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 챕터56. 두드리다 (1)
‘으음...’
이야기를 쭉 들어보는데, 뭐 엄청난 기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사방으로 병력을 쪼개서 진군. 이후 요동의 주요도시를 포위하고 함락시킨다.
해군은 요동반도의 금주. 미래의 대련항을 포위하고 상륙.
그러는 동안 의주에서 천산산맥 남쪽으로 이어지는 요동반도 해안가를 따라 진군해서, 해군과 보조를 맞춘다는 작전이었다.
‘음...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살짝 심심한 작전을 보면서, 연오랑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에도 말했듯, 이 시대의 요동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요서지역의 절반은 요택이라 불리는 습지대고, 나머지 절반은 시시때때로 범람하는 요하 때문에 살기가 힘들고, 나머지 해안가 일대만 조금 살 수 있다.
요동지역의 경우도, 옛 고구려, 발해 시절부터 도시로 번성했던 지역에만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지역조차 조선이 북방으로 진출하면서 동쪽지역을 상실했다.
결국 요동반도, 요양, 심양, 개원으로 사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지역과, 요동과 뚝 떨어져서 요동과 북평을 이어주는 요서회랑의 입구 일대에만 사람이 사는 거지.
애초에 목표가 뻔하니, 작전 또한 뻔할 수밖에 없다.
“요동의 병력은?”
“4만 정도 남아 있는 걸로 추산되는데, 그중 1만은 광녕위에, 1만은 금주의 수군. 1만은 요양, 나머지 1만은 심양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양성과 심양성에만 주둔하는 게 아니고, 그 일대의 권역을 말하는 거니 더 흩어져 있기는 할 터...
요양파와 심양파는 권력뿐만 아니라 군력에서도 불균형이 심각해진 모양이다.
‘질적으로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겠지.’
요동의 군제는 옛 명나라의 것을 유지했기에, 대부분의 병력은 군호에 올라 있는 징집병일 거다.
옛 조선처럼 농한기 때에 훈련을 받고 근무하는 식인데... 군사지대인 요동의 특성상 토관과 흡사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많군.’
연오랑은 속으로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요동의 인구가 30만이 안되는데, 병력이 4만이 되는 게 말이나 되는가. 산동의 지원이 없으면, 애초에 유지할 수 있는 병력숫자가 아니다.
괜히 북평부의 천진수군이 몰락하기 무섭게, 재깍 요동수군을 줄인 게 아니지.
“흐음...”
연오랑은 가볍게 턱을 괴며, 앞에 놓인 지도를 보며 머리를 굴려봤다.
동원 병력은 조선이 많고 특별한 계책이 없다는 건, 정석적으로 운용을 하겠다는 건데... 오히려 이게 더 승리로 가는 지름길이다.
정석이 괜히 정석일까.
기기묘묘한 기책을 사용해야 하는 쪽은 조선이 아니라 요동인데, 주도권은 조선이 쥐고 있으니... 생각보다 쉽게 풀릴 가능성이 높았다.
“나쁘지 않네.”
“역시.”
“그렇지요?”
설명을 다 들은 연오랑이 긍정적인 품평을 하자, 다들 얼굴이 살포시 밝아졌다.
이미 몇년전부터 준비해온 계획이고, 자신들이 생각해도 이보다 더 나은 계획이 없을 정도로 다듬었다.
아무리 연오랑이 군부를 만들고, 이러한 작전계획을 짤 수 있도록 교육, 훈련을 시켰다지만... 여기서 뭘 더 하는 건 힘든 게 당연.
“하지만...”
다만 모두의 얼굴을 쓱 훑은 연오랑은, 살짝 얼굴을 굳히며 말꼬리를 흐렸다.
“...?”
“...”
대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모두는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는데... 어째 불쾌한 기색보다는 기대감 섞인 눈빛을 뿌리고 있었다.
사실 이제 와서 연오랑이 끼어드는 건, 어찌 보면 다 차려놓은 밥상위에 숟가락을 올리는 꼴처럼 보일 수도 있다.
허나 연오랑이 그간 해온 업적이 있지 않나.
그가 미래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걸 모르는 한, 제장들의 눈에는 연오랑이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위관료들이 가장 주목한 부분은 바로, 이 시대 조선인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그의 시선.
수많은 발명품, 운동법, 훈련법을 만들어낸 것도 물론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건... 자본유학이나 군부 같이 그간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체제와 제도를 구상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어쩌면 새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각자요, 선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태종이 괜히 연오랑에게 기대를 품었을까. 이들 또한 같은 생각이다.
이미 완성된 전투, 전술단계를 손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미처 보지 못한 대전략적인 부분에서 뭔가 조언을 구하려는 거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연오랑은 잠시 손가락을 튕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너희들 중에서, 요동정벌이 실패할 거라고 보는 사람이 있냐?”
“...”
굳이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모두는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력으로만 생각하면... 조선이 여진을 멸망시켰을 때, 사실 요동정벌도 끝난 거나 다름없다.
요동보다 더 넓은 땅에, 더 많은 인구, 더 거친 이들을 조선이 무너뜨렸는데, 요동을 깨부수는 게 뭐가 힘들겠나.
“문제는 전쟁이 아니라 통치였지.”
“예.”
“그렇습니다.”
다들 동의하며 목청을 높였다.
그럼에도 요동을 정벌하지 않은 건, 전쟁과 통치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
아까 말했듯 요동땅은 쓸모없는 땅이 훨씬 많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여길 집어삼키면 오히려 배탈이 난다.
나라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없는 거나 다름없는 여진족을 흡수하는 것과, 이미 나라의 체제를 갖추고 반쯤 중국화된 요동인을 조선인으로 만드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니까.
허나 이젠 조선의 체급이 커졌다.
요동을 소화시키는 동안 남방으로 진출할 여력은 없겠지만, 어찌됐건 요동을 먹을 수 있는 능력은 갖추게 된 것.
“그럼 다시 물으마.”
“...?”
“천년만년 이어갈 아국의 성세에 위협이 되는 주적이 누구냐? 요동이냐?”
“...!”
“...?!”
뜬금없이 진지하게 되묻는 연오랑을 보며, 다들 눈을 번쩍 뜨며 눈동자에 물음표가 피어올랐다.
이미 요동을 상대로 전략을 다 짜놨는데, 뜬금없이 “진짜 적이 누구냐?”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연오랑이 뭘 그리고 있는지, 각자 열심히 머리를 굴려댔다.
허나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지만, 쉽게 답은 흘러나오지 않았고...
“...”
그는 골똘히 고민하는 이들의 고생을 대신 해결해줬다.
지도에 놓인 말을 하나 집어서, 공백지로 남아 있는 장소에 올려놓았다.
“헉!?”
“거길...?”
“어째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모두가 화들짝 놀라 의아함을 토해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을 집고 있으니까.
“우리의 진정한 적은 요동이 아니라...”
연오랑은 서늘한 눈빛을 숨기지 않고 뿌리며, 모두와 눈을 마주치곤 반문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곳 북평부다.”
“...!”
*****
동북방 이민족으로부터 중국을 수호해온 위대한 관문.
일찍이 수,당 시절에는 임유관으로 불렸고, 요,금 시절에도 관문의 역할을 해왔으며, 명이 요동으로 진출했을 때 제대로 완성된 관문.
천하제일관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산해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허나 그런 산해관은 생기를 잃고 시름시름 앓고 있었고, 산해관에 주둔하는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까닭이야 별 게 있겠나.
지금 저기 하늘 위에서 내리 꽂히는 거대한 나무기둥 때문이다.
펑펑펑! 저 멀리 바다건너에서 아스라이 굉음이 터져 나왔고, 이내 곧 쉬우웅!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하늘의 점이 점점 커져갔다.
“온다!”
“또 온다!”
“서쪽이다!”
산해관을 수호하는 병사들이 하늘을 보며 외치기 무섭게, 콰쾅!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나무기둥이 기왓장을 박살내며 이름 모를 전각에 틀어박혔다.
“아...”
“저기도!”
어느 한 병사가 신음을 흘리며 손을 들기 무섭게, 쉬웅! 콰쾅! 어디로 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날아온 나무기둥이 전각과 담벼락을 박살내며 틀어박혔다.
“빌어먹을 놈들! 어서 장전을 하지 않고 뭐 해!”
산해관 안쪽이 포격을 받아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산해관 가장 바깥쪽 성벽에 올라와 있던 백호장은 휘하 병사들의 등짝을 마구 후려치며 닦달했다.
저기. 바로 코앞에 유유자적하게 떠 있는 거대한 산들이 눈에 훤히 보이지 않나.
회색빛 화약연기에 가려서 유령선처럼 보이는 배는, 지옥불이 피어오를 때마다 번쩍번쩍 동체가 들어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준비 됐으면 쏴!”
연신 화포병들을 채근한 백호장은 침을 튀기며 지휘봉을 흔들어댔고.
“발사!”
“쏴라!”
이내 곧 포각을 맞춘 화포병들이 일제히 심지에 불을 붙이고 귀를 막았다.
“아...”
허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풍덩! 속절없이 바다에 빠져 물보라를 일으키는 포탄을 보며, 어느 화포병은 자기도 모르게 한탄을 하고 말았다.
“어느 놈이야!”
사기를 팍팍 깎아먹는 꼴을 가만 놔둘 수 없는 법.
백호장은 빽! 소리를 내지르고선 화포병을 후려 차며 다시 닦달했고, 얼른 재장전을 이어가라 소리쳤다.
“으...”
하지만... 또다시 하염없이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는 포탄을 보며, 백호장 또한 속으로 신음을 흘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바닥에는 부스러진 벽돌조각이 가득해서 다 치우지도 못했고, 저 성벽 끝 포대는 흉물처럼 허물어졌고, 그 안에 조각난 시체를 다 치우지도 못해서 썩은내가 진동을 했다.
이 판국에 쏴봐야 얼마나 잘 조준할 수 있을까.
그걸 떠나서 방어포대를 넘어서 산해관 안쪽까지 날아가는 조선군 포탄을 보고 있으면, 절망감이 절로 밀려왔다.
“이 지옥이 대체 언제 끝날 수 있을까?”라고 머릿속에 그려보지만... 끝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조선군은 언제나처럼 저렇게 신나게 분풀이를 하다가 떠날 거고, 며칠 후에 또 찾아올 테니까.
‘대체 왜? 어째서?’
백호장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통나무의 비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과거. 천진이 조선해군에 의해 박살나고, 천진을 지원 및 복구를 해줘야 할 북직례 남부가 조선기병에 의해 약탈을 당하고 난 후.
그 때부터 북평부의 안방이었던 발해만을 조선에게 빼앗겼다.
조선군은 두서없이 시시때때로 천진을 급습해서, 애써 복구해 놓은 천진을 불바다로 만들기를 여러번.
만들어 놓으면 부셔놓기를 반복하니, 천진을 복구할 의지조차 꺾어버릴 정도였지.
그 세월이 벌써 6년 가까이 됐는데, 이젠 지옥의 불길이 산해관까지 번지고 말았다.
전에는 그냥 슬쩍 스쳐지나가곤 했던 조선전함이, 몇 달전부터는 아예 대놓고 해안에 바짝 붙어서 산해관을 향해 포격을 쏴대기 시작했기 때문.
4,5일에 한번 꼴로.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포격을 쏴대고 있으니... ‘화약이 남아도는 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
물론 산해관 성벽이 오죽 두껍고, 또 산해관이 오죽 큰 관문인가.
포격으로만 선벽을 부수는 건 어불성설인데... 이것도 돈으로 찍어 누르니 해결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해안에 바짝 붙어 있던 성벽은 전부 무너져서 돌무더기가 되었고, 해안을 향해 있던 방어포대 또한 전부 부서졌고, 심지어는 산해관 성벽마저도 군데군데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까.
문제는 조선군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점.
쳐들어 올 거면 시원하게 쳐들어 올 것이지, 수개월 동안 함포사격만 이어가고 있으니... 지금 공성전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그 의도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부답으로 피를 말리겠다는 듯 화포만 쏴대는데... 부서지면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면서 버티는 게 고작이었지.
오늘도 그 지긋지긋한 하루가 반복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음...?!’
옛 생각에 빠져 있던 백호장은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는 걸 느꼈고, 쾅! 반쯤 무너진 방어포대에 나무기둥이 떨어져 백호장의 상념을 산산조각냈다.
“제대로 조준해라! 성벽 끝을 노려!”
“포대를 노리라고 포대를!”
바다 건너편에서 흙먼지와 돌먼지가 한껏 피어오를 때. 다른 쪽에선 메케한 화약연기가 바닷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신병들인데도 생각보다 잘하는 군.”
“신병이라고 하기도 뭐하지 않습니까? 비록 배를 탄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육상에서 화포를 다루는 훈련은 꾸준히 했으니까요.”
“그래도 실전과 훈련은 다른 법이지. 자네가 고생했어.”
“아닙니다.”
선수루에 서서 망원경으로 산해관 성벽을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
이젠 나이를 먹어 흰 수염이 가득한 평도전과, 신입 함장 이사임은 서로 공치사를 남발하며 흐뭇한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얻어맞는 산해관 병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둘은 지금 병사들에게 처음으로 실전경험을 시켜주고 있는 중이었다.
거리가 멀어서 정밀한 포격은 힘들겠지만, 산해관 자체가 표적 아닌가.
명이 건국되고 난 후. 백여년 넘게 확장 및 보수를 하면서 미래의 산해관이 완성되지만... 지금도 그 크기는 엄청났다.
괜히 천하제일관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조선군이 박살낸 거용관과 마찬가지로, 저 거대한 관문은 외성벽과 내성벽. 내성으로 이어지는 삼중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안에 사는 사람만 2만명이 넘어가는 거대한 관문도시였다.
그러니 일단 쏴재끼면 뭐든지 맞는 터라, 실전훈련을 하기에는 제격인 셈이었지.
그 때. 콰쾅! 전함에서 쏘아올린 장군전이, 아군을 향해 포탄을 쏘던 산해관 성벽 윗머리에 맞아 피보라가 피어오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와! 맞췄다!”
“포각을 찾았나! 계속 거길 노려!”
아니나 다를까. 망원경으로 같은 걸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갑판 위에서 빼꼼 머리를 내밀고 있던 화포장이, 아래선창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화포병들에게 목청껏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성벽을 무너뜨리진 못했지만... 확실히 타격을 입히긴 입혔나 봅니다.”
“그래야지. 지금껏 쏟아낸 포탄이 몇 발인가.”
“예.”
어쩌면 당연한 말에, 이사임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산해관에 대고 포격을 이어오지 않았나. 처음에는 산해관 병사들도 화포를 돌려 대응사격을 하긴 했지만... 압도적인 물량에 밀려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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