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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427화 (427/538)

427. 챕터55. 계획하다 (6)

더불어 조선은 무역항의 한정된 구역 외에는 외국인의 통행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나마 나라다운 나라인 대리와 일본의 사신조차도, 한성으로 오지 못하고 무역항에서 머물고 있는 처지.

서역의 사제들이 자유롭게 조선내지로 들어오는 건 말이 안 된다.

결국 노비로 끌려왔다가 신분이 밝혀졌고, 종교연구를 하기 위해 조선불교청 본산이 위치한 용연현까지 끌려온 게 분명했다.

“정교회겠지?”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치칸국으로 서방 각국의 노예가 흘러들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다양한 종교를 가진 이들이 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회회교는 배제했고요.”

“그랬겠지.”

이건 연오랑이 딱히 말하지 않아도, 조정에서 먼저 거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회회교도들은 중앙집권에 살짝 거슬렸던 기억이 있으니까.

다만 일은 의외의 방향으로 쉽게 풀렸다. 서방의 소칸국들 중에선 회회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

노예들이 조선까지 오는 동안, 소칸국들이 먼저 회회교도들을 다 채가고 있던 거지.

다만... 연오랑의 속마음을 알 수 없어서일까? 현감은 혹시나 싶어서, 일단 저들을 두둔하는 말은 먼저 건넸다.

“듣기론 저들의 도움이 은근히 컸다고 합니다.”

“...?”

“수만리 길을 끌려오는 동안, 서역의 사제들이 노예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줬다더군요. 몇몇 소칸국들에선 저들을 본격적으로 활용해서, 이주작업을 더 수월하게 하려는 방안을 모색하려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

‘뜬금없는 일인데... 말은 되네.’

이게 이렇게 영향을 줄지는 몰랐는데, 그럴 듯 해보였다.

이억만리를 노예로 끌려오는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자연스럽게 종교에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을 거고, 만약 함께 오는 사람들 중에서 정교회 사제가 있었으면 더욱 그러했겠지.

“설마 포교를 하고, 그러진 않지?”

“그럴 여유가 있기나 하겠습니까. 사실 색목인 노예들 중에서 그렇게 신심이 깊은 사람이 적기도 하고요. 아예 불교로 개종한 이들도 상당수입니다.”

“흐음... 완전히 다른 나라에 왔으니, 사정을 살피는 중일 수도 있겠네?”

연오랑이 목소리를 줄여 은근히 묻자.

“그럴 지도 모르지만... 쉽게 되겠습니까.”

현감 또한 목소리를 줄이고서 음흉한 미소를 내비쳤다.

전에도 말했지만... 독실한 신자도 있겠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개종을 쉽게 하는 이들도 태반이다.

전보다 훨씬 살기 좋은 조선까지 왔는데, 굳이 옛 신앙을 고수해서 탄압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나.

정교회 사제들이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고, 설령 그런 마음이 있더라도 또 팔려가고 싶지 않으면 속에 꾹 감추고 있어야겠지.

“그리고... 일전에 사절단이 올려보낸 보고서는 읽어보셨지요?”

“어. 재밌는 제안을 했던데?”

“예.”

올린 보고서가 한둘이 아니지만, 종교에 관한 보고서는 몇 안 되지 않나.

‘나도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는데, 이인 이 자식이 꽤 발칙한 생각을 했단 말이지.’

연오랑 또한 조정에서 흘러내려온 이야기를 들은 게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조선정교회, 조선정교청을 만들겠다는 의견을 낼 줄 누가 알았겠나.

미래의 기억이 남아있는 그가 보기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오히려 이 시대의 조선인들이라서 가능한 상상일지도 모르겠다.

‘조선불교청이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 걸지도.’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조선인들에겐 어쩌면 이게 더 큰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십여개로 갈려 있던 불교종파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건, 중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없던 일 아닌가.

이런 대작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니... 정교회가 아직 퍼지기도 전에 미리미리 입맛에 맞게 개조하는 게, 오히려 더 쉽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치들을 저렇게 놔두는 건, 그 계획의 일환이라고 보면 되나?”

“아직 조정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는 일은 아닙니다. 대감. 굳이 서역종교인 정교회를 챙겨야 할 만큼, 색목인이 많아진 건 아니니까요. 지금 당장은 저들의 교리를 연구하는 정도입니다.”

“저들이 청석사까지 오게 된 게, 우연은 아니군?”

“그렇지요.”

연오랑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충 짐작이 됐다.

조선이 건국되고 불교를 탄압하기 위해서, 유학자들은 많은 논리를 만들어냈다.

반대로 승려들은 그런 유학자들의 공격을 버텨내기 위해서, 교리를 더욱 연구해 유학과 불교가 추구하는 방향이 비슷하다고 항변해왔지. 조정과 나라에 불교가 도움이 된다고 외치면서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정교회 사제들과 입싸움을 할 능력은 승려들이 최고지 않나. 나아가 통치논리가 아닌 순수한 종교교리를 논하려면, 승려가 더욱더 제격이지.

“그래서... 일부러 계속 이곳으로 보냈고?”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총 31명의 사제가 도착했습니다.”

“음...”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니다.

미친 듯이 뜯어 먹히고 있는 루스국을 생각하면 나름 적당한 숫자.

‘하지만... 확실히 사제들은 소칸국들이 선호하지 않는 모양이야.’

애초에 마을에 한두명 있을까 말까한 사제들이니, 지금까지 조선으로 넘어온 포로수와 비례해 봤을 때는 많은 숫자.

소칸국들은 포로를 흡수할 때. 정교회 사제인 걸 알고, 조선에 떠넘긴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저런 교리 논답을 하는 중에, 의외의 부분에서 도움을 준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제례의 과정이나 행사에는 나름 공헌을 했습니다.”

“...?”

‘이건 또 뭔 소리야?’

연오랑은 좀처럼 이해가 안 되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들어보니, 서방에선 사찰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 외에도, 다양한 축제나 행사가 있다고 하더군요.”

연오랑과 같은 반응을 여러 번 겪어봤는지, 현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얼른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수호성인을 말하는 거군.’

그는 설명을 듣기 무섭게, 뭘 말하는 지 알아차렸다.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다른 지역으로 전파가 되면 토착신앙을 흡수하기 마련이다.

꼭 힌두교에서만 이러는 게 아니라 다른 종교 또한 “봐라. 너희가 믿는 신앙과 신화는 우리 종교에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 종교만 믿으면 끝이다.”라고 외치면서, 보다 쉽게 믿게 만드는 거지.

중국이나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도, 도교나 토착신앙을 흡수해서 사천왕 비슷한 식으로 만들었지 않나.

카톨릭과 정교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들은 토착신앙과 신화와 같은 영역을 흡수했고, 다신교적인 성격을 품은 천사나 수호성인을 만들어냈다.

이런 수호성인은 각자 맡은 분야가 존재했고, 직업별로 믿는 수호성인이 달라지는 경우가 빈번. 또 없던 직업이 생기면, 새로운 수호성인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맞냐?”

“그...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감은 연오랑이 이 사실을 아는 게 의아한지, 말을 더듬을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그래서?”

“그래서...”

토착신앙을 흡수해서 수호성인으로 삼았으니 토착신앙의 제례의식도 흡수. 수호성인을 기리는 날을 만들고 제례를 대신할 행사 또한 만들게 된 거지.

다만 서방에선 슬슬 문제 아닌 문제가 생겨나고 있는 중이었다. 이유는 수호성인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

각 직업별로 쉬는 날이 생기고 축제가 생기다보니... 농촌이나 어촌 같이 비슷한 직업을 가진 지역에선 한번 쉬고 말겠지만, 도시처럼 다양한 직업이 섞여 사는 지역에선 매일 같이 축제가 벌어졌다.

하루는 제빵사들이 쉬고, 다음날은 대장장이가 쉬고, 또 다음날은 무두질업자들이 쉬고 등등.

하도 쉬는 날이 많아서, 상공업이 발달한 지역에선 제대로 장사하기 버거울 정도가 된다. 이래서 나중에 상공업도시나 자유도시들이, 개신교로 쉽게 개종하게 되는 작은 이유가 되기도 했고.

아무튼. 한마디로 이러한 인위적인 행사와 축제에 있어서는, 정교회가 조선보다 훨씬 경험이 축적됐다는 뜻.

수호성인과 예수, 하느님만 쏙 빼버리고, 그 행사과정과 방식만 빌려오면... 조선이 새로 만든 제례의식에 써먹을 수 있지 않나.

현감은 수확제가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음...”

‘단순히 그런 의도만 있는 건 아닐 거야.’

연오랑은 고개를 까닥이면서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댔다.

조정은 이러한 제례의식을 멀리하고, 민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싶어 한다.

제례에 담긴 신앙의 성격을 점차 줄여서, 백성들이 미신에 의존하지 않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축제행사와 비슷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거지.

“그렇지?”

“...”

현감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연오랑의 끈질긴 눈빛에 굴복해서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아무래도... 자연재해를 조정의 통치와 결부시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특히나 백성들이 그런 마음을 품으면 더욱 좋지 않겠지요.”

“음.”

현감 단독으로 이런 생각을 하진 못했을 테니, 조정의 뜻이라고 봐도 무방.

‘이야... 이게 조정관원이 할 말이냐?’

원래 역사의 조선에선 감히 상상도 못할 발언인데... 지금 역사의 조선은 확실히 내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운석핵꿀밤이 진짜 어지간히 무서웠나 보네.’

인재人災를 천재天災의 탓으로 돌리면 핑계대기가 쉽지만, 반대로 역풍이 불기도 쉽다.

천재를 인재로 여기고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서, 왕과 조정의 통치를 거부하고 정당성을 훼손시킬 수 있으니까.

특히나 운석핵꿀밤으로 명나라가 망한 걸 봤지 않나.

그 어떤 관료들도 자신들의 행동이 하늘과 신에게 영향을 줘서, 잘못했을 경우에 천벌을 내린다는 논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나 보다.

연오랑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제례는 끝이 났고... 단상이 치워지기 무섭게,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와 승려들과 자리를 바꿨다.

제례를 축제로 바꾸려면 한바탕 신나게 놀아야 하는 법.

단상에 각자 자리 잡은 이들은 몇 번 손을 놀리더니, 이내 신명나는 악조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와아아!”

“오오!!”

아니나 다를까. 백성들 또한 지루한 제례보다는 이렇게 노는 걸 바랐던 걸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함성소리가 관중석 곳곳에서 퍼져나갔고, 운동장으로 들어온 백성들은 제멋대로 뭉쳐서 빙빙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호오...”

비록 미래의 악조보다 훨씬 단조롭긴 하다만, 어찌됐건 어깨가 절로 들썩거릴 정도로 신나는 악조 아닌가.

‘이거 봐라?’

그는 아스라이 들려오는 악기소리를 들으면서, 장내를 유심히 살펴나갔다.

아무리 봐도...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소리가 섞여 들려왔으니까.

“저거. 전에 못 보던 악기 같은데?”

“알아보셨군요? 서역에서 들여온 악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현감은 용케 알아봤다는 듯이 히죽 자랑스럽게 답을 던졌고,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단상 한쪽에 바이올린과 첼로 비슷한 현악기를 튕기고 있는 이들과, 트럼펫 비슷한 관악기가 춤을 추고 있다.

‘흐음...’

연오랑은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는데, 저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보였다.

“왜요?”

“아. 아니. 그냥.”

심지어 공주마저도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거리다가, 그의 눈길을 받고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별게 아닌 걸지도.’

이런 생각이 불쑥 치솟았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완전히 다르지만, 한편으론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야도 있지 않나.

음악과 악기가 바로 그러한 분야였고, 사절단의 관원들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방의 온갖 악기와 악보를 조선으로 보내왔다.

비록 형태와 사용방식이 다르다지만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는 조선에도 이미 있었으니까.

다만... 그 결실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명나게 울리는 음악과 함께, 풍물놀이 패 비슷한 이들이 단상 앞으로 달려와 상모를 돌리며 춤을 춰대기 시작했다.

‘이건 그나마 조금 익숙하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이 튕겨졌다.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이 시대에도 풍물놀이는 존재했고, 각 지방마다 살짝 특색이 있었다.

다른 말로 농악農樂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응용됐고 굿판에서도 쓰였으니, 새로 만든 제례에 사용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다만...

“저치들은 어디서 온 이들이냐? 재인들은 아닐 거고, 관노비들도 아니잖아?”

“일전에 대감께서 제안을 올리신 게 있지 않습니까?”

현감은 오히려 “네가 했으면서 왜 몰라?”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그의 눈총을 받고 얼른 지워냈다.

“아...”

‘그게 벌써 이렇게까지 체계화 됐다고?’

연오랑은 괜히 민망해서 눈을 끔뻑거리고 말았다.

그가 조정에 올린 안건이 어디 한둘인가. 올려놓고 신경을 안 쓰고 있던 사안이 한둘이 아닌데, 그 중 하나였나 보다.

과거. 조선에 동화되지 않고 떠돌던 무리 중에서 화척과 재인이 있지 않았나. 화척들은 축산기업, 도축기업으로 변해 제대로 자리를 잡았고, 떠돌이 놀이패에 가까웠던 재인 또한 사라졌다.

새로운 직업이 워낙 많이 생겼고, 인력난에 시달린 조선은 도성에 거지가 없을 정도로 사람을 부려 먹지 않았나.

재인들도 가만 놔둘 리는 없었고, 각자 알아서 먹고살 길을 찾아 정착해 나갔지.

그 중에선 아예 음악으로 진로를 잡고 생계를 꾸려가려는 이들도 있었는데, 변화하는 시대에 용케 발맞춰 나아갔다.

관노비가 해방되면서, 기존 관습도감에 속해 있던 관비들도 전부 해방되어 관원이 됐다. 더불어 봉상시奉常寺, 아악서雅樂署, 전악서典樂署에 속해 있던 이들 또한 정식 관원이 됐지.

이들의 신분이 상승했고, 앞으로 생겨날 빈자리는 전처럼 관노비를 교육시켜 해결할 수가 없게 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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