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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448화 (448/538)

448. 챕터56. 두드리다 (13)

옛 금나라를 세웠던 여진을 흡수해버렸으며, 한족들이 역사상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던 바다를 통한 중국원정을 성공했고, 비단길을 부활시켜 몽골을 복속시켰다.

물론 비단길 연합은 이들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조선의 영향력이 지대한 건 맞는 말이었지.

이런 과정을 겪으며 시간이 흘러, 한족들 또한 세대가 변한 만큼... 조선이라는 나라는 확실히 각인됐고, 다른 건 몰라도 군사력만큼은 막강한 나라인 게 증명된 상태.

몽골남부연맹을 통해 뭔가 큰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마냥 허황된 헛소리만은 아닌 거지.

‘특히나 조선이 지불할 대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

산서를 집어삼키는 건 몽골남부연맹에게도 숙원과 같은 사업일 테니, 조선이 북평부를 쳐서 지원을 못하게 막는 것만으로도 몽골남부연맹이 끼어들 여지는 충분했다.

“다만... 북부는 몰라도 남부까지 장악하는 건 우려가 되는 군.”

“맞네. 전선을 양쪽으로 늘리는 건 우리에게도 골치 아픈 일이니까.”

“특히나 서안이 어느 한쪽에게 들어가는 건 더욱 그렇겠지.”

다들 생각할수록 골치가 아파졌다.

산서가 힘이 빠지는 건 좋은데, 완전히 넘어가면 또 안 된다.

서안은 안 그래도 서쪽의 섬서몽골을 막고 있는데, 북쪽에서 몽골남부연맹이 밀고 들어오면... 결국 서안을 지키기 위해 모두의 지원이 더 늘어나야 할 테니까.

“서안을 두고 둘이 대치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도 있을까?”

“글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야. 전에는 다들 칸을 자청하던 이들이었으니까.”

“흐음.”

같은 몽골족이라고 해서 쉽게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착각.

서로 집어삼키기 위해 칼을 갈면 모를까, 절대 평화롭게 합쳐질 수 없다. 이건 호족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

다만 변수가 있다.

“몽골남부연맹은 알게 모르게 조선의 입김이 닿아 있으니... 조선의 의중이 중요하겠군?”

“그렇지 않겠나?”

“서로 데면데면하게 영역을 넓히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싶네. 섬서몽골과 몽골남부연맹 모두 비단길로 인해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산서에서의 충돌은 이걸 포기할 만큼 가치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럴까?”

다들 미심쩍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산서도 적잖게 큰 땅에, 적잖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여길 집어삼키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으니까.

“최악을 가정하면 서안 일대만 빼고 섬서와 산서가 그들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거군.”

“그럼 서안은 어느 쪽으로 들어올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걸세.”

“...”

영승보의 말에, 모두는 눈을 마주치며 속마음을 숨겼다.

서안(장안)이 온갖 왕조의 수도였던 만큼, 그곳 토박이 호족들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곳이 적지 않다.

그들의 부와 인맥 또한 알게 모르게 다른 연맹에 퍼져 있는 것도 사실.

서안을 지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도 물론 크지만, 반대로 연맹의 힘이 꽤 강해지는 것도 사실이니... 서안이 산서, 하남, 호광. 어느 쪽과 하나가 될지는 꽤 중요한 문제였다.

“다만 조선 입장에선 지금처럼 평화롭게 비단길이 유지되길 원하지 않겠나? 섬서몽골과 몽골남부연맹이 서안을 놓고 전쟁을 벌이는 걸 결코 원치 않을 걸세.”

추평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끝맺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들,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탓에... 왠지 모르게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

“결국 비단길 때문에 평화가 유지된다는 건데... 조선이 쥐고 있는 주도권이 깨질 일은 없겠지?”

“결코 쉽지 않을 걸세. 섬서몽골이 아무리 힘을 써봐야, 섬서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맞아. 그들이 내륙본토를 정복하려는 야욕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울 거야.”

“음...”

이미 몇 차례 논의가 되었던 사안이기에, 다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요새 조선산 물건이 유행을 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국산 물건이 최고인 건 변하지 않았다.

섬서도 중국의 일부였으니... 여기서도 중국산 물건을 생산할 수 있고, 지리적으로 보면 서방과 훨씬 가까운 쪽은 섬서인 바.

섬서몽골은 체급과 생산력을 키워서, 비단길에 섬서산 물건을 실어 올려 부를 축적하고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힘쓰고 있었다.

물론 향신료를 비롯한 남방물산을 취급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 외의 품목에선 점유율을 높여갈 순 있으니까.

“다들 이건 알고 있지 않나?”

“...”

장혁진의 물음에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섬서몽골은 이들의 명백한 주적이니, 그들의 사정을 모를 리가 만무.

특히나 관료가 아닌 상인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더욱더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섬서가 아무리 기를 써도 내륙에 비해 척박한 게 사실. 그들이 조선을 재치고 비단길의 주도권을 가지려면, 내륙의 물산이 필요하니... 지금의 기조를 포기해야만 할 걸세.”

비단길을 통해 신나게 물건을 내다팔면 중국연맹 모두가 좋겠지만, 그렇게 얻은 부로 자신들을 공격할 게 뻔한데... 누가 섬서몽골과 거래하려고 하겠나.

“하지만 요샌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 않나? 저들이 내륙에 들어온 지도 벌써 십년이 훌쩍 넘었네. 숨을 가다듬고 다시금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했으니, 이젠 진짜로 내치에 치중할지 누가 알겠나?”

“만약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면... 적잖게 혼란이 일걸세. 속을 살피면 섬서몽골이라고 해도, 다 같은 패거리가 아니니까.”

“음.”

이 또한 아는 사정인터라, 냉큼 고개가 끄덕여졌다.

섬서몽골의 뿌리는 명에게 밀려 초원으로 도망친 북원잔당과 원나라 시절에도 초원에 살던 몽골족이다.

문제는 같은 몽골족이라고 해도 북원잔당은 중국본토에 살면서 한족화된 이들이고, 초원부족은 유목민 그 자체라는 점.

지금까지야 내륙침공이라는 목적으로 어떻게든 하나로 뭉쳐놨는데, 앞으로 “이제 약탈은 그만하고 이 땅에 완전히 정착한다.”라고 기조를 바꾸면 당연히 혼란이 일어나기 마련.

초지와 농지를 놓고 균형을 맞추는 건, 조선도 심혈을 기울여야 했던 문제 아닌가. 섬서몽골에서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는데, 어중간하게 섞여 있는 유목문화와 농경문화가 혼합되어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거다.

“안 그런가?”

“글쎄... 생각보다 쉽게 안 걸릴 수도 있네. 과거 원나라의 역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그걸 그대로 따라가면 되지 않겠나?”

“맞네. 게다가 북원잔당이라면 원이 망한 이유 또한 뼈저리게 알고 있을 터, 저들이 아무리 몽골족이라고 해도 또 다시 실패한 전철을 밟지는 않을 걸세.”

장혁진의 말에 추평과 형홍은 반문을 던졌다.

하남은 섬서와 더 가깝게 붙어 있으니, 섬서 사정을 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 섬서몽골로선, 실패했던 원의 체제를 그대로 따르진 않겠지. 게다가 몽골남부연맹이라는 따라할 만한 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오히려 이걸 받아들인다면, 쉽게 안정될 지도 모르지.”

“나도 그렇게 보네. 지금 섬서몽골은 안 그래도 부족별로 뭉친 몽골귀족들이 각 지역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연맹의 형태로 발전하는 게 더 쉽고 합리적이겠지.”

“음...”

‘하긴...’

장혁진은 둘을 힐끔 보면서, 속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중국연맹의 호족들이 꿈꾸는 건, 자신들의 권력과 영화가 영세토록 이어지길 바라는 거다. 연맹을 순식간에 만들어낸 건, 이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됐기 때문.

그러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섬서몽골의 모습이 어찌 보면 그들이 바라던 모습 아닌가. 이들은 호족이 아닌 귀족이 되고 싶어 하니까.

결국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지고 있던 거지.

“그래서 기조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거군?”

“그렇지. 아무리 유목민족이라고 해도, 정착을 시작하면 정주민족으로 변할 수밖에 없네. 과거 원나라 시절 대도에 살던 몽골족을 생각해보게. 그들은 민족만 몽골족이었지, 우리 한족문화와 체제를 받아들였지 않나.”

“음...”

역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사실이라서, 반문을 할 수가 없었다.

유목민족이라고 해서 유목생활이 좋아서 한 게 아니다. 척박한 땅에 살려면 그것 밖에 없으니까 그랬던 것.

더불어 그들이 중국을 매번 약탈만 하고 초원으로 돌아갔던 건, 초원이 좋아서가 아니라 점령할 힘이 부족해서였지.

헌데 섬서를 차지한 이상 유목민처럼 살 필요가 없어졌고, 체급과 인구수를 늘리기 위해선 유목체제로는 한계가 있지 않나.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고, 결국 몽골귀족은 중국호족처럼 변해갈 게 분명했다.

“게다가 섬서몽골은 작게 보면 수십개의 귀족들로, 크게 보면 둘로 쪼개져 있지 않나.”

“징글징글한 놈들이 아직도 살아 있지.”

“...”

모두는 치를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역사와 완전히 비틀어진 지금. 섬서몽골은 본아실리(부냐시리), 아로태(아룩타이)일파. 둘로 쪼개져 있다.

둘 다 칸을 자처하던 자들이고, 휘하에 부족, 귀족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상황.

“섬서를 차지하기 위해 힘을 합쳤던 둘은 그대로 섬서에 눌러 앉았고, 서안을 점령하기 위해서 지금껏 밀월을 함께 했었네. 헌데 결국은 서안을 점령하지 못했고, 둘 모두 오늘내일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

“빨리 죽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큭.”

모두는 피식 웃으며 악담을 퍼부어댔다.

이 둘 때문에 피 같은 돈을 쏟아 붓고 있으니, 좋게 봐줄 수가 없다.

“자네 말은... 앞으로 한바탕 섬서가 시끄러워질 거라는 거군?”

“그렇지 않겠나?”

추평은 히죽 웃으며 다시금 어깨를 으쓱거렸다.

서로의 힘이 비등하고, 영역도 비슷하고, 각 영지관리도 해야 하니, 죽기 살기로 싸우진 않겠지만... 어찌됐건 본아실리와 아로태가 죽으면 후계를 놓고 소란이 벌어지지 않겠나.

“그럼 결론은... 동북방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서쪽으로 퍼지진 않을 거라는 거군? 비단길도 흔들리지 않을 거고?”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네.”

“허면 우리가 뭘 얻어낼 수 있냐는 건데...”

섬서몽골과 비단길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 이제 조선의 문제에만 집중하면 그만이라는 뜻.

특히나 지금처럼 조선이 몰래 연맹대표를 불러들였다면, 그만큼 심각한 사안을 논의할 것 아닌가. 그럼 진짜로 밀고 당기는 거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자네들이 바라는 건?”

“다른 게 있겠나? 배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장혁진은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갑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무역상인이 가장 탐나는 건 다름 아닌 배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보면, 매번 조선의 무역선을 볼 때마다 배가 아플 지경이다.

“이 배를 쾌선이라 부른다지? 이렇게 빠르고 큰데, 조선에서 만든 무역선 중에선 가장 작은 크기라고 하더군.”

쾌선은 중국에서 흔히 쓰는 무역선과 비슷한 길이를 가지고 있지만, 크기가 큰 탓에 적재량은 훨씬 많았다. 더불어 선체의 형태도 다르고 돛도 많아서, 속도는 비교할 수도 없다.

쾌선 한척이 오가면서 거래할 수 있는 양이, 중국무역선 2,3척을 감당하고도 남았으니... 욕심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하지.

“가장 작은 쾌선조차 이 정도인데, 진짜 무역선은 어떻겠나?”

못해도 5,6배의 효율이 나올 테니, 천금을 줘서라도 사고 싶은 게 모든 중국무역상인들의 속마음이었다.

“쉽지 않을 걸세. 조차지를 오가는 배는 전부 관선일세. 조선 내부에도 풀지 않는 물건을 우리에게 팔겠나?”

“...”

장혁진은 장밋빛 전망을 늘어봤지만, 추평은 단박에 꺾어버렸다.

조선의 배는 비록 관선은 아니지만, 관과 해군의 요구가 워낙 많아서 그 수요를 다 못 맞추고 있는 상태.

잉여수량이 남아야 팔든지 말든지 할 텐데, 조선민간에도 안파는 물건을 중국호족이 사는 건 불가능할 거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렇지 않겠나? 나라도 그러겠네.”

“음...”

조선이 남방으로 꾸준히 진출하는 걸 모를 리가 없고, 당연히 배의 수요도 꾸준히 증가할 게 뻔하지 않나.

조선의 배를 구입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을 거다.

‘따라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도 없고... 골치 아프게 됐어.’

장혁진은 그간 허공에 날려버린 연구비를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쓴물을 되삼켰다.

저렇게 좋은 무역선을 욕심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십여년전에 조선전함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장인을 긁어모아 조선배를 따라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조차지에 드나드는 조선함선을 꾸준히 살펴봤지만, 그렇게 본다고 해서 배를 만들 수 있었으면 고생을 왜 했겠나.

재료와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데도, 신형전함 2호기, 3호기를 만드는데 3,4년씩 걸렸으니... 기존의 중국배와 완전히 다른 범선을 눈대중으로 대충 때려보고 만드는 건 불가능했지.

“허면 자네들은?”

괘씸한 마음에 장혁진은 퉁명스럽게 추평에게 되물었다.

“우리야 뭐... 관세특혜나 특산품을 더 얻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몇몇은 서책에 관심을 보이더군.”

“책 말인가?”

장혁진은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돼서, 되묻고 말았다.

지금껏 조선은 중국의 온갖 서적을 다 빨아먹었는데, 반대로 조선에서 외부로 나오는 서적은 없다시피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한족들로서는, 굳이 조선서적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지.

“조선에 기물이 많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봐야 우리와 비교해서 뭐 얼마나 차이 나겠나. 사실 그런 것보다는 자본유학이라는 게 궁금해지더군.”

“음...”

씁쓸하게 웃는 추평의 말에 장혁진 또한 표정이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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