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34화 (434/538)

434. 챕터55. 계획하다 (13)

그러길 한참.

연오랑의 살짝 찌푸린 표정이 풀리지 않자, 태종이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너를 빼놓고 진행해서 서운했던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생각에 잠겨 있던 연오랑은 화들짝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

“네가 조정과 거리를 두고 있는 걸, 내가 모를 리가 있더냐. 새해에 다 같이 보게 되면 말해주려 했다. 다만 네가 이렇게 득달같이 달려올 줄은 몰랐지.”

“예...”

히죽 웃는 태종을 보며, 연오랑은 괜히 민망해서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말하면...’

한편으론 서운한 것보다, 오히려 기특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연오랑은 원래 역사의 조선군과 다른 기조와 조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어느 누구하나 특출한 천재에 의해 지탱되고 유지되는 조선군이 아닌, 시스템과 체제에 의해 영속적으로 지탱되는 군부가 완성되길 바랐다.

외교관계에 있어서 군력을 활용해 대전략과 대계를 짜고, 원정전쟁이 가능할 수 있게 보급군수체계를 만들고, 전문 전투부대를 조직해서 정치에 휘둘리지 않게 했다.

이로서 졸장을 데려다가 박아 넣어도, 승리는 힘들지라도 적어도 대패는 당하지 않는 군대를 만들고자 했지.

나아가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면 군사에 소홀해 지기 마련.

그럼에도 군부의 역할이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유지되길 바랐지.

‘그런 면에서 보면 태종의 의지가 있다고 해도, 내 도움 없이 요동정벌을 계획했다는 건... 나름 고무적인 성과지.’

사실 지금껏 있어왔던 모든 전쟁은, 연오랑의 입김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꼭 훌륭하게 장성한 자식을 보는 기분이니, 시원섭섭하다는 심정이 딱 맞았다.

“하오나...”

“...?”

‘그래도 부족해.’

연오랑은 태종에게 직접 요동정벌의 이유를 들었음에도, 또 다시 반대의 뜻을 내세웠다.

심양파와 요양파의 균형이 무너진다고? 이건 이미 예상했던 일. 본래 계획은 천천히 균형추가 기울면서, 결국 버티지 못한 둘의 충돌을 유도하는 것.

내전까지는 아니어도 군사적인 충돌이 벌어지면 세력이 깎일 것이고, 알아서 제살을 깎아먹은 그 틈을 노려 조선이 꿀꺽 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상황과 본래 대계를 비교해본다면, 딱히 달라진 게 없지 않습니까?”

심양파와 요양파가 모두 군력이 깎이길 바랐지만, 지금은 심양파만 갑자기 무너지고 있는 상태.

허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래나 저래나 요동의 군력이 줄어든 건 마찬가지 아닌가.

“또한 아국이 요동을 통치하려면 심양파든 요양파든 파벌의 중추를 해치워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 그대로 놔두면 요양파의 손을 빌러 심양파를 처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정적숙청의 후폭풍은 적지 않을 테니, 혼란한 시기에 아국이 개입하는 게 더 쉽지 않겠습니까?”

“...”

우랑카이 3위. 요왕부의 우려도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요왕부와 요동이 싸운다고? 둘 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고, 어찌됐건 군력이 소모되면 조선이 상대하기 더 쉬워진다.

더군다나 요왕부가 덩치를 키우는 건. 아자이, 제왕부, 몽골남부연맹 모두가 바라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 요왕부를 치는 건 모두에게 부담이지만, 요동과 전쟁을 시작한 요왕부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건 쉬운 일.

어쩌면 조선이 제안을 던지기 전에, 다른 세력들이 먼저 쪼로록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지.

“허면 명분에서도 앞설 수 있고, 뭐가 됐든 아국으로선 이득 아니겠습니까? 비단길로 엮여 있는 세력은 올량합 3위보다 아국의 뜻을 더욱 따를 테니까요.”

결국 지금 상태를 그냥 내버려두면. 북방에서 제살 깎아먹기를 하는 동안, 조선은 남방으로 진출해 체급을 더욱 키울 수 있을 터... 한편으론 요동정벌이 더욱 쉬워지는 거지.

“흐음...”

연오랑의 이어진 반론에, 태종은 작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후...”

그리곤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선, 속마음을 털어놨다.

사실 태종 입장에서 굳이 연오랑을 설득시킬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세운 공이 있고 인연이 있지 않나.

“나는 내 발로 직접 요동땅을 밟을 것이다.”

“...!”

“이는 아버님의 유훈이다.”

“...”

‘이 양반이 진짜. 이성계를 꺼내면 내가 뭔 말을 하라고...’

뜬금없는 발언에, 연오랑은 그저 눈을 끔뻑거리면서 합죽이가 되고 말았다.

무려 태조 이성계를 내세우면, 무슨 반론을 할 수 있겠나.

‘운석핵꿀밤의 여파가 여기까지 미친다고?’

자기도 모르게, 그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원래 역사에선 왕자의 난 이후 태조와 태종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으나, 지금 역사에선 아니다.

연오랑 입장에선 개소리로 밖에 안 들리지만, 이 시대 사람들에게 운석핵꿀밤으로 명이 망해버린 건 엄청난 충격이었으니까.

과장을 조금 보태면, 세상이 망한 거나 마찬가지지.

태조는 천명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느꼈고, 태종을 인정하고 화해해서 편하게 천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래서 원래 역사에서의 조사의의 난도 없었고, 동북면 여진족의 이탈도 없었지.

이러니 동생들을 썰어버린 태종 입장에선, 아버지인 태조에게 마음의 빚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의 유훈을 더욱더 가슴에 새겨,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담아두고 있었던 거지.

“아버님이 요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네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게다가 요동반도의 금주는 과거 네 가문의 봉토였지 않느냐.”

“...”

‘난 아무 생각도 없다고.’

잔뜩 오해하고 있는 태종을 보며, 연오랑은 차마 속마음을 토해내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태조는 무려 고려의 요동정벌에 참여했고, 나하추와도 싸웠던 인물이다. 조선을 건국하긴 했지만 고려의 명장으로서의 기간이 더 길었으니, 자연히 요동땅에 대한 미련이 클 수밖에.

연씨집안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비록 미래의 그가 게임 속에 텍스트로 박아 넣은 설정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모두 현실.

연씨집안의 후손인 연오랑이 본래 고향에 대한 미련과 열망이 있다고 착각하는 건... 태종 입장에선 당연한 말이었지.

“그 뿐일까. 포은과 삼봉을 비롯한 공신들의 바람이, 내게는 남아 있다.”

아직도 기력이 남아 있는지, 태종은 불꽃같은 안광을 피워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진짜 할 말 없게 만드네.’

이 또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 비장한 모습에,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연오랑으로선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태종에게는 꿈에서도 나올 정도로 미련이 남은 사연이다.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그 잘난 명나라가 망한 걸 한껏 비웃어줬을 텐데... 아쉬운 일이야.”

태종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면서도, 눈빛에선 회환의 빛을 함께 내비쳤다.

“...”

“허나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내 손으로 나라의 기둥을 뽑아냈으면, 적어도 그들의 뜻을 대신 펼쳐줘야 하지 않겠느냐.

“...”

과거. 운석핵꿀밤이 떨어지기 전 태조 시절에, 조선은 명이 버젓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와중에도 요동정벌을 하고자 했었다.

강경파는 정도전을 필두로 한 이들이었고, 오히려 태종이 온건파로서 요동정벌을 반대했었지.

그 노신과 공신들은 이미 세월에 묻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후배들이 지금 조정의 요직에 머물고 있다.

태종 뿐만 아니라, 다른 노신들도 어쩌면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랑아.”

“...?”

‘이 양반이 징그럽게 갑자기 왜 이래?’

연오랑은 뜬금없이 친근하게 구는 태종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기겁해서 슬쩍 눈을 흘겼다.

“나도 이제 천수를 누렸고,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다.”

‘헉!’

“어찌 그런 말씀을...”

그는 화들짝 놀라서, 얼른 자세를 바로하며 태종을 만류했다.

“이제 죽어야지.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건 늙은이만이 할 수 있는 전매특허지만... 태종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끔찍하다.

이미 원래 역사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태종이니, 진짜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말이 씨가 된다고, 연오랑은 얼른 태종의 입을 막아 세울 수밖에.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태종은 인자한 미소를 갑자기 지우고, 석고상처럼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더냐.”

“...”

태종은 자신의 손을 들어 얼굴 앞에 올리고선,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직도 투명한 눈동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흐음...’

미래에는 태종을 칼방원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직접 때려잡은 사람은 얼마 없지 않나.

허나 지금 역사에선 아니다.

비록 조사의의 난은 없었지만... 그보다 작은 반란이 매해 발생할 정도로 수도 없이 터졌고, 그걸 다 때려잡아야 했다.

그 뿐일까.

조선사상계의 분열로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 중앙집권과 왕권강화를 위해 원래 역사보다 훨씬 많은 공신과 양반 집안을 무너뜨렸다.

이후 개혁이 시작되고 부터도, 이런저런 사유로 갈려나간 이들이 부지기수.

예전처럼 반란이 터지지 않은 건... 착호군이라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제대로 불길이 번지기도 전에 짓밟아버려서 그런 거지.

손에 피가 많이 묻었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그 후에는 어쨌느냐. 개혁이 시작되고 나서,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전쟁을 해오지 않았느냐.”

“예...”

이 이후의 일은 연오랑이 깊숙이 개입했으니,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실.

“이 업보를 어찌 감당할까.”

“...

“허면 아비가 되어서 도에게 이런 고심을 남겨줄 이유가 없지 않느냐?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미 피투성이가 된 내 손으로 마무리하는 게 옳은 선택이겠지.”

“...”

세종의 이름까지 친히 부르면서까지 소회를 털어놓는 터라, 연오랑은 감히 딴 짓도 못하고 고개만 숙일 따름이었다.

‘흐음...’

한편으론 태종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역사 이래로,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일 아닌가.

선왕이 후계를 위해서 공신들을 숙청하고 주변정리를 해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걸 조금 확장하면... 요동땅을 정복해 더 이상 전쟁을 없게 해서, 내치에 힘쓰게 하는 것도 선왕이 할 일이라면 할 일인 거지.

‘무슨 이유를 붙여도, 뜻을 굽힐 생각은 전혀 없나보네.’

“알겠습니다.”

연오랑은 결국 승복하고 말았다.

사실 연오랑이 반대한다고 해서, 세종과 태종이 요동정벌을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이미 군부가 알아서 굴러가게 만들어 놓은 당사자가 연오랑이고, 아무런 실직도 없는 그가 반대를 해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

괜히 이러쿵저러쿵 불만만 털어놓으면, 분위기만 흐린다.

“허면 함께 할 생각이냐?”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거운 분위기를 풀 겸, 연오랑은 살짝 씰룩거리며 답을 했고.

“잘 생각했다.”

태종 또한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선, 히죽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준비는 진행되고 있지만, 너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기책을 많이 내지 않았느냐.”

“예...”

그간 연오랑이 만들어낸 신문물, 신체계가 얼마던가.

사실은 미래의 지식을 끌어온 거지만, 태종이 보기에는 연오랑 또한 천재라고 볼 수 있는 인물.

태종은 자연히 기대감이 섞인 눈을 숨기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지요.”

“아무렴. 그래야지.”

결국 연오랑이 승복해 긍정의 답을 던지자, 태종은 자기도 모르게 짝. 박수를 치며 기꺼워했다.

조선인의 사고방식을 뛰어 넘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녀석이니 만큼, 이번에도 장군과 대신들이 보지 못한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 믿는 모양이다.

궁에서 머물며 사흘밤낮을 지새운 연오랑.

이내 생각을 정리한 그는 궁에 알리기 무섭게 걸음을 옮겼다.

"뭐 이렇게 빨리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라고 하겠지만... 사실 전부터 꾸준히 준비를 해왔다.

연오랑은 미래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조선이 굳건히 서서 유지되기 위해선, 반드시 요동을 먹어야만 했다.

중국에 새로운 통일왕조가 들어서든, 아니면 연합왕국이 들어서든... 뭐가 됐든 중국에 먹히지 않고 대항하기 위해선, 조선도 체급을 불려야 하니까.

나아가 중국과의 충돌을 대비하기 위한 국경선을 정립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요동을 차지해야만 했던 거지.

“...”

‘오랜만에 오네.’

그렇게 한걸음에 나아간 연오랑은 원래 육조거리 뒤편으로, 새로 생긴 마천루를 앞에 두고 걸음을 멈춰 섰다.

조정에 새로운 부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청사가 들어섰고... 지금 눈에 보이는 건 군부청사였다.

디귿자 모양을 한 전각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다른 청사보다 유독 커서 중앙의 빈 공간을 작은 연병장으로 써도 될 거 같다.

“대감! 오셨습니까.”

미리 연락이 갔는지, 그가 정문을 지나치기 무섭게 연대병이 달려와 그를 반겼다.

“오냐. 회의 준비는?”

“모두 모였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연대병을 따라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대회의실에 도착.

“대감!”

“오랜만에 뵙습니다.”

“궁에 오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문을 열기 무섭게, 그를 반기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

‘역시 이놈들이군.’

그는 익숙한 얼굴들을 보며 대꾸도 없이 슬쩍 눈을 흘겼고... 이젠 나이를 먹어 노인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건만, 다들 어린아이처럼 히죽 웃으며 그를 반겼다.

요동정벌을 꾸밀만한 장군들은 사실 뻔하지 않나.

오늘을 위해서, 지금까지 키워온 세종의 아이돌그룹 멤버들.

최윤덕, 김종서, 최해산, 황보인등. 오래전 몽골원정을 갈 때부터 함께 했던 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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