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 챕터54. 살펴보다 (9)
“너희가 만들었는데, 어떠냐? 고향의 맛이 나냐?”
“예?”
“켁켁. 고향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곳에선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나리. 소금도 소금이고, 전에는 후추도 쉽게 구하기 힘들었으니까요.”
뜬금없이 자신들을 지목해 묻자, 루스인들은 사례가 걸려 켁켁거리면서도 얼른 감상을 늘어놓았다.
“그렇단 말이지...”
‘이것도 분명. 조선을 바꿔놓을 물건이 될 거야.’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구워지기 무섭게 입안으로 사라지는 고깃덩어리를 굽어봤다.
서방과 교류가 시작된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았지만, 식문화에 있어서 벌써부터 가시적인 성과이자 영향을 끼치는 품목이 있었다.
첫째는 커피. 조선관원들은 커피의 각성효과에 주목해서 재배를 늘리고 있는데, 전국의 관원들이 즐겨 먹는다는 말은 민간으로도 급속하게 퍼지게 될 거라는 뜻.
조선 내부뿐만 아니라, 동양의 차시장을 흔들어 놓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은 맥주. 이 시대의 맥주는 술이나 음료의 역할 뿐만 아니라, 식량 대체품의 역할을 하지 않나.
조선에선 탁주인 막걸리가 이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쌀이 아무리 많이 생산돼도 보리보다 비쌌다.
더불어 벼 재배의 북방한계선이 명확하기 때문에, 함길도만 넘어가도 막걸리는 상대적으로 비싼 술이었지.
헌데 맥주는 막걸리의 대체품으로서 활용할 수 있었기에, 보리를 주력으로 심는 북방에서는 날개달린 것처럼 맥주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이거지.’
그가 방금 집어먹은 음식은, 미래에 햄이나 소시지라 불릴 염장고기였다.
서방에선 목축이 흔했으니 당연히 육류를 많이 먹었는데, 문제는 역시나 저장 및 보관기간을 늘리는 일이었다.
가장 흔하게 취하는 방법은 염장하는 거였는데, 이걸 서방 각국에선 베이컨, 하몬, 살라미 등등으로 부르게 된다.
반대로 조선은 불교의 영향도 있지만, 가축의 품종개량이 미흡하고 사육두수가 많지 않아서 육류의 섭취가 드물었다.
뭘 남겨야 보관이라도 하지... 없어서 못 먹는 터라, 도축하는 족족 집어먹느라 바빴다.
미래에는 길거리에서 흔히 먹는 순대조차도, 이 시대엔 최고급요리였으니... 보존방법은 물론, 육류 요리법이 발달하지 못한 것도 당연한 말.
지금은 민간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각종 사골국, 선지국, 곰탕 등의 음식조차도, 연오랑이 미래의 요리법을 끌어와 재창조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조선은 암염이 없는 수준이라, 천일염이 등장하기 전엔 소금도 비쌌다.
결국 비싼 소금에 비싼 고기로 염장고기를 만들 바에는, 그때그때 도축해서 먹는 게 그나마 싸게 먹히는 셈이었지.
이 탓에 보존육류라고 해봐야 육포나 훈제고기가 대부분이었는데... 훈제의 경우에는 만드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
더불어 건조시키다보면, 그 양이 엄청나게 줄어든다는 점도 문제였다.
허나 사정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지금 조선은 다양한 가축을 기르고, 사육두수가 수십배나 증가한 상태.
이제 슬슬 육류의 보존방법을 걱정해야할,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된 거지.
연오랑은 서방의 염장고기가 이에 대한 해결책이 될 거라 예측하고, 여기에 힘을 쏟게 시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백점만점에 백점의 결과가 나왔다.
“이거. 반응이 어때?”
“더 말할 필요가 있나요. 전하께서도 극찬을 하실 정도인데, 다들 난리도 아니죠.”
“음.”
역사가 바뀌었어도 세종이 고기덕후인 건 바뀌지 않았고, 개혁 이후로는 온갖 육고기를 뜯고 맛보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세종은 자기가 맛있게 먹으려고 연오랑을 닦달해서 요리법을 뜯어갔고, 조선이 타국과 교류가 늘어날 때마다 타국의 요리법을 왕실숙수에게 배워오라고 시킨 인물이다.
원래 역사의 조선에선 이러면 딴지를 걸지도 모르지만... 지금 역사의 조선은 부자라서 전혀 문제될 게 없고, 그것도 조정세수가 아닌 왕실자본인 내수사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지 않나.
그런 세종이 인정했을 정도면 진짜로 맛있다는 뜻이고, 왕실에서 유행한다는 말에 민간으로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을 거다.
“그... 무역항을 드나드는 해군병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
이순지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축산부 관원이 이번에도 끼어들었다.
‘이건 당연하겠네.’
원래 역사에서도 대항해시대 때 선원들의 주요 식재료가 염장고기였지 않나. 배야말로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식품이 최고인데, 여기에 맛과 영양가까지 높으면 금상첨화.
배를 타고 다니는 해군들이 반기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럼 말이야. 돼지고기 말고 다른 고기로도 만들 수 있겠지?”
“그야 당연하지 않을까요? 맞지?”
이순지는 답을 하기 무섭게, 눈치 보며 숟가락질을 하던 이들을 바라봤고... 다들 얼른 씹어 넘기고선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양고기로도 만들어 먹기도 해서...”
“저희는 말고기로 해봤습니다.”
“봤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순지는 밥알을 튀기며 “내 말이 맞지?”라고 말하듯 바라봤다.
“흐음...”
‘다행이네.’
전에도 말했지만. 돼지는 사람과 같은 걸 먹어서,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참 애매한 가축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건 모든 돼지농장이 고민하던 문제였고, 요새는 기업 간의 협업을 통해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과수원과 연계해서 사람이 먹기 애매한 열매나 과실을 돼지에게 먹이거나, 도축하고 남은 부산물을 사료로 쓰는 식이었지.
양,염소목장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과수원 입장에선 땅의 영양분을 과수가 먹어야 하는데, 잡초가 빼앗아 먹는 꼴 아닌가.
양이나 염소는 식물의 뿌리까지 캐먹기 때문에, 제초용으로 풀어놓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들었었다.
‘확실히 돈이 걸려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아간단 말이지. 좋아.’
그는 속으로 히죽 웃고선, 다시금 되물었다.
“아무튼. 고향에서 먹던 것보다 낫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나리.”
“아무래도 향신료 때문일 거고?”
“예. 저희가 알지 못했던 향신료가 많아서...”
연오랑이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루스인들은 번갈아가며 답을 늘어놨다.
‘상황이 딱딱 맞아 들어갔네.’
염장고기를 만들 때는 소금뿐만 아니라, 대표적으로 후추, 정향, 계피, 박하등의 향신료가 들어간다. 잡내를 제거하고 방부,살균능력이 나름 뛰어난 걸, 이 시대 사람들도 알고 있으니까.
다만 예전 조선에선, 향신료를 중국을 통해 수입해야 했으니 엄청나게 비싼 게 당연. 남방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염장고기를 못 만들 뻔 했다.
“어쩌면... 우리가 서방보다 더 다양한 염장고기를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으음. 아마 그렇게 될 걸요?”
“그럴 거라 사료됩니다.”
계속 소시지를 주워 먹으며 묻자, 이순지는 입을 우물거리면서 동의를 표했다.
대항해시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탓에, 유럽으로 들어가는 향신료는 동남아시아와 인도상인의 안목과 손에 달려 있었다.
아무거나 다 가져다가 파는 게 아니라, 나름 팔릴 만한 물건을 중점적으로 팔아 왔던 거지. 새로운 향신료를 팔기 위해선, 당연히 홍보와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허나 조선의 경우에는 정반대다.
조선과 남방소국 간의 무역은 이제 막 시작됐고, 뭐가 어떻게 얼마나 팔리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더불어 안 그래도 조선은 온갖 걸 다 사들이지 않나.
그렇다보니 유럽으로 유통되는 향신료보다 훨씬 많은 향신료가 조선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관원들과 상인들은 이걸 활용해서 또 다른 돈벌이인 2차 가공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향신료라... 요새 많이 들어오긴 했지?”
“말해서 뭐합니까. 요즘은 어지간한 내륙시장에서도 향신료를 쉽게 살 수 있을 걸요? 남주의 무역선이 본토에 닿으면, 행상을 비롯해서 유통상인이 바글바글 모인다고 하더라고요.”
“...”
‘진짜로 많이 컸네.’
연오랑은 머릿속에 북적북적할 조선의 항구와 시장을 떠올리며,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과거. 향신료는 무지막지하게 비싸서 왕실전용품목이었고, 왕이 하사해야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귀하지 않았나.
허나 이젠 민간시장의 일반가게에서 팔 정도가 되었다는 건, 그만큼 백성들의 생활수준, 소득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리라.
‘더불어...’
“그렇게 많이 들어온 만큼, 가격도 꽤 싸졌을 거고?”
“물론이죠. 오죽했으면 산동상인이 의주에서 향신료를 사가겠어요? 돈벌레들은 절대 손해 보는 짓을 안 할 텐데, 그만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는 뜻이겠죠.”
“음.”
절강이나 광동상인을 통해 향신료를 구하던 산동상인이, 오히려 바다 건너에 위치한 조선무역항에서 향신료를 구입한다?
이건 그만큼 물동량이 많을뿐더러, 조선이 무역항로를 잘 유지해서 빠르게 옮기고 있다는 뜻이다.
‘나쁘지 않아... 하긴 무역적자는 참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방소국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기술도 기술이지만, 머릿수에서 나오는 규모의 경제도 무시 못하는 법.
도시국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이상. 앞선 조선물산을 사고 싶어도, 살 돈이 없는 나라가 태반이다.
그들에게 구명줄이 되어준 게 바로 향신료.
‘남방소국이 가져오는 품목의 태반이 향신료니까...’
향신료의 가격은 지역별로 가격차가 너무 심하고, 이 가격차의 원인은 운송비 때문이다.
신형무역선과 신형전함이 조차지와 남주를 오가면서 이 문제가 얼추 해결된 셈이니, 남방소국 입장에선 조선에게 아양을 떨면서 매달릴 수밖에 없는 판국이지.
‘아예 없던 시장이 생긴 셈이잖아?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되겠네.’
지금껏 향신료 시장은 중국과 인도로 이어지는 시장뿐이었는데, 전에 없던 거대한 시장. 조선과 일본이 등장했다.
거지였던 조선이 부자가 됐으니, 조선에 팔리는 물량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의 경우. 규슈상인이 절강과 무역하면서 향신료를 사들이긴 했지만, 절강상인이 웃돈을 붙여 파는 터라 결코 싼 값이 아니었다.
허나 이젠 일본무역항이 생겼지 않나.
일본 내륙의 다이묘들 입장에선. 남방소국-절강-규슈상인를 거쳐야 했던 상품이, 이젠 직접배송을 해주는 조선 하나만으로 끝나게 된 거지.
이렇게 가격이 떨어지면 당연히 많이 팔릴 수밖에 없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 또한 많아지는 선순환이 시작된다.
‘여기에, 남방소국이 아예 상상도 안 해봤던 시장이 추가 됐지.’
정확히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 창주로 간 향신료는 비단길을 타고서, 섬서몽골과 오이라트, 티베트로 팔려나가고 있을 거다.
중국과의 무역이 끊긴 이상, 조선이 그 역할을 대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비단길 또한 향신료가 흘러가고 있을 거고.’
그는 머릿속에 다시금 지도를 펼쳐, 조선을 중심에 놓고 거대한 순환을 하고 있는 반원을 그려봤다.
향신료에서 대해서는 말로만 들어봤던 몽골계, 튀르크계인들도, 이젠 조선을 통해서 접할 수 있게 된 상황.
과연 조선을 통해서 향신료를 구하는 게 더 쌀지, 아니면 인도 및 이집트, 오스만, 티무르제국을 통하는 게 더 쌀지는... 지켜봐야 할 거다.
‘그래도... 적어도 중앙아시아 일대의 소칸국들에게는 아국을 통하는 게 더 싸게 먹히겠지.’
거리와 거쳐야 하는 상인을 따지면, 차라리 조선이 더 가까우니까.
이렇게 동방물산뿐만 아니라, 향신료까지 수출품에 추가된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무역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는 건, 소칸국의 경제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이는 곧 정치권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안 그래도 조선관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판국에, 경제까지도 이렇게 얽히게 되면... 만약의 사태가 터지더라도, 중앙아시아의 소칸국들은 쉽사리 조선과 단교하는 선택을 하진 못할 거다.
‘게다가 무역적자 문제는 소칸국들도 마찬가지잖아? 이놈들도 조선물산을 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나라의 기틀이 완성되기 전까지, 가장 효과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노예무역일 터.’
이 또한 루스국과 코사크를 털어먹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게 분명.
아무리 짧아도 십년. 길게는 수십년에 걸쳐서, 서방인 노예 이주는 계속 지속될 걸로 추측됐다.
‘이렇게 북방으로 돈이 들어오면 올수록 향신료 무역규모는 커지게 될 거고... 자연스럽게 남방소국에 대한 영향력도 커지겠지.’
향신료 시장의 성장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물주의 눈치를 안보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이게 지속되면 남방소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한편, 그만큼 조선의 입지는 상승하게 될 거다.
“흠... 그럼. 너희가 보기에 이게 돈벌이가 될 거 같냐?”
“글쎄요... 지금 당장은 본토의 수요도 맞추기 쉽지 않겠지만... 얼추 자리를 잡고나면 팔 수 있지 않을까요?”
“같은 생각입니다. 대감. 중국이라고 해서 모두가 부자인 건 아니고, 그들 또한 이런 음식은 못 먹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겠지.”
연오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탄력을 받은 축산부 관원이 연신 입을 놀렸다.
“안 그래도 아국의 술이 각지로 팔리고 있고, 일부에선 절인생선을 사가는 중국, 일본상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생선보다는 육류가 훨씬 값어치가 높으니, 이것도 사려는 상인이 있을 겁니다.”
“음...”
‘그러면 좋겠는데 말이지. 서방에서 들여온 다른 것들도 그렇고.’
조선이 개혁을 통해 체급을 키우고, 서방의 문물을 마구 받아들이는 이유가 뭔가.
내부적으론 조선의 발전도 있지만, 외부적으론 중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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