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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428화 (428/538)

428. 챕터55. 계획하다 (7)

“더불어 전부터 꾸준히 악학을 정비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제례행사를 늘리면서 함께 진행됐습니다.”

“아...”

조선의 음악은 아악, 당악, 향악으로 나뉘었는데, 이게 전부다 하나로 묶여서 통일되지 않았나.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민간음악의 발전 또한 이뤄져서, 다양한 형태의 민간공연단 혹은 대학이 생겨났다고 했다.

“대학까지?”

“관비가 없어지면서 관습도감이 할 일을 잃어 버렸지 않았습니까. 헌데 전에 비해 제례의식과 행사는 늘어났으니, 어떤 식으로든 인력을 충원해야 했으니까요.”

“그렇겠지.”

“다만 그들을 관원으로 만들기에는 아무래도 재정의 문제가 있었기에, 교육을 받은 악사들이 민간에서 공연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호...”

‘역시... 이것도 결국 돈 문제였나?’

연오랑은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거. 악사와 악공들이 기피되었던 건. 이들이 신량역천인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고, 딱히 돈을 벌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이나 고을에 잔치가 벌어진다고 해도... 공짜 노동력인 관비를 동원하거나, 아니면 알게 모르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재인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었지.

헌데 지금은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관의 행사나 민간의 잔치는 늘어났는데, 행사에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사노비마저도 없어져서, 개별 집안에서 돈 받고 일하는 사용인이 등장.

이건 원래 역사의 머슴보다 훨씬 돈도 많이 받고, 신분적 제약도 없는 제도였지 않나.

그러니 공짜로 악공이나 무희들을 부리는 건 말도 안 되고, 무조건 돈을 주고 부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거지.

‘내 예상대로 흘러갔나 보네.’

연오랑은 머릿속에서 열심히 보지 못했던 과거를 그려봤다.

“악학을 가르치는 대학이라... 기존의 속아문과 관습도감을 계승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잡직관원이었던 악공들이 정식관원이 되었으니,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과거시험을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진짜 과거시험은 문,무과만 말하는 거였지만. 이젠 무과는 군부의 훈련소로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잡학 모두 문과에 버금가는 위치로 오르지 않았나.

어차피 품계에 따라 같은 대우를 받는데... 누군 눈 빠지게 공부해서 관원이 되고, 누군 대충 공부해서 관원이 되면 불만이 없을 수가 있나.

당연히 난이도와 깐깐함 또한 문과에 버금가게 바뀌었다.

“전처럼 도제식이나, 가업승계와 같은 식으로 가는 건 힘들어졌고... 결국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하니, 연구소나 연수원과 비슷한 형태의 대학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군.”

“예.”

“반대로 이런 교육을 하기 위해서라도, 조정에선 악학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가 있었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뭔가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등락여부를 가려 뽑을 것 아닌가.

위와 아래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조정에 입조하는 과정이 변화하게 된 모양이다.

‘게다가...’

이건 악학에만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 잡학이라 부르던 모든 학문에 있어서 똑같이 발생한 사안 아닌가.

우후죽순이라면 조금 그렇지만... 대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등장한 전문 학당이 마구 들어선 건 이 때문이었다.

“한성에 대학이 설립됐으면, 지방에도 몇몇 소규모 전문 학당이 생겼겠군?”

“그것까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것까진 현감도 모르는 것 같은데, 긍정의 대답을 던졌다.

양반이라는 계급이 없어지고, 관원이 되지 않아도 돈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그럼에도 관원이라는 것에 대한 메리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기회와 능력만 된다면 관원이 되고 싶은 백성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대학의 문턱이 닳아 없어졌겠지.’

이 다음부터는 미래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사건이 이어진다.

모든 수강생이 관원이 될 수는 없을 터, 낙방한 이들은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할 텐데... 자신의 특기를 살리는 방법을 택하지 않겠나.

대학에서 수학한 수강생들은, 경쟁이 심한 한성을 피해 지방으로 내려가 후학을 양성하게 될 터... 작은 전문 학당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먹고살 길은 하나 더 있겠지.’

연오랑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전문공연단이라... 악공으로 이뤄진 기업 비슷한 게 만들어졌군?”

“기업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히 만들어졌습니다. 재인과 비슷하긴 한데...”

“성격이 많이 달라서, 조정에서도 쉽게 판단하기 힘든 모양이네.”

“예...”

연오랑이 재깍재깍 알아듣자, 현감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인이 문제가 됐던 건, 그들이 놀이패라서가 아니다.

거처도 없이 떠돌면서 사회를 어지럽혔고, 조정의 통제에 벗어난 이들이라서 그런 거였지.

허나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전문공연단은 엄연히 기업의 형태를 띠고 만들어졌고, 명확한 거주지에 머물면서 세금도 착실히 내고 있지 않나.

돈을 버는 수단이 공연이라서 낯선 거지, 그걸 제외하면 다른 기업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사실 재인들도 어차피 공연하고 야금야금 푼돈을 받았잖아? 그걸 제도화 시킨 거니까... 조정에서도 뭐라고 하기 힘들겠지.’

“저기서 공연하고 있는 이들도 그런 이들이겠군?”

“예. 용연현에도 악단이 생겼고, 듣기론 꽤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역항에서 머무는 강남상인들이 벌이는 연회에 자주 초청된다고 하더군요.”

“그럴 듯하네.”

이들은 미래의 서커스단이라 할 수 있는 재인에 뿌리를 두고 있는 탓에, 악학보다 더 많은 걸 가르치고 뽐낼 수 있지 않나.

아마도 줄타기와 같은 볼거리는 전문공연단 쪽이 뛰어날 거다.

“당연히 재인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지방으로 가서 공연을 하는 일도 있을 테고?”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문제는 딱히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젠 관원을 피해 다닐 필요가 없으니, 불법을 저지를 필요가 없으니까요.”

“흐음...”

‘하긴... 떠도는 걸로 핍박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물류의 유통을 위해서 나라에서 온 힘을 쏟고 있으니, 발바닥에 땀나게 전국을 돌아다니는 상인이 부지기수다. 공연단과 다를 게 있을 리가.

‘공연하기 좋으라고 각 현마다 향교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니까... 나름 잘 써먹지 않겠어?’

다른 향교도 다 이곳과 비슷하게 만들어졌을 터... 전처럼 길가 아무대서나 공연하진 않을 테니, 문제가 생길 일도 적지 않을까.

붕붕 하늘 위로 날아올라 줄타기를 하고, 꽹과리를 치며 호응을 유도하고 있는 단원들을 보면서도... 연오랑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악학과 관련되어 걸리는 문제가 하나 더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곳 용연현에도 기생집이 늘어났지?”

“... 예.”

불쑥 찌르는 말에 현감은 잠시 말문이 막혀 연오랑을 바라봤다가,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연오랑은 가볍게 코웃음을 날렸다.

“뻔한 거 아냐. 시장이 커지고 사람과 돈이 모이기 시작하면 술과 음악이 빠질 수 없겠지.”

“...”

“여기에 흥을 돋아줄 악공과 무희 또한 수가 늘어났으면, 그들이 어디서 돈을 벌겠어.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일 제례나 잔치가, 매일 같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

딱히 잘못한 것도 없지만, 현감은 괜히 먼 산만 바라봤다.

“악학을 익힌 기생들도 많이 늘어난 게 맞나 보군?”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기서도 벌어졌던 일이잖아. 어떻게 진행됐는지 설명해 봐.”

“그게...”

연오랑의 단호한 말에, 현감은 입술을 깨물면서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 시대는 아직 기생문화와 매음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윤리적인 문제도 있고, 첩 문화가 발달했고, 노비가 있으며, 시장경제가 발달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화폐도 없었다.

허나 지금 역사에선, 이 모든 걸림돌이 해결됐다.

심지어 첩 문화조차도 쇠퇴하고 있었는데... 신분제가 폐지되고, 돈이 중시되고, 가부장적인 질서가 뿌리내지 못했기 때문.

신분제가 폐지되고 서얼금고령이 폐지되었다는 건. 서얼의 위치가 올라갔다는 뜻이며, 자연히 첩의 위치도 올라갔다.

정처正妻의 입지는 여전히 강력했지만, 노비였던 첩조차 양민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론 정처의 위치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

이로서 동등한 재산, 상속분배가 이뤄지자, 첩을 두는 것 자체가 집안의 가산을 까먹고 집안싸움의 불씨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지.

‘다만... 아무리 세종 형이라고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가게 될 줄은 몰랐을 거야.’

연오랑은 이런 조치의 발단이 뭔지를 알고 있기에,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건 정치적인 의도가 명확한 조치였으니까.

고려 때의 다처제로 인해 태조 시절에 온갖 집안문제가 터졌고, 이걸 해소하기 위해 조선은 처첩제를 내세웠는데...

양반과 지주집안의 세를 약화시키려는 태종과 세종은 원래 역사와 반대로 움직여서,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면서도 첩의 위치를 끌어올렸다.

한마디로 과거의 혼란을 다시 일으키려 했던 거지.

조정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단단해졌으니, 개별 집안에서 개판이 벌어지든 말든 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을 테니까.

일이 이렇게 흘러가면 자연스레 첩을 들이는 대신,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겠나.

기생과 매음문화는 위에서의 요구로 인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 거지.

아래에서의 요구도 거세졌다.

이 시대는 조선후기처럼 일패, 이패, 삼패기생의 구별도 없고, 기생보다 격이 떨어지는 색주가色酒家도 제대로 없다.

원래 역사에서 색주가는 세종 시절에, 중국사신단을 호종해 온 짐꾼과 군인들을 위해 정식으로 만들어진 건데... 지금 역사에선 벌어지지도 않은 일이니까.

반대로 시장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색주가와 고급기생집의 경계에 껴 있는 기생집은 우후죽순 늘어난 상태.

이런 상황에서 나름 최고급 인력이라고 할 수 있던 관기과 관비가 시장에 풀렸고, 이들을 합법적으로 고용해서 활용하는 공연단이 생겨났다.

“그래서 새로 생기는 기생집은 그걸 본떠서, 기생들을 직접 훈련시키거나 아니면 악학 전문 학당에 수학하게 했단 말이지?”

“그... 그렇습니다. 아무리 무지렁이 촌민이라고 해도... 같은 돈을 낼 거라면 기예를 익힌 기생과 놀고 싶지, 멋모르는 기생과 놀고 싶진 않을 테니까요.”

현감은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민망했는지,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을 토해냈다.

‘거참...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영 모르겠네. 조정에서도 같은 고민일 거야.’

조선의 술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객주 또한 무한히 늘어가고 있다.

더불어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주머니에 돈을 짤랑거리는 이들도 늘어났지.

조선의 시장경제를 활성화 시키려는 조정입장에선, 이걸 막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경쟁이 치열해지니,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경쟁업체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하지 않겠나.

어쩌다보니 기생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가 되고 있는 거지.

‘매음문제는 뭐... 전이랑 달라진 게 없을 테니까.’

이 시대엔 포주나 그런 것도 없기 때문에, 개개인이 알아서 화대를 지불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제도권에 들어온 이상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될 거다. 신분 또한 다 같은 양민이니, 함부로 대하기도 힘들 테고.

‘그럼...’

“기생집이 늘어나서 문제가 생기진 않고?”

“적어도 용연현에선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듣기론 다른 지방에서도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못 들었고요. 조정에서 예의주시하는 걸 모를 리가 없으니, 다들 자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음.”

“그리고... 대감께서 포도청을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연오랑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알아차렸는지, 현감은 얼른 듣기 좋은 말을 꺼냈다.

허나 마냥 아부를 하는 건 아니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포도군사는 실질적으로 큰 효과를 보이고 있었고. 본래 군의 업무를 넘겨받은 이들답게, 자신들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발로 뛰는 중이었지.

‘검계와 같은 폭력조직은 뭐... 이 시대엔 상상도 못할 일이니까.’

무장을 하고 다니는 게 불법이 아니고 각 도시마다 연대병이 주둔하고 있는 지금 역사에서, 불법무장조직이 설칠 수나 있겠나.

근본적으론, 술과 여자가 음지의 영역에 있어야 음지의 세력이 커지는 법.

허나 지금은 전문공연단이 기생집에 출장 나와서 공연하고, 기생집마저 기업화되고 있다.

양지로 올라온 이상 제도권에 속해 법제도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이런 상황은 세월이 흘러도 크게 바뀌지 않을 거다.

‘흐음... 어쩌면 차라리 이게 더 나을 걸지도 모르겠네.’

한편으론 문뜩 이런 생각도 들었다.

기생과 매음문화는 없앨 수가 없는데, 차라리 다 같이 수준 높게 유지하는 게 낫지 않겠나.

포주가 운영하는 전문적인 유곽이 생겨나는 것보다는,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기생집이 더 많이 생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미래는 모르는 일이니, 그저... 시간이 답을 내주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덧 단체행사는 끝을 향해 달려갔고, 이내 풍물패들은 운동장을 벗어나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께 춤을 추고 있던 백성들 또한 은근슬쩍 그 뒤에 달라붙어 움직일 기미를 보였다.

“이게 끝인가?”

“아닙니다. 대감. 저렇게 다 같이 용연현을 한 바퀴 돌 예정입니다. 포도군사들이 미리 배치되어 인파를 정리하고 있을 겁니다.”

화제를 돌릴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현감은 연오랑의 물음이 터지기 무섭게 얼른 답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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