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 챕터57. 진군하다 (6)
“조용하군. 특전대가 일을 잘하고 있는 건가?”
“그도 그렇지만, 야간에 순찰을 잘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초소의 위치도 다 알고 있었을 테니...”
함장과 중대장은 어둠에 잠겨서 보이지도 않는 강 저편을 바라봤다.
개원이 무역도시라지만, 여느 도시가 그렇듯 도시 주변으로 경작지가 존재했고, 그 경작지를 일구는 마을이 있었다.
야음을 틈타서 조심스럽게 접근한 특전대는 강가를 따라 내려오면서, 요동군의 초소를 점령하고 번을 서고 있는 요동군을 정리하는 중.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딱히 소음이나 부산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걸로 보아, 은밀한 암살은 착착 진행되고 있나 보다.
주변이 워낙 조용하다보니, 수송선이 물살을 헤치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을 정도.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조용히 무장을 확인하고 있는 모든 병사들의 손이 더욱더 조심스러워졌다.
이윽고 목적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
아스라이 어둠에 파묻혀 유독 짙어 보였던 개원성이 슬슬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 보이는가?”
“보이는군요.”
함장이 목소리를 잔뜩 줄여 어딘가를 가리키자, 옆에 있던 중대장 또한 망원경을 들고 불빛을 살폈다.
어두운 밤에 불빛이 반딧불처럼 모여서 반짝이고 있었고, 그 빛깔이 붉고 푸르니 못 알아보는 게 더 어려웠다.
“요동상인들이 말을 잘 들었나 보군.”
“그야 자기들도 살 길을 찾아야 하니 당연히 그랬겠지만... 함정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라지만... 그들 중에서 또 다시 변절자가 나오겠나? 아군이 움직인 걸 알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요동이 최후를 맞이할 거라는 걸 짐작했을 텐데?”
“음...”
중대장은 불안한 질문을 던졌건만, 함장은 반문하며 가볍게 떨쳐냈다.
상인첩자들이 배신을 하고자 한들, 그 수혜를 입으려면 어떻게든 요동이 살아남고 나서의 일인데... 과연 그럴 가능성이 몇이나 되겠나.
정세를 읽을 줄 아는 상인이라면, 극한의 가능성을 놓고 모험을 하는 거다.
게다가 설령 요양과 심양은 어찌저찌 버텨낼 수 있어도, 과연 개원이 버텨낼 수 있을까? 이건 불가능할 거라고 판단했을 테니... 개원 토박이 상인들이 배반하는 건 더욱 어렵지 않을까.
과연 함장의 생각이 맞았는지, 신형조운선이 개원포구 코앞까지 오는 와중에도 이상한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포구는 낮처럼 환할 정도로 등롱을 잔뜩 피우고 있어서, 저쪽이 훤히 다보였는데... 순찰을 도는 개원군병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성벽은...?”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성벽도 딱히 순찰을 돌지 않는 것 같군요. 이따금씩 불빛이 스치고 지나가는 군요.”
중대장은 함장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손을 들어 저기 어둠속 한 지점을 짚었다.
과연 그의 말이 맞는지, 작은 불꽃이 튀듯 살짝 어둠이 밀려났다 되돌아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건 분명 개원성 성벽 위에 설치해 놓은 나무구조물 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일 테다.
“첩보대로 개원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군? 옛 명나라 시절에 보수가 된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명이 망하고 나서 쇠락했으니까요. 그만큼 개원에 사는 사람과 주둔하는 병력도 줄어들지 않았겠습니까. 성벽을 증축할 이유도 없고 유지할 필요도 없었으니... 딱히 관리를 열심히 하진 않았을 겁니다.”
과거 조선에서도 성벽증축은 백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노역이었는데, 요동백성들이라고 뭐 다르겠나.
중국의 평지성이 아무리 벽돌로 만들어서 그나마 쉽다곤 해도, 안 그래도 재정이 쪼들리는 요동으로선 성벽보수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거다.
더불어 개원은 무려 고구려와 발해 시절에도 도시가 위치했던 곳이다.
물론 수백년이 흐르면서 그 흔적은 삭았고, 명이 등장하면서 옛 성벽과 터를 재활용해서 성벽을 만들어놨으니... 오히려 나중에 만들어졌음에도, 그리 크지도 않고 최신도 아니었던 거지.
“그래도 개원이 요충지인 건 변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아국이 북방으로 진출하면서, 그 중요도가 줄어든 것 아니겠습니까. 요양파가 힘이 강해진 것도 그러한 이유일 때문일 거고요.”
“그렇겠지...”
함장은 동의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원은 북방의 대표적인 무역도시인 동시에,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원래 역사에선 개원이 철령위를 포함한, 요동 북부 수십개의 변경요새를 전부 관활했었다. 수로를 이용하든, 육로를 이용하든, 개원은 동서남북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사통팔달의 중심지였으니까.
허나 북,동의 길이 막힌 이상, 당연히 중요성이 떨어질 수밖에.
“그런 걸 떠나서, 강이 이렇게 도시를 관통하면 성벽을 쌓기도 애매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덕분에 우리야 편해졌지만 말이야.”
“그렇죠.”
중대장과 함장은 이제 윤곽이 완전히 보이는 성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지간한 강은 무조건 수로로 사용되니, 다리를 올리듯 강물 위로 성벽을 세울 수가 없다. 더불어 청하강처럼 강폭이 넓은 곳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지.
해서 강가를 따라 수벽과 흡사한 방벽을 올려, 상륙을 저지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여긴 무역이 너무 활발한 곳이다.
개원에서 출발해 심양과 요양으로 향하는 배가 매일 같이 출항하다보니, 포구 또한 방어에 중점을 둔 것보다 수로운송에 효율적인 구조를 하고 있었다.
더불어 개원성이 세워졌을 때는 몽골과 여진의 침입을 격퇴하는 게 최우선이었으니, 천혜의 장애물이라 할 수 있는 청하강은 신경을 덜 썼지.
설마 역사가 꼬이고 꼬여서, 배에 능숙한 조선군이 강을 타고 공격할 줄 예상이나 했겠는가.
뭐가 됐건 조선군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저기. 올라서는군요.”
“음...”
이제 완전히 포구가 눈에 들어오자, 둘은 다시금 망원경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수송선 앞에는 침수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물 표면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작고 낮은 나룻배가 앞서나가고 있었다.
세 명 정도 타면 꽉 찰 정도로 작은 나룻배 위엔, 어둠에 파묻혀 납작 엎드려 있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벽과 바짝 붙어 있는 포구 입구에 도착하기 무섭게 몸을 일으켰다.
소리도 내지 않고 고양이처럼 나룻배를 박차고 몸을 날린 이들은, 순식간에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을 점령하고 미리 피워놓은 등롱을 피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둘 모두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먹을 묻혀 반사광까지 줄인 전투도끼와 양손검이 조용히 춤을 추고 있을 거고, 야습을 당할 거라고 상상도 못한 요동군병들은 단발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푹푹 쓰러지고 있을 거다.
이윽고 포구 초입이 완전히 정리되자.
“준비!”
“...!”
중대장이 조용히 모두를 일깨우자, 이때만을 기다려 온 특전대원들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전의를 끌어올렸다.
쿠쿵... 노도 젓지 않아서 관성으로 흘러온 수송선은 미끄러지듯 부두에 몸을 비비며 조용히 멈춰 섰고, 이내 곧 순식간에 배다리가 내려졌다.
“보중하게.”
“함장님도.”
중대장은 가볍게 경례를 나누고선, 부하들을 데리고 조용히 하지만 재빠르게 배다리를 타고 부두로 내려갔다.
요란한 소음과 외침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조선군은 기계처럼 각자 할 일을 찾아 움직였고.
쿠쿵... 가벼운 충돌과 함께 선체가 가볍게 요동쳤다.
뒤따라온 수송선은 부두에 바짝 붙어 멈춰 있던 수송선에 머리를 부딪쳤고, 배가 멈춰서기 무섭게 뱃전을 꽉 붙들고 있던 선원들의 손이 춤을 추기 시작.
해군선원들은 밧줄을 던져 배와 배를 서로 묶어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고, 미리 준비해 둔 널빤지가 갑판 사이에 놓여 완전히 하나로 합쳐졌다.
“충성.”
“충성.”
앞장서서 널빤지를 넘어온 또 다른 중대장이, 함장을 알아보고선 통아를 든 손으로 가볍게 경례를 던졌다.
두두. 타탁. 어느 누구 하나 숨소리도 내지 않고, 발걸음만 재빨리 놀려댔다.
함장의 경례를 받기도 전에 중대장은 갑판을 지나쳐 배다리를 타고 포구로 내려갔고, 그 뒤를 특전대원들이 오리새끼마냥 줄줄이 따라갔다.
‘잘 되고 있군. 포구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길 잘했어.’
함장은 자기도 모르게 땀으로 흠뻑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지르고선, 강 건너 저편을 살펴봤다.
이들이 타고 온 신형조운선은 미래의 판옥선을 기본으로 해서 뻥튀기한 물건. 바다를 노니는 중국무역선보다도 훨씬 큰 배였다.
당연히 요동수로를 오르내리는 요동배는 중국무역선보다 크기가 작았으니... 부두가 너무 작고 낮아서, 정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마 일제히 포구에 상륙하려고 했다가는, 부두에 빼곡하게 묶여 있는 배들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었을 거다.
이래서 그냥 높이가 비슷한 수송선을 직접 연결해 부두에 내리는 작전을 세웠는데, 천만다행으로 딱 알맞게 진행된 것 같았다.
이윽고 강을 중심으로 마주보며 만들어져 있던 양 포구는, 순식간에 신형조운선으로 가득 찼다. 거대한 산맥처럼 하나로 묶인 탓에, 강이 꽉 막혀버릴 정도였지.
그리고 이 배에 타고 있던 특전대대는, 양쪽으로 찢어져 성벽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큭...”
보이지도 않은 뭔가에 맞아 횃불을 들고 있던 동료가 쓰러지자.
“뭔...? 컥!”
화들짝 놀란 병사가 주위를 둘러보자, 퍼퍼퍽! 어둠속에서 날아온 화살이 그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쓰러진 병사의 입에 박힌 짧은 편전이 작게 꼬리를 흔들기 무섭게, 어둠이 조용히 일렁이더니 일단의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짐승을 사냥한 것 마냥 동요도 없이 성큼성큼 시체로 다가왔고, 일단의 일행은 가볍게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성벽에 엄폐.
중대장은 시체에 박힌 편전을 뽑아, 다시 쓸 수 있는지 살피며 중얼거렸다.
“화포군.”
“...”
그는 성벽의 목재구조물 사이로 덩그러니 삐져나와 있는 화포를 재빨리 훑어봤다.
조선의 화포와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한참 미흡한 물건. 역시나 포가는 없어서 나무로 만든 틀에 대충 껴 있었다.
“요동군은 그래도 아군을 옆에서 지켜봤을 텐데... 포가를 비슷하게도 따라 만들지 못한 건가?”
“여러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포가는 겉에서 보면 그저 마차바퀴를 붙여 놓은 것처럼 생겼으니까요.”
“음.”
부하가 살짝 웃음을 섞자, 중대장 또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별거 없어 보이는 야전화포에 얼마나 복잡한 부속품이 들어가는지, 직접 보지 못하면 상상도 못 할 거다.
더욱이 생전 처음 보는 자잘한 부품이 내구성을 갖추기 위해선, 도검에 맞먹는 질 좋은 강철로 만들어야 했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으니... 심지어 화포병조차도 포가바퀴나 몸체라면 모를까, 다른 부품은 임시로 대체할 수도 없어서 예비부품을 가지고 다녀야 했지.
그러니 요동군은 숫하게 시험을 해다가 결국 실패했을 거고, 다시 원래의 방식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을까.
캉!캉! 중대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 중대원들은 가죽을 감싼 망치머리로 화포의 점화구에 조심스럽게 큰 못을 박아 넣었다.
이건 원래 역사에서도 화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쓰는 방법으로, 이렇게 점화구를 막아놓으면 화포가 멀쩡해도 수리 전에는 써먹을 수가 없다.
화포 2문마저 마저 정리를 한 후에, 그는 조용히 되물었다.
“지금까지 몇이지?”
“요동병은 스물 일곱, 화포는 6문입니다.”
“음...”
중대장은 피 묻은 편전을 쓱쓱 바지에 닦아내고선, 슬쩍 성벽 밑을 살펴봤다.
지금 싸우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릴 정도로 사위는 조용했는데... 이건 오히려 좋은 징조였다.
성벽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중대는 순찰을 도는 요동군병을 조용히 암살하거나, 요란하게 주위를 끌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성문은 얼마 안 남았지?”
“첩보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
그는 다시금 되묻어 확인을 하고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원상인이 첩자가 된지 한참이 흘렀고, 그들은 작전계획과 같은 군사정보를 빼오진 못했어도 개원성에 대한 정보는 빼곡하게 알려왔다.
그 중에선 당연히 개원성의 태세와 순찰루트, 순찰시간, 개원성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과 주둔지 등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지.
그리고 이 정보는 지금까지 딱딱 들어맞았으니, 이대로만 간다면 작전계획대로 성문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자.”
“...”
중대장은 다시금 소리내지 않고, 느긋하게 발을 놀리며 성벽을 밟아나갔다.
서서히 밀려오는 여명을 따라, 조용히 개원성벽에서 피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성벽에 올라타 그대로 질주하고 있는 중대뿐만 아니라, 성벽을 따라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중대 또한 바쁘긴 매한가지.
“첩보가 맞았군. 경계병을 처리하고 바로 친다.”
“예.”
중대장이 작게 속삭이자, 부하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냉큼 손을 놀렸다.
다들 쥐고 있던 활시위를 당기며, 옆에 끼고 있던 담벼락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손을 놓았고.
핑핑핑! 어둠에 파묻혀 빛살처럼 날아간 화살은, 화로를 끼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요동군병들을 한 번에 덮쳤다.
“컥.” “무...” “끄엑.”
뭐라 반응이라도 해볼 성 싶건만, 오십여발이 넘는 화살이 일제히 쏟아졌는데 피할 수가 있나. 맞추기 쉽게 불까지 훤하게 피워놓은 탓에, 빗나간 화살은 단 한발도 없었다.
“...”
중대장이 재깍 수신호를 날리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가 활을 등에 걸치고 장도를 꺼내들었다.
그을음을 묻혀 빛조차 나지 않는 칼날을 앞세워 조용히 걸음을 옮겼고, 삐걱!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낯익은 냄새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약이군.’
중대장을 비롯해 모두는 코를 찡그리며 익숙한 냄새를 몰아냈고.
“쿠... 커컥.”
“끄억.”
겁도 없이 화약통 근처에서, 대충 쭈그리고 앉아 자고 있던 요동군병들의 목에 칼날을 쑤셔 넣었다.
“일곱입니다.”
“화포병이겠군.”
“갑옷을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문밖에서 피어오르는 화로불빛이 안으로 파고 들자, 중대장의 눈에 쓰러진 요동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간 처리했던 이들과 옷차림이 확실히 다른 걸로 보아, 화포병이 맞긴 맞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