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517화 (517/538)

517. 챕터62. 유인하다 (10)

사실 맞는 말이니까.

조선이 전함을 만들고 바다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그전에는 하지 않았던 해안측량이라는 걸 제대로 시작했다.

그로 인해 해안선을 따라 해도를 만들고, 수심을 재고, 물살의 강약을 확인해, 어느 곳이 상륙하기 좋고 또 어느 곳이 항구로 만들기에 적합한지 파악해 왔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하는 둥 마는 둥 미숙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경험이 축적되어 보다 정교해지고 방법이 발달한 건 당연한 말.

이러한 측량은 조선본토 뿐만 아니라 중국해안도 마찬가지였고, 천진수군을 무너뜨린 후에는 요동반도와 발해만의 측량작업 또한 꾸준히 해왔다.

조선해군이 시간과 돈이 남아 돌아서, 시도 때도 없이 쓸데없게 북직례 해안가를 돌아다녔겠나.

나름의 꿍꿍이가 있었던 거지.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전례가 없던 거니... 북평부보다 조선이 북직례 해안에 대해서 더 잘 안다는 최윤덕의 말이, 마냥 허풍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이렇게 만들어진 해도를 활용해서, 잘게 쪼갠 육군병력을 북직례 해안가 온 사방에 흩뿌려 상륙시켰으니까.

“그러니 자네 부하들을 믿게. 나도 내 부하들을 믿으니까.”

“알겠습니다.”

저렇게 확신을 담아 말하는 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천진항에 대한 후속보고가 슬슬 끝나갔고... 부함장 중 한명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얼추 정리가 된 것 같은데, 다음 단계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음. 그래도 되겠군. 쾌선을 보내게. 지금부터 이주준비를 시작하고, 수성준비를 시작하면... 얼추 때가 맞을 걸세.”

“알겠습니다.”

*****

쾅... 꿈결처럼 아스라이 폭음소리가 들려오고, 쿠쿵! 뭔가에 맞았는지 사람들이 외치는 고함소리와 함께, 뭔가가 우지끈 부서져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비단침낭에 누워 힘겹게 선잠을 자고 있던 중년인.

그는 눈을 뜨지도 않고 바싹 마른 입으로 욕부터 내뱉었고,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폭음소리에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후...”

쾅. 쿵! 다시금 폭음과 굉음이 울려 퍼지고, 중년인은 이를 부드득 갈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화포의 굉음이 그리 쉽게 귀에 익겠는가.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그조차도, 이렇게 지긋지긋한 포격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후...”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선, 주전자 채로 차갑게 식은 찻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선 몸을 일으켰다.

이젠 속옷처럼 익숙해진 갑옷을 껴입자, 땀 냄새와 피 냄새, 곰팡이가 핀 것 마냥 케케묵은 썩은 흙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윽고 투구까지 단단히 껴입고 방문을 나서자, 아침햇살을 밀어내며 여기저기서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끄응...’

전각도 아닌 단층 저택에서 나와서 일까? 온갖 담벼락과 내성벽으로 막혀 있는 답답한 시야에, 속으로 한탄이 절로 나왔다.

본래 그가 거주하던 곳은 이곳이 아니었지만, 눈먼 포탄이 날아오는 데 무슨 배짱으로 고층 전각에서 지낼까.

익숙해지려고 해도, 당최 익숙해지지 않았다.

“기침하셨습니까. 관주님.”

“...”

관주라 불린 중년인. 산해관을 책임지는 총사령관이자, 보통 산해관주라 불리던 인물. 그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여전한 것 같은데... 작전은 실패한 건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걸로 보아... 그런 듯 합니다.”

천호장은 차마 산해관주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답을 하고 말았다.

“각산장성으로 가자. 가서 직접 봐야겠다.”

“위험...”

“됐다.”

온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판국에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허나 산해관주는 부하가 말을 내뱉기도 전에,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앞서 나갔다.

“어차피 조선함선에서 쏘는 포탄은 여기까지 날아오지도 못해. 걱정할 게 무엇인가.”

“허나. 장성 밖에서 쏘는 화포는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걸 막기 위해...”

“...”

부하는 연신 만류하다가, 더 이상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흐리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진행한 작전이 연거푸 실패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기가 한 일도 아니건만, 책임을 통감해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처음 산해관이 공격당했을 때는, 모두가 조선군을 비웃었다.

조선군의 화포가 덩치가 크고 화력이 강한 건 익히 알고 있고, 조선군이 석환이나 철환이 아닌 통나무처럼 생긴 괴이한 물건을 쏴대는 것도 알고 있었다.

허나 그래봐야 화포는 화포다. 정확도를 확신할 수 없는 먼 바다에서 쏘는 이상, 죽었다 깨나도 두툼한 산해관의 성벽을 무너뜨릴 수 없으니까.

하지만... 조선군의 그 어리석은 포격이 몇 달간 띄엄띄엄 지속되자,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산해관에 머무는 모든 이들이 지옥을 경험하게 됐다.

무려 산해관주가 괜히 여염집이나 다름없는 단층 저택에서 머물렀겠는가.

정확도가 떨어지는 단점은 더 이상 단점이 아니게 됐다. 언제 어디서 통나무가 떨어질지 모르는데, 그 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속편하게 자기 집에서 머물 수나 있을까.

어쩔 때는 한밤중에, 어느 때는 환한 대낮에, 제멋대로 통나무의 비가 쏟아졌고, 병사들과 백성들은 신경증에 걸린 사람마냥 제 정신을 지키기 힘들게 됐지.

그리하여 결국 포격에 얻어맞던 바다 쪽 일대에 살던 이들은 전부 내륙 안쪽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그럼에도 이따금씩 눈먼 포탄이 날아와 집을 박살내기 일 수였다.

‘그래도 그때까진 괜찮았지.’

산해관주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지난날을 떠올리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사실 산해관주는 물론이고, 북평부로서도 조선군이 왜 뜬금없이 산해관에 포격을 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지독한 포격이 산해관 병사들의 의지와 끈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로는 산해관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허나 진짜로 조선이 요서회랑을 뚫고 산해관 앞에 나타날 줄이야. 정말로 북평부와 전쟁을 시도할 줄이야.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이게 가능하려면 우선적으로 요동을 차지해야 하는데, 북평부 장군들 모두가 “설마. 그렇게 쉽게 무너질까?”라는 예측을 포기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희망사항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선군뿐만 아니라 무려 요동군까지 함께 대동해서 산해관 앞에 등장했다.

지금껏 숫하게 광녕성의 요동군과 드잡이 질을 했던 산해관 병사들인데, 그들을 못 알아볼 리가 있겠는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모두가 눈만 비비고 말았지.

그리하여 진짜 공성전이자 포격전이 시작된 지, 열흘이 넘은 지금.

이젠 더 이상 내륙 쪽이나 내성 안쪽 까지도 안전한 곳이라고 확신하기 힘들어졌다.

조선군은 자신들의 화포를 자랑하기라도 하는 것 마냥, 산해관 장군들과 병사들의 예상을 우습게 뛰어넘을 정도로 위력적인 포격을 이어갔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백성들 모두가 성벽 쪽에선 감히 머물지 못하고, 모두가 요서회랑 반대편으로 우르르 몰려가 생활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젠 더욱 골치가 아파졌단 말이지...”

“예? 뭐라고 하셨는지요.”

“아니다.”

산해관주는 혼잣말을 하며,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조선군 화포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조선군이 각산장성 반대편. 산해관을 마주보는 산맥의 능선으로 기어올라 산을 깎아내어 포진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산해관의 성벽은 아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높고, 그 성벽 위에서 쏘는 화포는 땅에서 쏘는 것보다 훨씬 멀리 그리고 정확히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군이 산능선을 기어오르면서, 고지대의 이점이 거꾸로 조선군에게 돌아간 꼴이 되지 않았나.

산해관을 지키는 입장으로선 조선군의 작업을 그냥 가만히 놔둘 수 없었고, 매일 같이 별동대를 성 밖으로 몰래 파견해 작업을 방해하려 했다.

‘허나... 오히려 그게 악수가 될 줄이야.’

산해관주는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으드득. 어금니를 깨물며 한탄을 삼키고 말았다.

문을 꽉 걸어 잠근 북평부지만, 산서를 통해서 그간의 소식은 충분히 입수해 왔었다. 조선이 우후죽순 팽창을 거듭해가며, 온 천하를 들쑤시고 다녔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지.

허나 그저 듣는 것과 직접 목도하는 건 분명히 다른 법.

광녕성의 요동군과 신경전을 벌이는 산해관 병사들은 자신들이 중국 최고의 정예병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지만... 조선군은 그보다 더했다.

정예병이건 뭐건 할 것 없이, 산해관 옆면 각산장성 쪽으로 빠져나와 방해작전을 하러 간 병사들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어두운 산속에 파묻혀 들어갔다.

이제 슬슬 단풍이 저물어 앙상한 가지만 남기기 시작하는 산 속에서, 별동대는 조선군에게 당해 소금이 바닷물에 녹아 없어지듯이 녹아내린 것이다.

이것도 어떻게 알았냐 하면, 산에서 널뛰듯 돌아다니는 조선군 기병이 각산장성의 작은 쪽문 근처까지 다가오곤 걸 발견하고서야 알아차렸다.

그들의 기창에 묻어 있는 시뻘건 핏물이, 산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증명을 했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본 이상, 병사들이 조선군의 위용에 겁을 집어먹는 건 당연한 말. 그 꼴을 본 병사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입단속을 시키는 것도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감춰지겠는가. 이미 병사들 사이에서 소문은 파다하게 난지 오래였다.

“...”

하지만... 목숨, 아니 북평부의 명운이 걸려 있는 판국에, 힘들다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지 않나.

그리하여 어젯밤에도 별동대를 밖으로 보냈으나 또 다시 아무도 되돌아오지 않았고, 요 며칠간 안보였던 조선함대가 다시금 화포를 쏴대며 그들을 헛짓거리를 비웃고 있었다.

“장군들을 각산장성으로 불러 모아라.”

“알겠습니다.”

산해관주의 명령에 천호장은 저택을 지키고 있던 부하들을 부려 명을 내렸고, 둘은 호위병사들과 함께 걸음을 옮겨갔다.

쉬웅... 콰쾅! 저택에서 나와 산해관 성벽으로 가까이 갈수록, 뭔가 소리가 다른 폭음과 굉음이 들려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쏘는 군.”

“...”

공성전이 시작한 이래로, 무슨 훈련이라도 하는 것 마냥 시간에 맞춰서 꼬박꼬박 화포를 쏴대는 게 조선군 아닌가.

아마도 아침밥을 먹기 무섭게, 소화라도 시킬 겸 시원하게 화포를 쏴대고 있는 모양이다.

“...”

‘썩을...’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내뱉었지만, 실상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서 산해관주의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요서회랑 쪽으로 나 있는 산해관의 동문인 진동문. 그 위에 우람하게 올려 있던 성루는 형체도 찾기 힘들게 폭삭 무너져 흔적만 남아 있는 게 보였으니까.

이렇게 멀리서도 엉망이 된 성벽이 보일 정도인데, 가까이서 보면 어떻겠는가.

고지대의 이점. 그리고 그간 광녕성의 요동군을 상대했던 숙련된 화포병들이 산해관에 즐비했지만, 진짜 화포의 달인들 앞에선 한수 접어줘야만 했다.

‘참호라고 했던가. 예전에 거용관이 함락 당했을 때. 그때 제대로 알았어야 했건만... 아니야. 남직례의 남통성 공성전의 전훈을 깨달아야 했어.’

산해관주는 자책 아닌 자책을 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누굴 원망할 수 있을까. 북평부의 다른 장군들은 물론이고, 산해관주 본인조차도 흘러 넘겼다.

참호와 그 참호를 활용한 본격적인 포격전이, 공성전의 양상을 과거에 비해 완전히 바꿔버릴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산해관주처럼 군문에 오래 있으면서, 경험이 많은 인물일수록 더욱 고정관념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속으로 후회와 한탄을 밀어내며 계속 걸음을 옮겼고, 이윽고 산해관 성벽 옆구리라 할 수 있는 각산장성의 성벽에 올라섰다.

각산장성은 산해관과 닿아 있는 각산에 쌓아올린 산성이자 성벽인 만큼, 산해관에서 내려다보는 것보다 훨씬 더 아래가 한눈에 들어왔다.

“끙...”

그리고 저 멀리, 아니다. 생각보다 가까이 접근한 조선군을 보고 있자니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오늘도 어제처럼, 또 처음 산해관에 등장했을 때처럼, 조선군은 어김없이 땅을 파며 산해관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이젠 요동군도 함께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선군은 개미가 땅굴을 파듯, 화포의 사거리 밖에서부터 수십 갈래의 길을 파서 산해관에 접근했다.

처음 봤을 때는 “저게 뭐하는 짓인가?”했는데... 파낸 흙을 쌓아 올려 작은 방호벽이자 토산을 만들고, 그 뒤에 비스듬하게 거치한 화포를 올려놓는 걸 보고서야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서로는 서로를 향해 사정없이 포격을 이어갔지만, 유효사거리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데 뭐 얼마나 제대로 맞았겠는가.

조선군이나 북평군이나 마구 쏴대는 포탄이 온 사방으로 비산한 건 마찬가지였다.

허나... 문제는 북평군이 쏜 포탄은 애꿎은 땅을 때리면 끝이지만, 조선군이 쏴댄 포탄은 대충 쏴도 성벽과 성벽 안쪽으로 날아온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북평군이 손해만 보는 포격전이 계속 이어졌고, 참호를 따라 조선군 화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포격이 정밀해졌다.

그리고 그제야 산해관주와 장군들은 참호와 흙을 쌓아 만든 참호벽이 얼마나 위협적인 물건인 지 깨달았다.

서로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성벽 위에서 쏘는 포탄은 흙벽 뒤에 숨은 조선군이 아닌 흙벽만 계속 맞춰댔으니까.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고, 수성할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산해관의 성벽은 결코 포탄만으로 부술 수 없으니까.

허나... 며칠이 지난 지금 와서 알아차렸는데, 조선군은 애초에 산해관 성벽을 부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노린 건 성루로 대표되는 성벽 위의 구조물들을 모조리 박살내는 것과 성벽 위에 올라 와 있던 화포와 화포병들을 몰살시키려는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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