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 챕터55. 계획하다 (12)
“얼마나 되기에...”
“지난 3년간 넘어온 요동인이 대략 만명정도 되더구나.”
“허...”
‘그렇게나 많아?’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헛기침을 내뱉고 말았다.
운석핵꿀밤으로 모든 게 바뀌었지만, 가장 많이 바뀐 곳은 단연코 요동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본래 요동은 몽골인, 여진인, 고려인, 원나라 시절 이주시킨 한족이 섞여 살던 지역이었고, 명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한족이 이주하게 됐다.
헌데 정난의 변이 발생하자 요동은 황제군 편에 서서 연왕부와 싸웠는데, 대차게 말아먹고 십수만명을 날려먹었지.
원래 역사에선 영락제가 등극하면서 다시금 요동에 한족을 이주시켰는데... 지금 역사에선 오히려 거꾸로 갔다.
운석핵꿀밤으로 명이 망해버리자, 요동에 속해 있던 우랑카이 3위가 독립해서 떨어져 나갔다.
조선이 몽골원정을 할 적에 요동 고려인을 데려갔고, 이후 북방으로 진출하면서 흩어져 살던 여진인들 또한 싹싹 긁어갔다.
그 결과. 지금 요동의 인구수는 최대한 많이 잡아봐야 3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
만명이라는 수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아보여도, 요동 입장에선 충분히 심각성을 느낄 만한 숫자인 거지.
“더불어 비단길 무역이 너무 활황을 누렸어. 네 계획에 큰 변수를 낼 정도로 말이다.”
“...?”
“심양파와 요양파의 균형이 너무 가파르게 무너지고 있다.”
“으음...”
‘잠깐... 그러니까.’
이건 연오랑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인터라, 태종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 맹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역사의 요동은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었다.
본래 요동에 살던 이들이 심양을 거점으로 뭉친 심양파.
운석핵꿀밤으로 인해 연왕부에서 내전이 터졌고, 패배한 이들이 요동으로 흘러들어와 요양을 중심으로 뭉친 요양파가 있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산동과 무역을 독점한 요양파가 심양파에 앞서고 있었는데, 몽골원정을 통해 조선이 심양파를 밀어주면서 겨우 균형을 맞춰놨었지.
“초창기에는 심양파가 득세하는 듯 했다. 그 시절에는 창주만이 요동과 무역을 할 수 있던 창구였으니까. 허나 네 계획에 따라 다른 신도시에서도 요동과의 무역을 허가하자 문제가 터졌지.”
“음...”
창주(송원)에 무역도시를 만든 건. 무역을 통해 북원잔당 및 제왕부, 우랑카이 3위를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려는 계획의 일환이었지 않나.
해서 다른 신도시는 여진인들을 조선인으로 만드는 일에 주력할 때부터, 창주만은 시작부터 무역을 허가해서 무역도시로 성장시켰다.
바로 코앞에 위치한 요동 심양파가 창주무역에 끼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 심양파 입장에선 구원이나 다름없지만, 조선입장에선 어찌 보면 곁다리였지.
허나 다른 신도시가 얼추 기틀을 잡고 무역을 시작하자, 창주의 이점이 완전히 사라진 셈.
심양파의 핵심 돈줄이 마르게 된 거지.
“게다가 심양파의 돈줄은 북방무역인데, 아국이 북방으로 진출해 강역을 넓히면서 모든 게 어그러졌지.”
“...”
‘음... 하긴 그치들은 목축과 유목으로 돈을 벌었을 테니까.’
연오랑은 태종이 무슨 말을 하는 지 곧장 알아들었다.
조선이 여진을 때려잡고 만주를 석권할 때. 조선은 기존 우랑카이 3위 및 심양파가 통치하던 땅을 전부 흡수해갔다.
이 말인 즉. 심양파가 기존에 목축과 유목을 하던 땅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고, 나아가 북방무역을 장악한 조선으로 인해 돈줄이 또 막히게 된 거지.
“아국이 심양파보다 더 많은 가축 및 북방물산을 생산하니, 심양파는 전처럼 아국과 무역을 통해 이문을 얻을 수 없었을 테고... 창주를 통해 아국이 직접 몽골과 거래하니 중계무역의 이점도 없어졌을 터.”
“...”
“결국 북방물산을 산동에 내다 팔아야 했을 텐데... 요양파를 거칠 수밖에 없었겠군요.”
“그렇지. 게다가 요양파는 우리 덕분에 요동수군의 군비를 줄일 수 있었으니, 무역에 더 힘을 쏟을 수 있었을 테고.”
“예...”
북평부의 천진수군이 괴멸했으니, 전처럼 산동-요동무역선이 약탈을 당하는 일도 없어졌을 터... 더불어 수군을 해산했으면 잉여병사들이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나.
‘문제는 창주에선 사람을 가려 받는 게 아니잖아? 심양파 상인은 물론이고 요양파 상인도 직접 와서 거래할 수 있었겠지.’
이러면 심양파 상인이 잡고 있던 시장을 요양파 상인이 빼앗아 먹는 꼴.
반대로 심양파 상인은 무역선을 띄우지 못하니, 무조건 요양파가 이득을 보는 구조가 되고 말았다.
“끝으로 비단길이 열리면서, 이러한 불균형은 더욱더 커지게 됐겠군요.”
“그렇지. 서방물산에 관심을 보이는 건, 중국의 모든 호족과 상인이 마찬가지 아니냐. 아국이 팔든, 요동상인이 팔든, 얼마가 됐든 사려고 했을 거다.”
“...”
‘그랬겠지...’
이 상황을 연오랑도 예측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빠르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
산동상인들은 조선 조차지를 통해 구입하는 것보다, 요동상인을 통해 구입하는 게 더 비쌀 순 있지만... 무조건 구입하는 게 이득이었다.
조선 및 요동과 가장 가까운 곳이 산동이니, 일단은 닥치는 대로 구입해서 중국내륙에 먼저 팔수록 시장을 선점할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심양파가 잡고 있는 지역이 궁핍해진다면...’
연오랑은 머릿속에 도미노처럼 퍼지는 파급을 그려봤다.
“아국으로 넘어오는 요동인들을 따져보면, 심양파의 권역에서 살던 이들이 더 많았겠군요.”
“맞다. 안 그래도 심양파의 권역은 농사를 짓기 힘든 초지가 대부분이고, 그만큼 관리하기 힘든 곳 아니더냐.”
“예.”
넓은 초지와 초원에서 마을별로 모여 살던 이들인데, 이들이 오밤중에 몰래 조선땅으로 도망을 가버리면 무슨 수로 잡을 수 있을까.
결국 모든 문제는 돈으로 귀결되는 법.
세금을 걷을 백성자체가 줄어들고, 무역에서 계속 적자를 보게 되면, 심양파의 세력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지.
“마지막으로... 올량합 3위. 아니지. 이젠 요왕부라 불러야겠군.”
태종은 피식 가벼운 비웃음을 머금고선 말을 이어갔다.
“요왕부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려가 될 정도로 말입니까?”
“그래. 이 또한 비단길 때문이라면 비단길 때문이겠지.”
‘흐음... 내가 남방에 있는 동안, 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야.’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몽골원정 및 여진정벌을 진행할 때. 조선은 북방을 장악했고, 반대로 우랑카이 3위는 옛 동방 3왕가의 권역이라 할 수 있는 흥안령 일대로 근거지를 옮겼다.
이 때문에 아자이 일파와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지.
어찌됐건 결국 우랑카이 3위가 요동 서쪽이라 할 수 있는 흥안령 일대를 차지했고, 이들은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면서 옛 시절의 요왕부를 부활시켰다.
“태녕위가 타안위를 굴복시켰군요.”
“뭐... 의도한 것이기도 했지만, 창주에서의 무역이 생각보다 큰 여파를 가져왔더구나.”
“예...”
우랑카이 3위는 태녕위, 타안위, 복여위를 묶어 부르는 말.
태녕위는 옛 요왕부의 적통을 잇고 있어서, 명나라 초기 시절에는 세력이 가장 강했다. 이를 우려해 명나라는 타안위를 밀어줘서, 나중에는 타안위의 힘이 가장 강력해지지.
허나 지금 역사에선 명이 없으니, 태녕위와 타안위가 얼추 비슷했는데... 창주가 열리면서 저울추가 기울었다.
타안위의 영역은 만리장성 북쪽 지역으로, 이들은 바로 코앞에 붙어 있는 북평부와 손을 잡으며 성장하려했다.
허나 북평부가 커지는 건, 요동과 조선 모두 원치 않는 일.
조선은 창주에서의 거래를 막았다가 열었다가 하는 것만으로도, 타안위를 견제할 수 있었지. 타안위를 견제하던 태녕위가 반대급부로 커지게 됐고.
“더불어 항명출신 몽골만호들의 세력이 더욱 강력해지지 않았더냐. 경계를 맞닿고 있는 타안위는 세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지.”
“...”
연오랑이 머릿속에 그리던 지도는 더욱더 확장해갔다.
항명출신 몽골만호라고 하면 뭔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몽골초원은 워낙 척박한 땅이라서, 아무리 유목민족이라고 해도 고원과 사막이 있는 몽골초원 중앙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해서 유목민들은 몽골초원의 변두리. 서쪽, 동쪽, 남쪽에 살고 있었지.
그리고 남쪽이라 함은 만리장성 북쪽, 몽골사막 남쪽을 말하는데... 이곳은 미래 중국의 내몽골자치구를 말하는 곳 아닌가.
몽골초원에 비해서 훨씬 인구부양력이 높고, 힘들긴 해도 얼추 밭농사가 가능한 지역.
애초에 이들이 만호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
홍무제 시절 명나라도 이들을 다 때려잡고 직접통치를 하는 것보단, 자치권을 인정해주고 간접통치를 하는 게 이득이라서 그랬던 거지.
이후 명이 망하자 고삐가 풀린 이들은 미친 듯이 산서성을 약탈해댔고, 조선연합군이 거용관을 박살내자 이젠 북평부까지 가서 약탈을 지속해왔었다.
“비단길이 열리면서, 이들 또한 아국의 제안을 받아들였지 않느냐? 예상보다 빠르긴 하지만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지.”
“예...”
태종은 히죽 웃으며 ‘이것도 네 생각이었지 않냐?’라고 눈빛으로 물었고, 연오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힘을 키운 항명출신 몽골만호들에게도 고민이 있었는데, 바로 섬서몽골 및 아자이 등. 북원잔당과의 관계였다.
아무래도 이들은 잠시나마 명의 지배에 들어갔던 이들이고, 북원잔당은 끝까지 명과 싸웠던 이들이니까.
명이 있기 전에도 투닥투닥거리긴 했지만, 보는 눈이 달라진 건 분명한 사실이지.
이 고민의 해결책을 가져온 건, 다름 아닌 조선.
조선은 중국을 쪼개기 위해 호족연맹을 만들었는데, 생각해보면 연맹체제야 말로 몽골부락에게 딱 맞는 체제 아닌가.
해서 항명출신 몽골만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몽골남부연맹으로 한 덩어리가 됐다.
물론 조선이 마냥 이들이 좋아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몽골남부연맹이 만들어지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섬서몽골 및 아자이와 하나가 될 수 없다. 또 하나의 독립적인 몽골세력이 만들어져서,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거지.
나아가 비단길을 창주까지 이어붙이기 위해서도, 몽골남부연맹은 반드시 필요했다.
유목민도 살기 힘든 곳이 몽골초원 중심부인데, 여길 수천명의 노예들이 가로질러 갈 수 없지 않나.
필연적으로 원래 도시가 있고 사람이 사는 몽골초원남쪽 길을 따라와, 흥안령을 끼고 북상해서 아자이의 권역에 도착. 이후 창주까지 흘러오는 거지.
이러니 몽골남부연맹은 비단길 연합의 한축이 될 수밖에 없고, 조선과의 관계 또한 돈독해 지기 마련.
몽골초원 남쪽으로 영역을 맞대고 있던 타안위는, 몽골남부연맹이 성장할수록 세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태녕위가 타안위를 흡수해 요왕부를 열게 됐다.
“허면 복여위도 흡수된 것입니까?”
“아직은 아니다. 복여위가 차지하고 있는 권역은 제왕부와 닿아 있으니까. 요왕부는 아직 제왕부, 아국과 직접 부딪치긴 힘들지 않겠느냐.”
“그렇겠지요... 그럼 불온한 움직임이라 허면?”
다만 우랑카이 3위가 요왕부로 변모하는 건 예상에 있던 일.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고, 태종도 같은 심정인지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짚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들을 비단길 무역에 배제한 게, 꽤나 뼈아프게 다가오는 모양이더구나. 천천히 말려 죽이려고 했는데, 죽기 직전에 발악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음...”
‘씁... 골치 아프게 됐네.’
서방과 동방을 잇는 거대한 시장. 새로운 비단길이 열렸지만, 이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세력이 있다면 바로 우량카이 3위였다.
우량카이 3위는 흥안령일대로 본거지를 옮기면서, 아자이 및 몽골남부연맹과 싸워서 영역을 차지했지 않나.
헌데 조선 입장에선 비단길을 잇기 위해선 아자이와 몽골남부연맹이 중요하지, 우량카이 3위는 사실상 필요하지 않았다.
나아가 조선은 요동을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으니, 그 요동과 바로 코앞에 붙어 있는 우량카이 3위를 키워줄 생각이 전혀 없었지.
반대로 요왕부 입장에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요왕부는 조선과의 무역 적자가 심각하니까.
지금 조선의 무역도시는 옛 명나라나 조선의 마시馬市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후자는 분탕질을 치지 말라는 뜻에서 숨통을 열어준 것에 그쳤다면, 전자는 거의 자유무역에 가까우니까.
요동조차도 조선에 팔게 없어서 허덕이는데, 가축 말곤 딱히 특산품도 없는 요왕부는 오죽할까.
특색 있거나 한혈마와 같이 값비싼 가축은 이제 비단길을 통해서 직접 들어오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축과 말을 팔아넘겨야 하는데, 이렇게 팔면 팔수록 정작 자신들의 세가 약해진다.
그렇다고 조선과 거래를 하지 않자니, 요동과 웃돈을 주고 거래를 하거나 옛 시절로 회귀해 약탈경제를 이어가야한다.
차라리 전처럼 각자 알아서 살면 모를까... 요왕부를 연 이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휘하부족들의 생계를 어느 정도 책임져 줘야 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 거지.
헌데 자신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데, 적대세력이라 할 수 있는 아자이와 몽골남부연맹은 비단길을 통해 사이가 돈독해지고 더 부강해진다? 언제 자신들을 때려잡을지, 걱정스러워지는 거지.
그렇다고 부유한 조선을 건드린다? 이건 미친 짓이다.
“제 생각이 맞는지요?”
“정확하다. 허면 그들이 살 길은 하나밖에 없지 않느냐.”
“요동이겠군요.”
“...”
태종은 침잠한 눈빛을 뿌리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요왕부 입장에선 가장 만만한 요동을 건드릴 수밖에 없는 거고, 지금과 같은 압박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진짜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문제는 만약 요왕부와 요동이 전쟁을 벌이면, 요동을 차지하기 위해서 조선은 요동과 요왕부를 전부 때려잡아야 한다는 뜻.
‘못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수지타산을 따져보면 손해가 만만치 않겠지.’
이러니 요왕부가 먼저 움직이기 전에, 지금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조선이 요동을 꿀꺽하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이 선거지.
“...”
“...”
연오랑은 계속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그리며 생각을 정리했고, 태종은 잠자코 앞에 놓인 차를 마시며 기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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