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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429화 (429/538)

429. 챕터55. 계획하다 (8)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충 놀고먹는다는 말 같은데... 여러모로 나쁘지 않다.

시간이 지나 백성들의 기억에는 엄숙한 제례의식보단 놀고 즐기는 축제가 더 오래 남지 않겠나.

조정 입장에선, 이편이 더 나을 거라고 보고 있을 거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는 행사라고 해도, 각 지역의 특산물은 전부 제각각일 테니까.’

서방에서도 지역별로 축제가 생기면서, 한몫 챙기기 위해서 상인들이 빈번하게 오가지 않았나.

조정에서 억지로 시장 활성화를 위해 밀어붙이는 것보단,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상단이 오가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럼 경연이나 대회도 하나?”

“예. 과실주 장인을 뽑는 경연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음.”

‘이건 곧장 시행했나 보네.’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오래전에 향교의 인프라 활용방안에 대해서 이런저런 제안을 올렸지 않나.

향교의 교육 자체는 지지부진해서, 남주도에 있을 당시 그가 직접 개입했지만... 곧장 시행한 정책도 있었다.

바로 각종 경연대회.

이건 조정에서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할 수 있는 거고... 이미 각 지역별로 기업이 생겨난 이상, 거부감 없이 곧장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이지 않나.

이렇게 뭔가 특별한 게 생기면, 이게 또 특산품이 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가니... 돈이 되는 걸 알아차리고서, 너나할 것 없이 뛰어드는 게 당연한 말.

해서 각 지역별로 특색 있는 경연대회가 만들어졌고,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굵직굵직한 경연대회도 속속 생기고 있다고 들었다.

용연현의 과실주 경연대회도 그 중 하나.

이곳은 기후 때문에 논농사보단 과수원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에 딱 맞는 경연대회를 만들었고... 벌써 3회째를 맞이했는데, 이번에는 수확제의 특성에 맞게 함께 진행한다고 했다.

“경연대회를 할 정도로, 여러 종류의 과실주가 나온단 말이지?”

“예.”

현감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과수원과 양주기업이 먹고살기 위해서 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걸 뒷받침 한 건 다 현감의 치적 아닌가.

현감은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말이 빨라졌다.

“특히나 올해는 더욱 다양한 과실주가 나올 걸로 보입니다.”

“...?”

“서방에서 새로운 품종의 포도를 들여와 키우지 않았습니까. 잘 적응시켜서 포도밭을 일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

‘이건 대단한데?’

조선의 포도품종은 야생에 더 가까워서 품종개량을 하려면 수십세대가 지나야 하는데... 이미 개량된 서방 품종을 들여오면 곧장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

“거기에 포도주 제조법이 들어온 이후로, 기술을 전수받아서 양주기업별로 개량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도 다양한 과실수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게 다 돈이 되는 거겠지?”

“...”

음흉하게 웃는 연오랑을 보며, 현감 또한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용연현에는 중국상인이 드나들고, 중국은 과실주를 많이 생산을 안해서 수출양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상황.

이게 다 관세로 돌아오는 거니, 현감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각 지역에서 경연을 끝마치면, 입상한 과실주를 한성으로 모아서 최고를 가리게 될 겁니다.”

“호오...”

“그리고 내년부터는 더욱 다양해지지 않겠습니까?”

“...?”

연오랑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자, 현감은 “당사자가 왜 모르냐?”라고 묻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주도에도 양주기업이 꽤 많이 생겨났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아.”

“남방의 과일은 접하기 힘들었는데, 이젠 경연대회에 나올 만큼 많이 생산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걸로 보여 집니다.”

“그렇겠지.”

남주도에서 온 특산품은 분명 낯설고 신기할 터. 백성들은 과일과 과실주뿐만 아니라 온갖 것을 다 바랄 텐데, 그럴수록 조선내지의 유통망은 더욱 확장되고 튼튼해질 거다.

‘그럼 오늘은 그렇게 진탕 마시면서 지나갈 거 같고...’

“내일도 행사가 있나?”

“내일은 전처럼 경마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연오랑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것도 제대로 정착했나 보네. 좋아.’

경마와 격구도 연오랑이 조정에 올린 제안 아닌가. 이건 조정의 입맛에도 딱 맞는 터라, 민간이 움직이기도 전에 재깍 움직였다.

조선에서 사육하는 말은 사십만마리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고, 이 추세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럴수록 가축가격이 떨어지니, 어떤 식으로든 축산기업과 목장이 이윤을 얻어야 유지가 될 것 아닌가.

해서 말을 활용할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경마는 그런 면에서 딱 맞는 정책이었지.

“맞나?”

“예. 사실 경마만큼 자신의 기업과 목장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또 없을 테니까요.”

“물론 목장 중에선 전마 말고 그냥 농마나 짐마, 광산에서 사용할 조랑말들도 키우겠지만... 이름이 알려진 곳과 아닌 곳은 엄연히 다를 테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현감은 연오랑이 무슨 말을 하는 줄 알고서,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품질이 좋은 제품이라도, 홍보가 되지 않으면 좋은 값을 받기 힘든 법.

경마를 통해 목장의 이름값을 높인다면, 다른 용도의 말들 또한 더 비싸게 팔 수 있게 되는 거지.

“특히나 비단길이 열린 후에는 더욱 경쟁이 치열해 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한혈마나 한혈마의 피를 이은 경주마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고 하니까요.”

‘좋군.’

“도박은? 조정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정리가 됐나?”

“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연오랑은 슬쩍 현감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는 진심으로 “이게 맞나?”싶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쩌면 명성 있는 연오랑에게 의견을 돌려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경마하면 빼먹을 수 없는 게 도박인데, 유학에 바탕을 둔 조선이 이걸 허용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

특히나 민간에 퍼진 도박을 묵인하는 것도 아니고, 경마장을 운영한다는 건 나라가 직접 도박을 관장한다는 뜻.

돈 문제를 떠나서, 나라의 기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였지.

‘하지만... 이게 막아진다고 해서 막아지겠어?’

조선인들이 한족들처럼 도박에 미쳐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도박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넘쳐난다.

그저 때려잡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강하게 금제를 할수록 더욱더 음성적으로 파고들 터... 이렇게 음지에 도박시장이 형성되면, 더 큰 사회문제로 이어진다.

결국 경마를 없앨 수 없는 이상, 차라리 양지로 끌어 올려서 제도화 시키는 수밖에 없는 거지.

‘특히 재정부에서는 입에 침을 뚝뚝 흘리며 달려들었을 거야.’

경마로 인해 벌어들이는 세금은, 그 어떤 원망도 듣지 않고 손쉽게 벌어들을 수 있는 수익 아닌가.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거고... 다른 부서의 관원들 또한 재정부를 통해 예산을 얻어내야 할 테니, 슬쩍슬쩍 양보를 했을 거다.

“앞으로도 경마는 계속 활성화 되겠네.”

“상설 경마장이 만들어지는 건 힘드니, 이렇게 날을 잡아서 진행하는 경마행사는 꾸준히 진행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듣기론 북방에선 이곳보다 더욱 크게 열린다고 하더군요.”

“거긴 빈 땅도 많고, 목장도 많을 테니까.”

“예.”

경마를 꼭 향교의 운동장을 통해서만 해야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구경하는 게 힘들긴 하겠지만 벌판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북방에선 더욱 성행할 거다.

‘격구도 마찬가지겠지.’

고려 때에 성행하던 격구는 지금까지도 그 인기가 식지 않았다.

이건 나름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볼 수 있고. 조선군이 기병화 되면서 중요성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는 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대에서는 알아서 하던 훈련이다.

‘여러모로 효과가 있었을 거야.’

상비군체제가 완성되면서, 군대는 민간과 거리를 벌리고 있다.

백성들은 군사훈련도 받지 않고, 훈련하는 병사들을 직접 보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러니 이런 경기를 통해서 연대병의 존재감을 각인 시키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반대로 연대병들에게도 효과적이다.

이들 또한 열심히 훈련했으면 뽐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환호를 받으면 더욱 효과적이지 않겠나. 사기진작 차원에선 꽤 좋은 방편이었다.

해서 성형요새에 주둔하는 각 연대는, 행사 때마다 향교의 운동장에 와서 다른 연대와 시합을 벌이곤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유지될수록, 연대는 지역 연고지를 둔 스포츠 팀의 성격을 띠고서 응원을 받게 될 터...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연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될 거고, 반대로 연대병들은 자부심을 느끼게 될 거다.

‘그런데...'

이런 탓에, 연오랑은 자연스레 되묻고 말았다.

“경마는 하는데, 격구는 왜 뺐지?”

경마보다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격구고, 그런 만큼 인기도 훨씬 많지 않나. 수확제처럼 거창한 행사에는 빠지는 게 더 이상해 보였다.

“못 들으셨습니까?”

“뭘?”

“용연을 비롯한 황해도의 연대병들은 지금 평안도의 양전사업을 도우러 나갔습니다.”

“...”

‘뭐지?’

연오랑은 처음 듣는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끔뻑거렸다.

대만섬과 해남도에서 긁어온 원주민들을 쑤셔넣어 황해도와 평안도의 양전사업을 끝낸 거로 알고 있는데, 추가로 굳이 연대병을 동원할 이유가 있을까.

“일손이 부족할 리가 없을 텐데? 착호군이 아직 남아 있잖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착호군도 함께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뭔가 이상한데...’

연오랑은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굴려댔다.

착호군은 군부창설로 가기 위해서 거쳐 가는 임시 군조직이었다.

애초에 연오랑이 착호군을 만든 이유는 빈약한 조선의 재정으로 상비군과 같은 병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에, 그 유지비를 착호군병 개개인에게 부담케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이젠 군역 면제라는 미끼도 없어졌고, 조선의 재정이 군부를 유지할 수 있게 됐으니... 더 이상 착호군을 모집할 이유가 없지.

해서 10기를 끝으로 더 이상 모집하지 않았고, 지금은 아직 전역하지 않은 2개의 기수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2개 기수면, 착호군과 보조군까지 합쳐서 2만명을 훌쩍 넘지 않나. 일손이 부족하다는 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안 그래?”

“그게...”

연오랑은 다시금 캐물었지만, 군부의 일을 현감이 알지는 못하는지 말문을 흐렸다.

“설마...”

“...?”

“삼남지방의 연대병들도 소집된 건 아니지?”

“그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강원도와 함길도의 연대는 동원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듣기로 평안도에 새로 찾은 광맥이 한두개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첩첩산중을 개척해서 길을 닦고 터를 만들어야 해서, 연대병을 불러들였다고 하더군요. 남방 이주민들은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요.”

“음...”

평안도에 광산이 많은 건 유명한 이야기고, 조폐부와 은행에서 대대적으로 광산기업을 지원해서 광맥을 찾아다닌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치에 맞지 않는 건 아닌데... 의구심은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아무래도... 궁에 가보긴 가봐야겠어.’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힐끔 공주를 돌아보고선, 그리 마음을 먹었다.

*****

거창했던 수확제를 끝마치고 잠깐의 휴식을 보낸 후에, 연오랑은 다시 길에 올랐다.

한달 간격으로 보고서를 올려댔으니 딱히 더 보고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세종과 태종을 직접 만나서 얼굴은 보여야 하지 않겠나.

그가 고향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졌을 터, 딱히 부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가서 얼굴을 비출 때가 됐다.

더욱이 마음속에 의구심이 생겼는데, 이걸 풀어줄 사람은 세종과 태종밖에 없지 않나.

연오랑은 한걸음에 달려갔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곧장 낯설면서도 익숙한 한성에 도착했다.

“많이 변했네.”

자갈도로가 깔린 대로에서 살짝 비켜나서,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자기도 감격스런 마음이 올라왔다.

오래전. 그가 한성을 보면서 갑갑해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깔끔하게 바뀔 줄이야.

더러워서 오기 싫어했던 한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악취는 물론 신발에 묻을 흙먼지조차 없을 정도로 제대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

성문으로 다가가 자신이 왔음을 알리기 무섭게 금군이 달려왔고, 이내 곧 금군의 호위 겸 안내를 받으며 도성 내로 발을 디뎠다.

‘와...’

성문을 지나치자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한성을 감싸는 성벽에는 사대문 말고도 사소문四小門이라는 문이 존재했다.

허나 지금 역사에선 죄다 사대문에 버금갈 정도로 커져서 백성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고, 심지어 포장까지 되어 있었다.

남주도 원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육조거리를 중심으로 사대문으로 뻗어나간 대로를 석회도로로 포장한 걸로 알고 있는데... 팔대문으로 이어지는 대로까지 확장된 모양.

회색빛 도로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을 어지럽혔다.

여전히 한성은 공사판이었고, 대로를 중심으로 반듯하게 이어진 소로를 따라서 공사 중인 집들이 계속 눈에 걸려들었다.

‘이야. 진짜 돈이 돌긴 도는 모양이네.’

하나같이 기와집으로 증축되고 있는데, 어딜 봐도 초가집의 흔적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개성 있게 만들려고 작정을 했는지, 각양각색의 기왓장이 끝도 없이 이어져서 보고만 있어도 눈이 어지러워질 정도다.

한참을 그렇게 대로를 따라 나아가자 드디어 육조거리에 다다랐고, 전에도 공사중이었던 회전교차로에 도착.

남주도에 원정을 떠나기 전에도 난장판이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어째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여긴 아직도 공사 중이네?”

“이제부터 제대로 시계탑이 올라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자, 옆에 있던 금군이 자신에게 묻는 줄 알고 얼른 답을 던졌다.

“...?”

설명을 더 해보라는 듯 바라보자, 금군은 자기가 아는 한도에서 빠르게 대답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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