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91화 (491/538)

491. 챕터60. 토해내다 (7)

“...”

“그럼...”

잠시 어색한 침묵이 다시금 장내를 감쌌고, 태종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지금 벌어진 연회는 요동에 미련을 가진, 아직도 한이 남아 있는 은퇴한 노신들을 위한 잔치다.

태종 일행이 이 자리에 끼어 있는 건 그들 또한 노신인 탓인데... 한편으론 내일부터 요동을 경락할 최고 책임자들이기도 했지.

그러니... 조정에 산적한 많은 안건 중에서, 굳이 향교 문제를 꺼낸 게 우연일까.

‘향교와 교육이야 말로 요동을 다스리기 위한 필수요소이기 때문이겠지.’

태종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할 터지만... 간단히 풀어보지.”

“...?”

“요동에서 이주한 집안이 몇이나 되지? 남은 가호는?”

역시나 그런 의도를 갖고 말을 했는지, 황희가 지체 없이 답을 던졌다.

“광녕위에서 셋, 심양에서 여덟, 요양에서 열하나, 기타 금주와 복주에서 여섯 가문이 이주했습니다. 아직 정확히 파악되진 않았지만, 남은 요동의 인구는 대략 25만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음... 대충 5만명 정도 빠졌군?”

“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졌긴 한데... 나쁘지 않은 수치입니다.”

태종이 슬쩍 눈을 마주치자,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지역보다 쉬울 것 같나? 어려울 것 같나?”

“글쎄요...”

딱 잘라 핵심만 집는 물음에, 다들 묘한 표정을 지었다.

25만명을 한 번에 흡수하는 건, 역사보다 훨씬 부강해진 조선으로서도 큰 도전이니까.

물론 여진인은 그보다 더 많이 삼켰고, 남주도와 해주도(해남도)에서도 비슷한 수를 흡수했다.

허나 원래 역사에서라면 남주도와 해주도의 인구는 20만은커녕 5만 안팎이어야 했으니... 지금 역사에서 불어난 인구는 명이 망하면서 흘러들어온 강남인이었지.

그러니 같은 한족이라고 해도, 요동인과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남방한족들은 거지떼이자 유민이고, 요동인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토착민이랄까?

“해서 쉬움과 어려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

“쉬운 점이라면 요동인들 또한 아국의 지배를 환영한다는 점이겠지요. 그간 값비싸게 구입했던 아국물산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나름 선진문물이라 하면 선진문물이라고 볼 수 있는 여러 물산과 제도도 있지요.”

“그렇겠지.”

“어려운 점이라면 요동인은 몽골, 여진, 북평부와 싸우면서, 이 땅을 지켜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력을 말하는 건가?”

태종이 슬쩍 눈썹을 치켜들자, 황희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비록 육군의 대다수가 북평부 원정을 떠났지만, 착호군과 해군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반란은 우려하는 건 절대 아니고, 그들의 기질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흐음... 정체성을 말하는 거군?”

“예. 아국처럼 단단해지진 않았지만... 같은 한족임에도 요동인을 중국본토인과 구별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황희는 슬쩍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흘렸고, 태종을 비롯한 이들 모두 쓴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틀린 말은 아니고, 요동정벌을 준비할 때부터 나왔던 이야기니까. 다만 막연히 생각했던 추측이 지금 와서 보니 현실로 증명된 거지.

“조선화 교육을 더욱 강력하게 실시해야 한다는 거군.”

“예. 아마도 이곳엔 방금까지 말한 향교와 대학을 더욱 촘촘히 만들어 관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동의 풍습과 문화를 지운다라...”

태종은 술잔을 빙빙 돌리며, 끝말을 흘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게 쉽게 될지 안 될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요동백성들이 부강한 조선의 지배를 좋아하는 건 그렇다쳐도... 자신들의 머릿속까지 지워내, 새로운 걸 채워 넣는 걸 좋아할지는 미지수니까.

“그래도 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될 걸로 보고 있습니다. 따르지 않으면 손해는 결국 자신이 보게 될 텐데... 그걸 거부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무리 중화를 잊지 못하는 한족이라도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중화에 매몰된 한족들은 굳이 호족이 아니었어도 산동으로 떠났겠지요. 아국이 그걸 유도해서 이주하라고 떠밀었으니 말입니다.”

“음...”

당연한 말이지만, 조선의 요동점령을 모든 요동인이 반긴 건 아니다.

처음이야 덜덜 떨면서 고개 숙이고 있었지만, 조선군이 온건한 자세를 취하자 “진짜로 조선에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이들이 생겨났지.

더욱이 누구나 때려잡을 걸로 예상한 요양파와 심양파 호족들까지도, 친절하게 이주를 장려하며 도와주지 않았나.

재산을 한 짐씩 싸가는 호족가솔들 말고, 평범한 요동백성들 중에서도 중국본토로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

“계속 늘어날 거라는 건가?”

“아마도... 호족집안의 이주가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나 이것도 걱정이 안되는 게, 그래봐야 만 명쯤이 최대 아니겠습니까. 중국본토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재산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게다가 그게 또 나쁜 건만은 아닙니다. 아예 땅을 내놓지 않으려는 요동인은 척결했으니, 강경한 불순분자들은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버티지 못하고 떠날 겁니다.”

“그렇게 수가 줄을 수록, 식량을 비롯한 보급품의 부담도 줄어들겠지요.”

조선은 전쟁 전부터 올 겨울 동안 요동을 먹여 살릴 계획을 짜놨었다. 식량과 보급품은 충분히 준비를 해놨다지만, 25만명분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지.

줄일 수 있다면, 줄일 수 있는 게 좋았다.

이내 태종은 납득하고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남은 가문들은 어떤가? 잘 따르나?”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아국에 편입되길 바라던 가문들은 이미 각오했고, 어쩔 수 없이 항복한 가문들도 결국 따르기로 결정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정확한 보고가 들어오진 않았지만, 지금쯤이면 호족집안들은 기업법에 따라 분할을 시작했을 겁니다.”

“음. 시끌시끌하겠어.”

“뭐. 어쩌겠습니까. 알고 있었으니, 감내해야겠지요. 게다가 그게 꼭 손해는 아니고, 누군가에는 기회이지 않겠습니까.”

황희는 음모를 꾸민 사람마냥, 음흉한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이 시대는 인구조사나 호적조사가 정밀하지 못해서, 미래처럼 개개인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집안으로 구분했다. 괜히 가호家戶라는 기준을 쓰는 게 아니지.

이건 중국도 마찬가지. 예전부터 그래왔었다.

헌데... 걸핏하면 사적제재, 칼부림이 벌어지는 중국에서, 진짜 믿을 만한 사람은 가족과 혈족이지 않겠나.

객가인처럼 극도로 밀접한 특이점까지 가진 않더라도... 직계와 방계를 가리지 않고, 같은 성씨를 쓰는 혈족이 한 장원에서 모여 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

이렇게 만들어진 중국호족집안은 점차 덩치가 커졌고, 이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온갖 이권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대토지를 소유해 소작을 주는 걸 넘어서, 장사도 하고, 고리대금업도 하고, 물품운송, 목마장, 각종 수공업공장 등등. 말 그대로 돈 되는 건 다 했지.

괜히 암묵적인 지배자라 불렸던 게 아니다.

헌데 조선 기업법의 핵심은 기업집안이 일정 이상 크지 못하게 강제하는 것. 설령 돈은 불릴 수 있어도, 땅과 사람을 무한정 증식하지 못하게 막는 거다.

이건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쳐 살던 호족집안을 수개, 수십개의 집안으로 쪼개는 효과를 가져 올 수밖에.

직계에 눌러 살던 방계, 혹은 집안 중에서도 장자가 아닌 자식들에게는... 오히려 한몫 챙겨서 나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 꼴이다.

“그래서... 과거엔 한 집안이었지만, 이젠 가주의 첫째, 둘째, 셋째 등의 자손들이 전부 새로운 집안을 열고 분리될 거라는 거군.”

“예. 그러면서 집안의 이권을 나눠가지겠지요. 어쩌면 이번 기회를 통해 오히려 사세를 확장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랬다간 큰 코 다치겠지.”

태종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미 조선에서 익히 봤던 일이니까.

이렇게 문어발식으로 쪼개진 후에, 각자의 기업을 키우면 혈족 전체의 힘이 커질 거라고 생각했던 양반집안들이 있었다.

허나 기업법은 업종에 따른 사원 수를 제한하고 있다.

돈을 아끼겠다고 혹은 믿을 사람만 부리겠다고, 혈족을 사원으로 고용하지 않고 집안의 장자에게 귀속시킨다?

이러면 아무리 혈족이라고 해도, 어느 누가 그 집안에서 일을 하겠나.

예전과 달리 고개만 돌리면 일거리가 넘쳐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나는데, 월급도 안 받고 집안에 묶여 사는 건 힘든 일이지. 자기가 노비도 아니고 말이다.

더불어 조정입장에선 이게 나쁠 것도 없다.

조세법이 개정되면서 가호가 아닌 수익에 따라 기업세금을 걷는데, 사원을 고용해서 수익을 지출하지 않으면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니까.

개혁이 시작된 후로. 괜히 조정이 조세부를 따로 만든 게 아니고, 괜히 장부정리가 기업원 및 관원들의 필수소양이 된 게 아니지.

그렇다고 세금을 떼어먹는다? 이건 미친 짓이다.

조선왕실은 미래의 경쟁자이자 기득권이 될 수 있는 집안을 때려잡는 일에 전혀 머뭇거림이 없다.

오히려 본보기를 보여주겠다고, 더 탈탈 털어서 때려잡겠지. 이미 그렇게 날아간 양반집안이 부지기수고.

나아가 민,형법도 개정되어, 이젠 돈을 중심으로 형벌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경제사범의 경우에는 편취액의 몇 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했다. 왜? 아까 말했듯 조정과 왕실은 기업집안을 때려잡는 일에 적극적이고, 땅과 사람이 없는 기업집안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치명적인 형벌이었으니까.

나아가 과거의 여러 형벌은 없어지고, 징역형과 사형만 남았는데... 이 징역형은 그냥 감옥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든 돈줄을 찾으려고 기를 쓰는 조정인데, 범죄자를 그냥 먹여주고 재워줬겠나. 노역형으로 바꿔서 하루 일당을 계산해 갚아야만 했지.

결국 잡범이라면 노역으로 어떻게든 갚아서 풀려난다 쳐도, 만약 기업이 세금을 떼어먹거나 불법을 저지른다면... 그걸 다 갚기 전엔 기업집안 자체가 날아갈 거다.

이걸 모르고 꼼수를 부리려다가 오히려 집안이 휘청거리는 걸, 태종은 그간 여러 번 봐왔다.

아니나 다를까. 허조가 한마디 덧붙였다.

“이건 과거 본토에서도 벌어졌던 일이니, 큰 문제없이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음... 호족집안은 그렇게 하면 되고, 남은 백성들은? 결국 이주를 해야겠지?”

“예. 못해도 8~10만명은 이주를 시켜야 할 겁니다.”

생각만 해도 어지러워, 태종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껏 조선이 꾸준히 해왔던 방법. 사람을 섞어서 소수의 이민족이 조선에 파묻히게 만드는 방법 아닌가.

요동이라고 다를 게 없으니, 요동인들을 조선에 퍼트리고, 반대로 조선인을 요동에 데려와야 했다.

“이미 준비를 해놓고 각 현의 관아에서 말을 해놨으니... 백성들이 슬슬 올라오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특히나 요동의 이권을 노리고 달려든 기업들은 이미 움직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기업들이 요동으로 밀려오는 건, 조정에서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백성들은 바보가 아니고, 남주도와 해주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봤다.

요동은 조선에 비하면 모든 것이 모자란 곳. 하다못해 건설기업이나 자기기업, 벽돌기업조차도 없는 곳이다.

요동에서도 양전사업이 진행될 것이고, 모든 걸 갈아엎어 조선처럼 만든다면... 당연히 온갖 기업을 필요로 할 테니, 지금이야 말로 집안을 일으킬 절호의 기회인 거지.

“기업이라...”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요동에 발을 디딘 기업집안이 무려 마흔셋입니다. 그것도 심양을 비롯한 북부에 대다수가 진출했습니다.”

“호오... 남부가 아니라 북부라?”

태종은 사뭇 흥미로워, 자기도 모르게 관심을 표했다.

“어째서지?”

“목재를 확보하려는 것 같습니다.”

“수로를 장악하겠다?”

“아무래도 그럴 생각인 모양입니다. 개원 상인집안과 경쟁할 수도 있지만, 그것 아니어도 충분히 성장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렇겠지.”

태종은 황희가 뭘 말하는지 곧장 알아차렸다.

요동북부는 산맥과 걸쳐 있어서 자연히 목재가 많고, 이 목재는 요동 재개발에 있어서 무조건 필수품이다.

나무를 잘라내는 족족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어 팔려 나가겠지.

특히나 가장 값어치가 있는 건 아무래도 배와 항구, 조선소가 될 게 분명. 해안이 있는 강남연맹의 배도 조선의 것과 비교가 안 되는데, 요동의 배는 더 말할 필요도 없지.

개원상인이 비단길 및 북방무역을 노리고 있다지만, 결국 그들도 운송을 위해선 조선에서 만든 배로 교체해야할 터...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사업이다.

나아가 일단 배는 만들기만 하면 어디든 팔 수 있다.

본토에서 북방으로 연결된 수로망이, 이젠 요동으로 확장되어 요동반도로 빠져나오지 않겠나. 수로와 관련된 사업은 무조건 성장할 거라고 보고 있었다.

“그 외에 건설과 관련된 기업이 오고 있습니다.”

“그 또한 당연한 말.”

자기도 모르게 흥이 났는지, 태종은 장단을 맞추며 가볍게 바닥을 두들겼다.

요동의 가옥은 조선의 북방가옥에 미치지 못하고, 사합원 형태가 많다지만 일반 백성들이 사는 집까지 전부 벽돌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여기도 초가집이 넘쳐나니, 싹 밀어서 기와집으로 탈바꿈하게 될 터... 이와 관련해서 기와를 만드는 자기기업을 필두로, 온갖 건설기업이 몰려들고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