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챕터55. 계획하다 (1)
아무튼. 중대장이 언급한 이 물건. 두루마기를 닮은 이 장포는 판금갑옷 위에 걸치는 얇은 옷이었다.
“너희가 느끼기엔 어떠냐? 이거 꼭 필요한 거 같냐?”
“... 솔직히 말씀드려서 애매합니다.”
“그런가...”
“...”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이어갔다.
서방에선 서코트라고 해서, 망토 비슷한 외투를 갑옷 위에 걸쳐 입었다.
판금갑옷이 나오기 전엔 사슬갑옷을 주로 입었기에, 갑옷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했고 태양의 열기를 막아주기도 했지.
이 물건은 십자군 원정기간 동안 널리 퍼져나갔는데, 판금갑옷이 등장하면서부터 점차 활용도가 줄어들었다.
지금 서방에선 판금갑옷이 이제 막 제대로 유행하고 대량생산되고 있는 상태라서, 이 서코트도 함께 조선으로 흘러들어왔다.
게다가 조선에는 이미 겉옷으로 사용되는 두루마기와 도포가 있지 않나. 엄청나게 낯선 물건도 아니었고, 조금만 개량하면 갑옷 위에 입는 겉옷을 만들 수 있었다.
“햇볕을 막아주는 데는 확실히 효과가 있을 텐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실제로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는 일은 최대한 지양해야 하고, 그런 경우에는 단순히 갑옷장포를 두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흐음.”
애초에 땡볕에서 돌아다니는 건, 갑옷의 종류에 관계없이 지양해야 되는 일. 특히나 체력을 보전해야하는 군인들 입장에선 더욱 그러했다.
‘확실히 이것도 기후를 타는 건가.’
유럽이나 중동은 햇볕은 뜨겁지만 건조해서, 한 여름에도 그늘만 찾으면 그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지 않나.
허나 조선을 비롯한 남방에선 햇볕보다는 습도가 높아서, 갑옷에 덧옷을 씌워 햇볕을 가리는 건 큰 효과가 없는 모양이다.
‘음... 서코트를 입는 건 조금 더 고려를 해봐야겠지만...’
“그래도 두정갑보단 낫지?”
“그건 확실합니다.”
연오랑이 슬쩍 되묻자, 중대장뿐만 아니라 다른 병사들 모두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난 원정 때부터 해서 해주도 원정, 남방조차지 개척을 하면서 누누이 겪지 않았습니까. 두정갑은 남방에서 사용하기엔 제한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겠지...”
이건 연오랑이 구슬땀을 흘리며 직접 경험한 일.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연오랑이 판금갑옷에 주목한 건. 이게 갑옷 중에서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한 것도 있지만, 남방에서 조선의 제식갑옷인 두정갑을 사용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정갑은 그냥 얇은 천에 철판을 박아 넣은 물건이 아니다.
애초에 일상복에 가까운 얇은 옷에, 무거운 철판을 박아서 고정시킬 수나 있겠나.
겉면은 가죽이나 두꺼운 천으로 만들고, 그 안에 철편을 넣은 다음에 또 다시 천이나 비단을 겹겹이 겹쳐서 바느질한 물건이다.
한마디로 미래의 패딩과 비슷하다고 해도 무방한데... 이걸 여름에 입고 다니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열기와 탈수증세 때문에, 얼마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조선본토에서도 그랬는데, 훨씬 습하고 더운 남방에선 더욱 그렇겠지.’
“더위를 생각하면 판금갑옷이 확실히 더 낫단 말이군?”
“예. 햇볕이야 어떻게든 차단할 수 있으니 열기를 배출하는 게 문제인데... 그 부분에선 판금갑옷이 더 낫습니다.”
“속에 옷을 껴 입어도 그렇단 말이지?”
“두정갑을 입어도 옷을 껴입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음...”
‘하긴 판금갑옷은 속갑옷을 안 입으니까. 두정갑과 크게 다를 게 없겠네.’
사슬갑옷이나 사슬과 판금을 결합한 트랜지셔널 아머의 경우에는 안에 속갑옷이라 할 수 있는 갬버슨을 껴입었다. 동양의 면갑과 비슷한 물건으로 솜갑옷, 면갑옷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이지.
사슬갑옷은 날붙이에 의해 맨살이 직접 베이는 건 막아줄 수 있지만, 그 충격력까지 막아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두툼한 옷을 안에 껴입어서 충격을 흡수하게 한 거지.
더불어 얇은 옷에 사슬갑옷만 걸쳐 입으면, 옷이나 맨살이 남아나겠는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사슬에 찔려서 죄다 찢어진다.
허나 판금갑옷은 날붙이에 의한 직접공격과 충격력까지 함께 막아줄 수 있기 때문에, 안에 굳이 면갑옷을 껴입을 필요가 없었던 거지.
‘두정갑은 애초에 면갑옷의 역할까지 했으니까, 안에 속갑옷을 더 껴입을 필요가 없었고.’
패딩과 비슷한 물건이니, 충격흡수를 잘하는 건 당연한 말.
결과적으로 지금에 이르러선, 판금갑옷이 상대적으로 더 시원한 편이었다.
“더불어 무게의 경우에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어떤 면에선 판금갑옷이 더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판금갑옷은 온통 강철로 되어 있으니, 다른 갑옷보다 더 무겁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사실은 다른 갑옷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판금갑옷을 입고 수영까지 가능할 정도인데, 더 말해서 뭐할까.
오히려 사슬갑옷이나 두정갑의 경우에는 갑옷의 무게가 전부 어깨에 쏠리는 바람에, 파트별로 부착하는 판금갑옷에 비해서 더 무겁게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두정갑은 축축 늘어지는 사슬갑옷보단 낫지만, 판금갑옷보다 낫다고는 못하겠지.’
두정갑도 사실 껴입는 옷이니 당연히 무게가 어깨에 쏠릴 수밖에 없는 법.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상,하의를 분리하고 허리띠를 크게 만들어 무게중심을 분배했지만... 그래도 판금갑옷만큼은 아니었다.
이렇게 더위에 강점이 있다면, 약점도 있기 마련.
“하지만 북방에서는 판금갑옷이 아주 쥐약이단 말이지. 특히 겨울에는...”
“...”
“...”
다들 북방에서의 실험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고 있지만, 굳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됐다.
열 배출이 쉽다는 건, 보온이 안 된다는 말이지 않나.
그나마 사시사철 온난하다고 할 수 있는 유럽이나 중동의 겨울과 조선 및 북방의 겨울은 감히 비교조차가 불가하다.
찬바람에 꽁꽁 얼어붙는 판금갑옷이니, 이걸 입고 있으면 얼어 죽기 딱 좋다. 더위는 어떻게든 참을 수 있어도, 추위는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겠지?”
“당연히 그럴 겁니다.”
“두정갑을 입고 있어도 추운데... 속갑옷도 입지 않는 판금갑옷은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긴, 괜히 북방유목민들이 두정갑 비슷한 갑옷을 입은 게 아니겠지.’
연오랑은 이구동성으로 의견을 표하는 병사들을 보며,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두정갑의 원형은 북방유목민족에서 왔는데, 그치들이 바보도 아니고... 안 그래도 거지처럼 살던 그들이, 괜히 비싸고 복잡한 두정갑을 만들어 입었겠는가.
그게 최선이니까 그랬던 것이겠지.
“결국 제식갑옷을 이원화해야 된다는 거군.”
“...”
“...”
이건 조정과 군부에서 결정을 해야 되는 일이라서 그런지,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말을 삼갔다.
‘돈이 또 엄청나게 깨지겠네.’
연오랑은 괜히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예상했던 문제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답답한 게 사실이니까.
북쪽에선 두정갑, 남쪽에선 판금갑옷이 주력이 될 거다. 허나 순환근무를 시작한 이상, 정예화 및 통일성을 위해선 둘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수만벌을 만들어야 할 텐데... 돈이 얼마나 들지, 상상도 못하겠다.
더불어 보급체계와 행정소모도 적지 않을 거다.
둘 모두 기성품이 아니라 맞춤품이다. 대략적인 치수를 정해 배분해서, 각 지방의 군수부 관원들이 직접 판금갑옷을 맞춰줘야 하는데... 이 인력도 어마어마하게 소모되지 않을까.
‘뭐 이 덕분에 시장이 성장한다는 이점도 있으니까, 손이 많이 가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겠지.’
지금 조선은 직업의 세분화 및 전문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게 기업과 연계되어 돈으로 귀결되고 있지 않나.
이 또한 분명히 시장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요인이 될 거다.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와도, 안할 수 없는 노릇이잖아?’
이미 단점과 약점이 지적됐는데, 해결을 안 하고 넘어갈 순 없다.
조선은 남방으로 야금야금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나. 빈 땅은 남쪽밖에 없고, 돈이 될 상품도 남쪽에 있으니까. 이런 기조를 버리지 않는 이상, 판금갑옷도 함께 가야하는 거지.
‘개인화기의 발달로 판금갑옷의 전성기가 끝나는 건 분명하지만...’
그는 미래의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내저어졌다.
판금갑옷의 몰락은 앞으로도 백년은 더 남았다.
온몸을 감싸는 판금갑옷이 없어지고도, 총탄을 막기 위해 극단적으로 두께를 늘린 흉갑도 등장하지 않나. 창병과 총병이 결합된 병종을 운용하던 시절에도, 창병들이 판금갑옷의 흉갑을 입는 일도 흔했고.
‘멀어도 너무 멀어. 백년이면 조선이 남방의 어디까지 진출할지 모르는데, 그걸 예상하고서 판금갑옷을 버리는 건 무리지.’
결론은 조선 또한 판금갑옷을 채택해, 마르고 달도록 써먹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
상념에 잠겨 있던 그를, 중대장이 조심스럽게 깨웠다.
“해군에서는 판금갑옷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군은 안 그래도 개량된 내흉갑을 선호하지 않았습니까.”
내흉갑은 연오랑이 판금갑옷을 모방해서 만들었던 방검조끼.
개혁 초창기에 그가 처음 선을 보인 후에, 제식무장으로 삼진 않았지만 은근슬쩍 부무장으로 퍼져나갔다.
해군병은 안 그래도 좁은 배 위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거추장스러운 두정갑보다는 적당한 방어력을 제공하면서 간편한 내흉갑을 꽤나 선호했지.
“맞습니다. 어차피 해군들은 상대적으로 하체무장을 선호하지 않는데, 독립되면서도 보다 높은 방어력을 가진 판금갑옷 흉갑에 눈이 쏠리겠지요.”
‘흠. 이게 또 이렇게 되네.’
원래 역사에서도 이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조선의 배는 다른 나라의 배보다 훨씬 높지 않나.
그렇다보니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적이 신형전함에 기어올라야 하는 상황이 주로 발생했고, 그 탓에 상체무장만 충실하면 어지간한 공격을 다 방어할 수 있었다.
그 꼼수 아닌 꼼수가 이어져서, 부위별로 나눠져 있는 판금갑옷의 일부만 착용하겠다는 거지.
“흐음... 그래도 바닷바람이 만만치 않을 텐데?”
“찬바람이 부는 지역보단, 따뜻한 바람이 부는 남방에서 주로 활동하니까요.”
“게다가 필요하면 겉옷을 걸치지 않겠습니까? 전투 중에는 벗으면 될 거고요. 기마를 타는 육군과는 처지가 다를 겁니다.”
“...”
‘하긴... 북쪽으로 움직이는 해군은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가는 전함들뿐이잖아?’
조선해군이 장악한 바다 중에서, 사시사철 찬바람이 몰아치는 곳은 동해와 일본 북쪽의 바다뿐이다. 상대적으로 그 수가 몇 안 되니까, 판금갑옷의 패용여부는 문제가 안 될 것 같다.
‘그럼 남은 건...’
“이걸 어떻게 상대해야 효과적인가의 문제인데... 지금껏 우리가 익힌 무기술로 상대할 수 있겠지?”
“대감께서는 문제가 없겠지만 저희는 조금...”
“그래도... 애매하긴 한데, 가능은 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큰 차이를 못 느끼겠습니다. 판금갑옷이 방어력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사람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예. 어차피 갑옷을 입은 적을 상대하는 건, 협공을 하는 게 최선이지 않습니까. 전장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
연오랑이 기대감을 품고 묻자, 제각각 다른 대답이 흘러나왔다.
‘이것 참... 비교군이 없으니 중구난방이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머금었다.
연오랑은 무기술집체교육을 실시하면서 무예도감을 만들고, 직접 훈련소 교관들을 교육시켜왔다.
이 시대엔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개별훈련까지 시키는 나라는 없었기에, 실전에서 압도적인 효과를 보여줬다.
다만 판금갑옷은 아예 다른 문제다.
오죽했으면 판금갑옷을 상대하기 위해 갑옷레슬링이 발달하고, 갑옷의 빈틈을 쑤시기 위해 롱소드의 형태가 변했겠는가.
그런 만큼 기존의 교육방식으로, 판금갑옷을 상대할 수 있는지는 시험을 해봐야 했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단 말이지. 역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인 건가...’
연오랑은 누구보다 먼저 이 문제에 주목해서 연구를 했는데, 그의 실력은 너무 뛰어나서 판금갑옷이든 두정갑이든 별 차이가 없었던 것.
해서 연대병들이 주축이 되어 시험을 거듭했는데, 결과는 중구난방이었다.
연대병의 실력은 비슷할 게 분명하니, 북방에서의 시험 또한 이곳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거다.
“새로운 무기술훈련법을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지금도 아군은 중병기를 주로 사용하지 않습니까. 타격무기는 판금갑옷에도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효과가 있을 걸로 보입니다.”
“다만 장도술의 경우에는 살짝 애매하긴 한데... 그래도 쌍수도로 활용하면 효과가 있었습니다.”
“음...”
자기가 만들어 뿌렸는데 모를 리가 있나.
연오랑은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을 끝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의 환도가 길이가 살짝 길어진 장도로 통일되고, 한손도가 아닌 쌍수도가 제식무기가 되었다. 다만 그럼에도 조선기병의 주력무기는 엄연히 활과 장병기였다.
기창, 월도, 편곤, 장창이 주력이고, 장도, 전투도끼, 전투망치는 그 다음이었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서양에서도 기사들 때려잡으려고 할버드나 파이크를 사용했는데... 이건 지금도 우리가 쓰는 병기잖아?’
더불어 서방과 비교했을 땐, 조선은 엄청난 기병전력을 운용할 수 있다.
그러니 적이 판금갑옷이든 두정갑이든 관계없이, 전략과 전술을 활용해 머릿수로 눌러버릴 수가 있는 거지.
“그리고... 굳이 지금부터 이렇게까지 고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중대장은 의구심을 담은 연오랑의 눈빛을 받고선, 조심스럽게 의견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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