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69화 (469/538)

469. 챕터58. 함락하다 (4)

둘째는 의주와 동팔참의 연산관에서 대기하던 병력이었다.

의주에 주둔하던 육군은 요동반도 해안가를 타고 남하해 금주를 함락시켰고, 연산관의 육군은 곧장 동팔참을 타고 요동반도 안쪽의 복주위, 해주위를 점령해 나갔다.

이러는 동안 해군은 발해만 깊숙한 곳으로 파고 들어, 요하를 비롯한 요동수계가 모이는 하류인 금주위, 복주위, 해주위 항구에 상륙했고, 끝내는 전함이 요하를 거슬러 올라 요양으로 가고 있었다.

마지막 셋째는 북방신도시인 본주(본계), 석주(무순)에 출발한 병력이었다.

본주와 석주는 요양, 심양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

삼군은 변경요새와 위성도시를 무시하고 곧장 서진해, 진격한지 고작 이틀 만에 요양과 심양을 포위했다.

요양, 심양에서 보낼 지원군을 막는 한편, 반대로 변경요새에서 구원 오는 지원군을 막기 위해서였지.

이 삼군의 기동에 요양과 심양이 어떻게 반응할지, 조선군은 반신반의했다.

구원 올 지원군을 기다라며 요양,심양에 꾹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적극적으로 포위망을 풀고 뛰쳐나올 수도 있으니까.

다만... 이걸 천만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아니면 당연하다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요양과 심양은 웅크리는 편을 택했다.

조선군이 너무 빠르게 포위를 한 것도 있고, 굳건하게 성을 지키며 변경요새에서 지원을 오게 되면 오히려 조선군을 역포위할 수 있었으니까.

허나 요동군의 판단은 실수였고... 그렇게 웅크리고 있는 동안, 고작 보름 만에 조선군은 변경요새를 대다수 함락하고 요양과 심양에 대군을 이끌고와 포위를 완성했다.

결국 요동을 3분할해서 쪼개버리는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영형이라...”

연오랑은 지난 일을 접어두고, 다시 지도에 집중했다.

요동군 목각인형 대신 조선군 목각인형으로 갈아치우고 보자... 이제 정말 몇 개 안남은 게 확연히 드러났다.

요동군에게서 빼앗은 지도와 그간 첩자를 통해 얻은 정보로 만든 지도, 기존의 고지도를 섞어 만든 지도 위에는 요동군 목각인형이 고작해야 다섯 밖에 안 남았으니까.

그중 둘은 요양과 심양이고, 나머지 셋은 요택 서쪽에 위치한 변경요새였다.

연오랑은 목각인형을 들고 툭툭 건드렸다.

“여기 세 곳도 포위를 하고 있나?”

“그렇습니다. 다만 요택은 요택 인터라...”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는 고생 좀 하겠군.”

“예...”

참모부 소속 문관이면서도 두정갑을 입고 있던 행정군관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사방에 습지, 늪지, 하천이 널려 있는 요택은 지리를 잘 아는 방어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고, 설령 포위를 하더라도 그 곳에 머물고 있는 것 자체가 곤욕이다.

주둔지를 건설할만한 마른 땅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거고, 길을 모르니 기병이 활개치고 다니는 것도 힘들 테니까.

‘그나마 날벌레가 잠잠해서 다행이겠네.’

그래도 여름이 지나간 덕에, 이제 모기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이건 그나마 청신호일 거다.

“보급은 가고 있지?”

“그렇습니다.”

“그럼 됐다. 어차피 심양과 요양이 함락되면 알아서 백기를 들 터, 굳이 무리를 할 필요는 없겠지. 포위만 계속 하면 될 거야.”

“예. 그럼 명령서를 내려 보낼까요?”

“그래라.”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행정군관은 곧장 참모실로 자리를 옮겨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럼... 나가볼까?’

그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밖으로 향했다.

살짝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인파의 열기에 밀려 느껴지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지만 확 트인 광야의 모든 곳에 기병과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데, 검은 잉크를 마구 뿌려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많긴 많네.’

연오랑은 자기가 생각해도 괜히 뿌듯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곳 심양에 모인 병력만 무려 4만에 가깝지 않나. 요양을 포위하고 있을 병력을 생각하면 8만에 가까울 터... 이렇게 많은 병력을 요동에 투사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또 놀라웠다.

‘예전을 생각하면...’

그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개혁 이전의 조선을 떠올리자, 말문이 절로 막힌다. 병력을 동원하긴 커녕, 원정을 나오지도 못했을 거다.

잠시 걸음을 옮기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조선군기마냥 모여 있었던 요동군기.

그가 요동군기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 그를 뒤따라 나온 행정군관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대감?”

“이제 더 함락시킬 요새도 없지 않냐? 요동군기를 전선으로 옮겨도 되겠다. 잘 보이게 꾸며봐.”

“아. 알겠습니다.”

그의 의도를 재깍 알아차리고선, 행정군관은 병사들과 함께 움직였다.

안 그래도 심양이 항복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효과가 얼마나 있든 뭐든 동원해 봐야하지 않겠나.

자신들을 구원하러 올 지원군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렇게 극명한 증거를 보여주면 마음이 한 번 더 꺾일 거다.

연오랑은 호위를 맡은 금군과 함께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주둔지 밖으로 완전히 나섰다.

발길이 향하는 곳은 연기와 함성, 그리고 폭음과 비명이 공존하는 전장. 심양을 포위하고 있는 포위진을 향해 가면서, 계속 고개를 돌려가며 감상을 이어갔다.

조선군이 화포를 활용한 공성전을 선보인 건 거용관 전투 때부터고, 그건 연오랑이 주장하고 훈련시킨 공성방법 아닌가.

그 후로 십여년이 지나면서 나름 교리가 발전했고, 큰 틀에서는 엇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선 꾸준히 보완을 이어왔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참호도 마찬가지.

“잘 만들었네.”

“...”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용관에서도 그랬듯, 포격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성벽에 가깝게 붙는 게 중요했다.

해서 적 공격은 막고, 자신은 공격을 하기 위해서, 사정거리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거리에서부터 참호와 포진지를 완성. 그 후 성벽을 향해서 한겹 두겹 이어가는 게, 포격 공성전의 정석이었다.

이 포진지와 포진지를 연결하는 게 바로 참호.

참호는 후방에서부터 최전선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심양성벽을 마주보고 띄엄띄엄 세워진 포진지와 격자무늬를 그리며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사실 이 시대에도 참호가 없던 게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만들 진 않았으니... 어쩌면 이 또한 시대를 거슬러 오른 공성법 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참호를 멀리서부터 이어놓은 건, 혹시 모를 유시流矢나 유탄을 피해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도 그런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두들기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주둔지에서 만든 식사를 최전선으로 옮기는 데 쓰이고 있었다.

다만...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투정부리는 병사들은 없겠지?”

“물론입니다. 대감. 지금은 침묵했지만, 막 공성을 시작했을 때는 이따금씩 포탄이 날아오기도 했으니까요.”

“음...”

연오랑은 금군 중 한명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군이 포진지를 지으며 접근해 오는데, 심양군이 가만히 있었겠나. 당연히 화포를 쏴대며 발악을 했지만... 헛수고로 끝이 났다.

기병 2만명. 20개 연대면, 야전화포만 무려 200문을 끌고 다니는 게 육군의 편제다.

심양의 화포를 다 합쳐봐야 100문이 안되고, 또 사방성벽에 전부 배치되어 있었지 않나.

북문에 모든 화력을 집중한 조선군에게는 아예 상대가 안 됐고, 아니나 다를까 하루가 멀다하고 심양성벽 위의 포대는 박살났다.

매일같이 포격을 이어가며 점점 성벽에 가까워졌고... 화살을 날리면, 재수 없게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백오십보까지 바짝 붙은 지금.

심양성벽의 포대는 조선군의 포격에 전멸했고, 심양성벽마저 곰보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상태였다.

계속 참호를 옆에 두고 따라가 최전선에 도착하자, 포진지에 있던 화포병들이 경례를 이어왔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최전선 중에서도 최전선.

흡사 운석이라도 맞은 것 마냥 움푹 파여서, 유독 크게 포진지를 만들어 놓은 장소였다.

‘정중앙이군.’

슬쩍 고개를 들어 살피자, 포진지는 심양성의 북쪽 성문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물끄러미 심양성문을 지켜보고 있을 때, 화포를 살피던 청년이 후다닥 달려왔다.

“대감! 어찌 여기까지.”

“뭐 대단한 일이라고.”

연오랑은 괜히 머쓱해서 손을 휙휙 내젖고, 검댕을 얼굴에 묻힌 청년을 반겼다.

어린 나이에 착호군에 들어와 화기대에서 활동했고, 서방 사절단에 속해 서방의 화기들도 살펴보고 돌아온 녀석. 이젠 훌쩍 커버려서 진작 혼례까지 마친 박강은 화기대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공성포를 보시러 오신 겁니까?”

“겸사겸사.”

“이쪽으로 오시죠.”

박강은 실실 웃으며 연오랑을 이끌었다.

참호진지를 벗어나 포진지로 향하자, 우람한 덩치를 뽐내는 공성포 8문이 무덤처럼 생긴 흙더미에 파묻혀 포신만 내밀고 있었다.

“호...”

‘거참. 봐도봐도 놀랍고만.’

연오랑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공성포를 이리저리 훑어봤다.

공성포의 포신은 야전화포의 3배쯤 되고, 무게는 곱절에 곱절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구경 또한 야전화포의 2.5배는 될 정도로 거대해서, 머리통이 쏙 들어가고도 남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지막지하게 무거워서, 육군기병의 기동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공성포를 끌고 다니기 위해선, 말 6마리가 끄는 특별한 포신을 따로 제작해야 했으니까.

해서 각 연대가 심양까지의 길을 터놓은 후에, 후속부대로 화기대가 심양으로 따로 왔었고... 도착하기 무섭게 그 위용을 한껏 뽐냈다.

“이제 사격을 할 차례인데... 보시겠습니까?”

“어.”

연오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화포병 중 한명이 솜을 잔뜩 뭉친 귀마개와 토끼털과 솜을 섞어 만든 귀덮개를 건네줬다.

‘음... 다들 잘 차고 있네.’

혹시나 싶어 슬쩍 살펴보자, 공성포를 운용하는 화포병들은 하나같이 어린아이마냥 귀덮개를 쓰고 있는 게 보였다.

이윽고 뒤로 물러나 잠시 대기하고 있자. 쾅쾅쾅! 좌측에 있던 공성포부터 굉음을 일으키며 연기를 뿜어냈다.

‘오...!?’

공성포의 사격을 이렇게 코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지 않나.

그간 화포의 폭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공성포의 폭음은 차원을 달리했다.

발바닥을 울리며 부르르 떨리는 진동도,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리는 검회색연기도, 코끝을 맵게 찌르는 탄 냄새도. 확실히 야전화포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반대로... 요동군도 이런 포격은 처음 맞아봤겠지.’

그는 피식 웃으며 망원경을 들어 요동성벽을 살폈고, 아니나 다를까 대충 보수해 놓은 심양성 북문이 또 박살나서 흔적만 남은 걸 확인했다.

철환을 쏴서 그런지 몰라도, 북문 안쪽에 세워둔 녹각목 등의 장애물들이 우르르 박살나 나무토막으로 변해 흩뿌려진 게 눈에 들어왔다.

“보셨습니까?”

“오냐. 성루도 공성포로 부순 거냐?”

“헤헤. 예. 대들보를 운 좋게 맞췄더니, 폭삭 무너져버리더군요.”

연오랑이 북문 주변에 널려 있는 잔해들을 보며 묻자, 박강은 헤실헤실 웃어대며 자랑을 늘어놨다.

성루가 무너지면서 안쪽 바깥쪽 골고루 떨어진 모양인데, 그걸 치우지도 못해서 성문 근처는 나무와 벽돌 잔해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성벽 자체를 부술 수 있겠냐?”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가능은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녀석은 반들반들한 턱을 쓰다듬더니, 긍정의 답과 우려를 함께 건넸다.

“다만?”

“화약소모가 엄청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철환도 그렇고요.”

“음...”

연오랑은 익히 예상하고 있던 터라, 쓴웃음을 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번 전쟁을 위해 조선은 거의 6년간 축적한 화약을 무섭게 소모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나 해군이 엄청나게 소모했는데, 전함 한척이 육군연대 하나가 사용하는 양보다 더 많이 쓰지 않나.

기만책인 동시에 암계를 위해서 산해관을 꾸준히 공략하는 것만으로도, 화약제조청이 경기를 일으킬 만큼의 화약을 소모했었지.

헌데 지난 보름간 육군과 해군이 소모한 화약양은, 수개월간 산해관에 쏟아 부은 화약양과 엇비슷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혹시 모를 변수를 생각하면, 심양에서 화약을 무턱대고 소모하는 건 자제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그러니 성벽을 굳이 부수려고 애쓸 것 없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최선 아니겠습니까.”

“알아. 인마.”

박강은 혹여나 연오랑이 다른 명령을 내릴까봐 은근히 돌려 말했고, 그는 피식 웃으며 눈을 흘겼다.

그가 주도한 작전계획인데, 이제 와서 그가 바꿀 리가 있겠나.

“참호는 얼마나 전진했지?”

“이제 다 팠습니다. 내일 중으로 포진지를 옮길 예정입니다.”

“백보 맞지?”

“예.”

혹여나 싶어서 되묻자, 박강은 가슴을 쿵쿵 때리며 호언장담을 했다.

“백보라...”

“아마 깜짝 놀라지 않겠어요?”

“그럴 거야.”

연오랑과 박강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히죽 미소를 지었다.

야전화포와 공성포로 두터운 심양성벽을 전부 부수는 건 힘들고 오래 걸리지만, 백보 안으로 진입하면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긴다.

과거 조선군이 보유한 완구는 박격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무기로, 성벽을 무시하고 곡사로 적을 타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화약 및 재질의 문제 때문에, 기존 화포에 비해 사거리가 한참 부족했지.

해서 군부가 만들어지면서 야전화포, 함포, 공성포로 통일되었고, 완구는 다른 쪽으로 발전했다.

공성용으로 쓰기 보다는 육군기병이 활용할 수 있게 더 경령화, 소규모화되서 요새나 진지를 공략할 수 있게 바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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