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95화 (495/538)

495. 챕터60. 토해내다 (11)

“2만명이라... 나중에는 3만까지 늘어나겠군?”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름 표준이니까요.”

“표준이라...”

어깨를 살짝 으쓱 거리는 황희를 보며, 태종은 히죽 웃고 말았다.

맨땅에 계획도시를 짓기 시작한 건, 조선 역사상 개혁 이후가 처음이다. 심지어 수도인 한성조차도 개혁이후 신도시에 비하면 계획도시라고 부르기도 뭐하다.

어쨌든. 이리쿵 저리쿵 부딪쳐가며 해답을 찾아갔는데, 그나마 최적이라고 판단한 인구수가 바로 2만에서 3만명 사이.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선 변두리 지역에서 식량을 생산해야 하고, 농부가 아닌 잉여인력이 있어야 도시가 성장할 수 있으니 1만명은 너무 적다.

그렇다고 초반부터 4만,5만명 이상 되면, 이 시대의 한계상 도시 유지와 성장을 동시에 진행할 수가 없다. 해서 나온 최적의 수치가 2만에서 3만명이었고, 이게 정착되면 점점 인구수를 늘려나가는 거지.

이러한 작업은 양전사업 및 북방신도시 건선을 하면서 수도 없이 해왔기에, 나름 표준이라면 표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라면 아까 말했듯 겨울이 길고 혹독하다는 점인데... 대안은 있나?”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고, 최대한 빠르게 월동물자와 건설자재를 도시에 쌓아놓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강이 얼어붙으면 그것도 쉽지 않을 텐데?”

“북방에서 흔히 사용하는 낙타 마차와 낙타 썰매를 더 많이 동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음...”

궁여지책이긴 한데, 딱히 해답이 없으니 태종은 작게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낙타라...”

“북방엔 본토보다 낙타가 많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당장 지금도 쓰고 있던 방법이니까요.”

황희는 다시금 “뭐 어쩌겠나. 이거 말곤 답이 없는데.”라고 말하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조선에 낙타가 들어온 후로, 낙타의 사육두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말이나 소에 비해 장,단점이 확실한 탓에 본토에선 그 효용성이 제한됐지만, 북방에서만큼은 달랐다.

이 땅은 너무 추우니까.

겨울철에 말이나 소가 돌아다닐 수는 있다지만, 추위에 강한 낙타만큼은 아니었지.

해서 날이 풀릴 때는 마차로,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하면 낙타 마차가 돌아다니곤 했는데... 여기에 추가된 게 바로 마차를 개조한 썰매였다.

“낙타 썰매라... 그걸로 되겠나?”

“북방의 운송기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니, 충분하고 남습니다. 해가 갈수록 낙타 썰매는 늘어났으니까요. 요동의 보급은 해로에 맞기고, 남은 낙타 썰매를 신도시 건설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음.”

태종은 낙타 썰매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소문은 익히 들어왔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조선은 북방을 차지하고, 만주 북부를 공백지로 남겨둬 거대한 낚시터로 만들었다.

지금도 이건 유효해서, 시베리아 유목민이 꾸준히 흑룡강 너머로 남하했다가 조선으로 끌려왔지. 그들과 연해주의 야인여진 중에선, 이 시대에도 개썰매나 순록썰매를 끌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북방에선 하도 많은 이민족을 흡수했고,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나 지식을 전문화, 학문화한답시고 쏙쏙 빼먹었지 않나.

조정에선 그들의 썰매를 바탕으로 마차를 개조시켜 거대한 마차썰매를 만들었고, 수로가 얼어붙는 겨울에 신나게 끌고 다녔다.

얼어붙은 땅이나 수북이 쌓인 눈밭에선, 바퀴 마차보다 썰매 마차가 효율이 좋았으니까.

여기에 또 다른 희소식이 들려왔는데, 요동, 산동, 강남에서 귀화한 한족들 중에선 중국의 대운하에서 일하던 이들도 있었던 것.

중국의 운하를 돌아다니는 배는 노나 돛을 활용해 움직이기도 했지만. 운하 양쪽에서 가축이나 인력을 동원해, 밧줄로 배를 묶어 끌고 가는 방법도 있었다.

이 둘이 결합한 결과. 겨울철에 꽁꽁 얼어붙은 수로 빙판 위에서, 썰매 마차를 줄줄이 이어 붙여 낙타를 이용해 강 양쪽에서 끌고 가는 운송방식이 만들어진 것.

북방에서 강이 얼어붙는 건 일상인 터라, 작금에 와선 이 일만 전문으로 하는 운송기업이자 상단이 여러개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려면 역참과 수참도 함께 만들어져야겠군.”

“예. 옛 시절의 역참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색목인 노예를 옮기기 위해 얼추 만들어놓은 터가 있으니, 그걸 활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황희는 답을 듣기 무섭게, 지도의 이곳저곳을 콕콕 집었다.

위치는 새로 만들어질 신도시부터 창주로 흐르는 눈강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과거. 역참과 수참은 단순한 휴게소의 개념이 아니라 작은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참, 수참의 유지비용 및 관원의 녹봉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으니까.

허나 개혁 이후. 역참, 수참이 중앙조정의 관리 하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아니라 시장도시로 변모한 상황.

다만 흥주신도시와 창주를 이어주는 지역에는 시장이 필요가 없으니, 옛 시절 역참마을이 완성되어야 할 거다.

“흠. 그럼 복여위 문제도 얼추 해결 됐고...”

태종은 지도에 살포시 표시된 흥주신도시 위쪽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남은 건 제왕부와 아다이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겠군.”

“제왕부나 아다이나 딱히 움직이긴 힘들 걸로 보입니다. 아국의 강역이 그들과 닿는 건 분명 꺼림직 하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해는 아닐 테니까요.”

태종은 맹사성의 대답을 들으며, 다시금 지도를 톡톡 두들겼다.

제왕부는 복여위의 영역보다도 위에 위치해 있어서, 요동과 요서의 지형지물을 면밀히 조사한 이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미래로 치면 중국 흑룡강성 북부보다 러시아 국경에 더 가깝게 붙어 있으니까.

“제왕부는 우리가 자신들을 치러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보군.”

“예. 조정에서도 그러한 뜻을 표명했고, 그들 또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아국은 꽤 오래전부터 흑룡강 이남을 강역으로 확보했음에도, 정작 창주 위쪽으로는 정착조차 못하지 않았습니까. 본의 아니게 그러한 움직임이, 오히려 안심 시켜준 모양입니다.”

맹사성은 우연찮게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실제로도 조선은 제왕부를 건드릴 생각도, 필요도 못 느꼈다.

당장 복여위의 영역을 먹는 것조차도 벅찬 마당에, 저 멀고먼 제왕부의 영역을 차지해서 뭐할까.

건드려봐야 벌집을 건드리는 꼴이고, 지금처럼 조선을 대신해서 꾸준히 색목인 노예와 서방물산을 가져와 주면 그만이다.

“아다이의 경우도 굳이 아국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비단길 연합은 둘째치더라도, 칸을 자처하는 아다이에게는 몽골초원이 우선이지 북방땅이 우선이 아닙니다. 애초에 초원 몽골인에게 이곳 요동과 북방땅은 동방3왕가의 영역이었으니까요.”

동방3왕가는 박살나 우랑카이 3위가 되었지만, 지금은 다시 제왕부와 요왕부로 부활하지 않았나. 명나라 시절조차 나라는 없어졌어도 부족의 영역은 고스라니 남아 있었으니, 아다이도 동쪽보단 서쪽에 관심이 더 많을 거다.

“끝으로 아국이 북쪽으로 올라오고 복여위가 없어진 만큼, 더 싸게 아국물산을 사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짝 붙어 있어서 신경이 쓰이더라도, 다른 마음을 품진 못할 겁니다.”

맹사성은 지도의 북쪽 지역을 손가락으로 쓱쓱 훑으며 중얼거렸다.

비단길 무역에서 복여위가 빠졌다는 건, 제왕부나 아다이가 복여위에게 지불해야 했던 비용이 없어진다는 뜻.

나아가 창주까지 내려가지 않고 그보다 위쪽인 흥주신도시로 가는 건, 그만큼 거리가 줄어들어 운송비용이 덜 든다는 뜻.

돈만 생각하면, 조선이 가까이 오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다.

“아다이도 잘 다독여줘야 겠군.”

“조정에서도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이미 사신이 오갔고, 아국이 비단길 무역을 계속 확장하려는 건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몽골초원을 직접 경영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예. 비단길 연합이 그래서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아국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제왕부와 아다이는 결코 아국을 배신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쐐기를 박듯 허조가 말을 덧붙였다.

“조정에선 이번 기회에 아예 동맹을 맺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동맹이라...”

비단길 연합은 어디까지나 이권을 위해 뭉친 연합이지, 동맹이 아니다.

동맹은 어찌됐건 나라로 인정을 해줘야 가능한 일.

제왕부나 아다이나 둘 다 스스로 왕부이자 칸으로 자청할 뿐. 다른 나라에게 인정받는 건 아니지 않나.

조선은 이번 기회에 이걸 확실히 해둘 생각인 모양이다.

“아무리 아국의 의도를 이해해도, 심증으론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요왕부와 아국이 어떤 거래를 했는지 봤고, 복여위가 송두리째 귀부를 했으니까요. 이래나 저래나 아국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음...”

태종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이게 단순히 비단길 무역을 유지시키려는 의도를 넘어, 속내가 따로 있음을 직감했으니까.

‘제왕부의 경우에는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아국으로 흡수할 생각인가 보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거다.

복여위나 제왕부나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제왕부가 외부의 위험요소가 적고 자생력이 조금 더 높달까?

그래봐야 도긴개긴이고, 무역거래가 커지면 커질수록 조선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언제가 됐건 조선의 문화와 경제가 제왕부를 물들여 집어삼키게 될 텐데, 그 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동맹이 되어 더욱더 끈끈해지는 건 나쁠 게 없다.

‘아다이는 그렇게 까지 되진 않겠지만... 아국이 칸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득이 되겠군.’

아다이는 어디까지나 동몽골의 주인이지 몽골초원의 주인이 아니다.

물론 지금은 비단길을 통해 영역을 넓혀가 상도(시린궈러맹)을 차지했고,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을 차지하니 마니하고 있는 상황.

그런 만큼 조선이 아다이를 칸으로 인정해주면, 몽골초원의 패권경쟁에서 한발 더 성큼 나아갈 수 있을 터. 이걸 결코 싫어하진 않을 거다.

조선 입장에서도 딱히 나쁠 게 없다.

아다이를 정식 칸으로 인정한다고 한들, 조선과 연합한 남부몽골연맹을 건드릴 순 없다. 나아가 섬서몽골 또한 남아 있으니, 아다이가 몽골 전체를 통합한 대칸이 되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

조선 입장에선 이대로 계속 몽골이 쪼개지는 게 최선이니, 섬서몽골에 비해 힘이 약한 아다이를 밀어주는 건 오히려 섬서몽골을 견제하는 수단이 되는 거지.

“음...”

“...”

생각을 정리한 태종은 홀로 고개를 끄덕거렸고, 다들 조용히 자작하며 침묵을 지켰다.

복여위. 제왕부. 아다이를 건드렸으면, 이제 요서북부에 남은 세력은 요왕부 뿐.

태종은 지도의 서쪽. 요서 서쪽과 흥안령 동쪽의 공백지를 쓱 쓰다듬고선, 손가락으로 크게 요서,요동,북방 전체를 한 바퀴 휘감았다.

“여기가 앞으로 아국의 강역이란 말이지.”

“...”

무슨 뜻인지 몰라, 다들 눈만 끔뻑거렸고... 태종은 좋아서 웃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어 웃는 건지 모를 웃음을 흘려댔다.

“넓군. 넓어도 너무 넓어.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야.”

“...!”

태종이 허탈하게 말을 내뱉자, 다들 눈을 번쩍 떴다. 혹여나 이미 정해진 조정의 결정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을까봐 걱정된 모양이다.

“아니 그런가? 지금껏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열심히 쳤을 뿐인데, 아국은 지난 왕조를 통틀어도 역사에 없을 확장을 하고 있지 않나?”

“...”

말이야 맞는 말 인터라,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조선 이전의 한반도 왕조를 다 합쳐도, 이보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한 적이 있던가. 그 옛날 대단했던 고구려조차도 지금의 조선보다 못하다.

사람이 살건 안 살건 떠나서, 미래 중국의 동북3성, 러시아의 연해주, 내몽골 일부가 조선의 강역이 됐다. 이미 이걸로 한반도보다 4배,5배쯤 되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차지한 셈이지.

여기에 바다 건너 남주도와 해주도가 있고, 자잘한 조차지들이 있다.

그야말로 조선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태종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또 놀라서 손을 떨 수밖에.

‘하지만... 백성은 얼마나 늘었지?’

태종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양전사업을 십년넘게 진행해왔다. 그 어떤 시대, 어떤 왕조. 세계를 다 털어도 최고로 꼽힐 만큼, 지금 조선은 정확한 인구조사를 완수했다.

태종 또한 그 결과를 알고 있었고, 이번에 흡수한 요동인구를 합쳐도 650만명쯤 된다. 땅은 5배가 넘게 늘어났는데, 인구는 기껏해야 1,1배? 많이 잡아야 1,2배쯤 늘어난 수준이니... 이 땅을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태종은 이런 불안감이 불쑥 튀어나와, 저절로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그래서 였나...’

그는 이미 오래전에 납득을 했지만, 또 한번 번개에 맞은 듯 등골이 오싹해졌고... 상념은 점점 깊어져, 과거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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