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500화 (500/538)

500. 챕터61. 넘어가다 (4)

이렇게 빨대를 꽂아서 일본의 성장 동력을 조선이 뽑아먹고 있는데, 일본 다이묘들 입장에서는 이게 마냥 나쁜 건 아니었다.

잉여인력을 먹여 살리는 것도 다이묘의 돈이 들어가는 일이고, 또 이들이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킬 때마다 그걸 수습하는 것도 돈이 들어가는 일이니까.

성장의 진통 대신 발전 없는 안정을 택한 건데... 다이묘들 입장에선 일본 전체가 성장해봐야 막부의 힘만 강해지는 거니, 무작정 그들의 뜻을 따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들은 그저 지금과 같은 귀족생활을 영위하길 바라고 있으니, 조선의 책략이 제대로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뭐... 방금 말한 내용은 먼 미래라고 쳐도, 아국이 북직례를 삼켰을 때. 지금 당장 발생할 대내적, 대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

“...”

두 왕은 ‘아직도 문제가 남았냐?’라고 묻듯, 눈을 흘기며 얼른 말해보라고 턱을 까닥거렸다.

“먼저 대내적인 문제를 보자면... 다른 걸 다 떠나서, 북직례를 합병하고 나서 그걸 소화시킬 여력이 되겠습니까?”

연오랑은 ‘그럴 리가 없을 텐데.’라는 무엄한 눈빛을 숨기지 않았고, 세종과 태종은 반문 대신 눈길을 흘려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 조선이 잘나간다고 해서, 이게 그저 운 좋게 술술 풀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연오랑은 무조건 국운을 건 도박수를 연거푸 걸어왔다. 성공하면 껑충 뛰고, 실패하면 나락으로 처박을 짓만 계속했다.

당장 개혁 전 대마도의 왜인포로를 보라.

그때 그 거지떼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과전 혁파를 비롯한 온갖 법제를 수정하지 않았나.

이건 연오랑이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전과 똑같이 살려 하면 말라죽고, 어떻게든 바꿔야만 살 수 있다.”라는 이지선다의 협박이었다.

세종은 그걸 알고, 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었기에 받아들여진 거지. 그렇다고 그 일이 절대 쉬웠던 건 아니지.

그 뒤를 이어. 몽골원정을 통한 포로 흡수, 고려인 흡수, 여진 흡수, 강남인 흡수. 남방인 흡수 등등.

전쟁을 한번 할 때마다, 나라를 판돈으로 걸어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그런 연오랑의 뒷수습을 하기 위해서 세종은 지난날의 예법과 법제, 행정체제 따위는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새 시대에 맞는 급진적인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리하여 칼질을 통해 세종의 몸이 근육질이 된 것처럼, 조선 또한 연이은 담금질을 거쳐 지금처럼 부강해 진거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도 간당간당하게 유지되고 있는 조선이 북직례를 소화시킬 수 있을까?

“아국에게 북직례를 경락할 재정적 여유와 행정관리의 여유가 있습니까? 당장 연대병을 북방으로 끌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허덕거릴 게 분명하고. 북직례에 속편하게 집중할 정도로 아국의 물산과 물류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닐 텐데 말이죠. 저 크고 사람 많은 북직례에 진출할 만큼 아국의 기업집안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

“그렇다고 편의를 위해서 북직례 호족을 남겨두는 건 후환이 될 게 뻔하고, 통치를 위해선 호족들의 싹은 잘라놔야 할 텐데... 이건 모순 아니겠습니까.”

연오랑은 그리 말을 하고선, ‘맞지?’라고 말하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쩌다보니 대충 3년을 주기로 전쟁을 하고, 승리의 전리품과 포로들을 흡수한 것 같은데... 이게 마냥 우연은 아니었다.

조선은 전쟁을 통해 얻은 포로를 분배해, 농사에 쓰든 공사에 쓰든 각종기업에 뿌리든, 하여간 그렇게 얻은 잉여인력을 투자해 조선의 생산력을 끌어올리고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한마디로 자기 체급에 맞는 정도만 먹을 수 있었고, 그래야만 탈나지 않고 소화를 시키면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허나 조선 인구의 절반이 넘는 북직례를 덜컥 삼켰다가는, 소화는커녕 목구멍이 딱 막힐 게 분명. 오히려 거꾸로 조선본토가 북직례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수혈을 하는 꼴이 펼쳐질 거다.

“그렇다고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만 북직례를 쪼개면, 그땐 정말 난장판이 벌어질 겁니다. 안 그래도 우릴 침략자로 생각하는 북직례 한족들인데, 그 안에서도 차별을 하면 가만있겠습니까?”

“...”

“군부도 발목을 잡을 겁니다. 북직례의 안정을 위해 군정을 실시하려면 육군의 태반을 북직례에 주둔시켜야 하는데, 보급과 관리가 쉽게 되겠습니까? 보나마나 반란이 무수히 터질 테니, 쉴 틈 없이 싸워야 할 텐데요.”

“끄응.”

“흐음.”

이건 요동정벌을 논의할 때도 나왔던 문제인 터라, 두 왕은 딱히 해답이 없음을 알고 신음만 흘려댔다.

전쟁, 정복, 통치는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문제다. 전쟁보다 정복이, 정복보다 통치가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 자금이 들어가는 건 주지의 사실.

그리고 북직례의 덩치를 생각하면, 조선의 모든 육군이 북직례에 주둔해도 부족할 거다.

헌데 조선이 과연 그만큼 여유가 있냐고 묻는다면,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조선이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건. 과거에 비해 부자가 됐다는 말이지, 체급차가 나는 중국의 호족연맹을 뛰어넘을 만큼 부자가 됐다는 뜻이 아니다.

애초에 착호군이 만들어진 이유가 뭔가. 대병의 상비군을 유지할 돈이 없어서, 연대병 개개인에게 유지비를 물리기 위해서 미래의 이권을 걸고 만들어지지 않았나.

십여년이 훌쩍 넘어 착호군을 더 이상 모집하지 않는 지금은, 조정의 세수로 군부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게 넉넉한 건 절대 아니고, 오히려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정도로 빠듯한 상황이었다.

이 판국에 조선본토나 북방처럼 육군이 부수입을 얻을 수 없는 북직례에서 장시간 주둔하면, 북직례 백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지출에 군부의 유지비까지 통째로 감당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거다.

결국 언제나 그랬듯, 돈. 이 돈이 또 걸림돌이 됐다.

“문제는 그렇게까지 아국이 북직례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지요.”

“...”

“물론 북직례의 넘쳐나는 인력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그 많은 한족을 요동과 북방에 투사하면 조선인이 앞서고 있는 인구비율이 단박에 뒤집힐 겁니다. 그럼 북직례에 이어 요동과 북방에도 뱃속에 포탄을 심은 셈이겠지요.”

“흐음... 맞는 말이지.”

세종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조선은 개혁을 진행하면서, 조선전체를 문자 그대로 한바탕 뒤집어엎었다.

기존의 향촌질서를 깨부수어, 향리, 양반사대부와 같은 기득권이 향유하고 있던 향촌의 입지를 아예 박살내버리기 위해서였지.

이와 동시에 진행된 건, 귀화인 이민족을 조선 전역에 퍼트려서 조선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비율을 유지하게 하는 것.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여진인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북방신도시는 십여년이 지난 지금. 조선인이 절반에 육박하고 있었고, 심지어 추위에 약한 남방 한족과 일본인까지 북방신도시에 살고 있었다.

반대로 저 먼 바다 건너 남주도와 해주도에는 여진, 몽골은 물론 색목인까지 심심치 않게 이주해 있었고, 앞으로도 이 이주행렬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북직례를 조선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선, 이곳 또한 대이주를 통해 민족을 섞어 잡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한족의 머릿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

북직례의 한족을 조선 본토로 들여오면, 기존 조선인 우위의 인구비율이 깨질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게 깨지면 조선인이 주도하는 자주화와 중국문화 잔재 삭제라는 대업이 흔들리게 되는 거지.

“나아가 북직례 정상화를 위해 그 많은 비용과 시간, 인력을 투자할 바에는 차라리 요동과 요서에 집중하는 게 이득이지 않겠습니까? 막말로 북직례는 성장가능성에 있어서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 북직례는 아국처럼 양전사업의 효과를 크게 보기 힘들 것이야.”

“예.”

양전사업을 주도한 사람답게, 태종이 냉큼 동의를 표하며 한마디 곁들였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건, 사람이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뜻. 그리고 국가를 이룰 정도라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개발을 했을 거다.

서쪽과 북쪽은 태행산맥과 연산산맥으로 동쪽은 요서회랑으로 보호받고, 남쪽에는 화북평야를 가지고 있어 수천년간 사람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살던 지역.

북직례가 딱 그러한 곳이었다.

반대로 여말선초의 개판 난 시절을 겪고, 산지는 넘쳐나는데 맹수4종세트로 인해 산맥일대는 개발도 못하고 있던 게 지난날 조선이다.

한마디로 미개발지가 널려 있었다는 뜻이고, 착호군을 동원한 양전사업은 대박 중에 대박을 터트릴 수 있었지.

허나 북직례는 이미 개발을 할 만큼 한 상태라서, 아무리 양전사업을 통해 토지재분배와 경작지 정리를 한다고 해도... 북방이나 조선본토만큼의 인상적인 효과와 성장을 보여줄 수가 없다.

“장담컨대, 북직례에 투자할 재원과 인력을 요동과 요서에 투자하면, 북직례에 비해 몇 배나 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북방에선 서방에서 들여온 작물과 가축, 물산으로 인해, 인구대비 북방의 성장세가 본토를 앞지른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지.”

세종은 히죽 웃으며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심 많은 세종은 서방 문물을 그 누구보다 먼저 접하고, 그걸 연구해 취미 겸 소일거리로 삼아 놀고 있었다. 아예 서방학자들을 궁으로 데려와, 직접 논담을 나누는 수준까지 오지 않았나.

톱니바퀴 시계와 같은 기계공학이 그 대표적인데, 다른 분야도 모르는 건 아니었지.

그렇게 서방물산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세종에게 올라온 보고서를 떠올리면... 남방에 향신료와 설탕이 있다면, 북방에는 아마와 양모가 있었다.

“아마와 양모의 생산이 두드러진다는 보고는 받았다.”

“예. 그렇지요.”

목화나 대마보다 추위에 잘 견디고 기르기 쉬운 아마는 상품작물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순식간에 북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아마는 단순히 면포를 대신하는 걸 넘어서, 종이재료와 기름재료, 약재로 까지 쓰이니까.

양모 또한 마찬가지. 서방에서 들여온 양은 동방보다 품종개량이 많이 돼서 양털을 더 많이 생산했고, 그 품종이 고스란히 조선으로 흘러들어와 북방을 넘어 조선 본토로까지 넘치고 있었다.

기존에 비해 2배 가까운 생산량 증가를 보여주니, 양모와 모직 사업은 날개가 달린 듯 성장할 수밖에.

“더 중요한 건, 농사가 힘든 북방과 요동땅이라지만, 목축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양모와 모직물의 생산과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할 겁니다.”

“둘 모두 중국에선 보기 힘든 물산이기도 하고, 비단길 연합의 유목민족들에겐 면포나 비단만큼이나 좋은 옷감이자 직물이 될 테니까?”

“예. 분명 대체할 수 없는 특산물이 될 겁니다.”

중국에 없는 물건을 팔아야 조선에 이득이 되는 건 당연한 말인데, 그 특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나아가 이 특산물이 중국을 넘어, 비단길 연합에게도 선호된다면 성장과 이득은 곱절이 되겠지.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비단과 면포시장을 비슷하지만 아예 다른 물품으로 공략하면, 중국시장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빼앗을 수 있겠지. 어차피 사용할 수 있는 땅은 한정되어 있는 바, 호족연맹으로서는 이미 가지고 있는 면화와 비단을 대신해 굳이 아마와 양모를 생산할 리가 없을 테니까.’

세종은 그런 생각이 문뜩 떠오르며, 연오랑의 말에 반문도 없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없는 데 땅은 넓은 북방을 경락하기 위해선, 기존의 농업기반의 산업보다는 축산과 광업 같은 산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으니까.

그에 맞춘 계획 또한 이미 짜놨고 말이다.

“또한 마냥 농사가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서방에서 들여온 귀리, 호밀, 서방밀과 보리 등과 같은 품종 모두. 기후가 다른 본토나 중국의 품종보다 북방에 더 잘 적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 또한 알고 있는 사실.

결국 투자 대비 효율을 생각하면, 이미 어느 정도 정체된 북직례를 이리저리 개조하는 것보다, 맨땅이나 다름없는 요동과 요서를 조선 마음대로 주무르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말이었다.

“결국. 이런 모든 악조건을 극복, 아니 무시하고 기어코 북직례를 아국이 직접 삼키려고 한다면... 해답은 하나 밖에 없을 겁니다.”

“후...”

“음.”

연오랑은 시린 눈동자를 숨기지 않았고, 세종과 태종 모두 눈빛에 실린 속내를 깨닫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해답이라는 게 뭔지 알아차렸으니까.

‘과거로의 회귀겠지.’

세종은 이런 생각을 홀로 되새기며, 동시에 일이 그렇게 진행되었을 때 조선에 어떤 변화가 밀어닥칠지 미래를 그려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상상한 미래는 결코 장밋빛이 아니었으니까.

과거로의 회귀란, 결국 다른 이민족 왕조가 중국을 통치한 걸 따라하는 거다.

간접통치를 통해 정복민과 피정복민을 구분하고, 원활한 통치안정을 위해 호족세력을 흡수해 기득권을 보장한다.

이로 인해 신분제는 다시 부활할 거고, 조정은 본토와 북직례를 분리해 정반대의 정책을 펼쳐야 하니, 이중조정이 만들어질 거다.

“과거로의 회귀라...”

“...”

태종 또한 해답을 떠올렸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연오랑은 그 말을 받아 한마디 덧붙였다.

“과거로의 회귀는 단순히 옛 시절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퇴행하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아국은 중국을 이겨내야 하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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