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88화 (488/538)

488. 챕터60. 토해내다 (4)

“게다가 조정에선 십이지시十二支時를 24시로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와 관련되어서 문제가 많습니다.”

정확한 시간 개념은 군부에서 특히나 중시했고, 조정과 별개로 군부에선 24시간을 표준으로 삼아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군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조정으로 흘러들어갔고, 조정에서도 이에 관해 진지하고 깊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지.

“민간의 기업 또한 근무시간이 제멋대로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보통 관원들은 묘시(오전 5~7)에 출근해서 유시(오후 5~7)에 퇴근하는 걸 원칙으로 했다. 앞뒤로 2시간씩이나 차이가 나니, 이 또한 문제가 생기기 마련.

나름 규칙적인 업무시간이 존재하는 관원조차 이럴 지인데, 민간기업의 경우에는 출퇴근시간이라는 게 명확히 규정되어 있겠나.

해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 지면 밭에서 돌아오는 기존 농촌사회의 시간개념은, 더 이상 지금 역사의 조선에는 어울리지 않게 된 거였지.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에 속한 백성들이 혹사당하는 경우가 빈번해서, 율법부에서 다루는 송사가 끝이 없을 정도라 했습니다.”

“하...”

태종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원래 역사에서 세종은 훈민정음을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쉽게 그 억울함을 알리고 풀기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역사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다.

아니다. 지금 역사에서 훨씬 격하다고 해야할 거다.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이 탄생했고, 법률서적 또한 관아의 장서각에 가면 누구나 볼 수 있게 됐다.

신분제가 없어졌으니 일반 백성들은 옛 양반집안, 지금의 기업집안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법만 전문적으로 다투는 율법부가 생겨났으니... 백성들은 되든 안되든, 아쉽고 억울해서라도 일단 송사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조선 역사에서 처음 생겨난 율법부는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하고, 수없이 많이 생겨난 부서 중에서 수위에 오르기 위해서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불렸다.

헌데 제대로 된 법제정이 되지 않다보니, 송사가 쉽게 해결되지 않았을 터... 너무 많이 먹어서 체한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고구마 줄기마냥 끝도 없이 늘어나니... 톡톡. 태종은 가볍게 손가락을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결론은 지금 이 상태로 어중간하게 가는 것 보다는... 일주일의 개념을 도입해서, 공휴일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

“조정이든, 기업이든, 쉬는 날을 명확히 정하는 게, 들인 돈에 비해서 훨씬 효율이 높고 낭비되는 시간이 없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쉬는 날은 일요일이라는 마지막 날로 하자?”

“예. 굳이 정교회의 교리가 아니더라도, 마지막 날에 쉬는 게 계산하기 편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아무 때나 쉬어도 된다면, 기억하기 쉬운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음...”

태종은 머릿속에 일주일이 표시된 달력을 떠올려봤다가, 금세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정해지기만 한다면, 편하긴 분명 편할 거다.

“더욱이 기업을 놓고 보면 휴일이 명확히 정해지는 게, 백성들 입장에서도 훨씬 좋을 걸로 사료됩니다.”

“...?”

“피로도 때문이지요. 각종 송사가 이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음...”

무역이 시작되고, 기업이 생기면서 조선은 어설프게나마 시장경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만큼, 쌓아 올리면 올리는 대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렸다.

전처럼 땅과 사람을 통해 이익을 얻지 못하는 집안은 돈으로 눈길을 돌렸고, 어떻게든 한몫 잡아보려고 애를 쓰는 게 인지상정.

당연히 사원들을 미친 듯이 굴릴 수밖에 없고, 전처럼 노비나 가솔이 아닌 돈을 주고 고용한 사원이니 더욱 악착같이 뽑아내려 애를 썼지.

사실 농사일이 고되다곤 하지만... 하루에 할 수 있는 양은 얼추 정해져 있고, 또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자영농이니 만큼,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쉴 수도 있는 거고 말이다.

그에 반해 기업 사원은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일만하는 처지에 놓이기 십상이니... 미래로 비유하면 쉬는 날 없이 노가다를 매일 뛰는 것과 비슷한 거지.

이러면 골병이 안 나는 게 더 이상한 말.

아무리 자본유학이 유학이 근간을 둬서 백성들을 위한다지만, 법률이 명확하지 않으니 기업과 사원 간에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음... 그래서 서로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쉬는 날이 필요하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백성들 입장에선 일을 안 하고 하루라도 푹 쉴 수 있는 날이 필요하고, 기업 입장에서도 괜히 사원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그걸 대체하는 데 불필요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니까요.”

“송사도 덜고 말이지?”

“그건 뭐...”

성억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멋쩍게 뒤통수를 긁고 말았다.

민,형법이 완전히 구별되지 않아 율법부는 안 그래도 할 게 많은데, 시시콜콜한 송사 때문에 더 큰 일을 못하는 건 분명한 행정낭비니까.

“그래서 칠요일? 일주일의 개념을 도입하고, 근무시간을 명확히 법률로 제정하겠다는 거군?”

“예.”

“생각해보면... 칠요일은 쉽게 될 거 같은데?”

“조정의 분위기도 긍정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태종의 의견을 황희가 냉큼 받아 고개를 끄덕였다.

“칠요의 개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민간에서 널리 퍼지진 않았지만 또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요. 더욱이 효과에 비해 돈이 적게 드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역법은 달력이다. 달력에서 중요한 건 절기를 구분 지을 수 있는 날짜와 월.

칠요일. 일주일은 날짜를 묶는 새로운 방법을 달력에 추가하는 거지, 달력의 날짜를 바꾸는 게 아니다.

당연히 훨씬 쉬울 수밖에 없고, 적응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

“자주화를 외치는 쪽에선 좋다고 환영할 거고 말이야.”

“...”

태종이 피식 웃으며 말을 내뱉자, 다들 멋쩍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이 또한 세대 차이라면 세대 차이로. 옛 명나라를 기억하는 노인들과 운석핵꿀밤 세대, 개혁 세대는 생각의 근간이 다르니까.

자주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고, 자연히 온건파와 과격파로 나뉘고 있는데... 과격파는 중국의 것, 근본성리학을 빠르게 치워서 조선만의 것으로 채우길 바랐다.

역법은 그 무게감과 상징성이 확실히 다른 바.

그간 역사에 없었고 중국에 없던 새로운 조선만의 역법이 만들어지는 걸, 누구보다 반기고 있을 거다.

“그럼 근무시간은 어찌할 생각인가?”

“아직 논의 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 이게 간단해 보이면서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군요. 특히나 민간에서 골치 아픈 일이 여럿 있었습니다.”

“...?”

태종이 “빨리 말해봐라.”라는 눈빛을 숨기지 않자, 성억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늘어놨다.

“일단...”

아까도 말했듯 시간 단위가 너무 편차가 큰 건, 조정에서도 민간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애매하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경우 보통 가장 늦게 출근한 사람에 맞춰 업무가 돌아가지 않겠나.

그렇다보니 조정처럼 기업 또한 명확한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의 개념을 적용하길 바랐고, 사원들 또한 그걸 원했다.

“야간 근무를 하기는 힘들 텐데?”

태종은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끼어들고 말았다.

이 시대는 해가 떠 있을 때만 활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색주가나 주점처럼, 밤에도 영업을 하는 건 극히 예외적인 업종이지.

요새 각종 기름 생산량이 늘었다곤 해도... 기업에서 불을 환하게 밝혀놓고 야간근무를 시키는 건, 아무리 수지타산을 따져도 기름 값이 더 많이 나온다.

“물론 그 말씀도 맞습니다만, 해가 떠 있는 시간이라는 것도 애매하지 않습니까? 똑같은 업종의 기업인데, 어느 기업은 해가 어스름하게 질 때 퇴근하고, 또 어느 기업은 해가 완전히 지면 퇴근하고. 뭐... 이런 문제 등이 있습니다.”

“시시콜콜한 문제지만, 이 또한 송사거리가 될뿐더러... 기업이 백성들을 착취하는 명분이 된단 말이군.”

“예.”

태종은 속뜻을 알아차리고선, 자기도 모르게 히죽 입술이 들렸다.

이게 참 모순인 게... 조선의 생산력 증가를 위해 기업을 잔뜩 밀어주고는 있지만, 또 한편으론 기업이 일정 수준을 넘어 거대하게 크는 건 막고 있다.

옛 귀족이나 중국호족마냥,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집안이 나오는 걸 막으려는 거지. 바뀐 지금 조선에서 집안의 영향력은 재력으로 결정이 나니, 조정 입장에선 기업이 너무 잘되는 걸 무작정 좋아할 순 없었다.

해서 이걸 때려잡을 명분으로, 백성을 위한다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지.

비록 조선이 자본유학을 받아들여, 시장경제로 나아가고 있다지만 자본유학도 유학.

백성이 근본인 건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 문제가 되는 게 있었습니다.”

“...?”

“그게... 송사를 하기에도 뭐하고, 안하기에도 뭐한 일인데... 식사 문제였습니다.”

“식사라?”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 걸까? 태종은 가만히 눈을 감고 과거를 더듬다가 이내 겪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민간에선 2끼 혹은 새참을 포함해 2.5끼를 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달라진 건 연오랑이 착호군을 끌고 다니면서 부터다.

비록 전체적인 양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더라도, 명확하게 아침, 점심, 저녁 3끼의 개념을 도입한 것.

이는 착호군을 따라 민간으로 퍼져나갔고, 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3끼가 일반적인 상황이 됐지.

문제는 기업에서 점심시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였다.

농사일을 하면 그냥 집에서 알아서 밥을 차려 와서 새참처럼 먹이면 그만인데, 기업은 한자리에 모여 있던 사원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밥을 챙겨 먹고 돌아와야 했다는 것.

“이러니 점심 식사 시간이 제멋대로이지 않겠습니까? 어느 집은 빨리 먹고, 어느 집은 늦게 먹고. 그때그때 집안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 통제할 수가 없지요. 해서 어떤 기업들 중에선, 그냥 각 집안의 부인들을 불러 모아서 단체로 밥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음...”

“하지만 그것도 보통 일이겠습니까? 기업이라 함은 못해도 30명 이상의 사원이 근무하는데, 30인분의 식사를 매끼마다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돈도 많이 드는 일이니까요.”

미래야 전기와 가스가 있으니 밥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 시대는 가마솥에 밥을 하려면 장작부터 패야하는 시대다.

시장에서 장을 봐오든, 텃밭에서 챙기든, 반찬을 만드는 것도 전부 일.

하다못해 간을 내는 간장을 구하는 것조차, 직접 메주를 만들어 숙성시켜야 한다.

설거지는 또 어떤가. 말 그대로 3끼를 먹으려면, 하루 웬 종일 부엌에만 붙어 있어야 하는 건데... 기업에선 이것 또한 지출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해진 거지.

“예전 같았으면 노비들을 시켜서 어떻게든 했겠지만...”

“지금은 노비조차 없으니, 밥하는 사용인을 구하는 것 자체가 돈이 들 수밖에 없지요. 옛 노비처럼 대충 잡곡밥만 먹일 수도 없고 말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어째 시대를 거슬러 “에이. 이럴 바엔 그냥 밖에 나가서 사먹이는 게 더 싸게 먹히겠다.”라고 판단한 기업이 등장.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식사만 대접하는 전문적인 식당이 점차 늘고 있는 게 요즘 추세였다.

“그래서 아예 명확하게 식사시간을 정하는 게, 모두에게 효율적이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근무시간과 마찬가지지요.”

“결국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자 첫 단추는 백성들에게 시간 개념을 주입시켜야 한다는 거군.”

“...”

태종이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자, 다들 고개를 숙였고... 그는 다시금 톡톡 바닥을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어째 상징성은 역법을 바꾸는 게 더 크지만, 실제로는 이 문제가 돈도 더 많이 들고 어려우니까.

“해결책은 있나?”

“해서 전하께선 전국에 시계탑 건설을 명하시고, 시계 연구와 함께 법률 제정에 힘을 쓰라 하셨습니다.”

“음...”

이탈리아의 시계 기술자들이 조선에 온지 한참 됐고, 한성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시계탑도 완성이 됐다.

사실 이건 구조가 더 복잡한 천문시계이자 조선에서 처음 만드는 물건이라서, 최고급 자재를 활용해 심혈을 기울이느라 오래 걸렸다.

그냥 단순한 시계탑만 만드는 건, 이젠 그리 어렵지 않을 게 분명.

돈도 그리 많이 안 든다. 시계탑은 원리와 구조를 익히고 만드는 게 힘든 거지, 자재 자체는 별 거 없지 않나. 오히려 시계탑 꼭대기에 올리는 대형 종이 더 비쌀 거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겠군.”

“아무래도 시계탑 하나만으로는 시간을 확정할 수 없으니, 물시계와 해시계도 함께 건설해야 할 겁니다. 그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인력과 제도 또한 필요할 것이고요.”

“허나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니, 한편으론 크게 어려울 것도 없을 겁니다. 일단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그 다음부턴 그걸 따라하면 될 테니까 말이지요.”

태종이 살짝 불안감을 내비치자, 맹사성과 허조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한성에서 기준이 되는 시간을 정했다치면, 이제 이 시간이 전국적으로 똑같이 흘러가게 만들어야 되지 않겠나.

물론 그렇게 까지 가진 않더라도 최소한 각 현, 각 도에서는 같은 시간이 흘러야 일이 해결 될 터. 이런 부수작업을 하려면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시계탑, 해시계, 물시계가 서로를 보완하며 오차를 줄여줘야 할 거다.

“...”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오겠어.’

태종은 물끄러미 미래를 그려보며,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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