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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519화 (519/538)

519. 챕터63. 뒤를치다 (2)

다만 처음에는 당연히 들어주지 않았고, 전함포격을 꾸역꾸역 맞을 때마다 찔끔찔끔 지원군이 보내줬었다. 단지 그게 몇 달 동안 진행되다보니 지원군의 수가 만 명을 훌쩍 넘어갔지.

그 후. 조선군이 정면에서 산해관을 두들기자, 진짜 전쟁에 돌입한 걸 알고서 2차 지원군을 요청했고 이는 곧장 진행됐다.

농한기가 시작되면서 병력을 동원할 여유가 생겼으니까.

해서 지금 모인 병력이 무려 5만. 이 정도면 북평부로서도 산해관에게 지원해줄 만큼 지원해준 숫자다.

‘끝으로 3차 지원군까지 요청했지.’

하지만 이걸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산해관주는 며칠 전 속절없이 진동문 성루가 박살날 때 보냈던 전령을 떠올렸다.

요동전쟁부터 북평부 내전까지. 산해관주는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고 조선군의 포격을 맞기 무섭게 끝을 짐작했다.

조선군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워서는 절대 저들을 못 이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들의 방법이 통할 전장을 만들어야 했고, 자신들의 방법이란 다름 아닌 사람을 갈아 넣는 것.

어쩌면 중국왕조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머릿수로 밀어붙이기를 계획했는데... 북평에 있는 장군들이 따라줄 지는 미지수였다.

머릿수로 밀어붙이기는 중국통일왕조나 가능한 거지, 북직례만 남은 북평부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패가 아니다. 이미 산해관에 머물고 있는 5만이라는 숫자 역시, 산해관의 중요성이 아니면 동원하기 힘든 병력이니까.

‘전투가 계속 진행된다면, 병사를 더 많이 동원할 수 있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 조선은 요동을 간수해야할 터... 요동인들을 동원하는 건 무리가 있을 테고, 어떻게든 이 전쟁을 빨리 끝내길 바랄 것이니까. 조선이 버티기 힘들 때까지 버틸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이긴다.’

산해관주는 김이 나도록 머리를 굴려가며 공성전의 끝을 완성했는데... 어째 오라고 부른 휘하 장군들이 아닌, 서문인 영응문迎恩門 수비장이 달려오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진 걸 산해관주도, 천호장도 직감했다. 요서회랑과 접한 진동문 반대편에 위치한 영응문은 조선군의 포격에도 안전했던 곳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영응문 수비장은 그냥 대충 봐도 낯빛이 밀가루처럼 허옇게 질려서 기괴할 정도였다.

“장군!”

“무슨 일이냐?”

“처... 천진항이 함락됐습니다.”

“뭐라?”

“허...?”

산해관주는 자기도 모르게 버럭 언성을 높였고, 옆에 있던 천호장은 믿기지가 않아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적은 얼마나? 어떻게 벌써?”

산해관주조차 자기도 모르게 손을 벌벌 떨면서 물었고, 영응문 수비장은 전령에게 들은 내용을 아낌없이 풀어냈다.

물론 전령조차도 조선군이 상륙하기 무섭게 빠져나온 터라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했지만, 얼추 짐작이 되지 않나.

“으...”

파벌이 다른 영응문 수비장이 천진수군을 까내리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그랬는지 모르겠다만... 천진수군은 조선군에 대항해 격하게 방어하지 못한 걸로 보였다.

‘하아...’

산해관주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천진에서부터 산해관까지는 대략 이백키로미터 정도.

전령이 잠도 자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와도 며칠이 걸릴 터니... 지금 소식이 도착했다면 이미 조선군이 천진항을 점령하고도 남았을 터.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손톱만 손바닥을 파고 들었다.

“후...”

“멍청한 놈들! 천진항을 방비해야 한다고 그렇게도 말했건만...”

천호장은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가, 산해관주와 영응문 수비장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표정을 관리했다.

이 모든 건 파벌 싸움 때문에 발생한 일이지만, 그 파벌싸움에 산해관주와 휘하 장군들도 자유로울 순 없는 일이었으니까.

“...”

“...”

제 얼굴에 먹칠을 하는 천호장의 말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중국의 다른 지방이 모두 그렇지만, 북평부의 경우는 특히나 파벌이 복잡했다.

몽골귀족의 수발을 들던 북직례 토박이 한족 호족집안이 있었고, 명이 북진하면서 함께 올라와 몽골귀족의 이권을 차지한 이주민 호족집안이 존재했고, 요동으로 진군하기 위해 몰려온 전국의 병사와 호족집안이 있었다.

이후 연왕부가 만들어지고 정난의 변이 발생하자, 북직례 호족은 연왕파와 황제파, 중립파로 쪼개졌다. 물론 황제파는 연왕에 의해 쓸려나갔고 그 이권을 호족과 연왕부 군장군들이 차지했지.

헌데 운석핵꿀밤으로 정난군이 날아가 버리고, 연왕부는 연왕 후계를 모시는 충성파와 반역파로 쪼개져 내전을 치렀다. 당연히 살아남은 호족 중에서도 또 편이 갈렸고, 반역파가 승리하면서 충성파는 패잔병들과 함께 요동으로 도망쳤지.

문제는 연왕이 있을 때엔 그 휘하의 장군들. 요동을 지원하고 북방유목민족을 제어하기 위해 전국에서 끌어온 장군들이 죄다 같은 위치였지만, 북평부가 등장하면서 이들이 그대로 군벌로 변하지 않았나.

결국 지금의 북평부는 토착 호족, 이주민 호족, 군부 파벌로 대표됐고, 출신과 고향이 다른 군부 파벌은 또 자칭 대장군을 위시로 천진수군을 비롯한 여럿 파벌로 나눠져 있었다.

못해도 다섯, 혹은 여섯 개의 파벌이 북평부의 권력을 나눠 가진 거지.

여기까지만 해도 복잡한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훨씬 어지러웠다.

이 모든 사건은 고작해야 2,30년 동안 벌어진 일.

황제파였다가 항복해서 정난군에 속했다가 다시 반역파에 속한 집안 및 파벌 등이 있고, 심한 경우에는 말을 3,4번이나 갈아탄 박쥐 같은 집안과 파벌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당연히 지난 과거를 모두 지우지 못해서, 파벌끼리 서로를 경원시 하고 경계하고, 또 물밑에선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을 이어가는 게 지금의 북평부였다.

그리고 산해관주 또한 파벌의 한축, 그것도 천진수군에 반대하던 파벌에 속해 있었지.

요동의 광녕성과 마찬가지로, 산해관주의 자리는 그리 선호되는 요직이 아니었으니까. 비겁한 변명일지 몰라도 파벌에 속하는 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군벌파벌이 존재하기 위해선 지지기반이라 할 수 있는 병사가 있어야하고, 병사가 있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나.

허나 산해관과 이어져 있는 곳은 요동인데, 요동과 북평부는 철천지 원수 사이다.

돈이 될 곳이 전혀 아닌 거지.

북쪽의 거용관은 유배지인 동시에 칼간을 통해 북원잔당 및 몽골부족과 거래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조선군에 의해 파괴되면서 사지死地로 변한지 오래다.

동쪽의 천진항은 요동-산동의 무역선을 약탈하면서 엄청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조선군의 기습을 받으면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 됐다.

반대로 서쪽의 자형관紫荊關은 산서와 북직례를 이어주는 관문으로, 그나마 이곳은 매력적인 장소였다. 북직례가 거래하는 유일한 세력이 산서였고, 그 산서와 통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자형관이니까.

끝으로 산서, 하남과 붙어 있는 남부지역도 요충지였다.

하남, 산동이 북직례와 정식으로 무역을 하진 않지만, 사치품 정도는 밀무역으로 이어가고 있었고 그 수혜를 호족 및 군벌이 입고 있었으니까.

이렇듯 산해관은 반드시 지켜야할 곳임에도 돈이 안 되기 때문에 파벌 간에 기피되는 곳이었고, 산해관주로서는 파벌에 속하지 않으면 자리를 지킬 수도 없었던 거지.

또한 북직례 수비를 위해선 천진항의 방비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파벌의 입장에선 천진이 몰락하는 게 또 좋지 않나.

정치가 군략을 집어 삼킨 꼴이니, 산해관주로서는 부하인 천호장에게 뭐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그저 허탈하게 한마디 내뱉고 말았다.

“천진항이 공격당했다는 건... 정말로 요동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거군.”

“하...”

“...”

다들 할 말을 잃어서, 헛웃음만 흘러나왔다.

북평부 장군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천진수군을 재건하지 않고 파벌싸움이 벌어진 건, 사실 상식적인 판단에 의거해서다.

조선군이 중국을 헤집고 다닌 건 분명하지만, 그건 중국호족들이 그들을 지원하고 동조해서 가능했던 일.

조선군이 대단해도 천진항에 대규모로 상륙해 북평부를 노리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였던 거지.

헌데 산해관이 공격당하자 불안과 의심이 커졌다.

진짜로 조선군이 북평부를 전면 공격할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하지만 이 와중에도 말이 많았다. 조선군이 북상한 게 과연 요동을 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북평부를 공략할 것인지 헷갈렸으니까.

그리고 북평부가 판단하기론 아무리 봐도 산해관을 공략하는 건 시선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봤고, 진짜 목표는 요동이라고 추측했다.

다만... 문제는 산해관과 북평부에 요동-조선의 전쟁 소식이 들려오기 무섭게, 요동이 순식간에 조선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점.

고작해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그 넓은 요동과 요서를 전부 조선이 접수했다니? 요동과 조선이 싸운 게 맞기나 한 건지, 혹시나 싸우지도 않고 전부 성문을 열고 항복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지.

산해관주와 북평부로서는 진짜로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고, 심지어 멀쩡히 살아서 산동과 하남으로 요동호족이 이주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산해관이 육상에서 공격당하고 있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천진항을 방비해야 한다고 외쳐봐야 뭐 할 수 있는 게 있겠나.

몇 년을 천진수군파벌의 힘을 깎아내려고 열중했는데, 고작해야 몇 달, 며칠만에 천진항의 방비를 완성할 리가 없다.

욕을 해봐야 제 얼굴에 침 뱉는 꼴. 산해관주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북평과 천진에도 소식이 전해졌겠지?”

“예. 그렇습니다. 전령의 말론 조선군이 천진항을 점령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은 해하강을 거슬러 올라 천진을 노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어찌됐건 천진수군과 백성들을 관리하기 위해선 조선군도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계획대로 천진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끌어 모으고 있을 거란 말이군.”

“예. 북평에서도 지원군을 보낼 겁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병력을 모으고 있을 것이고요.”

천진수군파벌의 힘을 깎아내렸다고 해서, 북평을 위협할 수 있는 천진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

조선해군의 강맹함은 이미 느꼈으니, 바다에 나가서 싸우는 건 중과부적 아닌가. 그러니 바다에서 싸우는 건 포기하고, 적을 내륙으로 끌어들여 북평부가 잘하는 방식으로 싸운다.

이런 명분을 들어 북평부는 천진항을 포기하고, 천진도시를 중심으로 지키는 작전계획을 짰다.

아마 지금쯤이면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고, 조선군이 천진항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포위망을 짜거나 심지어 공성전을 시도할 지도 모른다.

‘문제는 천진항에 조선이 상륙한 이상, 요청했던 3차 지원군이 산해관이 아닌 천진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거겠지.’

산해관주는 북평부가 어떤 판단을 할지 머릿속에 그려봤지만... 정보가 부족한 지금으로서는 딱히 답을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산해관 앞에 웅크리고 있는 조선군도 만만치 않으니, 어떻게든 3차 지원군을 산해관으로 보내지 않을까?

‘하지만 병력이 부족하다. 북평도 지켜야 하고, 천진도 지켜야 한다면... 다른 곳에서 병력을 빼오는 수밖에 없겠지.’

북평부가 아무리 군호를 넓게 설정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많다고 해도, 땅에 사람을 심듯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계획에 없던 전선 두 개를 감당하려면, 서부나 동부에서 병력을 징집해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나?”

“아마도 그래 보입니다. 솔직히 이곳 산해관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만, 천진은 아니지 않습니까. 해하강에 해안포대를 만들어 놨지만 과연 조선수군을 상대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모르는 일이니, 어떻게든 천진에 병력을 집중시키려고 할 겁니다.”

“설마. 여기서도 또...?”

천호장은 이번에도 정치가 군략에 개입할까 싶어 두려운 목소리를 내었고, 말이 씨가 될까 무서워 얼른 주워 담았다.

만약 북평에서 “산해관은 너희 힘으로 막고, 우린 천진에 집중하겠다.”고 판단하면... 방어는 곱절로 힘들어질 테니까.

이렇게 먼 곳에서 피어오른 불길과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길을 걱정하고 있을 때.

“허헉... 장군!”

저편에서 말을 타고 미친 듯이 외치며 달려오는 병사가 있었다.

딱 봐도 영응문 수비장의 부하로 보였는데... 어째 방금 전 수비장의 모습과 똑같았다.

“...!”

“또 무슨...!?”

저 불길한 모습에 다들 식겁해서 눈을 번쩍 떴고, 제발 안 좋은 소식이 아니기를 바랐다.

허나 언제나 대책 없는 낙관론은 허황되기 마련.

“무슨...?”

“난... 난하에 조선수군이 나타났습니다!”

영응문 수비장이 부하에게 묻기 무섭게, 부하는 말을 자르고 산해관주를 똑바로 보며 목청을 높였다.

안 좋은 일은 항상 겹쳐서 오는 걸까? 아니면 조선군이 치밀한 계획을 짜서 시간차로 사방을 찔러대는 걸까?

분명 후자일 테지만, 그걸 모르는 산해관주 일행에게는 불운의 연속으로 느껴졌다.

“난하에...?”

“예. 장군!”

“준화의 포구를 비롯해서, 난하에 위치한 나루터들이 모두 공격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헉!”

“...!”

“컥...!”

부하의 울부짖는 외침에, 세 사람 모두 경기를 일으키는 것 마냥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이 컥 막히고 말았다.

선수루에 올라 서 있던 두 사람. 둘은 망원경으로 볼 필요도 없이, 맨눈으로 훤히 보이는 파괴의 흔적에 가볍게 감상평을 내놨다.

화마는 발톱을 거칠게 휘두르고 있었고, 그에 맞춰 검은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잘 타는 군.”

“예. 뭐... 저희보다 육군이 일을 잘해주는 군요. 저희가 해야 하는 데 말입니다.”

“공을 세우고 싶은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열심히 준비한 것에 비해서, 너무 싱거워서 말입니다.”

“흐흐.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뭘. 앞으로 지겹도록 화약 냄새를 맡게 될 걸세.”

3함대 사령관 박무양. 그는 함장 오손의 어깨를 탁탁 두들기며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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