열자 다들 가볍게 박수를 치더니, 후추를 필두로 한 향신료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마찬가지인가.’
이야기를 들을수록, 어째 서방과 동방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들이 원체 하층민으로 살아와서 그런 건지 몰라도... 까놓고 말해서 예전 조선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으니까.
흔히 생각하는 흰 빵, 과자류, 스테이크나 각종 소스류 등은 이 시대엔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흰빵은 진짜 부자들만 먹는 음식이고, 보통은 더럽게 딱딱한 흑빵을 먹었지.
반찬이라고 해서 뭐 별다른 게 있겠나.
그냥 이것저것 다 집어넣고 잡탕처럼 끓여서 먹는데... 이들은 종교적인 제약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쓸데없이 안 먹는 야채나 풀들이 적지 않았다. 육류가 중심이 되는 식습관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고.
반대로 조선이나 중국에선 춘궁기가 되면 풀뿌리나 나무껍질마저 뜯어먹을 정도로, 별의 별 야채와 식물을 다 뜯어먹지 않았나.
상대적으로 조선의 반찬가지 수가 많을 수밖에.
“절인생선도 익숙해졌고?”
“물론입니다.”
“예.”
연오랑이 물끄러미 한마디 덧붙이자, 다들 냉큼 고개를 끄덕여댔다.
이 시대에 입맛에 안 맞는다고 고사하는 건, 정말 배부른 소리다. 먹을 수 있으면 닥치는 대로 먹는데, 생선이 낯설다고 못 먹을 리가 있나.
특히나 내륙에 살던 이들이니만큼, 생선은 어쩌면 귀한 식재료였을지도 모른다.
“흐흐. 아국이 서방보다 훨씬 낫단 말이죠.”
또 다시 이순지가 자기일 마냥 자랑을 늘어놓자.
‘조선이 언제부터 먹을 게 다양했다고...’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그거 다 내가 만든 거야. 알고는 있냐?”
“...”
참다못한 연오랑이 찬물을 끼얹었고, 이순지는 슬그머니 눈을 흘기고 말았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이, 까놓고 말해서 개혁 이전 조선의 식문화는 별 볼일 없는 게 사실이니까.
오죽했으면 연오랑이 만든 미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미래인인 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개고생 했던 북청별궁의 숙수들을 태종과 세종이 궁으로 들였겠는가.
온갖 좋은 것만 먹고 살던, 둘의 입맛조차 사로잡을 정도였던 거지. 반대로 말하면 왕실요리조차, 크게 대단한 게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알지?”
“예.예.”
그가 다시금 한소리 하자, 이순지는 마지못해 툴툴거렸다.
“민간에 다양한 식문화가 퍼진 것도 내 덕이야. 인마.”
“...”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닌 터라, 이순지는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아까 말했듯, 옛 시절 조선은 거지국가였고, 당연히 먹을 것도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양반부자들이야 어떻게든 해서 먹었겠지만, 민간에서는 그저 쌀밥이나 많이 먹으면 만족할 수준이었지.
헌데 고작 십여년 사이에 천지개벽할 수준으로 식문화가 바뀌게 된 건, 바로 착호군 때문이었다.
태종과 연오랑은 착호군을 끌고 전국을 돌아다녔고, 보조군에는 왕실숙수를 비롯해서 각 양반집, 지주집안에서 보낸 노비와 요리사들이 껴 있었다.
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왕실요리 및 다양한 형태의 고급요리, 새로운요리가 착호군 내에 퍼져나갔고, 착호군이 머물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 민간으로도 전파되어갔다.
이유를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새로운 요리법으로 만든 음식이 더 맛있기도 하거니와, 왕궁에서 먹는 음식이니 호기심에서라도 따라해 보는 거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요리법은 간소화되어, 민간에 맞게 점점 변해갔다.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각지의 특산물을 첨가하거나 대체하면서, 보다 다양한 형태의 변형음식이 등장하는 거지.
끝으로, 물류와 유통이 활성화되고, 시장 및 주막이 생겨나면서, 전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타지의 식재료도 쉽게 접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보니 각지의 토종음식이, 행상과 상인의 발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된 거지.
‘하지만 저거만큼은 서방이 훨씬 나아.’
연오랑은 달궈진 번철 위에 올리려고 쌓아둔 고깃덩어리에, 시선이 멈추고 말았다.
“저거 구우려고 가져온 거지?”
“예? 예. 그렇습니다.”
그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자, 다들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구워봐라.”
“예.”
“넵. 나리.”
안 그래도 눈치가 보여서 밥도 못 먹고 있던 판국.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호리병에서 기름을 꺼내 두르며 고깃덩어리를 썰기 시작했다.
“무슨 기름이냐?”
“유채 기름입니다.”
“오...? 그걸 벌써 키웠어?”
“알아서 잘 자라더군요. 초지나 농지로 쓰기에 애매한 곳에 심어 놨는데, 점점 퍼지더군요.”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잠자코 있던 축산부 관원은, 자기에게 묻는 걸 용케 알아차리고 답을 던졌다.
‘이곳에도 유채꽃밭을 만들었나 보네.’
중국에서 유채꽃이 들여온 후. 제주를 비롯해서 남부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면서 나름 기름을 많이 뽑아낼 수 있는 식물이니까.
그 외에 중국땅콩 또한 기름을 뽑기 위해서 많이 재배하고 있는 상황.
기존에도 있던 참기름,들기름과 같은 상품작물 또한 농산기업이 손을 데면서, 집안 텃밭에서 깨작깨작 키우는 수준을 넘어서 대규모 경작지에서 키우는 수준으로 발전한 곳이 적지 않았지.
‘서방에서 쓰는 기름도 가져와야 하는데... 올리브 나무를 가져 왔던가?’
보고서에서 본 것 같긴 한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가물가물했다.
“맞냐?”
“그... 아마 맞을 겁니다. 사실 농업부에서 담당하는 일이라서... 죄송합니다.”
축산부 관원은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답을 했고, 연오랑은 괜히 머쓱해서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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