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92화 (492/538)

492. 챕터60. 토해내다 (8)

“목마장이나 농산기업은...?”

“그건 경쟁이 치열하다고 생각하는지, 지금 당장은 많지 않습니다. 분할될 요동호족집안 중에서, 목마장을 운영하지 않는 집안이 없으니까요. 더불어 요동의 기후에 맞는 상품작물을 재배하는 건, 아무래도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북방의 기후나 요동의 기후나 별반 차이가 없을 텐데?”

“그렇긴 해도, 아무래도 조정이 나서서 길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농사는 무엇보다도 양전사업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음...”

태종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농사는 땅만큼이나 물이 중요한 법. 일단은 조정의 움직임을 살핀 후에, 얼추 공사계획이 나오면 움직일 생각인가 보다.

“남부에선?”

“남부에선 아무래도 조선기업 및 수산기업이 설립되고 있습니다.”

“금주 등지의 요동상인집안도 함께 뛰어 들겠군?”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큰데... 일단은 배를 교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동의 고깃배는 아국의 신형어선과 비교조차 불가한 수준이니, 일단 조선기업은 빠르게 성장할 걸로 보입니다. 수산기업은 어선만 있다면 충분하니, 요동집안들도 넘볼 수 있겠지요.”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가지고 있는 배로 산동과의 무역은 계속하겠지만 말이지?”

“예. 다만 앞으로 무역은 산동의 조차지에서만 하기로 제약을 둘 텐데... 만약 어기는 집안이 있다면 그 또한 본보기로 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

태종은 마음에 든다는 듯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상인집안을 때려잡으려고 덫을 파뒀는데, 이 또한 또 하나의 덫이 될 것 같아서다.

“그렇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각종 기업이 하나둘씩 생겨나겠군.”

“예. 본토에서 올라오는 기업도 늘어날 거고, 요동인 출신 기업도 늘어나겠지요. 그치들은 얼추 아국의 사정을 알고 있으니, 기존의 사업체를 전부 기업으로 바꿔야하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음...”

태종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머릿속에 그려봤다.

조선본토에서도 그렇고, 그나마 개발된 해주도에서도 그렇고, 사업체를 기업으로 바뀌면서 어떤 현상과 문제점이 발생했는지 누누이 봐오지 않았나.

요동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테니, 큰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보나? 본토의 기업집안이 더 빨리 성장할 거 같나? 아니면 요동의 기업집안이 더 빨리 자리 잡을 것 같나?”

태종이 영문을 알기 힘든 미소로 묻자, 다들 쉽게 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계획도 세워놨고 전쟁 중에 진행도 해봤지만, 어떻게 될지는 정녕 알 수가 없었으니까.

“지금까지로 봐서 증명된 건, 역시나 아국의 기술이 요동보다 훨신 낫다는 점입니다.”

“그렇겠지요. 뭐. 우리가 단속을 잘하는 것도 있지만, 생각만큼 관심이 없는 걸지도...?”

“그건 아닐 겁니다.”

황희가 의문을 살포시 흘렸지만, 허조가 단호히 말을 막았다.

“중국상인과 만날 수 있는 이들은 무역관의 관원과 기업집안 사람들인데, 기업가 출신들이 자기 배를 까서 보이겠습니까? 지금의 이득이 무엇 때문인지,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말입니다.”

“음...”

이건 다들 동의하는지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렇게까지 강경하게 말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정말로 그런가? 중국상인들이라면 천금을 내서라도 아국의 정보와 기술을 빼내려고 할 텐데?”

“기업가들은 그 정도로 미래를 못 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국의 관료들도 중국을 경계하고 있지만, 민간의 기업가들 또한 중국시장을 경계하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흐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군.”

“예.”

태종의 속뜻을 알아차리고서, 허조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큰 빗처럼 생긴 단순무식한 훌테조차도, 타작의 어려움과 소모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구조가 간단하니 중국으로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는데...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넘어가지 않았다.

이건 그저 운으로 치부될 게 아니라, 민관 모두가 진심으로 꽁꽁 싸매고 있다는 뜻.

까닭은 조선기업들이 중국상인들이 잠식하고 있던 무역시장을 본격적으로 노리기 시작했고, 인구와 자원빨로 밀어붙이는 중국상인에 대항하기 위해선 기술력 밖에 없다는 걸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좋은 점이란 앞으로도 이런 기조가 계속 유지될 거라는 점.

나쁜 점은 지극히 사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조차도, 중국시장을 두려워 한다는 점이지.

이 말은 지난 십여년의 발전으론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조선과 중국의 경제력이 차이가 난다는 걸 모두가 안다는 뜻이고.

“반대로 요동으로 진출한 기업집안은 말 그대로 이 땅에서 새로 시작하려는 이들이 대다수. 자금은 기존의 사업을 가지고 있는 요동집안이 앞선다는 거군.”

자금과 기술. 이 둘이 분리되어 있으니,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요동 기업은 반드시 기술을 배우려고 하겠지?”

“예. 농기구를 예로 들면, 필요하면 사서 쓴다고 해도 그걸 만드는 기술은 없지 않습니까? 모두가 가지고 있는 목마장조차도 아국의 관리방법이 훨씬 나을 겁니다.”

“특히나 다른 업종은 얼추 따라할 수 있어도, 공업은 아국의 기업집안이 앞서게 될 겁니다.”

당장 광산만 하더라도, 요동의 광산은 그냥 무식하게 땅파서 채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에 반해 조선의 광산은 화약을 사용해 굴을 파고, 보다 큰 갱도를 만들고, 레일을 깔고, 갱도에서 활용할 조랑말도 있다. 이건 기술을 배운다고 해서 곧장 따라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지.

그 외에 온갖 수공업종 또한 축력과 수력을 활용하는 부분이 많으니,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호족집안이 기업으로 전환할 때, 제한을 걸까 합니다.”

“...?”

허조는 음흉한 미소를 숨기지 않고 말을 늘어놨다.

“기업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연구소와 대학뿐이지 않습니까? 그 조건으로 조선화과정을 빨리 끝마치는 걸 내걸까 합니다. 특히나 글과 말을 먼저 익혀야 할 겁니다.”

“더불어 향교의 건설비용도 조금씩 각출하고 말이지요.”

허조와 황희는 이미 오면서 계획을 짜놨는지, 쿵짝을 맞추며 말을 이어갔다.

“흐음...”

태종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그 또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향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한 건, 이것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마디로 요동호족에게서,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전가한다?”

“그렇습니다. 그들도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기술을 배우려면 돈을 지불해야 할 텐데, 그 비용을 향교에 투자하면 조선화 과정이 더 빨리 진행되지 않겠습니까.”

“나아가 이수조건을 맞춰서, 기업의 허가를 내주지 않을 계획도 세웠습니다.”

“호오...”

태종은 둘의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시작부터 제대로 요동호족들에게 고삐를 채울 생각인가 보다.

계획은 간단히 말해서 조선화 교육과정. 예컨대 훈민정음 및 기초회화 등을 끝마치지 않으면, 기술이전은 물론 기업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거였다.

기업 허가가 뭐 별거냐 하겠지만, 이 시대의 기업은 미래의 기업과 다르지 않나.

가족단위를 넘어 친족 수십명이 함께 사는 집안의 가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기업으로 전환해야 했다.

과거. 조선에서도 변화에 순응하지 않고 그냥 땅을 가지고 지주로서 살려는 집안조차도, 온갖 압박에 못 이겨 결국 농산기업으로 전환하지 않았나.

조선은 노비도, 소작농도 인정하지 않으니, 땅이 있다고 해서 그게 돈이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겠지.’

태종은 이 계획의 숨겨진 의도 또한 알아차렸다.

“호족집안은 일반 양민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조선화과정을 먼저 끝마쳐야겠군?”

“예. 늦으면 늦을수록, 이주하는 본토의 기업에게 밀리지 않겠습니까? 조정을 비롯해서 모든 부분에서 조선법과 조선말이 우선하게 될 텐데, 그 때문에 손해를 입는 건 원치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요동호족들이 먼저 아국의 지도를 따르게 되면, 그간 호족들에게 지배받던 요동 백성들도 금세 따르게 될 겁니다.”

“어쩌면 반대일 수도 있겠지요. 요동 백성들 중에서도 인물은 있을 테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집안을 일으키려는 인물이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도 요동호족집안처럼 되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향교와 대학을 늘리고, 교육 또한 함께 하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태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음으로 넘어갔다.

요동호족들을 조선화시킬 유인책을 찾았다면, 그 다음은 요동 백성들이니까.

“그렇지 않나? 생각해 둔 건?”

“계획대로 식량과 일자리로 압박을 하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기업 허가처럼 조건을 건단 말이지?”

“예.”

“거참... 볼만 하겠군?”

태종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애어른 할 것 없이. 매일 같이 받아쓰기를 하고 쪽지시험을 봐서, 하루 먹을 식량을 나눠주겠다는 뜻 아닌가.

요동 백성들도 보유하고 있는 식량이 있겠지만, 조선이 나눠주는 쌀과 같은 식량 및 보급품보단 못할 거다.

“불만은...”

“없을 겁니다. 누가 봐도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아국에 편입됐으면, 아국의 말과 제도를 따르는 게 당연한 거고... 먼저 따라오는 이들에게 당근을 주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니까요.”

“게다가 만약 요동 백성과 요동 호족들이 경쟁이 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퍽 재밌어 질 겁니다.”

허조는 다시금 음흉한 미소를 지어댔다.

고작 한달 전만해도 요동호족은 요동백성들의 머리 위에 앉아 지배했었다.

헌데 이제부턴 똑같은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르는데, 호족 출신이 양민에게 뒤떨어진다? 치욕감에 잠을 이루지 못할 거다.

반대로 이런 간단한 시험을 통해 호족들을 눈 아래로 볼 수 있다? 요동백성들은 그간의 울분을 풀어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조선화과정을 먼저 이수하려 할 거다.

“음... 그럼 결국 내년 봄까지는 요동백성들을 그대로 두고 교육을 시켜야겠군?”

“예. 최소한 기초적인 말은 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할 겁니다.”

“...”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다들 한잔씩 따라 마시며 잠시 목을 축였다.

확실히 요동이다보니, 그간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나보다.

“그럼 이주는 내년부터 진행될 텐데... 어떻게 생각하나?”

“음...”

“흠.”

어려운 문제가 맞는지, 다들 바로 답을 못하고 신음을 흘려댔다.

무려 10만에 가까운 백성들을 이주시켜야 한다. 이게 쉽게 되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

“백성들 중에서도 자발적으로 요동에 오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유인책도 있고요.”

“땅과 세금면제 말인가?”

“예. 거기에 새 집과 소와 말을 추가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음...”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한 백성들. 그것도 요동보다 훨씬 따뜻하고 살기 좋은 삼남지방의 백성들을 이주시키기 위해선, 확실한 당근이 필요한 법.

요새 사정이 좋아져서 꽤 많은 백성들이 자기 땅을 소유하고 있다지만, 그 땅이 엄청나게 큰 건 아니지 않나.

요동으로 오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삼남지방의 몇 배나 되는 땅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분명히 이에 혹해서 움직이는 백성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5만명 이상은 강제로 이주시켜야 할 겁니다.”

“역시나 본래 소유하고 있는 땅보다 더 많은 땅을 줘야겠군?”

“그렇지 않겠습니까? 기업사원으로 종사하는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건 힘들고, 또 요동백성들이 빈자리로 간들 당장 사원이 될 수도 없을 테니... 농부들을 옮기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장인들을 옮기는 건...”

“요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냥 남겨두는 편이 나을 겁니다. 어차피 이곳에도 기업을 세워야 하니까 말이지요. 차라리 여기서 한자리에 모아놓고 집체교육을 꾸준히 시키는 게 더 효율적일 겁니다.”

태종은 말없이 톡톡 손가락을 두들겼으나, 더 나은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백성들을 섞어야 했는데, 자발적으로 안 된다면 강제로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나마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전국에 균등하게 요동백성을 보내야 할 거다.

“결국 교육 다음의 문제는 양전사업이군.”

“그 작업이 수반되지 않고선, 이주작업도 차질을 빚게 될 겁니다. 해서 지금도 택리부와 농업부 관원들이 조사 중인데, 아직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아국의 법제와 달라서 그렇겠지?”

“예... 심양과 요양 같은 대도시 인근의 토지는 서로 지저분하게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다만 요동호족들도 그 부분에 대해선 이해하고 있습니다. 몇몇은 오히려 기대하고 있고요.”

“...”

태종은 익히 겪어왔던 일 인터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오랑이 개입한 양전사업은 그간 고려나 조선초기에 시행했던 사업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일단 1필의 농지를 대략 1헥타르 정도로 아예 규정해 버렸다. 본래 1필은 대충 소유권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아예 농지매매의 최소단위로 바꿔버린 거지.

이렇게 한 건. 행정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혹여나 누군가 야금야금 파먹어 땅을 늘리는 걸 쉽게 알아차리고, 분쟁이 생겼을 때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였지.

두 번째는 토지를 최대한 정방형으로 쪼개는 것. 바둑판처럼 만드는 것의 이점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효율적이니까.

호족들이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건, 바로 두 번째였다.

세월이 겹겹이 쌓이면서 토지가 잘게 쪼개져 소유권이 분산되는 건, 조선에서도 그렇고 요동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토지의 크기가 같더라도, 손바닥만한 토지가 사방에 널려 있으면 그걸 써먹을 수나 있겠나.

헌데 원,명,요동군부 시절을 거치면서 호족들끼리 난립하는 세월이 이어지다보니, 지금 요동의 토지는 흡사 누더기처럼 얽혀 있었다.

호족이 기업집안으로 분할되더라도, 이 조각난 토지를 어떻게 갈라서 나눠가질지 옥신각신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

그러니 조선이 아예 싹 쓸어갔다가, 다시 재분배 해주기를 오히려 바라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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