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505화 (505/538)

505. 챕터61. 넘어가다 (9)

“...”

“개혁을 통해 아국이 성장한 건, 체제를 새로 잡은 것도 분명히 영향을 끼칠 겁니다. 그렇다고 성장을 위해서 끊임없이 조정을 개혁하는 것도 안정성을 해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고 조정을 계속 갈아엎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세종과 태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지금의 개혁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인데... 이걸 계속하면 개혁이 언제 끝나겠나.

“또한 말씀하셨다시피 군부의 팽창 또한 한계에 다다랐으니 군부를 이용할 수도 없겠지요.”

“...”

“문제는 이제 북직례를 정리하고 나면... 지금의 정세를 완전히 고착화시키기 위해서, 아국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나라가 평화에 접어들어 정체가 시작될 거라는 점입니다.”

이 또한 맞는 말. 조선이 판을 깔았는데, 조선이 이걸 안 지키는 것도 웃기는 일 아닌가.

“모두가 이렇게 제자리걸음을 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아국 또한 그러면, 대체 무슨 수로 중국을 따라잡고 추월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정세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선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줄 변수를 없애야 하고, 한편으론 아국이 계속 성장할 수 있게 자극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이 있어야 한단 말이군.”

세종은 핵심을 짚어내며 대꾸를 했다.

“예. 이제 내부를 흔드는 건 오히려 안정을 떨어뜨려 성장을 감소시킬 수 있으니, 외부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

연오랑이 웅변을 하듯 목소리를 높이자, 두 왕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한 마디로 “어허! 이대로 멈춰! 너흰 가만히 있어라. 나 혼자 앞서 나간다.”라는 걸 하기 위해선, 외부 자극이 필요하다는 뜻.

연오랑은 조선이 안주하지 못하게 쿡쿡 찌르기 위해선, 끊임없이 바다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바다. 새로운 천하라...”

태종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이 흘러나왔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 어디로든 흘러야 한다... 이 말이지.”

세종 또한 곰곰이 생각에 잠겨서 중얼거렸다.

‘통하나?’

연오랑은 두 왕을 힐끔힐끔 살피며 눈치를 봤다.

이건 오래전부터 연오랑이 조선의 미래를 위해 꿈꾸던 계획 아닌가. 자기도 모르게 두근두근 가슴이 떨려왔다.

원래 역사에서 조선이 어째서 폐쇄적이고 수구적으로 변했는지 모르는 게 아니니, 그걸 극복하기 위해선 딱 지금.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미처 완성되지 않은 지금부터, 미리미리 외부와 교류하고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조가 된다면, 수구와 폐쇄로 돌아갈 일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대항해시대라는 거대한 흐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고 말이다.

‘비단길이 열린 건 사실 우연에 가까운 사건이지만, 남방개척은 조선의 의지로 하는 거니까.’

유학이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지금 역사에선 “신토불이! 우리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무작정 외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무작정 외부의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지.

그럼에도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물산과 기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조선이 알고 있던 기존의 천하관 안에 속해 있던 나라이자 지역이었기 때문.

허나 비단길 너머 중앙아시아와 서방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지 않나. 그렇다보니 뭐랄까 “굳이? 헛돈 써가면서 그렇게 까지 해야 되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야금야금 서방에서 흘러온 물산과 기술이 조선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조정신료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어지고, 이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게 된 거지.

“흠. 어찌됐건 흐름은 있어야 한다는 건 동의를 하겠다만... 생각해보면 남쪽이든 북쪽이든 어디로든 흐르면 그만 아니겠느냐? 비단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다만... 태종은 옛날 사람답게, 슬쩍 겁이 나는 모양이다.

고려 때에 중국 너머, 외부와 무역을 많이 했다지만...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가. 원말명초, 여말선초 시절에는 바다가 개판이 되어서 제대로 무역도 못했었다.

나아가 명의 해금령에 맞춰서, 조선에서 해금령과 공도정책을 펼쳤던 게 바로 태종 아닌가. 그러니 시대가 변한 걸 알면서도, 옛 기억의 그의 발목을 슬쩍 잡고 있나 보다.

그럼에도 반대하지 않은 건 어떤 식으로든 개혁을 해야만 했고, 또 그 성과가 가시적으로 보여 졌기 때문.

“비단길을 통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동적이지 않겠습니까? 아국이 비단길 무역에서 주도권을 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나라를 통제할 순 없는 법입니다.”

“음.”

“더 중요한 건, 아무리 비단길을 통해 교류하고 서방물산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아국이 바라는 기술의 발전은 힘들지 않겠습니까?”

연오랑은 반신반의하고 있는 태종의 마음을 쥐고서, 연신 흔들어댔다.

막말로 비단길 무역을 하는데, 무슨 기술발전이 있겠나. 뭐 없는 건 아니겠지만, 육로를 통한 교류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함선을 보시지요. 중국도 따라하지 못하는 아국 기술력의 총아가 바로 전함 아닙니까?”

“크음.”

“...”

태종도 이건 부인할 수 없는지, 작게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전함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업이 엮이는 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그리고 돈을 좇는 이 기업들은 투자는 적게 하면서 효율은 높이기 위해서, 아득바득 뭐라도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전함을 만들면서 파생된 기술이 얼마나 많은지, 익히 아시지 않습니까?”

“...”

태종은 다시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말았다. 파생되는 기술이 많은지, 그 또한 모르는 게 아니었으니까.

바다 위에서 방향과 위치를 잡기 위해 쓰던 어설픈 육분의는 서방의 육분의가 들어오면서 제대로 됐고, 이건 곧 천문학의 발전에 영향을 줬다.

해안을 측량하면서 축적된 기술 또한 고스란히 지도제작에 영향을 줘서, 기존의 고지도와는 차원이 다른 정밀한 지도를 만들게 해줬지.

보다 튼튼한 밧줄을 만들기 위해서 남방을 뒤져가며 요상한 파초식물을 찾아냈는데, 이 방법은 그물을 만드는 방법으로 흘러갔다.

안 그래도 연오랑 덕분에 삼이나 칡으로 만든 그물이 널리 퍼져나갔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생사나 마, 파초 등을 섞어 만든 싸고 튼튼한 그물이 튀어나오고 있었지.

여기에 지붕을 덮을 만큼 큰 돛을 만들기 위해선, 역시나 보다 튼튼한 천과 이걸 고르게 이어붙일 직조기술이 발전하는 바.

이렇게 다양한 굵기의 실을 뽑아내는 방적기술은 다시 면직기업에 영향을 줘서, 비단실인 생사뿐만 아니라 면실, 마실, 아마실, 등등 다양한 형태의 실을 뽑는 걸 가능케 했다.

곁다리지만, 이렇게 뽑아내 둘둘 말린 실뭉치는, 일본을 필두로 해서 방직기술이 부족한 온 나라로 팔려나가고 있었지.

선창에 고인 물을 빼내기 위한 배수펌프 또한 마찬가지다. 압력을 이용한 수동식 펌프는 우물이나 농수로의 물을 옮기는 펌프로 흘러갔고.

배수펌프에 부착된 동관을 보다 싸고 가볍게 만들기 위해선, 더욱더 얇은 동관을 만들어야 했기에 야금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동관은 온갖 곳에 다 쓰이고 있었고, 가장 대표적인 건 왕궁에서 온돌을 대체하기 위해 바닥에 깐 보일러 동관이었지.

또한 이렇게 얇은 동관을 만드는 야금술은 자연히 무기에도 영향을 줘서, 보다 매끈하고 튼튼한 화포제작 기술로 이어졌다.

기존의 것보다 효율 높은 아궁이라 할 수 있는 로켓스토브 또한 함선에서부터 퍼져나갔다.

안 그래도 좁은 조리실에서 불을 써야하고, 적재할 수 있는 땔감의 한계가 있는 함선에선 보다 효율 높은 아궁이가 필요했던 바.

이 때문에 연오랑이 만든 로켓스토브는 모든 함선에 장착됐고, 이는 곧 민간으로도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애초에 로켓스토브의 구조가 복잡한 것도 아니고, 만들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니까.

여기에 화재방지를 위해 함선조리실에는 얇은 타일을 깔았다.

이는 또 자기기업의 자기 만드는 기술에 영향을 줘서, 진짜 미래의 타일과 흡사할 정도의 얇고 다양한 형태의 타일과 판석을 만들어냈지.

끝으로 이 시대의 함선이라 함은 바다에 떠다니는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괜히 배를 만드는 걸 건조建造라고 부르는 게 아니지.

이렇듯 온갖 나무를 쪼개고 이어붙이는 기술은 건축기술로 파생되어, 새로운 방식의 건축물을 짓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전부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온갖 기술이 다 들어가는 게 바로 전함이니, 그야말로 기술력의 총아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육로를 활용한 비단길 무역이 전함을 발전시키는 것 보다 나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

“...”

기관총마냥 두다다다 설명을 토해내는 연오랑을 보며, 태종과 세종은 작게 혀를 내둘렀다. 몇 년 동안 전함 만드는 데 매달려 있더니, 저렇게 많은 걸 다 외울 정도가 되었나 보다.

“네 말이 틀린 건 아닌데... 다만 조정이 통제할 수 있겠느냐?”

결국 바다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납득했는지, 태종은 한고비 넘겨 그 다음을 물었다. “어떤 식으로 바다로 진출해야 하는 가?”의 문제다.

“어차피 민간무역을 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함선 또한 민간에 팔아야겠지요.”

“흐음...”

태종은 못마땅한 듯 슬쩍 신음을 흘렸고, 연오랑은 홀리기 위해 꼬리치듯 계속 입을 놀렸다.

“이미 느끼고 있지 않으십니까. 아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조정에서 모든 걸 다 쥐고 흔들 수는 없는 법입니다. 고작 몇해 전에도, 밀려드는 공물과 조운을 조정이 감당하지 못해서, 민간에 운송을 맡기지 않았습니까? 바다라고 해서 다를 건 없을 겁니다.”

“...”

“나아가 언제까지 무역항에서 조정관원이 장사나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조정이 나서면 그 무게감이 많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무역은 반드시 민간으로 넘기고, 조정은 방향키를 잡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겁니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현실의 벽에 부딪친 지 오래.

조정은 모든 무역을 직접 하려고 했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질 거라는 걸 직감했다. 안 그래도 관원의 수가 매년 역대 최고치를 찍고 있는데, 이러다간 관원들 녹봉 주다가 조정이 파산하게 생겼다.

해서 민간에 무역을 풀기로 이미 결정을 내렸지만... 연오랑이 주장한 조선의 미래와 연관시키자 골치가 아파졌다.

굳이 이름 붙이면 남방정책이, 조정이 아닌 민간에 의해 진행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이 두각 되자... 이게 혹여나 문제가 될까 싶어서 우려되는 모양이다.

허나 연오랑은 오히려 반대의 입장이었고,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대항해시대를 연건 어디까지나 민간회사였다고. 물론 정부의 지원을 듬뿍 받긴 했지만, 공무원과 상인의 마음가짐이 같겠어? 아무리 시대가 시대라지만, 조정이 직접하려하면 굼뜨기 마련이야.’

조정이 움직이면 각 부서간의 온갖 역학관계, 타 국가간의 관계, 그 뒷수습. 수지타산 등등. 생각할 게 무지하게 많아서 움직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지 않나.

그것보단 가벼운 민간상단이 함선을 타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게, 훨씬 위험부담도 적고 효과도 빠르게 나타날 거다.

“또한 조정이 직접 나서는 것과 민간이 나서는 건, 외부에서 볼 때 차이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겠지.”

조선전함이 남방소국에 불쑥 등장하면 “뭐야! 깡패조선이 여기 왜 왔어?”라면 온갖 억측을 하겠지만, 민간상선이 쓱 튀어나오면 “장사하러 왔고만?”하고서 야금야금 교류를 할 수 있겠지.

파급력에 있어선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칼 두 자루를 쥐고 싸우는 게, 하나만 쥐고 싸우는 것보단 나은 법이다.

“또한 아까 말씀드린 기술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또한 오롯이 조정만 주도하는 건 문제가 생길 겁니다.”

“흐음.”

“그게 될까?”

세종은 자기도 모르게 불연 듯 묻고 말았다.

고려 때를 포함해서 조정이 주도하지 않고, 민간에서 뭔가를 만들고 개발하고 그걸 시장에 직접적으로 써먹는 경우가 몇이나 있었던가.

특히나 조선이 건국된 후론 조정이 꽉 틀어쥐고 있었으니, 민간의 개발이라는 건 사실 꿈도 못 꿨다.

물론 지방의 장인들의 자신의 역량을 뽐내 조정에 불려간 경우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게 전반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그저 궁이나 조정에서 필요한 물건을 만들게 하는 걸로 끝나지 않았나.

세종은 과거를 떠올리며, “과연 민간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지금의 조정은 지난날의 조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데?”라고 묻고 있었다.

“됩니다. 이미 연구소에선 성과가 꽤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허나 연오랑은 “그게 뭐 대수냐?”라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리며 답을 늘어놨다.

세종의 우려도 사실이긴 하지만 현실로 이미 증명됐다. 개혁이 진행되면서, 과거의 잔재는 싹 날아갔으니까.

신분에 묶여 있던 장인들은 전부 양민이 되었고, 착호군이 만들어 놓은 연구소는 조정이 손을 대지 않아도 이제 알아서 자생력을 갖춘 지 오래.

비록 연구소과 조정과 깊은 연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어미새를 보는 새끼마냥 무작정 조정만 보면서 입을 벌리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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