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25화 (425/538)

425. 챕터55. 계획하다 (4)

“애초에 삼남지방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가면서 양전사업을 진행한 이유가, 중국으로부터 곡물수입을 줄이기 위해서였잖아? 그런데도 수입을 계속 한다고?”

“음...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은행 때문에 비축미를 늘린 까닭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째 무역항 관원마저도 중앙조정의 의도까지는 알지 못하는지, 자신만의 대답을 늘어놨다.

‘뭔가 일이 있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것저것 소모되는 양이 있다고 해도, 최소한 본토의 필요량만큼은 맞출 수 있을 텐데?’

궁금증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지만, 붙들고 있는다고 해답이 나오는 문제도 아니지 않나.

그는 고개를 가볍게 내젓고 상념을 떨쳐냈다.

“음... 어쩌면 무역항을 확대하려는 것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

뜬금없는 말에 연오랑이 의아한 눈빛을 흘리자, 관원은 얼른 말을 이어갔다.

“양전사업이 진행되면서 평양항구를 다듬지 않았습니까. 미곡 운송 때문에 절로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생각보다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지금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미곡수입을 계속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해서 이곳과 평양을 추가로 열고, 전라도와 경상도에도 무역항을 열 계획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디로?”

“아직 논의 중인데... 전라도는 나주나 목포 중에 한 곳, 경상도는 동래가 되지 않겠습니까?”

“호오...”

‘본토에 무역항을 추가한다는 건... 이제 얼추 유통망이 완성됐다는 거네? 빠르군.’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과거. 조선이 의주와 제주에만 무역항을 열어놓은 건, 의주-한성-제주를 이어붙이는 큰 혈관을 먼저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이 작업이 끝이 났으니, 이젠 큰 줄기에서 뻗어 나온 모세혈관을 이어야할 차례.

동래의 경우에는 대마도가 있던 시절에도 일본과 교역을 하던 곳 아닌가.

일본북부 다이묘들이 조선상인들이 머물 유사조차지를 열어줬으면, 조선 또한 일본상인이 쉽게 올 수 있는 무역항을 열어줘야 하는 법.

그치들에게 가장 가까운 지역은 동래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쉽진 않을 거야.’

동해바다를 건너서 와야 하니 다이렉트로 곧장 오는 건 불가능할터, 아마도 북부해안을 타고 규슈북부까지 내려와서 대마도를 거쳐 동래로 오는 길을 택할 텐데... 과연 얼마나 많은 일본상인이 동래로 오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조선 입장에선 무역항을 열어줬다는 명분만 가지면 그만이다.

‘나주와 목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

절강, 복건상인들을 예전부터, 강남에서 가까운 전라도지역에 무역항을 열어주기를 요청하지 않았나.

제주항을 키우고, 남부해안에서 제주도로 가는 항로를 모두 완성한 이상. 다음 수순은 전라도 지역에서 뻗어나가는 유통망을 견고히 다질 차례.

서로서로 좋은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하고, 무역항을 추가로 여는 모양이다.

‘그렇게 보면...’

“개성은 어때? 한성을 개방할 생각은 없으니까... 가장 가까우면서 규모가 큰 항구는 개성이잖아?”

“일단은 다른 항구를 먼저 개방한 후에, 추이를 지켜볼 생각인 것 같습니다. 개성과 용연은 생각보다 가까우니까요. 굳이 무역항으로 키우지 않아도 개성항구는 개발될 걸로 보입니다.”

“흐음.”

이 또한 단계적으로 알아서 진행하지 않을까?

무역항을 여는 궁극적인 목적은 중국물산을 수입하는 것도 있지만 조선의 유통망을 활성화시키기 위함이니... 계속 늘려나가긴 할 거다.

관아로 향하는 대로에서 살짝 빠져나와 샛길로 걸음을 옮겼다.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업종별로 시장거리를 구별해 놓은 터라, 연오랑은 일부러 객주가 모여 있는 거리로 나아갔다.

“오...!?”

객주가 들어선 거리에 발을 딛기 무섭게, 요란스러움과 함께 온갖 음식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엄청 불어났네?’

대충 눈으로 훑어봐도 서른개에 가까운 객주가 모여 있었는데,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밥을 사먹는다는 개념자체가 흐릿했던 조선인데, 이제는 완전히 옛말이 된 모양이다.

옷차림새만 봐도 대충 읽어지는데, 부두에서 일하는 인부, 상인, 마부, 용연현 마을주민들이 죄다 뒤섞여 있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밥을 사먹는다는 건, 그만큼 값이 싸다는 의미도 있지만 장사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식재료가 원활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뜻.

“다들 다른 걸 파는 모양이야?”

“전문점도 있고, 이것저것 다 파는 객주도 있습니다. 숙박을 겸하는 곳도 있고요.”

“아국음식 뿐만 아니라, 강남이나 화북지역, 혹은 북방의 음식을 파는 곳도 생겼습니다.”

“오...”

‘하긴... 전국에서 다 몰려왔으니, 식문화 또한 마구 뒤섞였겠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고, 결코 나쁜 변화가 아니다.

특히나 외국의 음식까지 조선풍토에 맞게 개량되었으면, 그보다 더 좋을 게 없겠지.

“튀긴 음식을 파는 곳도 있냐?”

“에... 그건 아직.”

윤현은 슬쩍 도움의 눈빛을 뿌렸고, 관원은 맹렬히 머리를 굴리고선 답을 내놨다.

“화북에서 먹는 볶은 음식을 몇몇 파는 걸로 아는데, 완전히 튀기는 음식은 못 본 것 같습니다.”

“음.”

‘역시 아직은 시기상조네.’

아무리 기름생산량이 늘어났어도 수요를 다 맞출 수는 없으니... 튀긴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순 있어도, 이걸 팔아서 수지타산을 맞추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달달하기도 하고 짭짤하기도 한 음식냄새를 번갈아 맡으며, 걸음을 옮겨갔다.

대충 쓱쓱 훑고 지나가는 눈길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계속 들어온다.

‘면포 잘라서 계산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찾아볼 수도 없고만?’

저절로 휘파람이 흘러나온다.

백성들이 화폐에 완전히 익숙해진 모양인지, 여기저기에서 짤랑거리는 동전소리가 들려왔다.

“동화를 주로 쓰나보군?”

“예. 은화나 금화를 객주에서 쓸 일은 없으니까요.”

“문제가 생기진 않고?”

“전혀요.”

“맞습니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더군요.”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건만, 단호한 반문이 날아든다.

남주도에서도 그랬는데, 더 일찍 화폐가 유통된 본토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나 보다.

이윽고 항구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대령했고... 연오랑은 홀로 말을 타고 집으로 나아갔다.

집으로 가는 풍경도 퍽 바뀌어 있었다.

‘전에 왔을 땐 개간하고 있었는데, 벌써 저렇게 자랐네? 빠르고만.’

이 일대는 논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밭으로 만드는 편이었는데, 눈에 보이는 평원에는 빼곡하게 과수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자박자박 규칙적으로 갈리는 자갈도로를 밟으며 계속 나아가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스해진다.

어차피 다 똑같은 건물이건만 뭐가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집이 주는 안락함은 분명히 있지 않나.

몇 달 만에 오는 거지만, 어제도 왔던 것처럼 익숙하다.

멀리 보이던 집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문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그가 왔다는 걸 미리 알린 모양이다.

한걸음에 다가가 말에서 내리기 무섭게, 가볍게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아부지!”

“아버지!”

“오냐.”

그는 활짝 웃으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망아지들을 안아들었다.

“어이구.”

가볍게 부딪치며 앓는 소리를 내자.

“흐흐.”

“헤헤.”

그를 똑 닮은 쌍둥이들이 헤실헤실 웃어댔다.

그의 핏줄이 어디가지 않는지, 녀석들은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발육상태를 자랑하지 않나.

‘이젠 진짜 무거워졌네?’

본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또 큰 건지, 한손으로 안아들기가 버거울 지경이다.

그는 히죽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고, 둘은 통나무 같은 연오랑의 허벅지를 감싸고 안겼다.

“가자.”

양손에 고사리 같은 손을 하나씩 잡고 휙휙 큰 걸음으로 나아가자, 문앞에 있던 이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본 유집사도 남편과 함께 시립하고 있고, 전에도 익히 봤던 사용인들의 웃는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시선이 닿은 인물은 포대기에 아기를 안고 있는 정선공주.

“오셨어요?”

“어. 고생했어.”

연오랑은 냉큼 다가가 공주를 가볍게 안았고, 이내 곧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시선을 내렸다.

입을 꼬물거리면서 똘망똘망한 눈빛을 뿌리는 아기가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비록 아이들까지 남주도로 데려오는 건 힘들지만, 공주가 남주도를 오가는 건 문제가 없지 않나.

연오랑이 3년 가까이 남주도에 있었지만 공주와 함께 지낸 시간은 의외로 많았고, 그 결실이 바로 셋째 아이였다.

“잘 지냈지?”

“다를 게 있겠어요. 당신은요?”

“나도 뭐 다를 게 있겠어?”

연오랑은 아기의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물었고, 공주는 씽긋 웃으며 그와 눈을 맞췄다.

꽤나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지만, 연오랑은 금세 집에 녹아들었다.

그가 없는 동안 정선공주가 집안을 이끌어왔고, 그러는 와중에도 공주는 이것저것 연구를 할 정도로 정력적으로 움직였지 않나.

안 그래도 무던한 연오랑이니 집안일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기에, 그가 있으나 없으나 집안이 돌아가는 건 똑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연오랑에게 달라붙은 두 쌍둥이의 소동이 보다 더 시끄러워졌다는 점이랄까.

“으...”

“더 옆으로 쳐야지.”

“히히.”

연오랑은 땅바닥에 앉아 흙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훈수를 두며 웃어댔다.

일전에 미래의 그가 어릴 적에 하던 이런저런 게임을 진작 알려줬는데... 녀석들은 돌멩이를 튕기는 땅따먹기 게임에 사활을 걸고 임하고 있었다.

꼭 그에게 보여주려는 것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내 흙장난도 시들해지자.

“아으.”

“으...”

둘은 연오랑을 따라서 마루에 대자로 누워 빈둥거렸다.

허나 금세 또 지루해졌는지, 연오랑의 옆구리를 간지럼피우며 지들끼리 손발을 놀려댔다.

‘좋구만.’

연오랑은 보지도 않고 손으로 둘의 팔다리를 툭툭 밀쳐내며, 평온을 만끽했지만...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게 놀고 있는 꼴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나 보다.

“또 그러고 있어요?”

“이게 왜?”

“...”

연오랑은 천연덕스럽게 대꾸를 하다가, 공주가 샐룩한 눈빛을 뿌리자 얼른 시선을 피했다.

“오랫동안 애들을 못 봤잖아? 놀아줘야지. 맞지?”

“...”

“...”

연오랑은 겨드랑이를 파고든 아이들을 앞세웠지만... 녀석들과 더욱 오래지낸 건 공주 아닌가.

녀석들은 공주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고 딴청을 피워댔다.

“막내는?”

“자고 있어요.”

“음.”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등으로 마루바닥을 기어가 자리에 앉은 공주의 곁으로 다가갔다.

누가 자식들 아니랄까봐, 아이들 또한 거미처럼 등을 비비며 공주에게 다가가자.

“풉.”

그 모습이 퍽 우스워, 공주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토해냈다.

“흐흐. 엄마 웃었다.”

“헤헤.”

연오랑이 공주의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자, 아이들 또한 하나가 되어 공주에게 달라붙었다.

한참을 그렇게 뒤엉켜 놀다가 열기가 식었고, 공주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밖에 나가봐야하는 건 알죠?”

“뭔 일 있어?”

“...”

다시금 눈빛공격을 날리자 연오랑은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고, 아이들이 대신 눈빛을 빛내며 답을 던졌다.

“수확제가 있는 날이에요.”

“경마! 경마!”

“아...”

아이들이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르자, 연오랑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추석을 함께 못 지냈으니까, 추수제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현청에서 알아서 진행하지 않아?”

“그래도 가서 얼굴은 비춰야죠.”

연오랑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지만, 공주는 예쁜 얼굴을 찡그리며 쌍심지를 켰다.

무려 공주인데, 나라의 행사에 빠지면 구설수가 나오기 마련.

사실 별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용연현의 터줏대감인데,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쓰나.

연오랑이 너무 속편한 소리만 하고 있었다.

“...”

‘그나저나 추수제라...’

그는 결국 못이기는 척 눈빛을 내려 깔았고, 속으론 피식 웃고 말았다.

언제부터 조선에 추수감사제와 같은 거창한 행사가 있었다고... 그가 손대지 않았는데도 휙휙 바뀌는 걸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추석의 역사는 오래됐고 조선에서는 국가적인 행사 비슷하게 만들었다.

다만 추수 전에 지내는 행사인 터라, 연오랑이 남주도에 머무는 동안 이미 끝난 상태였지.

허나 조선의 곡물생산량이 엄청나게 증가되고, 원래 있었던 각 지방의 토속 행사 등이 전부 없어졌다.

옛 시절의 행사나 축제 등은 단순히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이는 목적을 넘어서, 토속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앙의 영역에 깊게 닿아 있지 않았나.

헌데 조선불교청이 만들어질 당시에, 전국의 박수무당을 죄다 끌고 가서 토속신앙과 각종 미신행사를 박살내 버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백성들의 민심이 흔들리기도 했고, 뭔가 어중간하게 붕 떠버리는 사태가 발생했지.’

물론 사이비가 원체 많아서, 끌고 온 박수무당 중에서 10분의 1정도만 인정을 받았는데... 이치들의 처지가 묘해졌다.

자본유학도 엄연히 유학의 이치가 담겨 있고, 조정관료들은 여전히 괴력난신을 멀리하고 미신을 타파하려고 했다.

이들 입장에선 차라리 조정의 영향력 하에 있는 조선불교청을 밀어줄 주고 말지, 박수무당의 행사를 인정해줄 생각이 없었지.

허나 운석핵꿀밤으로 인해 유학식 제례는 분명히 망가졌고, 이 부분을 불교식으로 전부 교체하는 건... 솔직히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었다.

‘이 빈자리에 토속신앙적인 제례의식이 끼어들었단 말이지.’

토속신앙이라고 해서, 인신공양을 하고 그러는 시절은 지난지 오래.

지금 시대에 남아 있는 건. 크게보면 용왕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농사신, 아니면 각 지방에 내려오는 토속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아니면 미래에도 남아 있는 고사告祀를 지내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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