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66화 (466/538)

466. 챕터58. 함락하다 (1)

“달라붙어!”

“계속 전진!”

“붙어라! 그래야 산다!”

5개의 제대에는 각각 2문의 야전화포 밖에 없지만, 적 기병 입장에서 그걸 알 수가 있나.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모르는 굉음이 메아리가 되어 전장을 휩쓸고 적 제대가 회색빛 연기에 휩싸이자... 오로지 단 하나의 명령밖에 남지 않았다.

진격. 또 진격이다.

조선군의 화포가 대단한 건 요동군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저걸 그냥 놔두면 자신들은 죽은 목숨이다. 그러니 무조건 달라붙어서, 적 화포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만약 또 한 번 화포가 발사되면, 그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테니까.

“달려라!”

“이럇!”

“컥!” “크헉.”

허나 이젠 활도 내려놓고, 미친 듯이 거리를 좁히려는 적 기병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화포가 재장전을 하는 틈에도 화살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었는데, 거리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강맹해질 수밖에 없는 바.

쉐에엑! 아까는 가랑비처럼 들리던 파공음이 지금은 천둥소리처럼 들려왔고, 재수 없는 기병들은 순식간에 꼬치처럼 변해 허물어졌다.

그렇게 악전고투하며 조선군에게 달라붙어, 이제 서로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다가가 지금까지의 분노를 토해내려 할 때.

“헉!” “컥!”

어디선가 김빠진 신음과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바로 옆에서 들린 이상한 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려 살피려던 순간.

적 기병은 갑자기 자신의 시선이 옆이 아닌 땅에 박히는 걸 깨달았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쾅! 갑자기 넘어지는 전마와 함께 얼굴을 땅에 박으며 즉사하고 말았다.

적 기병이 땅에 처박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그와 똑같이 뒤집어지고 있는 동료들이었다.

콰콰콰쾅! 한바탕 산사태라도 난 것 마냥, 적 기병의 선두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조선군이 조잡하지만 빼곡하게 파놓은 함정이 효과를 발휘한 것.

비록 종아리가 빠질 정도의 작은 함정이지만, 빠르게 달려오던 와중에 발을 헛디디면 어떻게 되겠는가.

논두렁이나 밭이랑고랑조차도 부담스러워서 기병의 야간행군은 힘든데, 이렇게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상황에선 이보다 더 무서운 함정이 없다.

“크허헉!” “헙!”

“발밑을 조심해라!”

운 좋게 함정을 피해 낙마하지 않은 적 기병들조차도, 화들짝 놀라 절로 고삐를 잡아채고 말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철렁한 가슴을 안간힘 써가며 다독여 보지만... 미친 듯이 쿵쾅대는 심장은 머리를 울릴 정도로 거세게 뛰었다.

“아...”

목을 꺾을 듯 뒤를 돌아보자, 자기도 모르게 울분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먼지구름 속에서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함정에 빠진 기병은 그대로 절명해 나뒹굴고, 그걸 미처 피하지 못한 후속기병이 사체를 피해 방향을 바꾸려다 자기들끼리 부딪쳐 넘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비틀거릴수록 운 좋게 피했던 함정을 자기발로 찾아갔고, 전마가 풀썩 주저앉자 기병은 달려오던 관성을 버티지 못하고 또 거꾸러졌다.

등자에 힘을 주고 버텨본 기병은 더욱 재수가 없었는데... 말 등에서 떨어졌는데도 한쪽 발에만 안장이 껴서, 땅에 붉은 그림을 그리며 끌려갔다.

그리고 콰작! 땅을 쓸고 끌려가던 기병은 뒤따르던 전마의 발굽에 짓밟혀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렸다.

무심코 병사를 짓밟은 전마라고 무사할 리가 있나.

“히히잉!” 균형을 잃어버리고 비틀거렸고,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줄인 전마를 뒤에서 달려오던 기병이 피하지 못하고 들이받았다.

쿠쿠쿠쾅. 이 모든 재앙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자, 조선군의 중앙을 향해 쐐기꼴로 달려오던 적 기병 진영은 일순간에 뒤엉켜 돈좌되기 시작.

중앙이 시체벽을 쌓듯 점점 막혀가자 더욱더 돌파력을 잃고 적체는 심해졌고, 적 기병은 막힌 중앙을 피해 옆으로 밀려나 양 옆으로 넓게 퍼져 있는 조선군 진영 전체로 돌격해 들어갔다.

“아...! 안 돼!”

“이럴 수가!”

헌데 그런다고 피할 수 있을까.

퇴각한 조선군의 발밑에는 전부 함정이 파여 있었고, 쐐기꼴 선두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적 기병들 또한 함정에 빠져 낙마하고 말았다.

땅이 일어나 뒤집어지는 것 마냥, 바로 코앞에서 적 기병 사체가 덩어리로 변해서 뒹굴뒹굴 밀려들고.

“움직이지 말고 버텨!”

“창대를 땅에 박고 굳건히 버텨라!”

조선군은 화포를 쏘기 위해 비워뒀던 진영을 다시 채우고선, 더욱더 응집했다.

함정에 빠져 쓰러진 적 기병이 부지기수지만, 함정을 피해서 다가온 적기병도 적지 않으니까.

너무 놀라서 속도가 줄었다고 해도 기병은 기병.

적 기병이 창진으로 돌격해 오지 못하게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웠다.

“쏴라!”

“보이는 대로 쏴!”

동시에 창진 안에 있던 궁병들도 손놀림이 급해졌다.

이젠 딱히 조준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서로가 바짝 달라붙었고, 적진에선 더 이상 화살이 날아오지 않는다.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눈동자가 빙빙 돌아가지만, 궁병들은 창진을 믿고 훈련한대로 각자의 목표를 찾아 계속해서 화살을 날려댔다.

5보. 3보.

적 기병들은 점점 더 창진에 가까워졌고. 쿠쾅! 이윽고 충돌이 시작되자 또 한번 사체의 해일이 조선군을 덮치기 시작했다.

히힝! 흥분한 건지 두려운 건지 모를 전마의 울음소리가 퍼지기 무섭게, 쾅! 적 기병은 기창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고 장창벽에 가로 막혔다.

“으악!” “컥!”

“아악! 내다리!”

창진에 찔려 낙마하는 기병과 전마는 사체가 되었음에도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들었고, 창진을 몸으로 뚫고 들어온 전마에 깔린 조선군의 비명이 전장을 요동쳤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버티기만 해!”

흡사 창이나 마찬가지인 중대깃발을 든 중대장은, 눈앞에서 쓰러지는 전마와 기병을 보면서 고래고래 목청을 높였다.

온 사방은 요지경이 되어 먼지구름과 피구름,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뒤섞여 아비규환이 되어 있었는데... 그런 혼란 속에서도 굳건히 소리치는 중대장의 목소리는, 근처에 있던 병사들의 심지를 세우는 불빛이 되고 있었다.

타탁! 중대장은 재빨리 달려가 무너진 제대의 구멍을 채우고, 일어서려 발버둥을 치려는 전마의 목을 힘껏 찔러 숨통을 끊어놓았다.

“크...”

동시에 넘어지면서 투구를 날려먹었는지, 전마에 깔려 얼굴을 훤히 내놓고 비명을 지르는 적 기병의 안면에도 창을 꽂아 넣었다.

‘후...’

중대장은 쓰러진 기병을 처리하고, 장창에 가슴이 꽂혀 절명한 전마 밑에 깔려 있던 소대원을 살폈다.

“으으...”

병사는 정신을 까먹진 않았는지 눈동자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중대장은 제대 중앙에 있던 예비대를 불렀다.

“빨리 뒤로 빼! 3소대! 자리를 채워라!”

“예!” “옙!”

삐빅!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터지기 무섭게 화포병들과 함께 화살을 날리고 있던 병사들이 창을 들고 달려와 빈 구멍을 채웠고, 쓰러진 동료는 제대 안쪽으로 끌어 옮겼다.

“크헉!”

“끄억!”

다른 언어의 비명소리가 터질 때마다, 창진 제대는 움푹움푹 파였다가 메워지기를 반복해 나갔다.

제대 구멍은 적 기병의 창에 맞아 조선군이 쓰러져 생기는 것보다, 장창에 몸을 부딪치고 나뒹구는 전마 때문에 생기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전열 뒤에 있던 병사들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들어온다!”

적 기병은 쓰러진 동료를 발판삼아 운 좋게 창진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예비대의 창날들.

“찔러!”

사방에서 일제히 찔러오는 창날은 막을 수도 없이 너무 많았고, 더욱이 대다수는 적 기병도 아닌 전마를 노리고 있었다.

히힝! 자기도 모르게 전마는 앞발을 높이 쳐들고 발버둥을 쳐봤지만, 이미 옆구리와 목덜미에 창날에 꽂혀 절명한 상황이었다.

“크헉!”

신음을 흘리며 낙마한 기병은 충격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도 힘든데, 흔들리는 동공을 향해 묵직한 강철이 마지막 환대를 선사했다.

전투도끼와 전투망치를 든 병사들은 파고든 적 기병의 머리통을 깨줬고, 죽은 전마사체를 밀어내 장애물이자 방벽으로 삼아 진영을 은근슬쩍 넓혔다.

“버텨라!”

“버텨라!”

중대장의 외침에, 중대원들은 세뇌라도 된 듯 창을 부러질 정도로 꽉 붙들고 고함을 내질렀다.

“...”

‘막아내는구나!’

중대장은 난장판이 된 제대를 뛰어다니면서도, 눈에선 승리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아무리 기병이 보병에 비해 우위에 있다지만, 이렇게 빽빽하게 밀집한 창진에 꼴아 박는 건 미친 짓이다.

충격은 박히는 쪽이나 박는 쪽이나 똑같이 받는 법인데, 그냥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땅에 비스듬하게 박아놓은 창에 기병이 박으면 어떻게 되겠나.

바위에 들이박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랬기에 기병은 장창보다 더 긴 창을 들고 보병을 노리고, 또 돌격할 듯 말 듯 압박하면서 적 진영을 흔들어 그 빈틈을 파고 들어야 정석인데... 지금은 그 모든 게 불가능했다.

조선군은 밥 먹고 훈련만한 상비군이니, 기병돌격에 겁을 집어먹고 등을 보일 리가 없고.

해군이라지만 무장상태만 보면 중갑보병과 크게 다를 게 없었기에, 적 기병이 어설픈 창질로 진영을 흔들어 놓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적 기병은 피해를 감수하고 이렇게 우악스럽고 무식한 돌격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건, 조선군의 훈련도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던 거지.

그 결과 적 기병은 육탄공격으로 제대를 뚫고 들어와도... 제대 안에서 활개를 치긴 커녕, 들어오는 족족 단발마의 비명만 내지르며 제대에 파묻히고 있었다.

그렇게 조선군 제대 전체가 기병돌격을 막고 무너지지 않자, 자연스레 적 기병은 제대와 제대 사이의 빈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애초에 이렇게 파고 들어서 제대와 제대 사이를 분리. 월등한 기동력을 활용해서 하나로 뭉친 후, 쪼개진 보병 제대를 하나하나 찍어 누르는 게 기병전술의 기본이지만... 지금은 조건이 너무 안 좋았다.

조선군이 포진한 지역은 성벽과 바로 붙어 있어서 기병이 활개치기에 넓은 공간이 나오지 않았고, 조선군이 파놓은 함정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제대 사이로 침투해 들어간 건... 함정으로 인해 선두가 돈좌되면서 진영이 깨지며 속도가 한번 죽었고, 조선군 전열이 무너지지 않자 자연스럽게 옆으로 밀려나 궁여지책으로 움직인 결과였던 것.

이러니 우왕좌왕하면서 돌파속도가 줄어들었는데, 제대의 뒤를 치기 위해 반전할 공간조차 여의치 않아 더욱더 속도가 줄어들고 말았다.

그렇게 적 기병이 조선군 전열과 드잡이질을 하고, 제대 뒤편으로 빠져나와 진영을 가다듬으며 잠시 멈추는 사이.

그 틈을 노리고 조선군의 비수가 날아들었다.

두두두. 지축을 흔드는 강렬한 진동과 함께 말발굽소리가 갑자기 들려오고, 적 기병대는 난장판이 된 전장 속에서도 용케 그 소리를 듣고 시선이 돌아갔다.

“저...!”

“조선기병이다!”

적 기병들 사이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왔다.

저기. 그들이 목표 했던 연산성 성문에서, 광휘를 피워내며 질주해 오는 기사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

“아악!” “크헉!” “헉!”

콰콰쾅! 기사대의 돌파가 시작되기 무섭게, 적 기병 제대 중 하나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반전을 위해 옆구리를 훤히 보이고 있는 상태였는데, 장창을 앞세우고 달려드는 기사대의 공격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소대원끼리 약간의 거리를 두고, 쐐기꼴을 형성한 기사대는 그대로 적 기병대를 돌파했다.

푸헉! 기사대원의 기창은 적 기병의 몸통을 그대로 찔러 들어갔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적 기병은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와지직. 떨어진 적 기병은 기사대와 적 전마의 말발굽에 가리지 않고 밟혔고, 그러는 와중에도 기사대는 쉬지 않고 적 기병들을 박살내며 진영을 와해시켰다.

그렇게 후미로 침투해간 적 기병대는 돌파는커녕 진영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조선군 창진에 들이박던 적 기병들 또한 전의를 상실하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

선두에 섰던 이들은 이미 다 죽은 거나 다름없고, 안 그래도 좁은 전장은 사체와 함정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사상자가 얼마나 생겼는지 감도 잡을 수 없고, 이제 슬슬 가라앉는 먼지구름 너머로 아직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조선군 제대가 눈에 들어온다.

이 판국에 어떻게 더 싸울 수 있을까.

“...”

후방에 위치해 있던 적 기병대 지휘관들이 고민에 빠지려는 찰나.

“크헉!” “끄억!”

낯익은 비명소리와 함께 콰콰쾅! 지옥의 문이 다시 열리면서, 퇴각하여 전열을 재정비하려던 기병 제대의 날개 한쪽을 움푹 뜯어먹었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지 않던 상황이 다시금 펼쳐졌다.

거리가 벌어지고 시야가 트이자, 조선군 화포가 또 다시 불을 뿜기 시작한 것.

“퇴각하라!”

“물러난다!”

결국 지휘관들은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퇴각 나팔을 불고 말았고... 기세 좋게 달려온 광녕성 기병은 고작해야 사백명도 안 되는 패잔병을 끌고 다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렇게 연산성 전투가 조선군의 승리로 끝난 후 3일이 지나자, 광녕위의 변경요새를 점령한 육군 5개 연대가 도착.

이번엔 육군, 해군 합동군이 연산성을 나와, 거꾸로 광녕성 포위를 시작했다.

*****

“이렇게 쓰는 거라는 말이지요?”

“어? 어. 그렇네. 쉽지?”

“예에.”

요동인 농부는 슬쩍 눈치를 살피면서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셔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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