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506화 (506/538)

506. 챕터61. 넘어가다 (10)

“조정이 주도하는 기술개발과 민간이 주도하는 기술개발. 이 둘은 분명히 차이가 있고, 조정에선 이를 억제하는 것보다 장려하는 게 무조건 이득입니다.”

“...”

정부주도개발은 분명한 명암이 존재한다. 이 시대라고 미래와 뭐 다를까.

조정이 지원하는 막대한 인력과 자본은 기술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지만, 관료의 태생적 특성인 성과주의와 보신주의, 눈치싸움과 엮이고 만다.

반대로 민간개발은 정부주도개발만큼 추진력을 갖진 못하지만, 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방향으로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

이러니 굳이 하나를 포기해야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예산의 한계가 있는 조정은 우선순위가 존재할 테니, 모든 기술개발을 다 할 수도 없는 거고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야 조정이 앞서 나가고 있는 건 분명하고, 조정의 계획이 연구소에 더 큰 이득과 영향을 끼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연구소가 자체적인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민간의 기술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라도 풀어줘야 할 겁니다.”

“음...”

“조정이 해야 할 일은, 민간 기술개발의 권익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해서, 기술개발이야 말로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인식시키는 것이겠지요.”

“흐음...”

“전함이야 말로 모든 기술력의 총아이니, 기술의 발전을 위해선 전함을 발전시켜야만 하고, 전함이 발전하기 위해선 결국 남방으로 진출하는 게 최선이란 말이군.”

세종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예. 남방진출은 단순히 아국의 강역을 넓히고, 보다 많은 무역특산물을 찾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정체되지 않고 기술개발에 꾸준히 투자하게 하는 게 목적이지요.”

“민간 기업과 백성들 입장에선 자신에게 떨어지는 이득이 있어야, 기술개발에 계속 투자를 할 테니까... 그 이득을 남방진출을 통해 얻게 하고 말이지.”

“옙!”

연오랑은 세종의 말에 가볍게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게 돼야 이른바 프론티어 정신이 조선인들의 머릿속에 박히지 않겠어?’

연오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시대를 뛰어넘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전에도 말했듯 이 시대 사람들은 자기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돌아다닌 사람이 드문 시대다. 특히나 농본주의사회였던 조선에선 더욱 그러했지.

다만 개혁이 시작되면서 그러한 고정관념이 깨졌고, 법적으로도 거주이전의 자유가 인정됐지만... 양전사업이 모두 끝나고 북방의 국경선도 정리가 되면, 이제 평화의 시대이자 안정의 시대가 찾아온다.

지금은 전부 뒤섞은 짬뽕이지만, 이젠 이 짬뽕이 전통으로 굳어지는 시대가 온다는 거지.

이런 고착상태를 흔들고, 계속 조선에 활력을 불어넣고, 조선인 개개인에게 “나도 뭔가 할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생각을 주입시키기 위해선 조정이 아닌 민간에서 바람이 불어야 한다.

조정이 주도하면 “나라에서 하는 거니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에, 남 일처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니까.

“아국이 남방으로의 진출을 적극 권장하고, 민간 기술개발을 밀어주면, 백성들이 알아서 정진하게 될 겁니다. 지금도 남주도나 해주도로 진출해서 한몫 잡은 사람들이 나왔고, 요동과 요서를 차지하면 또 그곳으로도 진출할 사람들이 나올 겁니다.”

“...”

“그걸 조정에서 막지 않고 오히려 팍팍 밀어줘야, 백성들 스스로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라도 뭐든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그러한 열기가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그게 전부 조선의 발전으로 이어질 겁니다.”

“흐음...”

“음.”

아니나 다를까. 세종과 태종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굴려댔다.

옛 시절에 왜 그렇게 사람을 고향에 묶어둬서 빡빡하게 관리했던가. 그게 다 통제가 안 되서 그랬던 것 아닌가.

지금이라고 또 미래라고 해서 이 본질은 달라지지 않으니, “과연 이렇게 풀어줬을 때. 조정과 왕실의 권위가 살아 있을까? 또 조정의 영향력이 산골짜기까지 미칠 수 있을까?” 걱정되는 거지.

“안 그러느냐?”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굴 순 없지 않습니까?”

한손에 모든 걸 움켜쥘 수 없으면, 가장 이득이 되는 걸 선택해야 하는 법. 그리고 연오랑이 보기엔 풀어줬을 때의 이득이 훨씬 크다고 봤다.

“지금 당장을 위해서 이런 토의를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짧게는 10년 20년, 길게는 백년을 보고 남방정책을 추진하는 겁니다.”

“...”

“지금은 지주들을 다 때려잡고 기업으로 대체했다지만, 이대로 고착되어 10년,20년만 지나면 그 기업들이 고대로 지역유지로 자리 잡게 될 겁니다. 지주가 아닌 향토기업과 비슷한 위치에 오르게 되겠죠.”

“...”

“물론 그것도 나쁜 건 아니지만, 그보단 보다 많은 기업이 기술개발을 통해 성장하고 또 시대에 따라오지 못하는 기업이 팍팍 망해서 사라져야 지방이 혼란할 거고... 그래야 지방의 통제력을 중앙조정이 유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연오랑의 무시무시한 발언에, 세종과 태종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를 바라봤다.

예전의 지주들이 땅과 사람으로 구성되어 천년만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기업은 돈으로 쌓아 올려졌다.

땅과 사람보다 돈이 훨씬 가벼우니, 그만큼 성장하기도 쉽지만 망하기도 쉽지 않나.

백성들이 보기에 천년만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방관아와 잘 나가다가 삐끗해서 폭삭 망하는 기업집안, 또 기술개발을 통해 개나 소나 기업집안을 만드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옛 양반처럼 권위를 갖거나 윗사람으로 대접하긴 커녕, 그저 돈 많은 부자로 볼 게 분명. 기업집안이 양민 위에 오른 확고한 지배층으로 군림하는 건 불가능해 질 거다.

“그건 그렇지.”

“그렇겠지.”

세종과 태종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지주와 양반을 대체하기 위해 기업을 밀어준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닌가.

돈으로 쌓은 권력은 고착될 수 없으니, 중앙집권과 왕권강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반대하는 것도 궁색해질 수밖에.

“남방정책은 이러한 상황을 꾸준히 유도해서, 지방의 정세가 정체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바다를 통해 한몫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무한히 열리면, 백성들 모두 엉덩이가 들썩거리지 않겠습니까.”

“...”

결국 세종과 태종은 연오랑의 주장을 꺾지 못하고,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풀어주면 통제가 어려울 거라고 예상하셨지만, 전 오히려 반대입니다. 말했듯 지방이 고착되면 오히려 지방유지의 힘만 더욱 강해집니다.”

똑같은 마을 사람끼리 수십년은 부대끼고 살아야 서로 위아래도 생기고, 암묵적인 권력자도 탄생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나.

하루가 멀다하고 외지인이 들어오고, 반대로 마을 사람이 빠져나가면 상하관계가 만들어지기나 하겠나.

“또한 백성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수록, 지방유지가 아닌 중앙조정을 따르는 게 이미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착호군 제대병들을 말하는 거군.”

“예.”

세종이 덧붙이자, 연오랑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조선의 개혁을 물밑에서 이끌고, 지방의 혼란과 우려를 지워내고 있는 게 바로 착호군 제대병들이다.

운석핵꿀밤, 개혁 세대가 등장했지만, 아직도 많은 백성들은 옛 시절 고립된 향촌사회라는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평생을 땅에 묶여 살았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고 해서 생각이 한 번에 바뀔 리가 없지 않나.

허나 착호군은 온 천하를 싸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뜨였고, 중화와 중국이라는 무형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며, 누구보다 강력하게 자주화를 외치는 신봉자가 됐다.

나름 먹물 좀 먹은 양반, 향리출신 제대병뿐만 아니라 예전 관노비, 보충군으로 들어와 양민이 된 노비출신 또한 기업가로 변신해 가업을 일군 이들이 적지 않다.

일반 양민백성들이 이걸 보고 자극을 안 받으면 이상한 일이고, 이 덕택에 지주의 기업전환이 빠르게 진행된 거지.

더불어 양반, 향리, 노비, 양민, 귀화인이 다 뒤섞이자, 기업가라는 게 새로운 신분층으로 변모하지도 못했고 말이다.

“지방이 고착되지 못하게 하려면, 신 기업가들이 계속 등장해야 하고 그걸 위해선 민간에서의 기술개발을 독려해야 한다.”

“...”

“그리고 그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바다로 나가는 게 최선. 이렇게 지방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중앙조정의 권위는 더욱 올라간다. 이 말이렸다.”

“그렇습니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백성들은 안정감을 위해서라도 의지할 곳이 필요합니다. 이 조선에서 천년만년 불변할 대상은 왕실과 조정뿐이지 않겠습니까?”

“...”

세종이 지금까지 한 말을 종합하자, 잠시 침묵에 잠겼다.

두 왕 모두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생각을 굴려대며,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중앙집권과 왕권강화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는 모양이다.

“지금이 아닌 백년, 천년을 바라보는 계획이라...”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고립된 향촌사회를 유지하는 건, 이미 지금의 기조에 맞지 않고 오히려 퇴행하는 꼴 아니겠습니까. 허면 지방을 흔들기 위해선 조정이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보단, 민간에서 알아서 흔드는 게 다른 쪽으로 튈 변수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

“또한 아국이 중국과 경쟁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는 답이 없는 게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저 막대한 땅과 인구에서 나오는 역량을 아국이 극복하기 위해선, 결국 인력을 대체할 무언가. 바로 기술의 발전 말고는 없지 않습니까?”

“...”

태종도 익히 경험해 봤기에 세종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식할 정도로 단순한 훌테조차 타작하는 인력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다. 그리고 그 잉여인력을 다른 곳으로 투입해 다른 분야의 생산력을 끌어올렸지.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이렇게 기술이 발전된다면, 그만큼 더 많은 잉여인력을 활용할 수 있을 터... 기술발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지도 모른다.

“네 말이 맞다.”

‘됐다!’

끝내 태종 또한 동의하고 말았고, 연오랑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진짜로 조선인들이 바다로 나가게 된다면, 그들 또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 게 분명.

바다를 떠돌고 온 선원들이 뿌리는 이야기는 온 백성들의 귀에 들어가 웅심을 자극하게 될 거고, 이는 곧 조선 전체가 바다로 나가는 열망에 휩싸이게 될 거다.

이렇게 항해술과 함선이 계속 발전하게 되면... 백년, 이백년 후쯤에는 캄차카 반도와 알레스카를 넘어, 아메리카에 가게 될 줄 누가 알겠나.

이제 곧 서방에서 벌어지게 될 대항해시대의 소문이 비단길을 타고 흘러들어오면, 동방에서도 대항해시대가 펼쳐지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

연오랑은 이 분위기를 살려서, 얼른 혀를 놀렸다.

“그리고 이 남방정책을 위해선, 조차지에 관해서 보다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조차지?”

“예.”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는 터라, 세종은 계속 말해보라는 듯 턱을 까닥거렸다.

“강화조약은 아국이 바라는 거지만, 따지고 보면 저들이 더 바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국이 밑져 보이면 저들이 오히려 의심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속내를 숨기기 위해선, 차라리 조건을 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그 조건이 조차지라 이거지?”

“예. 조차지를 완전히 사들여 아국의 땅으로 만들고, 그 영역을 더 확장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음.”

“나쁘지 않다.”

공짜로 땅이 늘어나는 건데, 이걸 싫어할 리가 있나. 세종과 태종 입장에선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특히나 남방정책을 진행하기 위해선, 보급항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지금도 쓰고 있는 조차지를 확장하거나 더 많은 조차지를 만드는 건, 확실히 좋은 방향이다.

“문제라면 호족연맹이 받아들이냐는 건데...”

“제 생각엔 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조차지가 만들어진지 근 십년에 가까워졌고, 지금껏 큰 문제가 된 적이 없습니다. 나아가 이젠 조차지와 거래하는 호족도 많아진 터라, 조차지가 없어지면 아국뿐만 아니라 저들 또한 손해를 많이 보겠지요.”

“맞습니다. 애초에 조차지는 저들 호족들이 쓸모가 없어서 버려둔 황무지나 작은 어촌에 불과하지 않았습니까. 그 인근 땅도 사정은 크게 다를 게 없으니, 아국에 아예 넘기는 걸 무작정 반대하진 않을 겁니다.”

“그 시건방진 중화사상 때문에, 중원의 땅을 우리에게 판다고 난리를 피울 가능성은 없고?”

“말이 중화사상이지, 자기들 필요할 때만 갖다 붙이는 헛소리 아닙니까. 돈 앞에서 그런 말 하는 호족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태종이 이를 갈며 묻자, 연오랑은 피식 웃으며 호족을 깔아뭉갰다.

“조차지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은 연대 하나 뿐이고, 조차지를 확장해도 주둔군을 늘리지만 않으면 크게 우려하지도 않을 겁니다. 아무리 아국의 군대가 강맹해도, 연대 하나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도 아무 말 없이, 그것도 격하게 반대하지도 않았으니 앞으로도 딱히 달라질 건 없어 보입니다.”

연오랑이 말을 토해내자, 세종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용연군의 말이 맞습니다. 조차기간이 아직도 수십년은 남았지만, 저들 또한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을 겁니다. 조차지는 생각보다 너무 잘 굴러갔고, 호족연맹은 아니꼬워도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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