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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421화 (421/538)

421. 챕터54. 살펴보다 (13)

이곳에는 축산부로 변모한 사복시의 영역도 일부 흡수했고, 배에 관한 모든 걸 담당하는 전함부와도 닿아 있으며, 화약제조청도 흡수했고, 군기시와 공야사등이 합병된 조병창도 포함하고, 심지어 의약부의 군의관, 조선불교청의 군종승도 군수부에 속해 있었다.

군무부는 말 그대로 실전 야전군으로, 흔히 연대병이라 부르는 전투부대가 속해 있었다.

신병교육기관인 훈련소와 고급지휘관교육기관인 훈련원도 포함됐고, 조선군의 대전략과 공세작전, 방어작전 등을 짜는 참모부서도 함께 했다.

문관이라 할 수 있는 먹물 먹은 조정관료는, 여기에 끼어들 수도 없었지.

‘이렇게 잘게 잘게 나누는 바람에 너무 복잡해진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미래를 생각하면 힘들어도 이게 최선이니까.’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전에도 말했지만, 정예병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단결, 단합, 서로에 대한 신뢰다.

어중이떠중이들 긁어모아서 한 부대로 편성하고, 생전 보지도 못했던 지휘관을 위에서 임명해서 내려 보내면... 일선 병사들이 뭘 믿고 어깨를 맞대고 싸우겠는가.

옆에 있는 동료가 싸움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고, 위에서 내려온 지휘관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자리에 쭉 눌러 앉아서 동고동락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하는데... 이러면 파벌 및 사병 비슷한 독립화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원래 역사의 조선은 전자의 문제보단 후자의 문제를 더 경계했기 때문에, 전투능력이 떨어진다는 부작용을 알면서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지.

연오랑은 이 문제를 값비싼 비용을 치루면서 해결했다.

모든 병장기 및 군수품을 규격화, 통일화 시켜서 병사들 간의 차이점을 없앴다. 여기에 직접 교관을 파견해 무기술 교육을 시키고, 같은 전략과 전술을 가르쳤다.

이로서 다른 지역에서 훈련 및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간의 능력치는 큰 차이가 없어서, 어디에 끼워 넣어도 비슷하게 만들었다.

지휘관 또한 마찬가지.

무관과 문관을 완전히 분리해서, 책상머리에 앉아 탁상공론을 할 여지를 아예 없어버렸다.

더불어 지휘관교육기관인 훈련원을 거쳐 승진하게끔 함으로서, 엄청나게 특출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밥값은 할 줄 아는 지휘관을 양성했지. 전처럼 문관의 추천을 받고 승진하는 경우가 없어진 거다.

군부 휘하에 있는 훈련원은 조정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곳이니 상대적으로 비리나 낙하산 문제가 벌어질 수 없고, 이렇게 나름 공정한 거름막을 통과했다면 최소한의 능력은 입증된 것 아니겠나.

일반 병사들 입장에선, 어떤 지휘관이 와도 믿고 따를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길 수밖에.

‘효율성 및 독립성 문제도 있을 거고.’

이렇게 잘게 쪼갬으로서 서로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고, 같은 부서에 속해 계속 일을 하면 전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 깊어지면 보다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무엇보다도 책임소지가 명확해진다.

일처리에 구멍이 생기면 너무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성과는 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평균은 유지해야만 하는 거지.

‘그리고... 사실 진짜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지.’

연오랑은 다시금 쓴웃음을 머금었다.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군주가 가장 경계하는 건 오랫동안 군권을 한손에 쥐고 있는 장군이다.

역사 이래로 얼마나 많은 문제가 터졌는가.

고대로마 시대부터 먼 미래에까지 지지치 않고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났다.

의심암귀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

아무리 군주가 현명해도, 모든 신하들이 헛바람을 불어넣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설령 굳건히 믿는다 하더라도. 모든 신하들이 그렇게 들고 일어서면, 통치의 안정성을 위해서 내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지.

군권을 쥔 인물도 마찬가지.

매일같이 자신의 충성을 의심받고, 이걸 또 증명하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눈귀 닫고 굳건히 버틴다고 한들, 이러면 모든 신하를 적으로 돌리는 꼴.

설령 그렇게 되지 않으면 자신을 지지해주는 파와 반대하는 파로 나뉘어서, 조정과 군대가 반으로 쪼개져 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조선이나 중국왕조나, 시도 때도 없이 변방에 나가 있는 지휘관을 교체했던 건데... 이 여파로 인해 나라가 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지.

이건 사람의 문제이자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구조적인 한계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택한 거지, 이젠 군권을 몰아줘도 반란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테니까.’

이 시대는 고대처럼, 맨몸에 창하나 쥐어주고 전쟁터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특히나 조선군은 기병과 화포가 주력이 된 이상, 더욱더 그렇다. 흔한 농민 징집병 쯤은 고기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지.

이렇듯 장비가 고도화된 군대는 막대한 군수품을 소모하는데, 이 군수품을 일개 지역에서 충당할 수 있을까.

반란을 일으킨 군대가 전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군수부를 다 손에 넣어야 가능한데... 이쯤 되면 지방반란이 아니라 나라 전복이 벌어져야 가능할 거다.

즉. 돈이 있어야 반란도 일으킬 수 있다는 건데... 지금 조선은 군부가 완전히 분리되면서, 재정부를 통해 예산을 책정 받아야 굴러가지 않나.

예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민간에서 조달하는 수준으론, 애초에 셀 수도 없이 많은 군수품이 필요한 조선군대를 유지할 수도 없는 거지.

‘설령 반란이 터져도 결국 돈 전쟁으로 흐를 텐데, 지방반란군이 뭔 수로 조선 전체를 이기겠어.’

모든 병사가 상향평준화되어 정예병이라는 게 따로 없으면,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 건 머릿수와 보급 아니겠나.

반란군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걸 극복할 수 없으니, 애초에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킬 엄두도 못 낼 거다.

군사부가 군부 소속이 아닌, 조정에 속해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군인의 인사이동을 같은 군인출신이 시행하면 파벌이나 인맥이 끼어들 수 있지만, 아예 별개인 조정관원이 시행하면 그럴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지금 조선, 그리고 앞으로의 조선은 학맥이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인맥이 형성되기 힘든데, 조정관원이 자신과 엮일 일도 없는 군인들의 눈치를 봐가며 일을 하겠는가.

어차피 훈련소, 훈련원의 성적으로 추천이 올라오고, 그걸 생판 모르는 조정관원들이 담당하는 거니, 어쩌면 이쪽이 더 청렴하고 공평할 수 있는 거지.

반대로 이게 꼭 군인출신에게 나쁜 것도 아니다.

뭔 일이 터졌을 때. 괜히 엮여 들어갈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괜히 “파벌을 만든다. 인맥을 만든다.” 등등의 모함을 받을 일도 없어지는 거니까.

‘게다가, 조정이 쓸데없이 전략전술에 끼어드는 걸 막을 수 있지.’

하나를 내주면 하나를 얻는 게 인지상정.

인사를 조정이 담당하는 이상, 군부는 오롯이 대전략 및 전술,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다.

육조체제가 무너지고 조정이 독립화, 비대화되면서 당파나 파벌이 형성되는 게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정치역학이라는 건 있기 마련.

허나 군부의 인사를 조정이 건드린 이상, 군부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걸 가지고 딴지를 걸 수가 없지 않나.

탁상머리에 앉아서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는 사람이 없어지는 거고, 조정의 정치문제에 따라서 군부가 완성한 군전략이 흔들릴 일도 없어지는 거지.

‘순환근무를 시키는 궁극적인 목적이 이것이기도 하니까.’

여기에 순환근무를 시킴으로서, 사병화될 가능성도 줄어들지 않았나.

결국 군부는 군주의 의심을 사지 않고 마음껏 전투훈련을 할 수 있고, 군주는 괜히 군부를 의심해서 애써 잘 만들어 놓은 대전략과 훈련을 건드릴 필요가 없지 않겠나.

서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기 일만 알아서 열심히 하면 되는 구조를 만든 거지.

‘다 돈을 처발라서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이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조선의 세수와 생산성을 늘리려고 노력해야 할 거야.’

연오랑은 미래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히죽 속으로 웃었다.

군부에 돈이 돌지 않아서 뭔 일이 터졌는지는, 과거와 미래의 역사 모두가 증명하지 않나.

비대해진 군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조선은 열심히 무역을 하고, 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발전 및 외부기술흡수에 열을 올리게 될 거다.

이러면 이럴수록, 원래 역사의 폐쇄적인 조선과는 계속 멀어지게 되는 걸 테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덧 전각군을 모두 지나쳤고, 확 트인 연병장에 다다랐다.

가장자리에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를 심어 놨고, 햇빛을 막을 차양도 쳐놓았는데, 그 밑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구르고 있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들이 있다.

두정갑이 아니라 눈이 부실 정도로 햇빛을 반사하고 있는 강철갑옷을 입은 이들. 서방에서 들여온 판금갑옷으로 무장하고서, 서로 대련을 하고 있는 이들이다.

‘오늘도 열심히 하는 고만.’

“저기로 가자.”

“옙!”

“넵!”

연오랑이 냉큼 발걸음을 옮기자 다들 뒤따라왔고, 차양 근처로 다가가자 캉캉! 귀를 찌르는 매서운 파공음과 충격음이 들려왔다.

“헙!?”

“어... 충성!”

연오랑을 봐서 놀란 모양인지, 근처에서 쉬고 있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경례를 했고... 눈치 빠른 몇몇이 냉큼 달려가 조잡하게 만든 나무의자를 대령했다.

“...”

그가 의자에 앉아서 구경을 시작하자, 딱 봐도 중대장쯤 보이는 이가 엉거주춤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눈알을 굴려댔다.

“전에 봤던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연오랑이 알아봐줘서 기쁜지, 그는 히죽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훈련은 잘 되고 있냐? 전에 내가 이것저것 해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계획서대로 시험 중에 있습니다.”

중대장은 조심스럽게 옆에 시립해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중대장의 눈빛을 받은 병사 중 한명이, 냉큼 몸을 날려 주변에 있던 판금갑옷 한세트를 가져와 앞에 펼쳐놓았다.

“여기서도 만들고 있냐?”

“그렇습니다. 서방기술자들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은 보조군이 오지 않았습니까.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고, 동쪽의 산맥도시에서 생산한 강철도 이제 나오고 있어서, 이곳에서도 직접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연오랑은 고개를 까닥거리고선, 앞에 놓인 판금갑옷의 전면흉갑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드디어 이걸 가져오긴 했는데... 애매하단 말이지.’

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반짝이는 흉갑의 모서리를 살펴봤다.

강철기사를 꿈꾸며 판금갑옷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세월이 얼만가. 하동에 있을 때부터 토법고로이자 용광로의 프로토타입을 연구하면서, 함께 만들려고 했던 물건이 판금갑옷이다.

그 연구결과로 손방어구인 건틀렛과 기병군화에 끼우는 강철각반까지는 만들 수 있었지만, 판금갑옷은 여전히 요원했지.

결국 지금에 와서야 밀라노 및 이탈리아의 갑옷기술자를 데려오면서 열처리 기술을 배웠고, 이렇게 진짜 판금갑옷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문제라면... 예상했던 돈 문제와, 예상치 못했던 기후와 풍토 문제를 맞닥뜨리게 됐다.

‘지랄 맞은 조선의 기후가 발목을 붙잡을 줄은 몰랐단 말이지.’

그는 판금갑옷을 내려놓고, 그 옆에 둘둘 말려 있던 큼지막한 장포를 집어 들었다.

“이거 효과는 있었지?”

“물론입니다. 대감. 다만...”

“다만?”

“색을 뭐로 해야할 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대다수는 전과 같이 흑색을 선호하고 있었습니다.”

“음.”

중대장은 슬쩍 연오랑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을 늘어놨다.

조선군의 갑옷이 검은색 일색이 된 건, 착호군 시절 연오랑이 그걸 밀어붙였기 때문 아닌가. 그러니 이번에도 같은 의견일 거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모양이다.

‘나야 흑색이 그나마 떼가 덜타고, 돈이 덜 들어가서 선택한 건데...’

그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시대에도 오행사상은 존재했고, 오행에 맞춰 오방색을 맞추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으니 청색이 정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흰옷을 즐겨 입는 조선인들에게 청색옷을 입히려고 주장하려는 일도 있었지.

다만 운석핵꿀밤으로 인해 자주화가 시작되면서 살짝 그런 경향이 약해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무의식적으로는 오행을 따르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 맥락에서 흑색은 북쪽을 상징했는데... 착호군시절부터 군부는 “한반도를 넘어 북방땅도 조선땅이다.”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는지, 연오랑의 제안을 다들 별말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쩌면 남는 색이 그것밖에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네.’

“...”

문뜩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운석핵꿀밤 이후로 관복을 놓고 설왕설래 말이 많았는데, 그땐 돈도 없고 할 일도 많아서 뒷전으로 미뤄지지 않았나.

개혁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부턴, 착호군의 신군복 양식을 흡수해서 명나라 관복과는 사뭇 다른 개량관복이 완성되었다.

다만 아직도 적,청,녹 3색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지.

이건 딱히 바꾸지 않아도 되고, 관원이 많아도 너무 많아지면서 품계와 직급에 따라 구별하는 게 솔직히 편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조정과 완전히 분리된 군부 또한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싶었는데, 황색은 군주의 색이니 솔직히 조금 그렇지 않나.

이러한 이유가 모두 합쳐져서 흑색이 군부의 색이 되었고, 한편으론 조정을 상징하는 색이 되기도 했다. 지금 지어지고 있는 신식관아의 기와는 죄다 검은색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이 또한 이게 가장 염료값이 싸서 그랬던 건데... 뭐 명분이야 멋들어지게 갖다 붙이면 그만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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