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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504화 (504/538)

504. 챕터61. 넘어가다 (8)

서쪽의 마지막 세력은 오이라트와 섬서몽골.

이 둘이 하나로 합쳐지는 건, 둘 중 하나가 죽어야 가능한 일이니 제외.

조선과의 관계 또한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굳이 따지면 좋은 쪽에 더 가까웠다. 비단길 무역을 통해서 둘 또한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고, 이 비단길 무역을 혼자 독차지 하는 건 불가능 하니까.

서방은 동방의 물산, 그것도 조선의 물산을 원한다. 조선의 특산물을 모두 생산할 수 있지 않는 이상, 섬서와 한중이 조선을 대체할 수 없는 법.

그렇다고 비단길 무역을 건드렸다가는 온 유목민족이 자신들을 죽이려 할 걸 뻔히 알고 있고, 조선이 그들의 적인 하남과 호광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최전방부터 무너뜨릴 걸 알고 있으니...

“어차피 건드리지도 못할 거 차라리 친하게 지내자. 솔직히 말해서 조선물산이 좋은 거 많잖아?”라는 쪽으로 방향이 굳혀졌지.

중국통일왕조와의 관계? 이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도 서로 빼앗겠다고 싸우고 있는 판국이고, 몽골은 한족왕조와 결코 합쳐질 수가 없는 사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게 북쪽. 아다이, 몽골남부연맹이었는데... 여기에 요왕부가 추가 됐단 말이지? 이제야 제대로 된 포위망이 완성된 거군.”

“흐흐. 예. 강화조약을 맺어버리면 북직례는 평생 요왕부가 다스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중국통일왕조가 등장해 요왕부를 차지하려고 한다면, 아국과의 전쟁은 물론 몽골 전체와의 싸움까지 고려해야 할 겁니다.”

연오랑은 실실 웃으며 마지막 속셈을 털어놨다.

아다이, 몽골남부연맹은 완전한 친조선파다.

애초에 조선이 없으면 이들은 서서히 말라 죽는 길 밖에 없는데, 조선을 싫어할 리가 있나. 오히려 조선과 강화조약이나 동맹을 맺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 거다.

‘이러면 보자. 사천, 대리, 섬서, 산서 일부, 북직례가 중국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광서는 한족을 죽어라 싫어하는 소수민족연맹, 광동은 한족과 소수민족이 반반씩 갈라 먹었으니까... 대충 중국대륙의 절반 쯤 날아간 거잖아? 이 정도면 통일왕조가 등장해도 한판 해볼 만하지.’

연오랑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히죽 미소를 지었다.

물론 강남의 생산력과 인구가 강북에 비할 바가 아니라지만, 어쨌든 힘이 꺾인 건 맞지 않나.

원래 역사를 생각하면, 여기에 티베트, 동북삼성, 내몽골자치구 까지 포함되어야 미래의 중국 아닌가.

지금 중국은 팔,다리 하나씩은 날아간 꼴이자, 한족들이 먹어본 적도 없는 땅들이니... 먼 미래에도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건 불가능할 거다.

“그래서 말인데.”

“...?”

희망찬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는 연오랑에게, 세종이 한마디 던졌다.

“이왕 포위망을 만들 거면, 몽골남부연맹에게 산서를 더 떼어주는 건 어떠냐?”

“산서를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북직례를 요왕부가 차지하고 나면, 남은 건 산서다. 지금도 산서 북부 일대는 몽골남부연맹이 눌러 앉으려고 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보다 전면적으로 움직여서 절반쯤 차지하는 게 가능하지 않나? 북평부도 산서를 못 도울 거고 말이야.”

“흐음...”

연오랑은 세종의 말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고... 결론은 나쁘지 않다고 내렸다.

‘맞아. 어차피 군을 움직일 거면, 차라리 몽골남부연맹과 함께 움직이는 게 나을 지도 모르지. 과연 산서가 북평부를 얼마나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찌됐건 아예 안 도와주는 게 최선이니까.’

“기왕이면 산서를 아예 집어삼키면 좋겠는데... 그럼 깔끔해지지 않겠나? 강북을 몽골로 채워버리면 말이야.”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 겁니다. 몽골남부연맹은 주변 몽골세력의 견제 없이 온 힘을 다해 산서에 쏟아냈지만, 아직도 북부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몽골남부연맹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그런가...”

“매번 결국 성을 넘지 못해서 말머리를 돌렸는데... 공성전 하기 편하라고, 아국이 화포와 화약을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몽골에게 넘긴 화포와 화약이 돌고 돌아, 누구 손에 들어갈 줄 알고 넘겨주겠나.

재수 없게 오이라트나 섬서몽골에게 화포기술이 넘어가 사천이 위태로워지면, 애써 만들어 놓은 포위망 자체가 흔들릴 거다.

안 그래도 몽골이 한족 화기기술자들을 부려 화포와 화약을 만들까봐 우려되는데, 조선이 그 빌미를 주는 건 미친 짓이다.

“뭐... 그래도 있는 힘껏 밀면, 산서의 반쯤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남아 있는 산서 남부는 서안(장안)과 하나로 합쳐질지도 모르겠군. 음... 오히려 이렇게 되면 좋을 거 같은데?”

“그렇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몽골이 중국내륙으로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게 중요하니까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태종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게다가 몽골남부연맹과 섬서몽골이 사이가 안 좋다고는 허나, 언제까지 그렇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 둘이 국경을 맞대는 건 확실히 불안하지.”

“예.”

둘이 싸우다가 힘이 빠지면 상관이 없다지만, 한쪽이 우세해서 어느 한쪽이 잡아먹으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곤란하지 않나.

역시 지금의 판세를 깨지 않고, 그대로 굳히는 게 최선이다.

“...”

그렇게 각자 생각에 잠겨 잠시 침묵이 이어지기 무섭게.

“흐흐.”

“허허.”

“하하.”

연오랑이 음흉한 미소를 흘리자, 세종과 태종 또한 웃음이 번져 입가에 미소가 만끽했다.

살얼음판 같던 분위기는 봄날의 훈풍을 맞은 것 마냥 어느새 흩어졌다.

사실 똑똑하기로 소문난 세종과 태종이, 연오랑이 북직례라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가만히 있었겠는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

연오랑을 부른 건 자신들의 예상과 추측이 어느 정도 맞는지 확인하고, 몰랐던 게 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론 다 좋기 풀렸으니 분위기 또한 좋아질 수밖에.

한참을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다가, 세종이 문뜩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

“우리의 계획대로 된다면, 아국은 영영 서쪽으로 나아갈 길을 잃어버리게 될 거다. 뭐 사실 서쪽으로 가봐야 큰 의미도 없고, 당장 아국을 다 채우는 것도 힘들겠지만.”

“...?”

“하지만 지금 당장이 아니라 백년, 이백년 후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 허면 너는 아국의 미래가 남쪽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냐?”

세종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남쪽 지역을 가리키듯,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연오랑은 남주도를 조선이 차지하자고 주장하기 전부터, 오래토록 조선이 나아갈 길은 바다이자 남방이라고 누누이 말해왔다.

세자에게도 그걸 주입시키듯 말해왔는데,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헌데 이번 요동정벌이 끝나면, 진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의 정세는 이대로 굳혀서, 천년만년 갈 정도로 변화가 없어야 조선에게 있어서 최선이다.

그러니 조선이 움직이는 건 오히려 변수를 만드는 꼴. 허면 조선이 멈추지 않으려면 남쪽 밖에 답이 없지 않나.

세종은 ‘그래서 그렇게 새 함선을 만들려고 노력을 해온 건가?’라는 생각에, 불연 듯 되물을 수밖에 없었던 거지.

여기까지 읽은 거면, 대체 언제부터 이걸 준비해 온 걸까. 어지간해선 잘 안 놀라는 세종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렇습니다. 아국이 강역을 확장하는 건 솔직히 말해서 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땅은 이미 많으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여기서 안주해서는 안 될 겁니다. 아시다시피 북방에는 아국이 취할 수 있는 자원과 특산물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연오랑의 말에, 세종과 태종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연해주, 만주, 훗날의 시베리아를 차지한 판국에, 자원 걱정을 할 리가 있나.

나아가 미래라면 석유를 비롯해 온갖 것이 다 튀어나오겠지만, 이 시대의 조선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곤 몇몇 광물과 나무 정도 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서 북방 땅은 활용도가 떨어지지.

“더불어 북방과 내륙으로 강역을 넓히려면 필연적으로 대규모 전쟁이 동반됩니다. 아국이 이기는 건 당연하겠지만, 수지타산을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남방은 다릅니다.”

“음.”

“남방소국의 사정이 어떤지는 알고 계실 겁니다. 남방소국이 많다고는 허나 수도 없이 많은 섬 중에서 극히 일부만 차지하고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영역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두 왕 또한 남방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어본 적이 있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래의 동남아시아는 사람이 바글바글 넘쳐나는 땅이지만, 이 시대엔 말 그대로 원주민만 돌아다닌다고 할 정도로 사람이 적었다.

동남아시아에 사람이 차기 시작하는 건, 어디까지나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유럽인들이 온 사방에서 노예를 긁어모아 자신들의 식민지에 뿌리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한족이 오래전부터 남하 했다고 허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래에 흔히 말하는 화교라는 커뮤니티가 형성될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었고, 설령 한족출신이 있다고 한들 수많은 도시국가 중 몇몇에 흩어져 살 뿐이었다.

회회교도 또한 마찬가지. 이들도 도시국가를 이루고 살뿐, 섬 전체를 완벽하게 다스려 활용하진 않았다.

“그러니 아국이 진출하기 편하지 않겠습니까? 전쟁이라고 해봐야, 지난날 남주도 원정 정도면 충분할 거고, 전쟁이 필요 없을 정도로 땅은 넘쳐날 겁니다.”

“...”

“또한 남방은 아국이 모르는 자원이 넘쳐납니다. 북방의 자원은 조선본토나 요동과 딱히 다를 게 없지만, 남방은 섬에서 섬으로 넘어가기만 해도 우리가 모르는 온갖 식물자원이 있으니까요.”

“그건 맞겠지.”

“음...”

세종과 태종은 이번에도 역시나 동의의 움직임을 보였다.

커피나무와 같은 독특한 특산품 말고도.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필수품인 밧줄이, 어느 순간 저 먼 남방의 마닐라삼으로 순식간에 대체되는 걸 보지 않았나.

금값 취급을 받던 향신료가 굴러다니고, 이런 색감이 있는 줄도 몰랐던 염료가 튀어나오고, 이런 과일이 있는 줄도 몰랐던 열대과일이 쏟아진다.

조선이 모르는 천연자원이 가득가득할 테니, 남방의 섬은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지.

허나... 연오랑이 열변을 토해보지만, 세종과 태종의 표정은 쉽사리 펴지지 않았다.

‘역시... 아직 머리가 완전히 깨진 건 아닌가?’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조선이 언제 이렇게 큰 영토를 가져본 적이나 있겠나. “어어.” 하다보니까 어느새 이렇게 된 거지.

특히나 중앙집권과 왕권강화에 목숨을 매는 두 왕은, “과연 이렇게나 넓은 땅이 한성에 앉아서 통치가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쉽게 떨쳐내지 못할 거다.

한마디로 평생 한반도에 웅크렸던 조선은 대국을 보는 제국적인 마인드 탑재가 아직 안됐다는 거고, 이건 시간과 경험밖에 답이 없는 법.

그러니 아무리 세종이 천재라고 해도, 반신반의한 모양이다.

‘그럼 확신을 심어줘야지.’

연오랑은 다시금 목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전날에 제가 새 함선을 만들자고 했을 때, 조정신료들이 참 말이 많지 않았습니까.”

“...”

“쓸데없는 돈을 쓴다니 뭐니 하면서 발목을 잡아댔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했죠. 하지만 눈여겨 봐야할 건,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아국을 어떻게 이끌어 갔냐가 중요한 점 아니겠습니까?”

전에도 들었던 말이지만, 정세가 달라진 지금 들으니 뭔가 색다르게 들리는 걸까? 세종은 은근슬쩍 눈빛이 진중해지며 귀가 쫑긋 섰다.

“기술의 발전이라...”

“예. 뭐 이것저것 더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제가 만든 발명품 말고도 아국 백성들이 만든 온갖 발명품이 조정과 왕실의 포상금을 받으며 쏟아지고 있죠. 물론 그 중에서 진짜 쓸만한 건 많이 없지만, 어쨌든 나오긴 나온단 말이지요.”

“...”

“옛 중국왕조나, 전조의 사례를 봐도, 이런 걸 본적이 있으십니까?”

“...”

두 왕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아마 자신이 돌아봐도 “이게 조선에서 돼?”라는 일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데.

“게다가 지금 아국이 이렇게 급격하게 덩치를 불릴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억지로라도 투자를 해왔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실 겁니다. 당장 조운선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음.”

뭔가 이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사실 조운선은 지금처럼 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 연오랑의 고집 아닌 고집 때문이었다.

남해안의 해안선과 물살이 지랄 맞은 건 누구나 알고 있고, 멀쩡한 조운선도 거길 지나가다가 침몰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연오랑은 오히려 손해이자 과잉투자인 방향으로 “아니. 근해로 운송하니까 그렇지. 그냥 더 큰 배를 타고 더 먼 바다로 나가라니까.”라는 해결책을 냈다.

“이는 어쩌면 잘못된 해답일지도 모르지만, 그 결과 배를 만드는 기술, 배를 다루는 기술, 배를 수리하는 기술까지 전부 상승하지 않았습니까.”

“...”

“아국이 군부를 나라의 덩치에 걸맞지 않게 한계까지 키운 것도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비대해진 군부의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서, 민간기업과 유통망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아실 겁니다.”

이 시대는 군수품이 곧 민수품이고,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곧 민간 기업이다. 군부의 수요가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는 뜻이니, 자연스레 군부 팽창이 시장을 팽창시켰지.

“뭐... 이제 더 이상 군부를 확장하는 건 힘들어지겠지만 말이야.”

“예. 맞습니다. 다만 그 이유와 의의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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