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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423화 (423/538)

423. 챕터55. 계획하다 (2)

“판금갑옷은 서방에서도 이제 막 퍼지고 있고, 동방에서는 선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아국만 사용할 게 분명한데... 이걸 벌써부터 대비할 필요가 있는 지요. 아국의 갑옷을 중국과 일본, 남방소국에 파실 생각은 없지 않습니까?”

“음...”

“생각해보니 그런 면도 있네요.”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라서 입을 다물고 경청하고 있던 이순지가, 조용히 한마디 곁들였다.

조선은 자신들의 무기와 갑옷을 팔기는커녕, 훔쳐서 배울까 싶어서 꽁꽁 숨기고 있지 않나. 대리에 화포를 팔긴 했지만, 그건 따라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드는 물건이다.

중대장은 조선의 가상적국 중에서 판금갑옷을 패용하는 나라가 없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논의를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던 것.

“서방상인을 통해서 들여올 수도 있지 않을까?”

“북방의 비단길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고, 종착지는 창주잖아요? 중국에선 수입을 하고 싶어도 못할 걸요. 애초에 생산량은 서방에 팔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적고, 겨울이 혹독한 서방의 소칸국들이 과연 판금갑옷에 욕심을 낼지도 의문이죠.”

“남방은?”

“남방도 거쳐야할 나라가 한둘이 아닐 테고, 서방이 적대국인 오스만국에 판금갑옷을 팔까요?”

“그건 모를 일이지.”

“에이. 돈에 눈이 멀어서 판다고는 해도... 남방소국을 거쳐서 오게 되면 천문학적인 가격이 될 거에요. 그렇게 가져온다고 해도 따라 만들기도 쉽지 않을 텐데, 과연 몇 벌이나 구입할 수 있겠어요.”

“음...”

“왔다갔다만 해도 수개월이 걸릴 텐데, 제대로 무장을 하려면 몇 년. 아니 수십년은 걸릴 걸요.”

중대장보다 무역에 대해서 빠삭한 이순지가, 연오랑의 의문을 줄줄이 논파했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야... 아직 시기상조일지도 모르겠네.’

곰곰이 생각해 보건데, 너무 앞서가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나라가 판금갑옷을 받아들이든 말든, 그냥 싸우면 되는데 무슨 걱정일까 하겠지만... 조선은 가상적국인 중국을 상대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고 싶어 하지 않나.

안 그래도 경제적으로 중국에게 밀리는데, 군사적 우위마저 없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니까.

해서 판금갑옷에 대항할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하고, 병사들 개개인이 판금갑옷을 상대로 싸우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이러려면 결국 지금의 커리큘럼을 보완하고, 모든 연대병을 다시금 무기술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건데... 이건 연오랑이 연구한 무술서만 달랑 던져준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돈과 시간이 엄청나게 들어갈 게 분명한데... 아직 존재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한동안 존재하지도 않을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런 투자와 노력을 하는 건 낭비라는 뜻이다.

“그렇지?”

“그... 그렇습니다.”

“크게 보면 그렇죠. 어쩌면 어르신이 우려하는 것만큼,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새로운 훈련을 시킨다고 해도 큰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죠. 서방과 동방의 군사운용법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

‘그럴 수도...’

이순지는 군무에 있어서는 자신이 없는지 목소리를 죽였지만, 연오랑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곤 생각을 이어갔다.

서방과 동방은 동원하는 병력수에서 비교가 되지 않고, 머릿수가 늘어날수록 개인의 용력으로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일은 극히 드물어진다.

대병을 움직일 때 중요한 건 무장상태, 군율, 보급이었고, 조선이 기를 쓰고 옛 체제를 때려 부수고 새로운 형태의 군부를 창설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지.

그럼에도 연오랑이 무기술 훈련에 목을 맨 건... 무에 소홀한 조선의 기조를 바꾸고,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병력수가 부족하니 일당백은 못되더라도 일당십은 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거의 한계에 다다랐단 말이겠지.’

이 결과 조선군은 전례 없는 정예화를 이뤄냈는데, 사람인 이상 한계가 있지 않나.

미래로 치면, 전군을 특수부대화 시킨 꼴.

더 이상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끌어올렸으니... 여기서 더 훈련을 시키고 투자를 한다고 해서, 눈에 띌 정도로 성과를 내긴 힘들다는 거지.

그렇다고 병력을 더 늘린다? 지금도 조선의 체급을 생각하면 과할정도로 많은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조선의 경제력이 한번 더 껑충 뛰어오르기 전에는 절대 불가다.

‘오히려 다른 쪽으로 발전할 지도 모르겠어.’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순지는 다시금 한마디 덧붙였다.

“어쩌면 훈련과정을 추가하는 것 보다는, 조병창에서 연구하고 있는 총통을 더 개량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화약의 힘은 아무리 훈련을 한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음...”

연오랑은 쓱 주변을 살폈고, 그의 눈빛 질문을 받은 중대장과 병사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생각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인가 보네.’

뻔한 반응을 보며, 그는 말없이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서방에서 판금갑옷이 주류가 되고 이걸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나왔지만, 가장 효과를 본 건 핸드캐논을 화승총으로 발전시킨 것 아닌가.

조선인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라서, 판금갑옷을 상대하기 위해 냉병기로 승부를 볼 바에는 차라리 화기를 더 발전시키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화승총이 주력이 되려면 앞으로 백년은 남았잖아?’

게다가 화기가 냉병기를 완전히 앞지르는 건, 화승 방식이 아닌 부싯돌을 활용한 방아쇠 방식이 등장하면서부터 아닌가.

‘결국 과도기가 필요하다는 건데... 그 과도기가 훨씬 줄어들겠어.’

“아군이 판금갑옷으로 전부 무장을 하는 것도 몇 년이 걸릴 테고, 아국을 따라서 다른 나라가 판금갑옷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수십년은 걸리겠지?”

“그럴 거예요.”

“그 때쯤 되면, 아국은 판금갑옷을 상대할 개인화기를 얼추 개발했을 테고?”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서방과의 교류가 진행되는 와중에 조선이 개인화기 개발에 끼어들면, 원래 역사보다 빠르게 화승총이 등장하고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면 원래 역사보다도 판금갑옷의 종말이 더 빠르게 찾아올 터...

“결국 지금 당장 교육과정을 바꾸는 것보다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주변상황을 보면서 보완해 가는 게 낫다는 말이군.”

“군부에서 결정을 하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겠죠. 총통이 아닌 개인화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지금의 편제와 병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굳이 두 번 일을 할 필요는 없겠죠.”

“알았다.”

‘맞아.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굳이 병사들의 피로도를 늘리고 군비를 더 늘려가면서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연오랑은 그리 생각하고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남주도 전역을 돌며 순시를 끝마치고, 수확을 마무리 한 걸 확인하고서, 연오랑은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원정에 참여했던 연대들은 1개 사단만 남겨두고 본토로 돌아간 지 오래.

그럼에도 그가 남아 있었던 이유는 군정조직을 중앙조정으로 이관하면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역할을 맡았고, 남방소국과 관련해서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젠 그가 없어도, 남주도가 알아서 돌아갈 수 있으니 떠나는 게 인지상정.

그는 남주도에서 수확한 설탕과 향신료, 남방소국에서 수입한 향신료, 염료, 안료, 약재등을 가득 실은 무역선을 타고 나아갔다.

순풍을 받으며 한걸음에 도착한 곳은, 그의 새로운 고향이자 터전이 된 용연현.

“이야... 올 때마다 바뀌네?”

“전에 오셨을 때보다, 가옥과 상점이 더 늘었을 겁니다.”

“그래 보인다.”

선수루에 올라 용연항구를 지켜보던 그의 감탄에, 선장이 히죽 웃으며 말을 붙였다.

원정기간 동안 계속 남주도에만 머물렀던 건 아니고, 휴가 겸 집에 한두달씩 머물며 왔다갔다하지 않았나.

그때도 용연항구가 발전하는 걸 보며 놀랐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 어디서 오는 거냐?”

“정확히는 모르지만, 사방에서 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상왕전하께서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양전사업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흘러들어온 백성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음...”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연현은 연오랑이 정착하기 전엔 사람이 안 살던 땅이고, 그가 정착한 후에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조선 전체가 공사판이 되면서, 사람에 비해 땅이 엄청나게 불어났으니까.

더불어 일거리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니, 양전사업으로 기업이 설립되는 곳에 백성들이 우선적으로 배분되고 몰려들었겠지.

‘그럼에도 여기가 계속 발전한 건, 그만큼 돈벌이가 있다는 말일 텐데...’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한눈에 그 해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항구 한쪽에는 성벽처럼 쌓아 올린 담벼락이 보였고, 그쪽 부두에 묶여 있던 배들은 조선배가 아니라 남주도에서도 흔히 봤던 중국배들이니까.

“강남상선이 이쪽으로 오나보네? 곡물 수입은 점차 줄어들었을 텐데?”

“생각만큼 엄청 줄진 않았습니다. 대감.”

용연현이 무역항이 된 건. 의주로 향하는 강남의 미곡상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또 한성으로 흘러 들어가야 할 곡물을 가까운 곳에서 받기 위함이었다.

다만 삼남지방에서 양전사업이 완결된 후부터는 곡물생산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수입양도 줄어든 걸로 알고 있는데... 그가 잘 못 알고 있었나 보다.

“...”

‘내가 모르는 배경이 있나? 그만큼 북방으로 흘러들어가는 곡물이 많은 건가?’

그는 문뜩 그런 의문을 품고 선장을 바라봤다가, 애써 고개를 돌렸다.

무역선장은 이곳과 남주도를 오가면서 짐만 옮기고 있으니, 곡물시장의 상황까지 정확히 아는 건 아닐 테니까.

“천천히!”

“조심해라!”

그가 물끄러미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갑판 위는 부산스러웠다.

발전을 거듭한 만큼, 용연항구에는 꽤나 많은 수의 크고 작은 배가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

선소에서 만든 신형어선이 줄지어 돌아다니고 있고, 함께 온 신형무역선 4척이 흩어져 접안을 준비하고, 거대한 배를 보면서 강남미곡선들이 황급히 머리를 돌리고 있다.

쿵... 이내 무역선은 부두에 머리를 가볍게 부딪치며 멈춰 섰고, 말끔하게 포장된 석회부두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인부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컨베이어벨트 비슷하게 생긴 짐 사다리를 걸치자, 무역선 선원들이 조심스럽게 가마니를 올려놓기 시작.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레일을 따라 짐수레가 걸쳐 있었는데, 부두 아래에 있던 인부들은 밧줄이 달린 톱니바퀴 손잡이를 마구 돌려서 짐수레를 끌어오기 시작했다.

‘이야... 가만히 내버려둬도, 알아서 만드는 고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히죽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과거. 원산에 머물 때 선적과 양하를 위해서, 미래의 크레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원시적인 기계식 거중기를 만들지 않았나.

그게 갈수록 퍼져나가 민간의 항구에서도 쓰이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젠 이런 물건까지 만들어냈다.

‘저것도 다 규격화를 해서 가능한 것 아니겠어?’

조선척이라는 근본 없는 도량형으로 통일하고, 그에 맞춰서 나무상자와 가마니의 크기를 규정하지 않았나.

크기와 무게가 얼추 정해져 있으니, 다들 손쉽게 움직일 수 있나 보다.

‘짐수레도 마찬가지겠지?’

슬쩍 아래로 시선을 내려 부두 한편을 바라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짐마 두 마리가 끄는 특이한 형태의 짐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아예 하역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마차인 모양인지, 꼭 기차의 승차칸 마냥 짐칸이 여러 개 붙어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규격화 시킨 짐마차라서 그런지, 짐사다리를 내려온 나무상자와 가마니들은 테트리스를 하듯 쏙쏙 딱 맞춰서 쌓여갔다.

“...”

지루할 틈도 없이 잠시 기다리며 구경하고 있자, 한참을 선창을 오가면서 지시하고 있던 선장이 달려왔다.

“준비가 됐다고 합니다. 하선 하시겠습니까?”

“어. 그러자.”

연오랑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고, 짐 사다리 옆에 놓인 계단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짐마차를 옆에 두고 부두를 빠져나오자, 그를 반기는 이들이 한 걸음에 다가왔다.

그가 왔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잠깐 기다렸던 것 아닌가. 익숙한 얼굴이 그를 반겼다.

그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윤현.

녀석은 오늘도 어제처럼 항구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연오랑이 왔다는 말에 냉큼 달려왔나 보다.

“어르신! 온다고 통보를 해주시지.”

“나도 내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데, 알린다고 뭐 달라지냐.”

바람과 해류를 타고 움직이는데, 도착시간을 알 수가 있나.

“그래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다르지 않습니까.”

녀석도 이제 30줄에 가까워졌건만, 괜한 소리를 하면서 헤실헤실 웃으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오셨습니까. 대감.”

녀석 옆에 있던 무역관 관원도, 냉큼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집으로 바로 가실 겁니까?”

“어.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는데, 굳이 살펴볼 필요가 있나.”

“예.”

“...”

무역관 관원은 괜히 머쓱해서, 눈알을 사방으로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용연현은 이미 오래전에 조정관아가 들어서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연오랑이 건드릴 명분도 이유도 없지 않나.

다만 용연현을 개발시킨 인물이 연오랑인 걸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괜히 민망했던 모양이다.

“가자.”

“예. 가시죠.”

윤현은 앞장서서 나아가며,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북방에서 백성들이 이주를 해오는 터라, 텅텅 비었던 용연항구의 옛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나. 그만큼 할 말도 많았다.

“이번에는 색목인... 루스인이라고 하던가요? 그 서방인들도 용연현으로 이주했습니다.”

‘벌써?’

“오? 몇 명이나?”

연오랑이 관심을 보이며 되묻자.

“백 명쯤 될 겁니다.”

“맞습니다. 대감.”

윤현과 관원이 이구동성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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