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86화 (486/538)

486. 챕터60. 토해내다 (2)

“정교회는 유일신을 모신다고 하던데...?”

“예. 아국이 받아들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파악하고, 교리를 살펴보면서 교리와 관련 없는 문화나 풍습 중에서 쓸만한 걸 뽑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교쪽으론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조정에서 논의가 있었던 게 분명.

아니나 다를까 다들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성억이 대표로 회의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놨다.

“하긴... 서방의 큰 종교라고 하니, 토속신앙과는 다르겠지.”

“그렇습니다.”

조선은 강역을 넓히면서 본토의 토속신앙은 물론, 북방여진, 남주도, 해주도의 한인과 남방이족의 토속신앙마저 싹 쓸어버렸다.

그 빈자리에 조선불교를 쑤셔 넣어 통치에 활용했고, 반대로 그들의 토속신앙 중에서 쓸만한 걸 뽑아 기존 제례나 제사와 결합해 중국과 다른 독창적인 의식을 만들고 있었지.

이 또한 자주화의 일환이자, 다민족을 통합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

“우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조정이 정교회를 받아들이기로 결정 하더라도,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태종이 침묵을 지켜서일까? 황희가 조용히 말을 덧붙였다.

“아국의 불교조차 교리를 통합하고 정비하는데 십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예 낯선 종교의 교리를 분석해서, 아국의 실정에 맞게 고치는 게 쉽게 끝나겠습니까? 최소로 잡아도, 비슷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

“더욱이 정교회는 서방의 교회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국과 로마국이 교류하면서 교리를 분석하고 있는데, 거리가 거리인지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장 끝날 것도 아니니, 일단은 교리논쟁을 하면서 지켜보면 된다는 말이군?”

“예.”

“그냥 무시해 버릴 생각은 없고?”

“...”

태종이 슬쩍 날카로운 눈빛을 뿌리자, 모두는 가볍게 눈빛을 마주치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당장은 교리논쟁에 그치고 있어서, 어떻게 할지는 결정난 게 없습니다. 다만 그냥 버리기엔 아쉽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올해까지 아국으로 들어온 색목인이 4만명을 넘었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가 정교회를 믿고 있고, 앞으로도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걸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서 상당수가 조선불교로 개종했지만, 딱히 강요를 한 건 아니어서 정교회를 그대로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들 돌아가며 한마디씩 던졌고, 태종은 허조의 마지막 발언에 자기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전의 회회교도처럼 말을 안 듣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집에서 기도하는 정도로 그치고 있습니다. 딱히 포교도 하지 않고요, 아국의 법률에 어긋나는 짓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음.”

태종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한숨 놓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선건국 후에 불교 때문에 골치 아팠던 적이 어디 한두번인가.

조선불교청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종교 때문에 발목이 잡혔을 거다. 특히나 회회교를 언급했기에 더욱 그러했지.

아니나 다를까. 태종은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청석사에 회회교도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들 또한 교리논쟁을 하고 있는 건가?”

“예. 뭐... 서방에선 회회교와 정교회가 싸우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그들 사정 아니겠습니까? 청석사에선 얌전히 굴고 있습니다.”

성억은 “어딜 감히 종교쟁이들이 조선에서 목소리를 내겠습니까?”라고 으스대듯, 히죽 웃으며 답을 했다.

“회회교의 교리 중에서 받아들일 건 있고?”

“글쎄요...”

“음...”

태종의 음성에 못마땅한 기색이 담겨 있는 걸 알아차린 걸까? 다들 대답을 흐리며 부정의 뜻을 넌지시 표했다.

이들 또한 고려 때부터 남아 있던 회회교도가 어떻게 굴었는지 알고 있다.

양전사업을 통해 회회교도 마을을 해체시키기 전에는, 조선에 동화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살았으니까.

“아국이 남방으로 진출해 회회교도와의 접촉이 많아졌는데도, 오히려 정교회가 더 낫다고 보는 건가?”

“조정에서도 논의가 있긴 했으나, 진지하게 다가가진 않았습니다. 회회교도의 특성과 그간의 경험으로 봐선... 회회교는 조선식으로 바꾸기 힘들 것 같아 보입니다.”

황희가 먼저 입을 떼자.

“직접 보진 못하고 보고만 들었지만, 회회교도들은 기도시간이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그게 눈에 거슬릴 정도로 말이지요. 게다가 가리는 음식도 많더군요.”

뒤이어 맹사성도 의견을 덧붙였다.

이 시기에도 이슬람교도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시간을 가졌다.

조선관원들 입장에선. 불교사찰마저 도시 밖 산중턱으로 밀어내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버렸는데, 회회교도들이 일하다 말고 기도하는 꼴을 좋게 봐줬겠는가.

‘저게 뭔 짓인가?’라는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지.

“특히나 더욱 문제가 되는 건, 남방소국의 회회교는 토속신앙을 흡수해서 서방 본류의 회회교와 교리가 조금 다르더군요. 나아가 서방 회회교 또한 종파가 너무 많고, 그중 큰 종파는 서로 전쟁을 이어왔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허조가 끝맺음을 맺자, 태종은 자기도 모르게 “쯧쯧.” 혀를 차고 말았다.

고려 때 승려들이 타락해 별짓을 다했다지만, 그래도 종파끼리 전쟁을 벌인 적은 없지 않나.

헌데 회회교도들은 수백년 동안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일삼았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지.

안 그래도 회회교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데, 더욱더 싫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태종뿐만 아니라, 조정관료들 또한 같은 생각이었고.

그런 마음이 밖으로 튀어나와, 태종은 퉁명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국이 회회교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무역에는 문제가 없겠나?”

“물론입니다. 돈에는 국경이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서방의 회회인들은 자신들과 전쟁을 하는 서방인이나 다른 종파와도 거래를 하는데, 아국과 거래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아쉬운 건 남방소국과 강남의 회회인들이지, 아국이 아니지 않습니까?”

허조는 목줄을 쥔 지금 상황이 퍽 마음에 드는지, 히죽 웃으며 답을 던졌다.

광서, 광동, 복건에는 회회인, 한족, 소수민족이 연맹을 만들면서, 그 안에서 나름 정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북방무역을 장악한 조선이 어느 한쪽을 밀어주면, 그 균형추가 휙 쏠리는 건 당연한 말.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이 달린 문제니, 종교가 다르든 말든 회회인들은 신경도 안 쓸 거다.

“그럼 회회교는 넘어가면 되겠고... 아까 하던 말을 마저 하지. 교리 말고도 적용할 게 있다고?”

“예. 축제와 요일입니다.”

“축제와 요일이라...”

태종은 술잔을 손안에서 굴리며, 입안에서 요일이라는 단어를 굴려봤다.

다만 조선에는 요일이라는 게 없었으니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 일단 다른 걸 먼저 꺼냈다.

“축제부터 말해보게. 전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예. 일전에 들어보셨을 겁니다. 용연현을 대표로 해서, 전국 6개의 대도시에서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 축제를 시행하는 데 있어서 정교회 사제들이 도움을 줬습니다.”

“아. 용연...”

성억의 설명에 태종은 이제야 떠올랐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연현은 연오랑이 머무는 곳. 안 그러고 싶어도 절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고, 그거 아니어도 용연현엔 기업 중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자연히 조정에서도 깊게 관심을 갖는 지역이었지.

“기존의 제례와 결합시켰는데...”

성억은 지난해 있었던 축제에 관한 사안을 줄줄이 읊었고, 태종을 비롯한 세 사람도 몰랐던 세부사항이 있었기에 귀담아 들었다.

“오호... 그게 그렇게나 돈이 됐단 말이지?”

“예. 서방에선 축제가 도시간의 조합, 상인들의 모임처럼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사방을 돌아다니는 다른 업종의 상인들을, 한날한시에 끌어 모으는 계기이자 장소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국에서도 그랬고?”

“예. 상설시장이 없던 도시로 특히나 상인들이 몰려들더군요. 더불어 토착상인들만 취급하던 특산물이 외지상인에게 팔리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음...”

“흠.”

다들 성억이 뭘 말하는지 재깍 알아듣고, 그 여파에 대해서 머릿속에 그려봤다.

조선은 유통망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축제로 인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계기가 됐으니까.

“제례의식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나 보군?”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딱히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았습니다. 백성들은 그저 새로운 볼거리가 더 재밌었을 테니까요.”

“그랬겠지.”

예전엔 무시무시한 처형식이조차도 구경거리로 삼았을 정도인데, 다 같이 즐기는 축제는 더욱더 신났을 거다.

“허면 조정에선 더 확장할 계획이겠군?”

“예. 각 지방마다 토착신앙이 있었고 그걸 조선불교로 흡수했는데, 백성들 중에선 아직도 미신이나 잡신을 믿는 이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을 계도하기 위해서라도 제례의식은 유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축제는 축제대로 하고 말이지.”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축제는 아무래도 추수와 관계된 게 많은 터라, 황희가 농업부에서 그리고 있는 청사진을 읊었다.

“헌데... 그렇게 사람이 모이고, 상설시장이 늘어나면 이런저런 문제가 터질 텐데?”

태종은 황희의 설명을 듣기 무섭게 맹점을 집었다.

과거. 조선이 백성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상인을 통제한 이유 중 하나는, 유동인구 자체가 향촌사회를 흔들고 통치를 어지럽히기 때문이었다.

즉. 외지인이 모이는 것 자체가 문젯거리가 되는 거지.

“그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걱정할 시기는 한참 지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포도청이 생각보다 꽤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본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흐음.”

태종은 포도청이 거론되자 흥미가 돋았는지, 계속 말해보라는 듯 술잔을 채워줬다.

“용연군 대감께서 포도청을 설립하고 나서, 전국으로 퍼진지 한참 됐습니다. 이젠 포도청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은 경찰과 군인의 구별이 없었고, 경찰 역할을 하는 상설직도 없었다.

문제가 터지면 관아의 관노를 동원하는 게 흔했고, 큰 사건에는 군호에 속한 백성들까지 모집했지. 오죽했으면 어사가 출동할 때, 끌고 가는 이들이 역참의 역졸이었겠는가.

헌데 개혁 후엔 모든 게 바뀌었다.

편하게 동원할 수 있던 노비 자체가 없어졌고, 수령의 권한이 쪼개져 군사권은 군부로, 사법권은 율법부의 관원으로 넘어갔다.

행정권만 가지고 있는 수령은 치안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치안병력을 쥐어주면 수령의 힘이 너무 강해진다.

해서 군병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은 병력은 따로 관리해야 했고, 수령과 동등한 직급을 가진 포도청을 만들어낸 거지.

이런 정치적 명분을 등에 업고 만들어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연오랑은 포도군사들을 빡세게 훈련시켜서 진짜 경찰, 수사관, 소방관으로 만들어냈다.

“해서 포도군사만으로도 정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

“예.”

태종이 슬쩍 의심스런 눈초리를 뿌리자, 다들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나아가 성억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게다가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기생집이 늘어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기생집과 함께 주점과 객주도 우후죽순 늘어났는데, 그걸 관리하는 데 포도청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용연군 대감께서 조차지를 통해 중국도시의 시전을 살피면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정말로 그렇더군요.”

“호오...”

다시금 색다른 이야기를 꺼내서 일까? 태종은 흥미로운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어서 말을 해보라는 듯 술잔을 건넸다.

“그게...”

성억은 얼른 태종이 준 술을 털어 넣고선,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술과 돈이 모이는 곳엔 자연히 왈짜패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조선이야 지금껏 이런 조직이 없었지만, 중국은 아니었다.

땅이 너무 크고 사람이 너무 많은 중국은 명나라 이전 시절에도, 관의 통제가 세세한 곳까지 미치는 게 아니었다.

그랬기에 호족이 암묵적 지배자가 될 수 있었을 뿐더러, 각종 양지, 음지의 조직이 난립했지.

여기에 치안이 불안해 자력구제가 일상인 풍습이 결합되다보니, 자연히 이권을 노린 폭력조직이 만들어졌다.

“호족이 정권을 잡은 지금은 오히려 그런 사조직이 많이 없어졌지만, 이젠 호족의 수발을 드는 하부조직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성억이 조차지에서 올라왔던 보고서의 내용을 읊자, 세 부장은 들은 적이 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그런 사조직을 처리하는데 포도청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단 말이지?”

“그런 성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아국은 중국과 같은 사조직이 형성되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성억은 계속 혀를 놀렸다.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보편을 벗어나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농촌사회인 이 시대에 보편을 벗어난다는 건, 농사를 안 하고 놀고먹으려는 놈팡이나, 도전의식, 모험심이 강해 다른 일을 하려는 거지.

개혁 이전의 조선이라면 이런 불순분자들이 각 마을마다 골칫거리가 되고, 또 그런 놈팡이들이 모여 왈짜패로 변질될 수 있었는데... 지금 역사에선 아니었다.

상업을 권장하며 인구의 이동이 활발해진 지금. 농사가 아닌 다른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기회를 얻게 됐으니까.

“음... 그래서 왈짜패로 빠지려는 것보단, 차라리 넓어진 아국의 강역을 돌아다니며 뭐든지 하려는 이들이 더 많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태생부터 문제가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지금처럼 할 수 있는 게 많고, 택할 수 있는 길이 많은 시절이 없으니... 돈을 벌든, 명성을 얻든, 권세를 얻든, 뭐가 됐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성억은 아부를 떨 듯 그리 말했고, 태종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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