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47화 (447/538)

447. 챕터56. 두드리다 (12)

세태를 반영한 영승보의 씁쓸한 말에, 장혁진이 양념을 치며 말을 늘어놨다.

“요샌 이런저런 말이 많은 게 사실이지. 북평부만 없으면 굳이 우리가 요동을 지원할 이유가 없으니까. 특히나 북방무역은 완전히 조선에게 넘어간 지 오래되지 않았나.”

“음...”

예전엔 요동도 북방무역의 든든한 한축이었지만, 이 줄이 끊어진지 한참 됐다.

“까놓고 말해서, 요동산 물건 중에서 우리가 필요한 건 말馬밖에 없어. 게다가 그 말조차 이젠 조선에서도 슬슬 거래량을 늘리려하고 있고 말이야.”

“그건 그렇지.”

중국이 말 부족현상을 겪은 건 벌써 수십년이 흘렀고, 지금도 여전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못 따라가는 상황이었다.

오죽했으면 청도 조차지를 내어줬던 명분이, 산동 기병대를 조선이 재건해준다는 것 아니었나.

이렇게 물꼬를 틀고 나자 조선과의 말 무역은 살짝 숨통이 트인 상황이었는데, 요즘엔 슬슬 거래량이 늘어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젠 조선도 목장경영에 완숙해졌고, 다른 나라에 주기적으로 말을 수출해도 될 정도로 사육두수가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그 뿐이겠나? 비단길이 부활한 걸 알지 않나.”

“으음...”

나아가 비단길을 언급하자, 하남 호족인 둘조차도 눈을 반짝였다.

이건 전에 없던 물건이자 시장이었기에, 중국 내부의 서방물산시장을 놓고 온 연맹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요동상인이 창주에서 서방물건을 사오곤 있지만, 조선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 청도에서 조선이 직접 파는 가격이, 요동상인이 파는 가격보다 더 쌀 정도인데... 더 말 할 필요가 있겠나.”

“...”

창주는 자유무역도시이기 때문에, 요동상인도 관세만 낸다면 얼마든지 서방물산을 살 수가 있었다.

문제는 창주와 요동반도까지의 운송거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조선에 비해서 마냥 가격우위를 점할 수가 없었지.

결국 여러모로 요동보단 조선이 훨씬 중요해지고 있었고, 앞으로도 이 관계가 전환될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듯, 이렇게 산동이 요동을 지원해 준 세월이 얼마인가.

이제 슬슬 지칠 때가 됐고, 연맹체제가 굳어지면서 더욱더 그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허면...?”

추평과 형홍은 눈빛을 마주치고선 다시금 슬그머니 운을 띄웠고, 영승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만약 조선이 요동과 전쟁을 벌인다면... 우리가 조선과 손잡고 개입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요동의 손을 들어주며 반대하지도 않을 걸세.”

“그렇군.”

이런 결론이 나올 줄 예상했는지, 하남호족 대표인 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동반도를 조선이 차지하면 산동과 너무 가까워지겠지만... 사실 이제와선 의미가 없지 않나?”

“그렇겠지.”

계속해서 씁쓸한 말투로 말을 내뱉는 영승보를 보며, 둘 또한 동의를 하고 말았다.

조선은 이미 서해를 장악한지 오래다.

조선전함과 무역선이 서해가 자기 앞마당인 것 마냥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고, 그들이 순찰을 도는 탓에 산동을 비롯한 모든 연맹이 걱정 없이 배를 띄워 무역에 열중하고 있다.

이미 재해권은 조선에게 넘어간 지 오래인데, 이제 와서 요동반도가 조선의 것이 된다고 우려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

조선해군을 경계하고 대비하려고 했다면, 진작 그렇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군비를 누가 대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장혁진은 감히 아무도 꺼내지 않는 이야기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연맹체제가 만들어지고 굳혀졌다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완전히 한 몸인 건 절대 아니다.

호족가문끼리 무력으로 싸우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시장을 놓고 돈으로 싸우는 일이 없어진 건 아니지.

특히나 다른 연맹과는 물밑에서 치열하게 돈으로 싸우고 있고.

이 판국에 수군이나 해군을 키우는 일에, 내륙호족들이 동의를 할까? “조선을 경계한다는 건 핑계고, 어쩌면 해안가 호족들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 마련이지.

‘군사 문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제쳐 두고 본다면...’

무역에 집중하는 해안도시를 대변하는 탓에, 장혁진은 돈 문제를 특히 신경 쓰는 모양이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요동이 조선땅이 되는 건 우리에게 더욱 이득이 될 걸세.”

“허...?”

“...!?”

꽤나 과격한 발언에, 하남호족인 둘은 슬쩍 눈을 크게 떴다.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는 지척 아닌가. 만약 창주와 요동이 곧장 이어진다면, 우리로선 청도 조차지뿐만 아니라 요동의 금주 무역항에서 조선물산과 서방물산을 살 수 있겠지.”

“그럼 의주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먹히겠군.”

“그야 이를 말인가.”

장혁진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거창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시대에 수입품이 비싼 이유는 운송비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

똑같은 조선물건에 똑같은 관세를 낸다고 한들, 청도 조차지에서 파는 가격과 의주에서 파는 가격은 차이가 있지 않나.

이 때문에 조차지에서 모든 물산을 살 수 있는데도, 굳이 조선본토의 무역항으로 배를 띄우는 거고.

만약 배타고 하루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는 요동반도에 조선 무역항이 생긴다면, 운송비가 줄어든 만큼 이득이 늘어나는 셈.

이걸 싫어할 리가 없다.

‘이렇게 우리에게 말을 할 정도면... 확실히 마음을 정한 모양이야.’

하남호족인 추평과 형홍은 눈빛으로 속마음을 교환했다.

사실 하남은 닿을 수 없는 요동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작게나마 관심을 가졌던 건 북평부 때문.

그런데 만약 요동을 조선이 차지한다고 하면, 북평부가 남쪽을 신경 쓸 여력이 없지 않겠나?

하남 입장에서도 요동을 조선에 넘겨주는 건 나쁘지 않다는 게, 이미 내부회의를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헌데 산동도 우리와 같은 심정일 줄이야.’

추평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는 장혁진과 영승보를 보며, 속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 중국을 생각하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이 시대의 중국은 각 성별로 따로 노는 경향이 워낙 강했다.

땅이 너무 넓고, 사람도 너무 많으니까.

명나라가 있던 시절조차도 같은 글을 쓰는 다른 나라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각 성별로 연맹이 만들어진 지금은 오죽하겠나.

이렇듯 중국을 억지로 하나로 뭉쳐놨던 명조차 금세 망해버렸기에, 한족들 중에서 요동땅을 중국본토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적었다.

그랬기에 “요동? 거긴 본래 우리땅도 아닌데, 아까울 게 있나?”라는 게, 하남호족들의 솔직한 마음이었지.

“허면 문제는 요동이 아니라 북평부겠군.”

“...”

장혁진과 영승보는 굳이 답하지 않았지만, 동의의 뜻을 담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남과 산동이 사이가 돈독해진 건, 공통의 적. 북평부가 있었기 때문.

그런 북평부의 핵심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산해관을 조선이 두들기고 있는 건, 분명 요주의 문제였다.

“조선이 만약 북평부를 친다면...”

“손을 보태는 게 이득이 맞긴 한데...”

“여력이 있을지 모르겠군. 조선이 어떤 요구를 할지도 모르고 말이야.”

“음.”

다들 한마디씩 해보지만,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밀사가 오고난 후. 이미 내부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거론해봤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북평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건 환영인데, 산동과 하남이 어디까지 개입하는 게 이득일지는 확실치 않았기 때문.

“하남은 군을 일으킬 여력이 있나?”

“솔직히 쉽진 않네. 섬서몽골의 서안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니까.”

“음...”

“그나마 와라(오이라트)의 사천공략도 실패해서, 얼추 균형이 맞춰진 셈이지만 말일세. 만약 사천이 떨어졌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했겠지.”

“끄응...”

모두는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서쪽 사정을 언급하며,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끙끙거렸다.

비단길 무역은 모두에게 이득이 됐으니, 당연히 섬서몽골과 오이라트에게도 이득이 됐다.

그들 또한 색목인 노예를 데려와 섬서와 한중에 박아 넣어 백성으로 만들었으니까.

그 외에 중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물산을, 조선 및 서방을 통해 구입하게 됐지. 물론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예전에는 아예 구입할 수도 없었으니까.

이렇게 지난 세월 힘을 키운 두 세력은 다시금 중국내륙을 향해 힘을 쏟았으나...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들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사천에는 조선이 대리국에게 판 화포가 몰래 들어가지 않았나.

이번 승리에 대활약을 한 주인공이 바로 조선화포였다.

“서안(장안)의 경우에도 잘 막아내긴 했는데... 산서 놈들이 제대로 지원을 안 하더군. 우리와 호광만 죽을 맛이지.”

“그 덕에 서안이 하남과 호광연맹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그걸 생각하면 마냥 손해만 본 건 아닐 걸세.”

“...”

이번엔 추평과 홍형이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절래절래 내젓고 말았다.

서안(장안)은 섬서성에 속해 있지만, 섬서의 대부분이 몽골의 손에 떨어지고 난 후.

어느 연맹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외롭게 섬서몽골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고대시절부터 중국왕조의 근본수도이자 중심지였으니, 그 도시와 인근 위성도시가 얼마나 거대할까.

그 저력을 바탕으로, 십여년 넘게 몽골의 중국본토 침공을 막는 최선봉이자 최후의 방어선이 되어주고 있었다.

여기가 뚫리면 위로는 산서, 동으로는 하남, 남으로는 호광이 전부 뚫리는 터라... 세 연맹 모두가 힘을 합쳐 서안을 지원해주고 있었지.

문제는 산서의 지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

“산서가 힘을 못 쓰는 건, 정치적인 문제 때문인가? 아니면 진짜로 여력이 없는 건가?”

“둘 모두... 맞지 않겠나? 새롭게 생겨난 연맹을 몽골남부연맹이라 부른다지?”

“큭. 맞네.”

모두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비웃으면서도, 한 편으론 속에 돌멩이가 얹힌 것 마냥 답답해졌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싸움질 밖에 모르는 몽골족이 자신들처럼 연맹을 만든 건 퍽 같잖게 보이지만... 그걸 만들어낸 게 조선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

“그들이 산서를 뜯어먹은 지 벌써 십년이 넘었고, 지금은 그 세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온 모양이네. 몽골남부연맹이 밀려올 때마다 북평부와 산서가 죽는 소리를 내는 게, 우리에게까지 들렸으니까.”

“거참...”

“후...”

조선이 거용관을 무너뜨리자 북평부는 몽골남부연맹의 놀이터가 됐고, 산서 북부는 예전부터 그래왔다.

헌데 부족끼리 치고 박고하던 이들이, 비단길 연합에 속하게 되어 그 단물을 빨아먹었고.

조선의 조언을 받아 연맹이라는 나라꼴을 만들어, 하나로 뭉친 힘을 산서와 북평부에 쏟아냈다.

전보다 피해가 훨씬 심한 건 당연.

그냥 약탈과 납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산서백성들을 데려가 남부연맹의 백성들로 탈바꿈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산서북부에 눌러 앉아 정착지와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북평부로 들어가는 지원이 줄어들기도 했겠군.”

“그럴 걸세.”

“산서놈들이 아니꼽긴 하지만, 망하게 놔둘 수도 없고... 애매한 상황이지. 서안 공방전에서 큰 활약을 한 게, 바로 북평부에서 받아온 화포 아닌가.”

성벽 위에서 쏴대는 화포야 말로 최고의 수성수단이니... 화포가 없는 섬서몽골로서는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걸 보며,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을 거다.

“후...”

“으음...”

모두는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고 말았다.

과거. 명초기에 개중법을 통해 산서상인은 큰 부와 세력을 이룰 수 있었다.

개중법은 국경지대에 필요한 군량 및 보급품을 상인을 통해 옮기게 하는 제도였는데, 국경지대와 딱 붙어 있는 산서상인이 당연히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산서에는 삼국지 시절에 하동이라 불리던 유명한 소금산지가 있지 않나. 이곳의 소금을 팔아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염상이 있었고,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이런 세월을 거쳐 산서상인은 훗날 진상晉商이라 불리는 전국구상인으로 발전하게 되지.

물론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 됐지만, 그럼에도 산서상인의 힘은 녹녹치 않았다.

오래된 경쟁자인 하남과 산동상인들이 산서상인을 아니꼽게 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더욱이 국경지대에 군수물자를 옮기던 산서상인은 당연히 동북방을 책임지던 연왕부와 연이 깊었고, 이건 북평부가 들어선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니 하남, 산동상인들이 골치가 아플 수밖에.

북평부의 힘을 줄이기 위해선 산서상인의 힘이 줄어들면 좋겠는데, 산서상인의 힘이 줄어들면 서안(장안)의 방어가 힘들어진다.

“산서가 북평부와 관계를 끊으면 좋겠는데...”

“그게 되겠나?”

“그렇겠지...”

다들 헛된 생각을 했다는 듯, 말을 꺼내기 무섭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산서는 광물자원, 지역특산물 등은 많지만 토지가 척박해 곡물과 일상용품이 부족한 곳.

이걸 채워주는 곳이 북평부였는데, 북평부는 어느 곳과도 거래를 안하지 않나.

북평부는 결코 산서를 놔줄 수 없었으니... 산서 입장에선 북평부 아니면 하남,호광.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과거를 생각하면 북평부 쪽으로 기우는 건 당연한 말이고.

“만약 조선이 북평부를 건드릴 생각이라면...”

“...?”

“몽골남부연맹도 움직일 수 있지 않겠나?”

“흐음.”

“어쩌면...”

‘마냥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나.’

모두는 불연 듯 떠오른 생각에, 작게 몸을 떨고 말았다.

원래 역사에서나 옛 명나라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조선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안다고 한들 변방의 소국이라고 생각했다.

운석핵꿀밤이 떨어지기 전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허나 명이 망한지 벌써 30년 넘게 흘렀고, 보이지도 않던 조선은 본격적으로 중국에 존재감을 새겨 넣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