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93화 (493/538)

493. 챕터60. 토해내다 (9)

“그러니 양전사업을 크게 반대하진 못할 겁니다. 그들 스스로도 지금 상황이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지만, 요동군부와 호족집안끼리의 사정 때문에 얼굴을 붉히기 싫어서 망설였던 거니까요.”

“음... 업종별로 보유할 수 있는 토지의 양이 다른 건 알고 있을 테지?”

“예. 열심히 설명을 해줬으니, 모를 리가 없을 겁니다. 더욱이 모르면 자기만 손해 아니겠습니까?”

“그럼 기업집안 문제는 넘어가고, 토지개간이 문제인데... 계획은 진행되고 있나?”

“예.”

황희는 묻기 무섭게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농업부가 하는 일이 원래 이런 일이고, 황희 또한 양전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수년간 해왔던 작업이니까.

“지적조사와 양전사업은 조사와 함께 동시에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미 진행 중인 곳도 있고요. 겨울이라서 힘들긴 하지만 본토에서도 해왔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고... 문제라면 강이 얼어붙으면 힘들어질 겁니다.”

“수로 말이지.”

“예. 수로와 광산이야 말로, 요동을 차지한 주요 이유니까요.”

“음.”

태종은 황희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동을 차지한 이유야 많고 많지만... 그 중 경제적인 핵심 부분을 꼭 꼽자면, 방금 말한 수로와 광산이었다.

물론 조선은 미래에도 유명한 광산지역인 본주(본계), 석주(무순)를 이미 차지했다.

하지만 심양, 요양, 미래 중국에선 안산이라 불리는 지역 등등. 요동반도의 천산산맥 일대에는 질 좋은 여러 광산들이 존재했지.

고구려 시절에 철이 많이 났다고 하던 지역이 이 지역이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개발되고 활용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시 한 건 수로다.

조선은 북방을 장악하면서, 서쪽의 압록강, 동쪽의 두만강을 활용해 북방에 뻗어 있는 강을 이어 붙여 수로망을 완성했다.

처음에는 이걸 본토와 북방을 연결하고 지원하기 위해 가다듬었는데, 역사의 비틀림으로 인해 비단길이 열려버렸다.

북방물산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제값을 톡톡히 해냈는데, 이젠 서방물산까지 옮기게 된 거지.

허나 요동 때문에 살짝 비효율적이었다.

비단길로 활용되는 수로는 자잘한 흐름을 빼고 크게 보면, 대충 좌우반전된 디귿자 형태로 이어져 있었다.

북서쪽에서 시작된 강줄기를 타고 동쪽으로 왔다가,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압록강을 타고 서쪽의 의주로 가는 거지.

“이 수로를 활용하게 되면, 비단길을 타고 온 서방물산이나 북방물산을 굳이 의주로 가져와 산동이나 강남으로 보낼 필요가 없게 될 겁니다.”

“요동반도에서 바로 산동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이지?”

“예. 코앞이니까요.”

“허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더 크게 보면, 아국의 수로망이 완전히 바닷길과 연결되어 하나가 됐다는 점이겠지요.”

황희의 말을 허조가 얼른 마저 받았다.

지금의 수로망은 두만강 초입인 경흥에서 출발하면, 원을 그리듯 북방을 한바퀴 돌고 내려와, 압록강 상류에 위치한 정주(집안)에 도착. 그 후 압록강을 따라 내려와 의주에 닿았다.

허나 이제 요동의 수로를 활용하면. 송주(길림)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남서쪽의 심양을 지나, 요하를 통해 요동반도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의 수로를 활용해도, 본토 동쪽의 물산을 서쪽의 집결지인 의주로 옮길 수 있었지만 그래도 산동과 가까운 요동반도만 못할 겁니다.”

“더불어 송주(길림), 황주(장춘)의 물산 또한 정주를 거쳐 의주로 옮기는 것 보다는 요하를 통해 요동반도로 빼내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겁니다.”

“거리는 어쩌면 더 멀 수 있지만, 수로보다는 바다를 통하는 게 훨씬 빠를 테니까?”

“예.”

이렇게 되면 앞으로는 한반도를 중앙에 놓고, 원을 그리듯 수로망과 해로가 연결되게 되는 것.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일본 조차지에서 가져온 물건을 원산을 거쳐 북방으로 옮겨, 끝내 요동을 통해 산동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다.

그 반대도 가능하고.

이게 얼마나 효율적일지는 돌려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이용해온 남방항로 외에 새로운 무역로가 열리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끝으로 이제 요동을 차지했으니, 발해만은 물론이고 서해를 완전히 아국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해군기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제해권을 쉽게 차지할 테니까요.”

“훗날을 위해서 말이지?”

“예. 북직례를 생각하면, 발해만은 확실히 아국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불어 산동을 견제하는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조선은 산동과 사이가 안 좋아질 이유도, 필요도 없지만... 혹시 또 누가 아나.

만일을 대비해 요동반도의 수로와 항구를 정비하면서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바로 코앞에 위치한 산동반도는 감히 조선에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할 거다.

“그렇게 수로망을 연결하는 동시에, 개간사업도 함께 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수로정비는 꼭 수로망 연결을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니다.

아까 말했듯 농사에는 땅만큼이나 물이 중요하니, 요동에서도 본토에서 꾸준히 이어온 저수지, 보, 제방 등의 농수로 정비사업도 함께 진행 될 거다.

“인력은?”

“해군병 2만을 남길 예정입니다. 그 외에 요동인들도 함께 동원해야겠지요.”

이 또한 꾸준히 해왔던 일. 겨울철에 공사하는 건 힘들지만, 임금을 주는 공사사업은 한편으론 구휼의 역할도 함께 한다.

요동인들 중에선 벌써부터 땅을 부여받고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

한 번에 모든 곳에서 개간사업을 할 수가 없으니, 올해를 그냥 보내기 아까워서 뭐라도 심는 거지.

그 외의 지역에선 바둑판처럼 밭을 갈아엎고, 조선의 도로규격에 맞게 새로운 밭두렁 등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 땅을 받기로 되어 있는 요동백성들은 전부 공사인부로 변모하지 않을까.

“2만이라...”

“더 빼고 더할 곳도 없어서, 그게 최선으로 보입니다.”

“...”

태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동을 빠르게 정복하고 후속처리를 하기 위해서, 조선은 모든 해군병을 동원했다. 심지어 배가 없어서 육상훈련만 하고 있는 병력까지도 끌어 모았지.

그 수가 무려 십만에 가까웠다.

이건 조선으로서도 엄청 무리한 거라서, 이 병력을 계속 요동에 남겨두는 건 제 살을 깎아 먹는 일.

요동정벌이 끝났으니, 일부는 북평부 원정에 동원되고, 또 일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물자수송을, 그리고 남은 인원이 요동에 남아 공사를 할 예정이었다.

“요동은 그렇게 하면 되고, 이제 남은 건 요서인데...”

“...”

태종이 자기도 모르게 말을 흐리자, 모두가 하나같이 쓴물을 삼킨 듯 얼굴이 어두워졌다.

요서가 똥땅인 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더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북방. 이른바 만주땅은 조선본토만큼이나 강이 많은 곳이다. 전에도 말했듯 이곳은 여름철만 되면 범람하는 곳이 한두곳이 아니었지.

그나마 요동일대는 예전부터 사람이 살아서, 어떻게든 치수공사를 해왔다지만... 요서일대는 유목민족이 말 타고 뛰어 놀던 땅 아닌가. 대규모 치수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는 땅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나 가장 큰 강인 요하.

“요하의 치수공사를 한다면... 대략 얼마나 걸릴 걸로 예상하나?”

“최소로 잡아도 이십년입니다. 이것도 전체가 아니라, 범람이 가장 많이 벌어지는 일부 지역에 한해서입니다.”

“후...”

이십년. 말이 이십년이지,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 아닌가. 그런데 그것조차 최소란다.

“인력을 투입하면... 아니군.”

태종은 막막해서 한마디 덧붙이려다가, 이내 마음을 바꾸고 고개를 내저었다.

옛 중국왕조처럼 뭐 수십만명씩 동원하고, 수만명씩 죽여가면서 하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지만... 안 그래도 사람이 없는 조선이 그게 가능하겠나.

10만명의 일꾼은 곧 10만명의 병사와 마찬가지니, 이들을 보급지원 하느라 나라가 휘청거릴 거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한강의 치수공사를 떠올려 보시지요. 십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3할도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

“한강도 그러한데, 하물며 요하는 오죽하겠습니까.”

황희는 혹여나 무리할까 싶어서, 강한 어조로 반대를 표명했다.

이 시대의 한강은 미래의 한강처럼 단조롭지 않고 복잡하며, 또 강폭 또한 일정하지 않고 편차가 매우 심했다.

이 말인 즉. 여름만 되면 범람하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는 거지.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꾸준히 제방을 쌓는 등의 치수공사를 진행해 왔는데... 무려 개혁 초창기. 성저십리와 경기도의 과전을 정리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상시 범람하던 지역을 야금야금 막아왔고, 조금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하류에 김포평야를 만들 수 있었던 거지.

이렇게 오랜 시간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건, 조선의 경제력과 물류망으로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인력과 자원만 동원했기 때문.

한강도 이런 개고생을 하면서 꾸역꾸역 진행했는데, 한강보다 훨씬 큰 요하의 치수공사는 말해 뭐할까.

옛 중국왕조에서 민란이 가장 많이 터질 때가 바로, 사람들을 박박 긁어모아 운하나 치수공사와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진행할 때였으니...

무작정 빨리 하겠다고 무리했다가는,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거다.

“그럼 요택의 간척은?”

“그 또한 최소로 잡아도 이십년입니다.”

“...”

태종은 황희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입에 댔다.

답답한 마음에 술이 절로 당겼다.

이 시대의 요동반도 안쪽 해안선은 미래와 달랐다. 요택의 습지는 앞으로도 수백년간 퇴적작용을 거치면서 점점 바다를 메꾸며 넓어지니까.

또한 습지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니라... 어느 곳은 얕은 호수나 저수지처럼 물에 잠긴 지역도 있고, 또 어느 곳은 뻘밭과 같은 습지가 조성된 곳도 있었다.

한마디로 요서의 온갖 강줄기가 요택으로 스며들어와, 요서일대를 못 쓰는 땅으로 만들고 있다는 뜻.

“요택에서 물을 빼기 위해선 결국 강줄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강줄기를 막아 보나 저수지로 만들어야 할 겁니다.”

그래야 습지대를 말리고, 그 외의 지역에 원활하게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요택의 간척 또한 치수사업이나 마찬가지라 이거군.”

“예. 해안과 붙어 있는 남부 일대를 간척해봐야, 북부에서 물이 쏟아져 오면 헛수고가 될 테니까요.”

“그럼 치수공사라고 해도, 요동과 광녕위 일대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겠군?”

“그렇습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막말로 요서일대의 요하에 치수공사를 한다고 한들,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봐야 얼마나 지을 수 있겠나.

일단은 그나마 북쪽에 비해 따뜻한 남쪽에 집중해, 경작지를 늘리고 수로망 연결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허면 어떤 식으로 진행할 생각이지?”

“일단은 심양과 요양 사이의 요하와 혼하를 잇는 수로망 연결에 집중해야 할 듯 합니다. 나아가 해주나 금주를 거쳐 발해만으로 나가는 혼하와 태자하를 잇는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고요.”

태종은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봤고, 충분히 납득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결국 송주와 황주에서 이어지는 기존 수로망과 연결된 강들이다. 큰 부담 없이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역들이지.

“또 있나?”

“추가로 비단길 무역을 위한 요서 북부의 수로망 연결을 해야 할 겁니다.”

“흥령군과 복여위를 말하는 건가?”

“예. 이제 아국의 땅이 되었는데, 쓸모가 없다고 해서 그냥 버려둘 순 없지 않겠습니까.”

“...”

황희는 “어쩔 수 없지 않냐?”라고 말하듯 어깨를 살짝 으쓱거렸고, 모두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역사의 조선은, 그간 조선인이 생각하던 세계관을 깨부수고 인식의 한계를 넓혀나가고 있다.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지표는... 생각지도 못한, 아니 있는 줄도 몰랐던 남방과 동북방으로 계속해서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

허나 이번엔 서북방으로 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니... 이게 좋긴 좋은데, 관리할 생각을 하면 숨이 턱턱 막히는 거지.

안 그래도 송주(길림) 북부와 흑룡강 이남의 땅은 개발은커녕 이주조차 못시킨 판국인데, 그보다 더 먼 서북쪽 땅까지 조선땅이 된 상황이니까.

“너무 멀다고 해서 버려두면, 동쪽의 아다이와 북쪽의 제왕부가 아국의 영역을 침범하게 될 겁니다. 국경선도 경계선도 없는 지역이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음...”

“흐음.”

다들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간 복여위가 차지하고 있던 영역은, 미래의 러시아, 몽골, 중국이 마주치는 접경지대를 포함하고 있었다.

조선으로선 상상도 못해본 먼 북방동토지.

문제는 유목민에겐 초지가 곧 국력이자 인구부양의 근본이니, 아무리 농사를 못 짓는 땅이라고 해도 땅이 넓어지면 힘이 강해진다는 뜻.

조선에겐 쓸모가 없어도, 다른 세력에겐 충분히 군침이 도는 땅인 거지.

“그래서 창주보다도 더 북쪽. 복여위 영역과 가까운 곳에도 신도시를 건설해야한다는 거군? 설령 신도시를 건설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연대병이 주둔할 요새는 건설해야 할 거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 작업에 흥령군과 복여위 출신을 동원하겠다?”

“예.”

황희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고, 다들 눈빛이 마주쳤다.

이미 조정에서 결정이 난 사안이지만, 이들은 요동통치 및 개발을 맡은 실무자들.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하니, 생각이 깊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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