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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509화 (509/538)

509. 챕터62. 유인하다 (2)

“또한 굳이 절인생선이 아니더라도, 말린 생선으로 만들어도 되고, 생물로 팔아도 되고, 뭐가 됐든 수요는 있지 않겠나? 요하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조선본토에서 수산물을 옮기는 것보다 금주에서 보내는 게 더 가깝고 빠를 걸세.”

“음.”

장소홍은 나름 시장조사를 해서 긍정적이라고 판단했는지, 희망찬 전망을 내놨다.

“게다가 금주에도 그 기술대학이라는 게 생길 거라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리지 않겠나? 그러니 그냥 조선에서 만든 어선을 사들여 수산기업을 일굴까 하네.”

“어선이라...”

“조선의 어선이 크긴 크지.”

“암암.”

셋은 요동반도 근처를 얼쩡거리던 신형어선을 본 적이 있었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선의 어선은 크기가 요동수군이 쓰는 함선만 했고, 요동에서 쓰지 않는 각종 기구 및 대형그물들을 사용했다.

애초에 쌍끌이 어업을 위해 만들어졌지 않나. 그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도르래와 그물을 좌우로 옮길 수 있는 원시 크레인 등이 달려 있었으니... 요동인들 입장에선, 신기해서라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보통 비싼 게 아닐 텐데...?”

“나도 가문을 나와야 하니 얼추 돈을 받을 거고, 은행에 물어보니 대출을 해준다고 하더군. 사채를 쓰는 것보단 은행에서 빌리는 게 낫지 않겠나?”

“그야 그렇겠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저기 심양의 호가도 전장을 완전히 접었다고 했으니까.”

“그게 맞을 걸세.”

요동에도 사채와 전장은 존재했지만, 좋은 시절이 다 끝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조선은 사채업을 금지했고, 이걸 따르지 않는 집안을 날려버리겠다고 공언했으니까.

이미 너무 많은 집안이 날아가서 좋든 싫든 따를 수밖에 없었고... 조선조정이 보기엔 그깟 푼돈은 부담도 없으니, 대신 갚아주고 아예 산동이나 하남으로 가라고 밀어내고 있었지.

“기업을 일구려면 함께 일할 어부들도 꽤 구해야 할 텐데?”

“사람 구하는 게 뭔 걱정인가. 손가락만 빨게 된 가병이 수두룩한데. 평생 물질을 해온 이들에겐 아무리 땅을 나눠준다고 해도 두렵지 않겠나? 내가 넌지시 물어보니, 다들 함께 하자고 하더군.”

“오...”

“하긴. 내 집안도 그것 때문에 시끄럽긴 하니까.”

장소홍의 말에, 둘 모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호족집안인 만큼 당연히 가병과 사병이 있기 마련. 그리고 상인집안이니 가병들은 대다수가 배를 타는 일을 하고 있었다.

또한 가병들 중에선 수군호에 속해 군역도 함께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요동군부가 혹시나 압박할 때를 대비해서, 호족사병이 요동병사가 되어 사조직을 만들었다.

요동군이 괜히 콩가루 소리를 들었겠나. 이런 집안이 한둘이 아니어서 그랬지.

허나 조선이 가병과 사병을 인정할 리가 없으니, 모든 호족 가문에 가병과 사병을 해산하라고 무려 왕명이 내려왔다.

“앞으론 가병과 집안식솔들을 돈 주고 써야하는데, 집안을 쪼개니 마니 하는 판국에 여유가 있겠나? 미안한 말이지만 다들 풀어줄 수밖에 없고, 가병들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는데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맞지. 그래도 우리 집안도 대거 풀어줬네.”

“우리도 마찬가지네.”

“나는 어차피 어부들이 필요하니, 선주로 있으면서 그 뭐냐... 사원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 어부들을 관리 해야지.”

장소홍이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외치자, 둘의 시선은 산고방에게 향했다. 눈빛으로 ‘넌 어쩔 거냐?’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

“군문에 들어가기로 했네. 조선은 수군을 해군이라고 부른다지? 해군에 들어갈까 하네.”

“조선군에?”

“흐음...”

산고방의 뜻밖의 말에 둘은 절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요동수군은 해체된 걸 넘어서, 아예 수군호 자체가 없어졌다.

수군병을 활용해 요동호족을 운송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조선은 수군병들을 조사하고 다니면서 이들의 특기를 살려 이주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요동백성들이야 군역에서 해방됐으니 당연히 좋아할 따름.

세금을 내야하긴 하지만 그간 요동군부가 시도대도 없이 뜯어가는 것에 비하면, 조선은 일 년에 한번 깔끔하게 뜯어가지 않나.

꽤 많은 수의 수군병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꿈꾸거나,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족집안이야 기존의 가업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니 수군병을 고용하긴 힘들겠지만, 조선이 금주에서 벌이는 일이 원체 많지 않나. 다들 조선조정에서 주도하는 일을 한다고 들었네만...?”

“맞네. 지금 여기 부두를 정비하는 것도 그렇고, 요 근처의 강줄기도 치수공사를 한다고 그랬고, 도시 밖의 경작지도 정리를 한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수군병들이 대거 투입된다고 하더군.”

“확실히 조선은 만만치가 않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순식간에 일을 처리하면서도, 호족집안을 꾹꾹 누르고 있지 않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준비를 많이 했을 거야.”

“그렇지.”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것저것 알아본 이혁과 장소홍은 장단을 맞춰가며 한마디씩 던져댔다.

요동이 조선으로 넘어간 이상. 전쟁 치고는 많지 않지만 어쨌든 희생자들이 생겨난 이상. 조선은 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야 했다.

그래야 통치의 정당성이 생기고, 민심도 사로잡을 테니까.

이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나 조정이 돈을 쏟아 부어, 요동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고용하는 거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조선군이 박살낸 호족집안 및 이주하는 호족들에게서 뜯어낸 사업체들.

이들 세 집안을 물론이거니와, 요동의 모든 호족집안은 기업으로 분할되면서 기존 요양파, 심양파가 가지고 있던 사업체를 접수하려고 조선조정에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이상한 형태로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고 있는 거지. 덩달아 전보다 활력이 돌고 말이다.

“자네들도 의주와 호주를 가봐서 알지 않나? 금주에 비해 훨씬 번화하고 발전한 걸 알고 있을 걸세. 조선은 이곳 금주와 해주, 복주의 해안도시를 대대적으로 개발한다고 했네.”

“그렇지.”

당장 셋의 눈앞에서 그 과정이 보이지 않나.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석회부두가 완성되면, 그 주변으로 석회도로가 깔리는 건 물론. 기존에 있는 건물들도 모두 허물고 새로운 건물들이 착착 올라설 거다.

“그런데도 굳이 군문에 들어가겠다는 건가? 찾아보면 가업으로 삼을 새로운 업종이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야 쉽지. 모든 수군병들이 새 인생을 찾는 건 아니지 않나? 배운 게 물질 밖에 없는데, 뭐 어쩌겠나?”

“...”

허나 산고방이 꽤나 냉담하게 말을 하자, 둘은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요동도 옛 조선처럼, 군호에 속한 백성들은 자기 일을 하다가 군역기간에 복무를 해야 했다.

허나 요동군부가 그렇게 행정처리를 잘 했을 리가 있나.

군호가 엉망으로 구성되고 진행되어, 애꿎은 백성들이 군역을 연거푸 치른 게 사실. 해서 수군병 중에선 군역이 아예 직업인 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가진 게 쥐뿔도 없어서 어차피 군역에 계속 끌려갈 거면, 조선의 대립군 마냥. 돈을 받고 남의 군역을 대신 살려는 이들이 등장한 거지.

“자네들이야 그래도 집안에서 물려받을 재산이라도 있지만, 나는 위로 형들과 친척들이 줄줄이네. 아마 나한테까지 기회가 오진 않을 거야. 그렇다고 집안에 남아 있는다면, 괜히 눈총만 받지 않겠나?”

“...”

“...”

둘은 산고방의 말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애초에 이들이 요양파나 심양파에게 눈총만 받는 요동군에 왜 들어왔겠나. 요동군에도 끈을 달아놔야 하니 집안에서 누군가는 보내야 했는데, 갈만한 사람이 없어서 억지로 떠밀린 거지.

“그래서 물어보니, 꽤나 많은 이들이 조선해군에 관심을 보이더군. 가병이나 사병들도 그렇지. 그치들이 뭐 농사를 지어봤나, 장사를 해봤나. 할 줄 아는 거라곤 주인 눈치를 보거나 으스대는 게 전부였으니, 차라리 군문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적어도 조선군은 녹봉을 꽤나 많이, 꼬박꼬박 준다고 하니까 말일세.”

“쉽지 않을 텐데...”

“맞아. 심양과 요양으로 끌려갔던 변경요새의 병사들 이야기를 듣지 않았나. 천호장들도 병사들과 똑같이 취급한다고 하던데? 요동군의 지위는 인정 안하고 말이야. 지금 산해관으로 딸려간 이들도 그저 보조군으로 밖에 안 쓴다고 하던데...”

“듣기론 요동수군병들 또한 그저 노꾼으로 밖에 안 쓸 거라고 하던데, 진심으로 할 생각인가?”

“길이 그거 밖에 없으면, 그거라도 해야지.”

산고방은 그리 말을 하고선, 저기 부둣가에 묶여 있는 전함을 가리켰다.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간 오랫동안 먼발치에서 봤을 때도 설렜는데, 이렇게 코앞에서 보고 있자니 웅심이 절로 치솟는다.

과연 저 배의 선장이 되어, 자신의 뜻대로 저 거대한 산을 움직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남아로 태어났으면 저렇게 큰 함선의 선장쯤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자네들은 안 그런가?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산고방의 포부 가득한 말에, 둘은 할 말이 없어졌다.

이들도 군문에 있었으니 장군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없었겠는가. 현실의 벽에 부딪쳐 꺾였을 따름이지.

“듣기론 선장. 아니 함장 중에선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이나 강남인도 있다고 들었네. 나라고 못할 게 뭔가? 차라리 더 잘 된 것 아닌가? 모두가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올라간다면, 실력으로 판가름 나지 않겠나?”

“...”

“지금까지의 경험이 있으니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올라갈 수 있을 걸세. 요동군부에 있을 때처럼, 알력에 밀려 오르지 못하는 경우는 없겠지.”

“음...”

“그런가.”

산고방이 저렇게 확신에 차서 말을 하는데, 친우가 돼서 기를 꺾을 필요는 없지 않나.

이혁과 장소홍은 산고방의 결심을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산고방을 비롯해, 나름 웅심을 품은 요동수군병들에게 기회는 금세 찾아왔다.

금주에서 요동호족이 이주하느라 한창 바쁠 때. 요동수군이 소유하고 있던 군선이 일제히 광녕성 인근의 연산항으로 향했다.

줄고 줄어 남은 요동수병의 수는 대략 삼천. 이들은 모두의 예상처럼 노꾼이 되어 군선을 이끌었고, 그렇게 끌고 온 백여척에 가까운 군선에 연대병들이 탑승했다.

그 외에 조선에서 끌고 온 신형조운선 또한 병력을 꽉꽉 채워 바다로 향했고... 이내 곧 푸른빛이 아닌 갈색 빛이 되는 대지를 마주하게 됐다.

요동에서 북직례와 가장 가까운 항구. 바로 천진 상륙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오십여척의 신형조운선이 앞장서고, 그 뒤를 요동군선이 졸졸 따라가길 한참. 본대가 천진으로 향할 때. 뒤 따르던 요동군선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천진을 중심으로 해서, 발해만에 닿아 있는 북직례의 해안마을, 작은 어촌들을 향해 요동군선 5,6척씩 묶여 흩어졌다.

“후...”

“음.”

산고방은 구슬땀을 흘리며 노를 짓는 부하들을 살피다가, 슬쩍 시선이 돌아갔다.

요동군선은 조선의 맹선과 크게 다를 게 없었고, 갑판이라고 해봐야 똑바로 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았다.

그런 탓에 갑판바닥도 뜯어내 환기를 시키고 있었는데, 환기가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모를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풍겨왔다.

까닭은 눈을 가리고 있는 전마들과, 불안감에 몸을 떨고 있는 전마를 다독이는 조선군들 때문.

모두가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탓에, 이제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는데도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고방!”

“예!”

그렇게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 갑판 위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다닥 달려가 선수에 오르자, 조선기병을 이끄는 지휘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대장이라고 했던가?’

조선군 편제가 다른 탓에 영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대충 백호장과 비슷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그도 요동군에선 백호장이었기에 내심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걸 내색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부르셨습니까.”

산고방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저기가 자네들이 약탈했던 마을인가?”

“예. 지금까지의 항로로 봐선 확실합니다.”

약간 어색한 한어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산고방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조선군이 천진수군을 박살낸 후. 북직례와 요동수군의 관계는 역전됐다.

전에는 천진수군이 요동-산동을 오가는 상선을 약탈했다면, 이젠 요동수군이 북직례의 해안마을을 돌며 약탈을 해왔었지.

산고방을 비롯한 요동수군 지휘관들을 조선군이 필요로 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헌데...”

“뭔가.”

산고방이 주제넘지 않을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중대장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본대는 천진으로 상륙할 텐데, 그걸 돕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우린 있으나 마나일 걸세. 우린 우리 일만 하면 되고, 자네들도 자네들 일만 하면 되지. 설마 북평군과 직접 싸우고 싶은 건가?”

“음...”

중대장이 피식 웃자, 그 속뜻을 알아차리고선 산고방 또한 쓴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조선해군과 요동수군의 격차를 익히 겪었지 않나. 한때는 단순히 화포와 전함의 차이 때문에 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중대장의 과할정도로 완벽한 무구와 무장들을 보라. 요동군은 꿈도 못꿀 정도다.

또한 매일 아침마다 모여서 모래톱을 구보하고 무기술을 연습하는 걸 꾸준히 봐왔었다. 어쩌면 일부러 보여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고.

하여튼. 조선군은 요동수군을 명백히 2선급 부대로 취급하고 있었기에, 산고방이 뭐 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웃기는 짓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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