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20화 (420/538)

420. 챕터54. 살펴보다 (12)

개혁 이후 화약제조청 관원들은 전부 한성에 모여 기술을 통합하며 평준화 작업에 들어갔다.

동시에 관리의 편의성과 화약품질의 균일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성에서 전부 제작하려고 했는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쳤다.

전과 달리 오물수거기업을 통해 초석의 원료가 되는 함토를 얻는데, 오물수거기업은 전국에 퍼져 있지 않나.

함토를 한성으로 운반해 오는 것보다, 차라리 각 지역별로 생산하는 게 훨씬 싸게 먹혔던 거지.

그래서 새롭게 개편된 행정구역이자, 도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부에 속해 있는 성형요새가 화약생산기지로 탈바꿈 했다.

아무래도 도시 관아나 민가 근처에 만들어 놓는 것 보다, 접근이 힘든 군주둔지에 건설해 놓는 게 안전하고 편리하니까.

‘괜히 이렇게 크게 만들어 놓은 게 아니란 말이지.’

남주는 남주부로 개편될 터니, 이곳 요새가 앞으로 남주도 전체수요를 담당하는 생산기지가 될 거다.

“유황 수급은?”

“유황수급도 문제없습니다. 석류황은 약재나 기타 용도로 쓰기 위해서 이미 광산기업이 운영되고 있지 않습니까? 조금만 확장하면, 화약제조청이 필요한 물량을 수급할 수 있을 겁니다.”

남주 바로 위엔 화산이 있고, 남주가 개발 될 때부터 광산기업이 들어섰다.

조선에서 유황이 대대적으로 나오는 곳은 미래의 연오랑이 만든 제주뿐이고, 기타 몇몇 유황광산을 찾긴 했는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다.

물론 원래 역사에 비하면 훨씬 풍족한 상황이지만, 반대로 군부가 커지면서 유황의 수요가 그만큼 늘지 않았나.

해서 일본에서 유황을 꾸준히 수입하고 있었으니, 쏠쏠한 돈벌이가 될 남주의 유황에 눈독을 들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목탄이야 나무가 넘쳐나니 문제될 건 없고... 관원들은? 원주민 출신은 없지?”

“예. 아무래도 화약은 상대적으로 낯선 물건이지 않습니까? 원주민들 중에선 딱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본토에서 불러들였습니다.”

“아예 이주를 한 건가?”

“그런 가족도 있고, 아닌 가족도 있습니다.”

“음...”

‘뭐... 각자 처지가 다를 테니까.’

연오랑은 물 흐르듯 설명하는 장교의 설명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관노비나 신량역천인 출신이었던 화약제조청 관원들이, 양민이 되어 정식관원이 된지 오래다. 그렇게 관원이 되었다면 순환근무를 해야 하는데, 화약제조청 관원이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다.

‘어찌 보면 행정낭비일 수도 있지만...’

순환근무를 강력하게 시행한 건, 지방에 기반을 가지고 있던 향리와 지주계층의 영향력 및 비리발생을 억제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그러니 밑바닥에 위치한 실무자들까지 굳이 움직일 필요는 없지만... 작은 예외가 생기면, 언제든 큰 틈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만약 이 문제가 불거져서, 같은 관원인 연대병의 순환근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그땐 보통 큰 문제가 아닐 테니까.

‘큰 틀에서 볼 땐, 하는 게 나아. 더 발전될 미래를 생각하면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돈낭비, 행정낭비가 맞긴 한데...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는 감수해야하는 일이다.

양전사업으로 인해 조선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뒤집힌 건 맞고, 셀 수도 없이 많은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허나 양전사업이 끝난 이상, 다들 자기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고착될 게 분명하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인구의 이동과 물류의 이동이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 가만히 놔두면 돌아다니는 사람만 돌아다니고, 그들만 돈을 벌어서 또 다른 자본가 계층이 성장할 것 아닌가.

양반으로 대표되는 지주계층을 박살내 놨으면, 기업으로 대표되는 상인 및 자본가계층도 적당히 억누를 방책을 미리미리 준비해놔야지.

더불어 이렇게 쓸데없이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로 인해 파생되는 사업이 생겨나고 돈이 돌 것 아닌가.

시장경제의 발전과 땅에 얽매어 있는 조선인들의 의식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순환근무를 명분으로 고정관념을 깨트려서 “이사? 가면 가는 거지 뭐.”라고 만들려는 거지.

‘특히나 기술계통의 관원들이 움직이는 건, 분명한 효과가 나올 거야.’

화약제조청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술직 관원들이 순환근무를 하고 있는데, 이건 행정관료와 상황이 퍽 다르다.

보다 나은 결과를 내는 건 힘들지만, 뒤떨어지는 결과가 나오면 티가 확 나니까.

다른 조건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관원이 바뀐 것으로 결과가 달라졌다면 그 책임은 관원에게 있지 않겠나.

자기 밥그릇이 달려 있는 일이니, 기술직 관원들은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지.

‘더불어 이렇게 뺑뺑이를 돌리면, 어느 한곳이 뒤떨어지지 않을 거고... 조선전체로 봤을 때, 통일성과 평준화를 이룰 수 있을 거 아냐? 향상심을 갖게 하려면 이보다 좋은 게 없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화약제조청을 둘러보고 나선, 다음 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 전각도 부산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보급창고?”

“그렇습니다.”

열심히 입을 놀렸던 장교가 뒤로 빠지고, 다른 장교가 질문을 받아 앞으로 튀어나왔다.

“여기엔...”

불시순찰이긴 하지만 나름 자신이 있는 모양인지, 그는 숨김없이 보급창고로 안내하며 입을 놀렸다.

‘잘 굴러가고 있네.’

연오랑은 작은 창고의 창문 틈 사이로 세어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조선이 부자가 되긴 했어?’

자기도 모르게 불쑥 이런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상비군체제로 전환되고 정예병이 되었다는 건, 그만큼 개개인이 소지하는 군용품이 많아졌다는 걸 의미했다.

단적으로. 수많은 목장 덕에 보급할 수 있었던, 기병군화나 보병군화가 그 대표적인 예 아닌가.

이건 지난날 최정예병 취급을 받았던, 내금위나 겸사복조차도 착용하지 못했던 물건이다.

이런 귀한 물건을 일반 연대병까지도 다 신고 있다는 건. 그만큼 조선이 부자가 되었고, 강병이 되었고, 또 엄청나게 많은 군수품이 만들어졌다는 걸 의미했지.

‘게다가 저 허리띠도 그렇고.’

연오랑은 창고 벽면에 말린 뱀가죽마냥, 줄줄이 걸려 있는 가죽띠를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한반도는 나름 유목문화가 박혀 있었기에, 고래로부터 상,하의가 구분된 복장을 입었고 혁대革帶를 착용해 왔었다.

다만 조선이 명나라 복장을 받아들이면서, 혁대 대신 한 벌의 원피스에 착용하는 품대品帶가 널리 퍼져나갔지. 조정의 유행은 당연히 민간으로 번지면서, 혁대의 사용이 제한되는 양상을 보였다.

허나 연오랑으로 인해, 미래의 군복과 흡사한 복장이 착호군을 통해 널리 퍼지지 않았나.

혁대 또한 기존의 것이 아닌 미래의 허리띠와 비슷하게 변해갔고, 여기에 검,도를 착용하기 위한 소드벨트와 조선 특유의 띠돈 양식이 결합했다.

한마디로 이 군용혁대는 전에 없던 물건이고, 이걸 군수품으로 만들어서 연대병들에게 뿌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생산이 있었다는 뜻.

군수부는 이런 사소한 군용품 하나까지도, 설계개발, 기술전수, 발주, 검사, 구입, 배포까지 전부 담당하고 있었다.

“군수부에서 관리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앞서 나와 있던 장교 말고도, 다른 장교들 모두 고개를 냉큼 끄덕여댔다.

보급품이 어디 한 둘인가. 다들 맡은 품목이 다른지, 번갈아가며 입을 놀려댔다.

보급창고들을 지나 계속 걸음을 옮겨갔다.

캉캉! 한쪽에선 유독 큰 굉음과 열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는데, 갑옷을 만들거나 수리하는 장인, 혹은 개인 무구류를 만드는 장인이 모여 있는 대장간이었다.

“군수부에 속해 있는 관원들?”

“예.”

“저치들도 기본훈련을 받지?”

“물론입니다. 다들 본토에서 온 이들이라서, 기마훈련도 따로 받았습니다.”

“흐음... 문제는 없고?”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조정에서 논의될 만큼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연오랑은 세종 및 태종과 다이렉트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물 아닌가.

그의 이름값을 아는 지라, 다들 살짝 경직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놀렸다.

‘하긴 저치들을 연대병처럼 굴리는 건, 솔직히 무리겠지.’

조선군 체제가 야전군으로 변하고 원정전쟁을 겪으면서, 보조군의 역할이 대대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나.

서방에선 용병대나 정규군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군상이 있었다면, 조선은 군수부 소속 보조군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들은 여자를 취급하는 것 빼곤, 전투에 필요한 모든 걸 뒷받침해줬지.

허나 적군 입장에선 이들이 보조병이든, 전투병이든 알게 뭔가.

결국 이들은 장인인 동시에 군인이 되어야 했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연오랑이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어서 일까? 장교 중 하나가 얼른 부연설명을 토해냈다.

“연대병과 비교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의 군병과 비교하면 그 수준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저들 또한 무기술집체훈련과 방진훈련은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어지간한 징집병 쯤은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거고, 보조군은 사실상 후방의 군진에 주둔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흐음.”

다들 일리가 있는 말인터라, 고개가 살포시 끄덕여졌다.

그럼에도 표정이 풀리지 않자, 장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군부에서 논의 중이긴 한데, 보조군의 화력을 높이기 위해 총통을 연구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

연오랑은 장교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기억을 더듬어 알아차렸다.

총통은 화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용하기 편한 물건이고, 화약병기인 만큼 냉병기에 비해 숙련도를 높이기 쉽지 않나.

어차피 야전에서 보조군은 주둔지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할 테니, 수비목적으로 봤을 땐 총통이 꽤 쓸 만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판금갑옷 문제도 있고 말이야.’

연오랑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긴?”

“판군사대의 전각과 옥사입니다.”

“음. 이곳이 남주도의 중심요새니까?”

“예.”

그는 가볍게 쓱쓱 훑고 지나갔다.

그 내용물이 중요한 거지, 전각의 양식이야 다른 건물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옥사가 그나마 특이하긴 했는데, 그건 뭐 나무로 대충 만들어 놓기만 해도, 파옥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원주민 출신의 신입들이 말썽을 부리기는 하는데, 그건 아직 신군율에 익숙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그 외의 비위감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연오랑의 날카로운 질문에 화들짝 놀란 판군사대 소속 장교는, 그간 있었던 헤프닝 사례를 줄줄이 늘어놨다.

‘판군사대도 이제 완전히 정착했나 보네.’

연오랑은 설명을 들으면서, 오뚝이처럼 고개를 까닥거렸다.

본래 조선에는 병조 밑에, 무선사라고 해서 무관의 처벌 및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었다.

허나 군부가 독립되어 나가면서, 오히려 착호군의 판군사대가 정식 부서로 승격되어 동등한 위치로 올라섰다.

무관이 없어지고 군인이 등장한 만큼, 그런 군인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판군사대의 정치권력적 위치가 높아져야 했으니까.

더불어 율법부가 민간과 조정관원을 심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군인까지 처벌하면 군부의 독립성이 깨질 수도 있는 법.

신군율이 완전히 군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민간의 법률과 다른 조항이 흔히 등장하지 않았나. 율법부에게 맡기면, 서로 골치 아파진다.

추가로 판결뿐만 아니라 군수품의 감찰 및 감사도 함께 진행하게 됐으니, 율법부와는 성격이 다른 독립기관이 될 수밖에 없었지.

“그 옆은 군사부 전각입니다.”

“음.”

어쩐지 먹물 묻은 티가 나는 관원들이 돌아다닌다 했더니, 이유가 있던 모양이다.

‘확실히... 제대로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네.’

연오랑은 자기가 생각해도 뿌듯해서, 절로 미소가 얼굴에 그려졌다.

지금껏 조선이든 중국이든, 완전히 독립된 군조직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무관이 혼용되었던 것처럼, 군사조직과 행정조직 또한 경계가 불분명해서 섞이는 경우가 흔했지.

예컨대 군수품 조달에 있어서 군병 개개인이 해결하거나, 군조직이 민간에서 강제로 뜯어내거나, 관아의 행정조직이 어떻게든 만들어서 군조직에 전달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완전히 새로운 군부창설에 대해서, 감을 잡는 조정관료가 몇이나 될까.

자연스럽게 미래의 지식을 지닌 연오랑의 입김이 듬뿍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착호군을 미래의 방식으로 만들었으니까.

그 결과. 군부라고 뭉뚱그려서 부르지만, 사실 육군부와 해군부로 나뉘고, 그 안에는 금군부, 군사부, 군무부, 판군사대부, 군수부 등으로 역할이 명확하게 구별됐다.

금군부의 경우에는 내금위를 필두로 기존 12위의 각종 특수병과를 모두 통합 확장 부대였다.

어차피 편제나 운용방식이 연대병과 똑같아서 특별한 정예병이나 중앙군은 아니고, 그냥 도성방위 및 지원군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부대였지.

군사부는 기존 병조의 무선사, 무비사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군병들의 인사, 급여, 행정등등.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모든 일을 담당했다.

특기할 점은 군사부는 기존 문관이라 할 수 있는 조정관원과 무관이라 할 수 있는 군인이 함께 섞여 있다는 점이다.

군수부는 아까 말했던 모든 보급품을 담당하는 곳으로, 어찌 보면 군부에서 가장 덩치가 큰 곳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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