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81화 (481/538)

481. 챕터59. 일으키다 (6)

사실 신형조운선이라 부르지만, 이건 원래 역사의 판옥선을 뻥튀기해서 상선으로 개조한 물건.

판옥선은 본래 전투함이었으니,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전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함포를 전함보다 많이 실진 못해도 얼마든지 실을 수 있고, 노가 많으니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걸세.”

“음...”

다만 노꾼이 필요하다는 건, 전함에 비해 동원되는 해군병이 많다는 뜻. 요동군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에는, 이것도 작게 영향을 끼치고 있을 거다.

“해군을 빼야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겠군? 조운선을 여기에 동원하게 되면, 전함을 다른 곳에 써야할 테니까.”

“맞네.”

김종서는 황보인이 말하지 않은 맥락을 읽고, 작게 침음을 흘리며 첨언했다.

개혁이 시작되고 조선소에서 배를 찍어내기 시작하면서, 관에 속해 있던 관노비와 선원 출신 양민들은 전부 민간기업과 해군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는 일은 엇비슷하지만, 신분과 소속이 바뀐 거지.

이로 인해 관에 속해 있던 조운선은 민간기업에게 팔렸고, 내륙 수운에는 민간상선이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다만 그럼에도 내해를 가로지르며, 삼남의 물산을 북방으로 올리는 일은 해군이 담당하고 있었지.

이 작업은 기존의 맹선인 민간조운선보다 큰 신형조운선의 몫이었는데, 지금은 그 신형조운선을 전부 징발해 군용으로 써먹고 있는 상황.

지금이야 임시방편으로 그렇게 써먹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결국 내해를 돌아다닐 배가 필요했다.

“전함이야 뭐 함포를 빼면, 신형조운선 못지않은 적재량을 자랑하지 않나. 한동안은 전함이 조운선의 역할을 대신할 걸세. 북직례 공략에 있어서 전함이 전부 필요한 건 아니니까.”

“허면 신형무역선도 보급품을 운반하는 데 쓸 생각인가?”

“전부는 아니지만 몇척은 동원해야 할 걸세. 일본과 남방으로 향하는 무역선은 덩치가 큰 신형무역선 아니면 힘들 테니까. 의주와 용연에서 산동으로 가는 무역선을 빼면 되겠지.”

“이젠 요동항구를 우리가 쓸 수 있으니까?”

“그렇지.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는 코앞에 붙어 있으니까.”

“흐음.”

김종서는 머릿속에 지도를 올려놓고, 무역과 무역선이 어떻게 움직일지 그려봤다.

여기서 빼서 저기로 끼워 넣는 돌려막기를 하는 거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허면 요동상인들의 상선도 부려먹을 생각이군?”

“그래야 하지 않겠나? 그치들을 괜히 살려둔 게 아니지. 가만히 있어봐야 밥만 축낼 테니, 호적조사와 가산조사를 끝내면 운송에 동원할 생각일세.”

“음...”

대답을 들은 김종서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황보인을 바라봤다.

이야기를 딱 듣는 순간 부작용이 떠올랐는데, 황보인과 조정관원들이 그걸 몰랐을까.

“기강을 잡으려는 모양이군?”

“흐흐. 그야 당연하지 않나. 한족들이 우리보다 훨씬 부패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진실. 분명히 꼼수를 부리는 작자들이 나올 거고, 단박에 때려서 밟아줘야지.”

“...”

김종서 또한 동의를 했는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호족집단은 조선의 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심지어 겉절이 취급을 받던 개원상인, 요동상인 집안조차 기업집안보다 컸다.

다만 이들은 조선에 넙죽 항복해 한편이 되었으니, 함부로 때려잡을 순 없는 일. 다른 방법으로 때려서, 기업제한법의 최대치에 맞게 집안을 분해시켜야 했지.

말을 잘 듣고 완전히 조선에 기운 집안이라면 알아서 살 길을 찾겠지만... 돈 때문에 조선에 들어온 이들은 분명 하던 대로, 이번 기회를 통해 꼼수를 부려 집안을 키우려 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꼼수가 뭐 별거 있겠나. 의주에서 보낸 물자 중 일부를 이런저런 이유로 빼돌리는 건데... 이건 조정이 지금껏 숫하게 양반 집안을 날려버린, 여수구죄법에 딱 걸릴 거다.

“보나마나 일이 터지면, 요동군부에게 그랬던 것처럼 뒷돈을 찔러주며 무마하려고 할 텐데... 아국 관원이 그걸 받아들이겠나? 직책이 날아가는 걸 넘어서 집안이 날아갈 텐데? 질겁해선 쪼로록 달려와 일러바칠 걸세.”

“어사부와 율법부는 공을 세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테니까?”

“그렇지.”

황보인은 벌써 미래가 그려지는 듯,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실 흘려댔다.

이번 요동정벌에 있어서 조정의 모든 부서가 힘을 합쳐 일을 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군사문제가 아니라 요동의 통치 및 경영과 닿아 있으니까.

허나 감찰을 맡은 어사부와 법률을 관장하는 율법부는 끼어 들 게 없다. 당연히 어떻게든 한발 걸쳐 공을 세우고 부서의 입지를 높이길 바랄 텐데,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있나.

“뭐... 사실 단순히 부서간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요동상인이 성장하는 건 전하께서도 우려하는 부분이니까. 이 어수선한 시기에 군부를 이용해서 요동상인을 밟아주는 걸, 오히려 바라고 있을 걸세.”

“음...”

황보인이 세종을 입에 담자, 김종서는 살짝 굳은 얼굴로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세종과 함께 지낸 세월이 얼만데, 그 속내를 모를까. 이번 사안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다.

까닭인 즉... 이게 작게 보면 부정부패의 단속이지만, 크게 보면 중앙집권과 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대외무역은 전적으로 관이 담당하고 있다. 조선의 민간상인은 아직도 외국으로 배를 띄울 여건이 안 되니까.

허나 요동상인은 이미 산동 및 강남과 무역을 해왔었다. 다른 건 몰라도, 대외무역에 있어서는 조선상인집안과 상대가 안 되지.

그럼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무역시장을 요동상인이 잠식해 들어갈 텐데, 조선인도 아닌 귀화한 한족이 주류로 자리 잡는 건 큰 문제다.

이민족을 차별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선인이 주가 되는 게 좋고, 특히나 미래엔 꽌시라 부를 정도로 끼리끼리 노는 걸 좋아하는 한족이 대외무역의 중심이 되는 걸... 세종이 반길 리가 있나.

지금도 요동과 산동은 밀접한데, 이걸 가만 놔두면 조정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무역상계가 중국연맹과 얽혀버릴 수 있다.

이게 너무 커져서 건드리면 조선에 혼란이 올 정도가 되면,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수준까지 가게 될지 누가 알겠나.

싹이 트기 전에 제대로 밟아주고, 그들의 인맥, 거래처, 거래방식등의 노하우를 뽑아내 조선 출신 무역집안에 이식하는 걸 바라고 있을 거다.

“피바람 아닌 피바람이 불게 될 거야. 그치들 입장에선 억울해 할 수도 있겠지만, 요동과 아국이 다른 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미리미리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군. 그래야 딴소리를 안 할 테니까.”

“그거야 뭐. 다른 부서에서 알아서 잘 할 걸세. 우린 북평부 공략만 신경 쓰면 될 걸세.”

“음.”

돌고 돌아 다시 산해관 공략으로 돌아왔고, 황보인은 반대편. 광녕성 서쪽 요서회랑을 굽어보며 은근히 물었다.

“어떤가? 생각이 바뀌었나?”

“이제 와서 무슨... 진작 바뀌었네.”

“크크.”

황보인이 실없는 소리를 내뱉자, 김종서 또한 따라 웃고 말았다.

뜬금없는 물음이지만, 뭘 말하는지 재깍 알아들었으니까.

과거. 태종이 요동정벌 천명했을 때. 연오랑은 한술 더 떠서 북평부 공략을 내걸었다.

너무 뜬금없고 기상천외한 주장인터라, 군부뿐만 아니라 조정대신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까닭인 즉. 다른 걸 다 떠나서, 연오랑이 생각하는 요동과 이 시대 조선인들이 생각하는 요동의 개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조선인들도 요택으로 대표되는 요서 땅이 똥땅인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요동이라 함은 요하 동쪽을 의미했고, 역사적으로도 지금껏 사람이 모여 살던 지역은 요동반도에서 심양까지 이어지는 라인 일대였으니까.

당장 해서여진을 때려잡고 송주(길림)와 황주(장춘)에 신도시를 건설할 때조차도, 조선인들은 “아니! 그 동토에서 어떻게 사람이 모여 삽니까!?”라며 기겁하지 않았나.

여진인의 조선화 계획이 없었다면, 그 먼 북쪽까지 진출해 조선땅으로 만들 생각은 꿈에도 없었을 거다.

그만큼 이들이 생각하는 요동은 옛 시절 그대로의 요동이었고, 요동정벌이라고 한들 요서가 아닌 요동땅만 먹겠다는 생각이었지.

“하지만 이제 와서 보건데, 확실히 여기가 막기에 좋지?”

“부인할 수 없군.”

“흐흐. 그렇다니까? 온 사방을 막는 것보단, 주둥이 하나만 막는 게 훨씬 편하단 말이지. 군사도 그렇지만 보급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고 말이야.”

황보인은 지난날을 떠올리며 약을 올렸고, 김종서는 지난날 말한 게 있기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당시에 어째 거꾸로, 보급을 담당하는 황보인이 연오랑의 주장에 찬성했고, 군사를 담당하는 김종서가 반대를 표했으니까.

연오랑의 주장은 간단했다.

“요동을 먹는 건 좋다. 하지만 요동만 먹고 나면 나중에 그 방어를 어떻게 할 텐가?”라는 질문에,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나. 고구려 시절이 수,당을 막았던 것, 명이 요동으로 밀고 들어온 것. 등을 생각하면, 요동만 먹어서는 서쪽에서 오는 공격을 쉽게 막을 수가 없다.

막을 곳이 너무 많고, 조선본토를 노려서 돌아갈 구멍도 너무 많으니까.

하지만 요서까지 진출해 이곳. 요서회랑의 입구인 광녕성을 집어삼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천년전부터 괜히 산해관이 있는 자리에 요새가 세워진 게 아니고, 괜히 한족들이 산해관을 일컬어 천하제일관이라 부른 게 아니지. 그들이 말하는 중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말이야.”

“...”

약 올리듯 말하는 황보인을 보며, 김종서는 부인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종서도 혹시나 했지만, 이곳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고서 제대로 깨달았다.

요서회랑은 중국본토와 북방. 이른바 만주일대로 대군이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다른 통로는 북쪽의 몽골초원을 지나 이동하는 길 밖에 없는데, 여길 통과해 만주 혹은 중국본토로 들어가는 건 지난한 일.

이미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고, 미래에 청이 명을 공격할 때도 그러했다.

청나라가 몽골부족을 흡수해 명을 공격할 때도. 언제나 산해관을 뚫는 게 주력이었지, 몽골 루트가 주력이 아니었으니까.

“중국왕조는 그걸 알고서 북방유목국가를 막기 위해 산해관을 세웠지. 헌데 반대로 생각하면 어떨까.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요동군부가 어째서 온 힘을 다해 광녕성을 세웠을까.”

말하지 않아도 해답이 들리는 듯 했다. 가는 길이 하나라면, 반대로 오는 길도 하나밖에 없으니까.

“...”

“먼 미래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요서회랑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해. 반대로 산해관은 반드시 무너뜨려야 하고.”

“...”

김종서는 침묵으로 동의를 대신 표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조선이 진짜 두려워하는 건, 통일된 중국왕조다.

헌데 통일된 중국왕조는 절대로 북방을 장악한 나라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미 천년 이전의 고구려시절부터 증명되어 온 역사 아닌가.

정주민족의 생산력을 뿜어내는 한반도의 국가와 군사력이 강한 북방의 유목민집단이 힘을 합친다?

이건 중국왕조가 상상하는 최악의 사태. 한족이 믿는 중화와 천명. 제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위험이다.

헌데 지금 조선이 딱 그러했다.

그것도 그냥 북방을 차지한 걸 넘어서, 중국의 머리를 짓누르는 몽골까지 비단길을 이용해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

먼 훗날 중국연맹이 하나로 합쳐지면, 반드시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도 조선을 공격할 게 분명했다.

“그때를 대비하자면 요서회랑은 반드시 우리 걸로 만들어야지.”

“부인할 수 없군. 그리고 이게 지금 당장은 돈이 많이 들더라도, 먼 훗날을 대비하면 더 싸게 먹힌다는 거고.”

“그렇지.”

매일같이 “돈! 돈!”을 입에 달고 사는 군수사령관 황보인이 전쟁을 확대하는데 찬성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요동전역을 막는 것보단, 요서회랑을 틀어막는 게 더 싸게 먹혔으니까.

“여기 말고는 대군을 동원해 이동할 곳이 없어. 만약 요서회랑에 아국의 선형요새를 빼곡하게 박아 넣는다고 생각해보게. 수나라가 옛 고려를 공격했던 것처럼, 백만대군을 동원한다고 한들 요서회랑을 뚫을 수 있겠나?”

“... 쉽지 않을 거야.”

성형요새의 방어력은 그 요새를 직접 세워본 김종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화포를 수백문 가져와 두들겨도 함락시키기 어려운데, 첫 번째 요새에서부터 그렇게 붙들려 있으면 일이 진행이나 되겠나.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 다음에도 첩첩산중마냥 성형요새를 박아 놓을 텐데... 요서회랑의 성형요새를 포위하는 것만으로도, 백만대군의 절반은 소모해야 할 거다.

헌데 그렇게 성형요새에 붙들려 있는 사이, 광녕성등의 요동지역에서 지원군이 쏟아져 오면... 이 좁은 요서회랑에서 백만대군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후방에 있는 이들은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밥만 축내며 앉아 있어야 할 거다.

“게다가 요서회랑은 해안과 바로 붙어 있어. 그렇게 우르르 몰려서 올라오는 군대에게, 전함이 불벼락을 쏟아주면 어떻게 되겠나?”

“안 그래도 좁은 전선은 더욱 비좁아 질 거고, 그나마 평탄한 해안가의 관도는 사용조차 못하겠지.”

“흐흐...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요서회랑은 피로 물들 게 될 걸세.”

”...“

황보인의 말에 김종서는 머릿속에 미래를 그려봤고, 자기도 모르게 아찔해져서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인세의 지옥이 저절로 떠올랐으니까.

“아군이 해군력을 강화하는 게, 마냥 남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거군. 단순히 요서회랑을 방어하는 걸 넘어서 말이야.”

“그렇지. 육군이 섭섭해 할지 모르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김종서도 육군 출신이지만, 진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었다.

요서회랑을 뚫지 못하면 중국이 조선을 노릴 길은 바다밖에 없으니, 당연히 해군력을 강화해 제해권을 석권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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