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89화 (489/538)

489. 챕터60. 토해내다 (5)

각 현의 중심에는 새롭게 건설된 3층관아를 중심으로 관청이 밀집되어 있는데, 여기에 이제 시계탑까지 추가 될 터... 이런 모습은 지난날 고려나 조선에선 결코 볼 수 없던 풍경 아닌가.

이것만 해도, 이미 완전히 새로운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더불어 전하께선 각 기업이 소유할 수 있을 정도로 축소시킨 시계를 연구하고 계신데, 얼추 완성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서방의 기술이 없이도, 그와 흡사한 걸 만들었으니까.”

“비록 덩치가 크긴 했지만 말이지요.”

“크큭.”

초창기에 만들었던 시제품 시계를 떠올리며, 태종은 자기도 모르게 나이를 잊고 어린아이처럼 웃고 말았다.

세종이 기를 쓰며 어떻게든 기계식 추시계를 만들었는데... 그게 집안에 놓자니 너무 크고, 밖에 놓자니 너무 작은... 뭔가 어중간한 시계를 완성하지 않았나.

그때 세종의 허탈한 얼굴이 떠오르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항상 뭐든지 척척 해내던 아들이, 그 때만큼은 빈틈을 보였으니까 말이다.

“...”

태종을 비롯한 이들은 과거를 떠올리며 웃고 넘겼지만... 이건 정작 이 일을 진행하고 있는 조선관료들도 예상치 못한 중대한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하루를 12지시에 맞춰 2시간 간격으로 나누는 것과 24시간으로 나누는 것. 가장 최소 단위가 1각刻. 15분에서 1분, 1초 단위로 나누는 것.

이건 이 시대의 시간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는 사안이었으니까.

이렇게 보다 빡빡한 시간관념을 갖추게 되면, 절로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고, 또 일처리에 있어서 보다 정교하고 명확해질 수밖에 없다.

과장되게 표현하면, 12지시를 사용하는 나라들보다 못해도 2배는 더 시간을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

약속시간조차 애매해서 1시간 쯤 늦는 게 일상인 시대에서, 30분만 늦어도 민폐인 시대로 가게 되는 거지.

그리고 이런 빡빡한 시간 개념에 익숙해지면, 거대한 시계탑이나 괘종시계가 아닌, 휴대할 수 있는 작은 시계를 바라게 될 터... 자연스럽게 정밀공학의 발달로 이어질지 누가 알겠나.

또한 이러한 움직임은 조정이 밀어붙이고 있는 기업척. 조선의 새로운 도량형인 조선척과 연계되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기존과 완전히 다른 조선척은, 예상과 달리 민간에 빠르게 이식되고 전파되고 있었다.

까닭은, 훈민정음이 빠르게 전파된 이유와 같았다.

조선의 각 지방에선 이미 제각각 조금씩 다른 척관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외국이주민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같은 1척尺이라고 해도, 조선의 척과 일본의 척, 여진, 강남인, 강북인, 요동인, 몽골인이 쓰는 척이 전부 다 다르다.

안 그래도 말이 잘 안 통하는 마당에, 서로 생각하는 척관법마저 달라버리면 의견이 통하기나 하겠나.

그럴 바엔 그냥 낯설더라도, 모두가 새롭게 배워 똑같이 이해하고 있는 새로운 조선척을 사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지.

헌데 이런 시간 개념과 도량형은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국에도 없는, 오롯이 조선만 사용하는 기준.

자연스럽게 자주화의 첨병이 되어,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형성에 도움을 줄 수밖에 없는 거지.

지금 세대가 지나, 이주민 2세대가 탄생하게 된다면... 그들은 다른 나라와 전혀 다른 세상인 조선에서 살면서, 외모와 고향을 떠나서 하나 된 조선인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성장해 나갈지도 모른다.

“조정에서 또 논의되고 있는 사안이 있나?”

태종은 한참을 웃다가 화제를 돌렸고, 네 사람은 눈빛을 마주치다가 결이 같은 이야기를 풀어놨다.

“지금껏 말씀드린 칠요일 및 축제와 관련된 사안이 있습니다.”

“...?”

“향교 문제입니다.”

“아아.”

태종은 금세 알아 듣고선,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젓고 말았다.

향교 개혁안을 두고, 연오랑이 얼마나 징징거렸는지 익히 들었다.

심지어 명절 때나 찾아오는 녀석이, 그때마다 항교에 대한 안건을 꺼내지 않았나.

태종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였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까지의 성과로 보면 반은 성공, 반은 실패입니다.”

“...”

태종이 계속 말을 하라는 듯 손을 까닥거리자, 허조가 대표로 설명을 이어갔다.

“용연군께선 향교를 새로운 교육기관이자 놀이시설, 화합의 장소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후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향교의 운동장에선 각 현마다 필요한 행사를 하고 있으니까요.”

“...”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허조는 살포시 말을 흐리면서, 조심스럽게 술병을 들어올렸다.

“술?”

“예. 매년 시행되고 있는 명주선발대회지요.”

“음.”

이건 태종도 들어봤던 이야기라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가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양전사업을 하고 있을 때. 땅을 헤집느라 바쁜 와중에도, 조선인도 아닌 남방이주민들이 명주선발대회에 대해서 떠드는 걸 들었으니까.

연오랑은 향교를 크게 건설하고, 그에 필요한 대금과 유지비를 확보하기 위해 향교를 활용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자고 했다.

경마와 격구가 그 대표적인 예로, 실제로도 향교의 운동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한된 공간에서, 한자리에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장소는 지금껏 없었으니까.

과거에는 기껏해야 흙먼지가 풀풀 풍기는 벌판뿐인데... 그런 곳보다는 잔디밭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내려다볼 수 있는 좌석이 있는 향교 운동장이 훨씬 낫지 않나.

“그래서 행사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거군.”

“예. 명주선발대회 뿐만 아니라, 온갖 선발대회를 경쟁적으로 개최하지 않았습니까. 조정에서 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유도한 측면도 있지요.”

“음.”

태종은 조정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또한 결과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성장 동력을 이끌어 내고, 조정의 세수 및 화폐의 유통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조정은 다양한 방법으로 백성들의 지갑을 열려고 노력했다.

오래전에 했던 연오랑의 제안은 나름 솔깃했고, 단박에 채택되어 각종 경기, 무술대회는 물론, 수공예품, 예술품등을 선발하는 대회를 개최했지.

여기에 부정행위가 끼어들기도 힘든 게, 무려 왕실의 명으로 이뤄지며 최종본선은 왕실의 이름을 걸고 행해졌지 않나.

조금 확대해석하면... 이걸 잘 못 건드리면 역적이 될 수도 있으니, 부정행위가 쉽게 벌어질 수가 없었지.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확실히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요일을 도입해 매주 공휴일이 생긴다면...”

“더욱더 각종 행사를 진행하기 편할뿐더러, 백성들의 놀거리와 볼거리도 늘어날 거라는 거군?”

“예.”

“나쁘지 않아...”

태종은 미래를 그리기 무섭게,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미 전부터 야금야금 고개를 들기 시작한 사회현상으로,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신분제가 해체되어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배가 두둑해지니 드디어 세상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런 민심이 이상한 쪽으로 튀지 않게 다독이고, 불만이 아닌 즐거움을 즐기는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각종 놀거리 제공은 필요했지.

“없이 살던 시절에도 재인패가 오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튀어나와 구경하는 게 일상이고, 군사훈련도 구경하고, 하다못해 익숙해진 전함조차 매일 같이 나와서 구경하던 게 백성들 아닙니까.”

“...”

“그런 백성들의 관심사가 유흥과 향락에만 치중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행사나 대회는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음...”

현실의 불만이 잊게 하고 표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정치 꼼수.

이는 고대 로마의 검투경기부터 미래의 스포츠 정책까지, 유구하게 내려온 방법 아닌가.

당연히 이 시대의 조선관료들도 알고 있었다. 당장 고려 때에 돈을 펑펑 써가며 팔관회를 개최했던 것도, 그런 이유가 껴 있었으니까.

‘맞는 말이야.’

안 그래도 색주가와 기생집, 주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냥 내버려두면 허조가 말한 대로 향락과 퇴폐에 빠질 지도 모르는 일.

아무리 백성들의 돈이 돌아 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지만... 반쪽짜리긴 해도 어쨌든 유학에 근간을 둔 조선에선, 그렇게까지 향락에 빠지는 건 인정해줄 수가 없다.

“더욱이 이런 행사를 통해 백성들이 화폐 사용에 익숙해지고, 화폐의 유통이 쉬워지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음.”

이 또한 당연한 말.

조정의 이름으로 시행되는 도박판이 열렸는데, 돈이 시장에 돌지 않는 게 더 이상한 말.

놀러 와서 시장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는 것만으로도, 시장경제 활성화에는 큰 영향을 끼친다.

이게 단순히 한성에서만 행해지는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면, 자연히 화폐가 완전히 정착하고 장돌뱅이 상인의 발길을 따라 전국을 돌게 되겠지.

“성공이 그렇다면, 실패는?”

“예상만큼 많은 수의 향교를 세우지 못했다는 점과, 정작 기대했던 교육기관으로서의 효과가 떨어졌다는 점이지요.”

“흐음... 교육이라.”

심각하다면 심각한 이야기인터라, 태종은 또 다시 술잔을 들이키며 손가락을 튕기기 시작했다.

백성들을 무식하고 단순하게 만들어 말을 잘 듣게 하는 건, 고금을 이어 내려온 통치의 전략이다.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지식 접근의 편의성을 차단해, 기득권과 신분제를 공고히 하려는 이들이 존재했지.

양반이 괜히 양반이었겠나.

허나 지금 역사의 조선은 진리를 역행했다.

기득권층과 신분제를 깨부수려는 이가 바로 세종과 태종이었고, 두 왕은 위로 올라오는 사다리를 넓히면 넓힐수록 이득이었다.

아무리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들, 사다리의 주인인 왕에게 닿을 수는 없으니까.

또 하나. 잡학이 성리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류학문으로 자리 잡고, 전문화와 특성화를 위해 각종 지식을 수집해 온 바.

학자이자 관료들이 가지고 있던 책 속의 지식을 넘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농부의 지식마저도. 잘 긁어모아 정리정돈을 하면, 진짜 지식으로 탈바꿈하는 걸 무수히 목격했다.

그 결과 지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졌으니... 나라라는 큰 틀에서 보자면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킨다는 게, 무작정 손해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거지.

더불어 그렇게 지식을 취한 백성들이 각 기업에 포진해,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며 바꿔나가고 있지 않나.

항상 머리맡에 중국을 두고, 중국시장에 먹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조정관료들 입장에선... 이 상황이 좋든 싫든, 교육의 접근성을 낮추는 기조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각 현마다 향교를 건설하려 했지만, 그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해서 계획의 절반 밖에 하지 못했지요.”

“...”

태종은 “왜 못했냐.”라고 차마 묻지 못하고, 쓴웃음만 흘리고 말았다.

조선은 날 듯이 성장하고 있지만, 이 성장이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 번 돈을 전부 인프라 투자에 쏟아 붓고 있다.

안 그래도 돈을 쓸 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가 나오지 않는 향교개혁이 우선순위에서 밀린 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또한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 조정에서 아무리 강제한들, 백성들의 마음을 억지로 돌리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다른 것도 아니고 교육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조정관료들의 생각만큼, 호응이 큰 게 아니었다는 건가?”

“예... 그렇다면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흐음.”

태종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게 신음을 흘렸다.

요즘 조선은 눈 감았다 뜨면 바뀌어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건 맞다. 허나 모든 백성들의 생각과 신념, 고정관념이 바뀌는 시대에 맞춰 변하는 건 아니다.

당장 배운 게 많은 태종 일행조차도, 운석핵꿀밤 세대는 크게 미련을 두지 않는 요동에 얽매여 있었지 않나. 그만큼 자기가 경험해온 과거를 떨쳐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하물며 일평생 양반집 땅을 빌려, 수동적으로 농사만 짓던 농부들이라면... 더욱더 그런 경향을 보일 수밖에.

“드디어 기회가 열렸으니 더러워서 라도! 나와 내 자식을 성공시키고야 만다!”라고 다짐하는 백성도 있겠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공부는 무슨 놈의 공부.”이러면서,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한계를 정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

“그래서 향교에서 교육을 시켜준다고 해도, 관심이 없는 백성이 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는데, 향교가 각 현에 하나만 있는 건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오가는 시간이 보통 걸리는 게 아닌데, 아이들만 보내는 것도 부담이고 하니...”

“아예 안 보내는 부모도 많단 말이군.”

“예. 향교에서 먼 곳에 위치한 마을의 경우. 교생들이 직접 돌아다니고 있기는 허나, 이것도 관심이 있는 집만 보내고 관심이 없는 집이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실무를 가르치는 수업에는 참석률이 높다고 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이건 태종이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양전사업을 하면서 직접 봤던 사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직업교육에 있어서는, 글공부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백성들도 모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게다가 용연군 대감께서 말한 기초교육이라는 것도, 생각만큼 쉽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더군요. 사실 교육에 기초가 있다는 것도 애매하지 않습니까.”

“쓰읍...”

태종은 연오랑이 들었다면 분명 잔소리를 토해냈을 거라고 상상하며, 작게 혀를 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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