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60화 (460/538)

460. 챕터57. 진군하다 (11)

“그러니 만약 그 함대가 전부 요동을 치러 왔다면...”

“이미 금주를 비롯한 요동의 모든 항구가 공격을 받을 거라는 거군?”

“수군만 그렇겠나? 북쪽에선 조선기병도 움직이고 있을 걸세.”

이들이 개고생을 하며 이 요새에 붙들려 있던 것도 조선군의 북상 때문이지 않나.

대체 전쟁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모를 정도로, 대치만 하고 있던 세월이 얼마인가. 오히려 막상 전쟁이 터지자, 당혹할 지경이었다.

이런 심정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요동군병이 마찬가지일 터... 다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두들겨 맞고 있을 거다.

반대로 그만큼 조선군의 진격은 빠르고 강력할 거고 말이다.

‘지금 우리가 얻어맞은 정도만 맞아도, 어지간한 변경요새는 전부 무너질 거다.’

요동반도의 요새들은 천진수군의 약탈을 방비하기 위해, 내륙의 변경요새보다 나름 관리를 잘 해왔던 곳들이다.

물론 요 몇 년새에 요동수군이 감축되면서 관리가 허술해졌지만, 지금까지 해온 게 있으니 내륙의 변경요새보다 사정이 나은 건 분명한 일.

“그러니 결정을 내려야 하네. 본가의 제안을 따르는 게 맞다고 보네.”

“본가란 말이지...”

이혁의 말에 산고방은 다시금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중국은 고래로부터 지금까지, 호족이 없어온 적이 없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중국은 중앙의 통제력이 구석구석까지 강력하게 미칠 수가 없고, 시대가 시대인지라 자력구제가 일상이었으니까.

왕조가 집권할 때마다 정치권력은 잃어버렸어도, 지방과 고향의 암묵적인 권력은 언제나 호족이 쥐고 있었다.

요양파도 그러했는데, 요양파가 북평부의 패잔병이 주축이 되었다지만 오로지 그들만으로 구성되었겠나.

심양파처럼. 요동 토박이들, 명나라 시절에 중국본토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헌데... 맨손으로 대업을 일구는 것보단, 뒷배가 있으면 더 빨리 크는 건 고금의 진리.

요동에 터잡아 지주가 되고 상단을 일굴 정도로 부를 일군 이들은, 당연히 중국본토에서 떵떵거리고 살던 호족집안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명나라 시절에 요동으로 가장 많이 이주한 이들은 산동인들이었지.

즉. 이들 세 사람은 산동연맹의 핵심호족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연태 이가, 연태 장가, 유산 산가의 방계가문 사람이었던 거지.

이렇게 꽤 많은 산동호족의 방계가문이 요동에서 힘을 키우는 걸, 산동이 반대했을 리가 있나.

조선이 북방으로 진출하기 전엔 산동과 요동상계는 북방무역의 한축이 되어 한몸처럼 붙어 있었으니, 그 안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가문과 상단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었다.

본가 입장에선 요동에 방계가문이 자리잡아, 믿고 함께 갈수 있는 거래상대가 생기면 좋은 일. 요동방계 또한 무역의 주거래지역인 산동에 든든한 배경이 있으면 좋은 일 아닌가.

해서 실질적으론 촌수를 따지기엔 너무 먼 남남 같은 집안조차도 어떻게든 찾아내서, 산동본가의 방계로 편입시키는 일이 잦았다.

‘산동의 본가에선 이런 사태를 예측했던 걸까?’

백호장 산고방은 문뜩 이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한편으론 당연할 거라는 생각이 함께 떠올랐다.

그 자신들도 조선이 치냐 마냐를 걱정했으니, 산동도 그에 대비해서 입장을 취해야 했을 테니까.

이들은 꿈에도 몰랐지만... 산동과 하남의 호족대표는 무려 한성으로 직접 와서 이번 전쟁에 대한 개요를 들었고, 암묵적으로 동조하기로 이미 합의를 맺은 상태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활용해서, 알게 모르게 요동가문들을 포섭하고 회유했던 것.

그 효과가 이런 식으로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음... 정말 금주가 공격을 당하고 있을까?”

“분명하네. 금주를 공격할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이 요새를 이렇게 악착같이 물고 늘어질 필요가 있겠나?”

조선군도 이 요새의 가치를 아는데, 당사자들이라고 모를까.

여기가 뚫리면 금주까지 훤히 뚫리는 거고, 몇몇 요새가 인근에 있긴 하지만 이곳처럼 크지도 않고 방비도 제대로 안되어 있다.

“조선에게 붙는다라...”

“...”

“...”

가장 완고했던 산고방이 버들가지처럼 흔들리자, 다들 입을 다물고 그를 주시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 상인가문이 언제부터 돈 대신 다른 걸 추구했나.’

그는 집안 어른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갔다.

조선과의 대치가 점점 길어지자, 요동의 군비가 소모되고 사기가 떨어지는 것 외에 또 다른 역효과가 발생했다.

차라리 시원하게 쾅! 전면전이 터졌으면 이런저런 고민할 틈도 없었을 거다. 당장 죽고 사니 하는 문제가 달려 있는데, 미래를 생각해볼 여유가 있겠나.

허나 대치만 주구장창 하고 있으니... 미래를 놓고 치열하게 주판을 튕기며 궁리할 시간이 주어진 셈.

일반 백성들이라면 가진 게 없으니 고민할 것도 적겠지만, 상인과 지주가문들은 속으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진짜로 조선과 전쟁이 시작되면 싸워야 하나? 다른 살 방도는 없나?”라는 딴마음이 서서히 가슴에 피어올랐다.

여기에 산동본가에서 “굳이 조선과 피 흘리며 싸울 필요 있나? 무얼 위해서? 항복하면 적어도 가문의 재산은 보존할 수 있을 거라 했다. 여차하면 다시 산동으로 돌아오면 되지 않나?”라고 은밀히 연락이 오자, 번민의 불길은 점점 커져만 갔다.

“조선의 약조를 믿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한 약조도 아니지 않나.”

“산동연맹과 한 약조니 적어도 휴지조각처럼 던져버리진 않을 걸세. 그건 조선조정의 위신이 걸린 문제니까.”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을 바에는, 최소한 가산이라도 건지는 게 낫겠지.”

“맞네. 우리만큼 권세를 누리진 못하지만, 조선에도 가문이 있다고 들었네. 기업이라고 했던가? 어차피 요양군부 밑에서 힘도 못 쓰고 지내나, 조선조정의 밑에서 있나... 딱히 달라질 건 없지 않나.”

“음...”

이혁과 장소홍이 속내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자, 산고방은 더욱더 마음이 기울어졌다.

이게 이들만의 뜻이겠나. 이가와 산가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 분명. 자신 집안과 마찬가지로, 혹시나 싶은 사태에 대비해서 가문의 중지衆志를 모아뒀을 거다.

‘우리가 이곳에서 목숨 바쳐 싸운다 한들... 요양파가 과연 알아줄까? 그 탐욕스런 놈들이?’

산고방은 지금도 요새 안전한 곳에 숨어서 “도망을 쳐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 요새 지휘관 유조동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전에도 말했듯, 지금의 요동은 근본이 없는 세력이다.

요동은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래 왕조가문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난의 변 당시. 황제군의 편에서 연거푸 대패해서 빈집이 된 요동을, 연왕부의 내전 패잔병들이 눌러 앉아 지배하고 있는 군벌집단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요동인들만의 주체적인 역사라는 게 없다시피 하니... 고려나 조선이 그러했던 것처럼, “외세의 침입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항전의식이 옅을 수밖에.

더불어 이들 상인집안들이 요양파에 속해 있다지만, 과연 원해서 그랬을까.

창칼을 들이밀고 협박하니 어쩔 수 없이 따랐던 거고, 무역상인으로 활동하기 위해선 수군을 장악한 요양파에 들어가는 게 낫기 때문이었다.

상인집안 출신인 세 사람이 팔자에도 없는 백호장이 된 것 또한, 요양파에 연줄을 만들어서 무역거래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거지... 공명심이나 출세욕에 사로잡혀, 요동군부의 핵심에 올라가기 위해서 군문에 투신한 게 아니지.

결국 가문의 명운을 걸고, 요양파에 목숨 바쳐 충성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좋아. 허면...”

드디어 산고방이 마음을 붙들어 매자, 세 사람의 눈빛은 더욱 스산하게 변해갔다.

“어차피 항복하면 그 뒤는 돌이킬 수 없지. 그럴 바엔 확실히 눈도장을 찍는 게 좋지 않겠나?”

“맞는 말이야. 어차피 이곳이 열리면 금주는 장악된다고 봐도 될 터... 포구와 항구에 요새가 있다지만 조선군을 막아내긴 힘들 걸세. 그럼 이 땅은 이제 조선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뜻이니...”

“요양과 심양이 어찌되건 상관없이, 우리의 안위는 우리의 손을 벗어나 조선에게 달렸다는 말이군?”

“맞네. 그러니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 요양에 있는 자들이 우릴 어찌하지 못할 것 아닌가.”

다들 눈을 마주치며 속마음을 털어놨고, 이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눈빛으로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따르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너희들은...”

한사람 한사람씩 눈을 마주치며 말을 하려다가... 그들의 눈빛에 흐르는 의기를 읽고 입을 다물었다.

‘하긴 이들이야 말로,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지.’

군호에 속한 백성들이라곤 허나, 그 이면에는 상단에 속해서 거친 뱃일을 하던 이들이다. 저 멀리 떨어진 요양군부보다, 가까운 곳에 살면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세 집안과 함께 해왔지.

사병이자 호위병과 크게 다를 게 없는 터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쳤다.

“유조동은 어디 있지?”

“따라오게. 그 빌어먹을 놈은 이 판국에도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으니까. 조선군이 포위를 하지 않았으면, 벌써 성문을 열고 도망쳤을 걸세.”

안 그래도 독전대마냥 도망치는 병사들을 단속하고 있던 산고방은, 이를 부드득 갈며 앞서 나갔다.

오십여명이 넘는 병사들이 우르르 이동하고 있지만, 성내의 어느 누구도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져 난장판이 되었고, 지휘를 해야 할 백호장, 오십인장 총기, 십인장 소기 등이 무수히 나자빠진지 오래.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병사들이 부지기수인터라, 이들의 일탈은 어쩌면 평범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포탄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성내 깊숙한 곳에 위치한 건물로 달려갔고... 이내 곧 한 무리의 병사들과 마주하게 됐다.

세 사람과 함께 온 이들은 먼지투성이 걸인과 다를 바 없는데, 관아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병사들은 티끌도 묻지 않은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쓰벌.”

“...”

병사 중 누군가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자, 모두의 분기가 한꺼번에 치솟았다.

저들은 일반 징집병들을 노비처럼 마구 부려먹던 이들로, 유조동과 함께 요양에서 온 사병들 아닌가.

전에는 그렇게 떵떵거리면서 거들먹거리던 자들이, 정작 지금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 판국에도 저러고 있으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유 장군님은 안에 계신가!”

“이 백호! 성벽을 지켜야할 그대가 어째서 여기 있소? 장 백호와 산 백호는 또 어째서?”

이혁이 앞장서서 외치자, 사병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나서서 손찌검을 하며 목청을 높였다.

“장군께 긴히 드려야 할 말이 있다. 지금 사정을 모르나? 안에 계시는 것 맞나?”

세 사람은 호들갑을 떨며 성벽을 가리켰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지금도 쾅쾅쾅!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

“성벽이 무너지기 직전이네. 유 장군께 명령을 들어야 할 것이야!”

이혁이 다시금 소리치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사병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세 사람은 빠르게 눈을 마주쳤다.

“성... 성문이 뚫렸다고?”

잠시 기다리고 있자 건물 안쪽에서 누군가 뛰어나와 목청을 높였고, 이혁을 비롯한 셋은 재빨리 걸음을 옮겨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예. 장군. 이제 성문이 뚫릴 것 같습니다. 적의 포격이 너무 거세서...”

“아니! 그간 방비를 하지 않고 뭐 했나?”

“풉...”

'티끌만큼의 망설임조차 없애주는군.'

유조동은 끝까지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손가락질을 했고, 이혁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비웃음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의 손에 쥐고 있던 박도가 허공을 갈랐다.

“켁.”

푸헉! 울대에 칼을 맞은 유조동이 쏟아지는 피를 양손으로 막으며 허물어지기 무섭게, 일심동체로 산고방과 장소흥의 박도 또한 춤을 췄다.

전부터 눈에 거슬리던 사병 지휘관의 얼굴에 크게 칼집을 먹여줬고, “우와와!” 기다렸다는 듯이 병사들이 사병들을 향해 창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난전 아닌 난전이 벌어졌지만, 기습을 당하고 또 수적으로도 부족하지 않나.

피해가 있었지만 어찌됐건 유조동과 그의 사병들을 모조리 쓰러뜨릴 수 있었다.

“후...”

“...”

막상 일을 벌이고 나니 가슴이 서늘하게 가라앉았고, 셋은 눈을 마주치며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애써 다독였다.

이젠 진짜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여기서 허우적거리면 아무것도 안 하니만 못한 꼴.

퍽퍽! 이혁은 박도를 도끼처럼 휘둘러, 쓰러진 유조동의 목을 완전히 베어냈다.

“창대에 달아라!”

“백기를 만들어라!”

유조동의 수급을 창대 끝에 꽂아 넣고, 관아를 뒤져 면포를 찾아 얼기설기 묶어 백기 수십개를 완성했다.

“가자!”

“예!”

“와아아!”

살아남은 사병들 또한 이제 이판사판이라는 걸, 확실히 직감하지 않았나. 오히려 더욱더 목청을 높여가며 성벽을 향해 달려 나갔다.

뜬금없이 백기와 함께 웬 머리통이 앞장서서 달려가자, 성내에서 허우적거리던 병사들의 시선이 모두 쏠렸고... 이혁을 비롯한 세 사람은 목청 높여 외쳐댔다.

사태를 인지하고, 딴 생각을 할 틈을 주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하지 않나. 광인처럼 고래고래 외쳐대며, 발이 보이지 않게 성벽을 향해 달려갔다.

“항복한다!”

“성벽에 백기를 걸어라!”

“유조동은 죽었다! 금주 백성들은 모두 항복해라!”

살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니, 두려움을 밀어내려 억지로 더욱더 힘차게 발걸음을 옮겨갔다.

이들은 황망한 눈동자를 숨기지 못하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묻는 병사들을 스치고 지나갔고... 이내 곧 포탄의 비를 뚫고 성벽 위에 백기를 꽂기 시작했다.

금주로 가는 관문이 내분으로 인해 열리고 있을 때.

요동반도를 거쳐 발해만 깊숙한 곳으로 진격한 함대 또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수만 무려 25척. 신형전함 10척, 신형조운선 12척, 쾌선 3척으로, 동원된 병력만 육천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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