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87화 (487/538)

487. 챕터60. 토해내다 (3)

“아무튼. 그래서 포도청도 잘 정착했고, 축제 또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거기에 전부터 시행하던 경마와 격구시합 또한 축제의 한축으로 완전히 결합했으니, 이젠 지방과 도시마다 각각의 축제가 만들어지면 지금보다 훨씬 물동량이 늘어날 걸로 예상됩니다.”

“자연히 도로망도 늘어나고 정비될 거고?”

“예.”

“흐흐. 경마를 통한 세수도 엄청 늘었습니다. 전에 반대했던 신료들도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입을 다물더군요. 포도청이 노름꾼들을 처단하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돈을 관리하는 허조는 실실 웃으며, 다시금 공치사를 던졌다.

경마사업은 아니나 다를까 연오랑의 예상대로 도박을 불러왔는데, 조정에선 민간 도박업자들이 나서기 전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왈짜패들이 적어서 안 그래도 불법도박장은 나오기 힘들었고, 슬쩍 발을 담가보려던 기업집안은 조정이 전사적으로 움직여 압박해 놓은 상태.

여기에 믿을 수 있는 조정이 직접 도박사업을 진행하니, 백성들 입장에선 누가 불법도박장에 눈길을 돌리겠는가.

이 시대는 인권의식이 미흡한 만큼, 사정없이 잡아다가 노역장에 처박는 게 일상이고 포도청이라는 치안관리 전문조직이 생겼으니...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간이 큰 집안이나 왈짜패도 없었지.

결국 예상대로 경마도박은 꽤나 성공했고, 해가 지날수록 규모가 커져서 세수를 증대시키고 있었다.

“해서 조정에선 조차지에서도 경마장을 열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차지에서?”

“예.”

“흐음... 하긴 한족들이 도박을 좋아하긴 하지.”

태종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가, 이내 납득하고선 다시 생각에 잠겼다.

한족이 유독 도박에 미쳐 있는 건 유명한 사실이고, 하다하다 귀뚜라미를 가지고 도박할 정도 열성적이지 않나.

그보다 훨씬 세련되고 박진감 넘치는 경마가 시작되면, 당연히 엄청난 인기와 함께 돈을 쓸어 담을 거다.

‘허나...’

하지만 경마라는 게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외국에서 시행한다는 건... 단순히 돈만 보고 하는 건 아닐 터.

세종과 신료들은 더 큰 걸 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게 뭔가 싶어 잠시 고민해보니, 답은 쉽게 나왔다.

“북방을 완전히 장악했으니 말 수출을 늘리려는 속셈이군.”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축산부는 아니지만 그와 연계를 많이 해왔던 농업부장 황희가 대신 답을 던졌다.

“그간 꾸준히 목장을 늘리며 품종을 개량해 왔고, 이젠 바다 건너 서방의 뼈대 굵은 농마와 짐마, 서방초원의 전마를 데려와 품종을 개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작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경주마는 보통 비싼 게 아닐 테고, 중국호족들이라면 얼마든지 값을 지불할 테니까 말이지?”

“그럴 걸로 보고 있습니다.”

말을 키우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고, 품종을 개량하는 것 또한 돈과 시간이 많이 들기 마련. 다만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 중에서 가장 쉬운 건, 더 많은 돈을 쏟아 붓는 거다.

한마디로 경마장을 통해 중국호족에게 경주마를 선보이고, 그 값비싼 말을 판 돈으로 개량사업을 가속화 시키고, 이렇게 만들어진 품종마를 또 더 비싸게 팔아먹겠다는 계획.

조선 내부에서도 이 일을 할 수 있지만, 돈이 넘쳐나는 중국호족들을 뜯어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지.

나아가 이렇게 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 자연히 말 수출 또한 늘어날 터, 이 또한 조선의 세수를 늘리는 방편이 될 거다.

“말을 너무 많이 수출하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중국은 말이 없어 허덕이고 있는 중이니, 한동안은 문제가 없겠군?”

“예. 요동이 우리 것이 된 이상, 말 수출량을 저희가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요.”

허나 이걸로 끝이 아닌지, 태종은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른 문제를 꺼냈다.

경마장이 도박으로 이어진다면, 당연히 돈과 관련된 계획이 숨어 있을 텐데... 조차지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답이 떠올랐기 때문.

“은행에 호족 자금을 더 끌어 모을 생각이로군? 지금도 사정은 나쁘지 않을 텐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일본 조차지와 중국 조차지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그게...”

은행과 관계가 깊은 허조는, 술잔을 털어넣고서 이야기를 풀어놨다.

조차지의 무역항은 계속해서 번영을 이어가고 있고, 무역항의 무역은행 또한 중국호족들의 예치금이 늘어나고 있었다.

다만 이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자, 더 이상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고착되기 시작한 것.

까닭은, 예상했다시피 중국상인들이 개별 무역항의 전표를 웃돈을 주고 팔거나, 아니면 다른 무역항의 전표와 교환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오든 가까이에 있든, 무역을 하기 위해선 조선의 무역은행에 예치해야만 했는데, 이젠 있는 돈만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돌리기 시작한 거지.

“허나 이건 저희가 강제할 수 없는 부분 아니겠습니까. 또한 강제를 한다고 해도 막아질 문제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겠지. 허면 일본은?”

“일본의 경우에는 중국보다 상계의 발달이 더디더군요.”

일본은 조선만큼이나 산이 많은 나라. 그러니 이곳 또한 육로 운송보단 수로,해로 운송이 많았는데, 그간은 왜구 때문에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일본의 상계가 성장하기 시작한 건 전국시대부터다.

상인 출신이 센코쿠 다이묘로 등장하고, 다이묘들이 힘을 키우기 위해 왜구들을 때려잡았고, 전비를 벌충하기 위해 무역을 장려했으니까.

그리고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시대가 되자, 드디어 폭발적으로 상계가 커져나갔다.

에도막부는 다이묘들의 힘을 빼기 위해서, 1년씩 에도(도쿄)에서 생활하는 참근교대를 실시했는데... 지방의 영주가 한번 오갈 때 마다 돈과 사람이 얼마나 깨졌겠는가.

이로 인해 부수적으로 도로와 역참이 크게 발달하고, 지방과 수도의 문물이 교류하며, 상인의 활동 또한 많아지게 됐지.

허나 전국시대조차 오지 않은 이 시대는, 중국상계와 일본상계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 조차지의 대명들은 다른 대명과 전표를 교환하기 보단, 각 조차지마다 직접 예금을 보관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대명끼리 서로 믿지 못하는 것도 있겠군?”

“그런 영향도 있을 것이고, 조정이 예상했던 것처럼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아국에 기대려는 의도도 있었겠지요.”

“음.”

이는 이미 은행을 설립할 때부터 예상됐던 일. 천만다행으로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경마를 통해 은행예금을 늘리겠다는 거군.”

“예. 경마도박이 시작되면 어찌됐건 돈을 모아야 할 거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이는 아국일 겁니다. 호족들의 씀씀이를 생각하면 무역은행이 제격이지 않겠습니까? 그들도 그걸 바랄 것이고요. 수수료도 그렇겠지만, 그 중에서 잊고서 잠자게 될 예금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더불어 무역은행을 단순히 무역으로만 사용되는 곳으로 여기고서, 무역을 하지 않는 호족들은 은행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자금을 끌어오는 방법으로 도박만큼 좋은 게 없지 않겠습니까?”

“나쁘지 않아. 뭐가 됐든 아국이 손해 볼 건 없겠군. 좋은 계획이다.”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태종은 탁탁! 가볍게 바닥을 두들겼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까? 축제는 그렇게 도움이 됐고, 요일이라고? 자세히 설명해봐라.”

“음...”

다시금 네 사람의 눈빛이 교차했고, 목이 마른지 성억이 술잔을 털어 넣고선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서방에는 서방의 역법이 있었는데, 아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했습니다.”

“그렇겠지. 중국의 역법도 아국에 맞지 않는데, 수만리 떨어진 서방이라면 당연하겠지.”

“예.”

태종이 맞장구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역법이라는 건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살피고 예측하는 방법. 한마디로 달력을 만드는 법이었다.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농사에 필요한 절기를 맞추기 위해서였지.

당연히 모든 문명국에선 자신들의 역법을 만들었고, 한반도의 왕조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역법을 따라 쓰거나 수정해서 써먹었다.

조선 또한 명의 역법을 가져다 썼으나... 중국의 위치에서 관측한 천체와 한반도에서 관측한 천체가 다르니, 당연히 달력이 안 맞지 않겠나.

해서 원래 역사에서도 세종은 중국역법을 수정해 칠정산이라는 역법을 만들었는데, 지금 역사에선 운석핵꿀밤의 여파로 역법을 진작부터 새로 만들었다.

“헌데 서방의 역법의 기초에는 일주일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

“태양과 달. 그리고 눈에 보이는 천체인 화,수,목,금,토성이 그것이지요.”

“음...”

천문학은 조선에서도 깊게 파고든 학문이니 만큼, 태종도 성억이 무얼 말하는지는 금세 깨달았다.

서방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이들 7개의 별을 중요시 했으니까.

“칠요七曜를 말하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모두는 히죽 웃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바빌로니아는 시간을 이 일곱 개의 천체가 시간을 관할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신격화한 건 물론 7일을 한주기로 묶어 사용했다.

이런 개념은 인도, 중국, 한반도로 전파되어 갔고, 도교에선 이 개념을 수용해 칠요라 부르며 신격화시켰지.

“전조의 구요당九曜堂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음...”

이 칠요에 나후羅喉, 계도計都라는 보이지 않는 두 별을 합쳐서 구요라 불렀고, 자기紫氣, 월패月孛를 합쳐 십일요라 부르기도 했다.

고려의 구요당은 바로 이 구요를 모시는 기관으로, 도관道觀으로서 재초齋醮를 설행하는 곳이었지. 물론 유학이 근본이 된 조선이 건국되면서 폐지되었고 말이다.

“그런데?”

다만 이게 왜 논의가 됐는지 의아해, 태종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헌데 이 칠요를 서방에선 역법에 적용해, 날짜를 일주일 단위로 구분 하더군요.”

“흐음...”

계속해 보라는 듯, 태종은 가볍게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빌로니아에서 시작한 일주일이라는 개념은 서방으로도 퍼져나갔고, 이게 로마제국 시절에 기독교와 맞물리면서 완전히 정착되었다.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에 따라, 6일은 일하고 1일은 쉬는 개념이 자리 잡은 거지.

특히나 교회의 영향력이 워낙 크다보니. 보통 일요일을 주일主日이라 해서, 노동을 삼가고 기도나 미사를 참례하는 게 일반적이게 됐다.

“호오...”

이런 이야기는 태종도 처음 듣는 터라, 꽤나 흥미롭게 경청했다.

“조정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지금의 조선이 과거의 조선과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

연오랑은 자본유학을 내세워, 농본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근본성리학을 깨부셨다.

그 강력한 명분 중 하나는 농사가 아니어도, 백성들이 생업을 유지하며 먹고 살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지.

하여 농촌사회였던 조선은 개혁이 시작되면서 재빠르게 수공업사회로 전환을 이루었다. 물론 수작업과 축력, 원시적인 풍력, 수력의 한계에 부딪쳤지만, 한 발 나아간 건 분명한 사실.

즉. 기업분포를 따지면 상인기업보단 수공업 기업이 훨씬 많았고, 지역 기반의 산업이 일어난 후 잉여생산물이 발생하자 상업의 발달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았다.

그랬기에 개혁 초창기엔 관이 직접 나서서 물산을 옮겼고,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민간상단에게 상업의 영역을 넘겨준 거지.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백성들이 기업에서 일을 너무 많이 할뿐더러, 휴일이 제멋대로인 점이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두각 되더군요.”

“음...”

태종은 상억이 무얼 말하는지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조선에는 휴일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관원의 경우 순휴일旬休日이라고 해서 10일에 한번씩, 어쩌다가 보름에 한번씩 쉬었다.

여기에 각종 명절이 포함되었고, 그 외엔 급가給暇라 해서 개인적인 휴가를 얻었지. 더불어 각 부서별로 각자 알아서 비번을 정해 순번을 돌렸다.

하지만 관원이 아닌 일반 백성들의 경우에는, 공휴일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날짜의 개념과 시간의 개념조차 명확히 규정하는 게,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는 농촌사회에서... 꼬박꼬박 쉬는 공휴일이 왜 필요하겠나.

“그런데 이젠 농사에 종사하는 백성들만큼이나, 기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이 많아졌다는 거군. 조정에서 신경을 써야할 정도로 말이야.”

“예.”

기업에 종사하는 사원은 어찌 보면 관원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럼 이들에게 휴일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정해진 법도가 없으니, 기업마다 그 일수도, 정해진 날도 제멋대로였다.

이게 그냥 뭐 하나둘이면 상관이 없겠는데... 여러 개의 기업과 함께 연관되어 있는 기업이 있다면 어떨까.

예컨대 공작기업이 뭔가를 만들때. 목재, 철괴, 가죽, 기타 각종 부속품등을 구입해서 완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각 기업마다 휴일이 제멋대로니 공정작업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는 거지.

“아...”

태종은 머릿속에 상황을 그리기 무섭게, 곧장 납득하고 말았다.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훤하게 보였다.

“비단 민간의 문제만은 아니겠군. 조정에서도 문제가 되겠어.”

“그렇습니다.”

육조체제 시절에는 관원의 수가 많이 잡아도 천명이 안됐는데, 지금은 한성에서 근무하는 관원만 수천에 지방을 합치면 4만명을 넘어간다.

이들이 순휴일을 골라 쉰다고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쉬는 건 아니었고, 개별 부서마다 알아서 쉬는 편이었는데... 이러면 업무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부지기수 아니겠는가.

일처리가 미뤄지는 경우도 흔했을 거다.

이런 경우는 전례가 없었으니,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수집했고... 끝내는 저 먼 서방에까지도 관심이 뻗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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