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520화 (520/538)

520. 챕터63. 뒤를치다 (3)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지. 계획대로 진행하면 되는 일이고.’

그는 오손의 생각을 훤히 읽고서, 다시금 어깨를 두들겼고... 오손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서 작게 고개를 숙였다.

오손은 일본계 출신으로 평도전 다음으로 함장이 된 인물이었다. 그것도 항왜 출신이 아닌 무려 대마도 왜인포로 출신.

과거 대마도 정벌 때 어지간한 무사층은 연오랑에게 다 죽었는데, 운 좋게 항복해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그 또한 나름 일본계의 대표로서 공훈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밖에.

허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진짜 함장이 되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해군은 여전히 배보다 사람이 더 많은 상황이고, 해군병들은 육상에서 근무하거나 북방에서 조운선을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본토의 수로는 민간에 넘길 수 있었지만 북방은 아직 그 정도로 자본을 쌓은 상인집안이 없을뿐더러, 신도시를 원활하게 관리하기 위해선 조정의 손길이 닿아야 했다.

그랬기에 이번 전쟁에서 공훈을 쌓을 수 있다면, 새로 만들어지는 전함의 함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나.

해군 지휘관으로서 최고의 꽃은 역시나 전함의 함장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함장들을 관리하는 함대장인 박무양이 함장들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으니, 이렇게 괜히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거였고.

“측량은 잘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함대장님. 걱정하지 마시지요. 북방의 수로에 비하면 난하 정도는 끄떡없습니다.”

“음...”

박무양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손은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답을 던졌다.

난하는 생각보다 길고 큰 강이고, 수로 공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강폭이 제멋대로인 곳이 수두룩했다. 허나 그래봐야 조선이나 북방의 강만큼 지랄 맞을까.

여름이면 넘쳐흐르고, 겨울이면 바싹 마르는 조선과 북방의 강에 비하면, 그래도 얼추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는 난하는 상대하기 퍽 편한 곳이었다.

“혹시나 해서 이렇게 조운선에 화포까지 장착해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상류로 올라가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야지.”

박무양은 금주와 연산항에서 개고생하며 진행했던 작업을 떠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하가 조선의 강보다 편하다고는 해도, 어찌됐건 강은 강이다. 그러니 바다에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함을 타고 오르는 건,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재수 없게 좌초라도 되면 그걸 인양하는 문제를 떠나서, 강이 꽉 막혀 다른 전함들이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해서 밑바닥이 평평한 조운선으로 전함을 대신했고, 실험 결과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조운선 자체가 미래의 판옥선을 뻥튀기해서 선수와 선미를 뾰족하게 개조한 물건 아닌가.

애초에 판옥선은 군선으로 활용하려고 만든 물건인 만큼, 화포를 올려 쓰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었던 거지.

오손의 시원한 대답에 확실히 우려를 날려 보낸 박무양은, 다시금 물끄러미 난하를 굽어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와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함대장님은 장강도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해하강도 아니고 난하에 올 거라고는 상상을 못 해봐서 말일세.”

“예... 하긴 그렇긴 그렇습니다.”

대답을 흐리면서 오손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원래 역사에선 대마도 정벌 때 사망했을 박무양이지만, 지금 역사에선 천하가 좁다하고 남방 바다를 헤치고 다녔다.

다만 북직례 공략에 있어서, 천진 상륙 외에 해군이 동원되는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난하에 올 줄이야.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우리조차도 처음에 계획을 들었을 때 놀랐으니까... 아마 북평부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분명히 그럴 겁니다.”

오손은 격하게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하는 북직례 동부 지역. 끝자락에 산해관이 있는 영평부를 가로지르는 강이다.

몽골초원에서 발원해서 크게 굽어지며 돌아서 열하를 거치고, 연산산맥을 통과해 발해만으로 빠져나오는 강이지.

원래 역사에서 청황제의 별궁인 피서산장이 열하에 건설되지 않았나. 청황제는 피서산장에서 배를 타고, 난하를 통해 북경으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 난하는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강이었다. 당나라 이후로 이 난하를 끼고 큰 전쟁이 벌어진 적이 없었으니까.

“북직례. 아니 중국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요충지이자 최우선은 산해관을 방어하는 것.”

“그렇습니다.”

동북방의 이민족에게 공격당할 때. 산해관이 뚫리지 않으면 난하에서 싸울 일이 없다. 반대로 산해관이 뚫리면 길고 긴 난하를 끼고 싸우는 것보단, 북평에서 막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그러니 북평부 입장에선 난하가 공격당했을 때의 작전계획을 세워 놓을 필요가 없지 않나. 특히나 배에 익숙하지 못하고 수전에 약한 동북방 이민족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지.

“하지만 아국은 지금껏 중국왕조가 상대했던 유목민족이 아니란 말이지.”

“...”

산해관이 멀쩡한 상태에서, 중간에 위치한 난하가 끊길 일을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조선의 해군력이 강한 건 익히 알고 있어도, 타성과 관성이라는 건 쉽게 지워낼 수가 없는 법. 지난 수백년간 난하가 공격당한 적이 없으니, 조선이 해군을 동원해 난하를 공략할거라고 예측하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지금쯤이면 북평과 산해관에 우리의 움직임이 알려졌을 텐데... 어떻게 반응할까?”

“그야... 어떻게든 우릴 몰아내려 하지 않겠습니까? 산해관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죠.”

“그래. 그럴 거야.”

박무양은 군부의 참모들이 세운 계획을 떠올리며, 북평부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난하가 끊겼다는 건, 한마디로 산해관이 고립된다는 걸 의미했다.

물론 산해관은 천하제일관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군수물자 및 군량이 수북이 쌓여 있는 곳이다. 산해관이 위치한 영평부는 산해관을 유지하기 위해서 귀속되어 있는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산해관이 최고, 최강의 관문이라 평가 받는 건, 북평을 통해서 끝도 없는 병력과 보급이 이뤄지기 때문.

헌데 조선군은 난하를 점거함으로서, 산해관 방어의 핵심 축을 끊어버렸다.

“아무리 물자가 많아도, 수성하는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거야.”

“맞습니다. 아국이 난하를 차지했다는 건, 여차하면 아국이 영평부에 상륙해 산해관 서쪽에서도 공성전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또 다른 문제는 산해관 서쪽. 북직례 안쪽 성벽은 진동문이 위치한 동쪽 성벽보다 낮고 약하다는 점이다.

산해관은 애초에 동북방의 이민족을 막기 위한 관문이니, 당연히 동쪽방면을 중시하지 안쪽인 서쪽방면을 중시할 리가 없으니까. 더군다나 원래 역사와 달리, 지금 이 시대엔 산해관 개보수가 완전히 이뤄진 상태도 아니었고.

“설령 우리가 공성할 생각이 없더라도...”

“산해관은 그걸 대비할 수밖에 없겠지요. 나아가 지금도 계속해서 포격을 받고 있을 테니, 북평에 지원군을 요청했을 게 분명. 만약 그 지원군이 오지 못하는 상황인 걸 알게 된다면...”

“더욱더 사기가 떨어지겠지.”

박무양과 오손은 바둑을 두듯, 서로 한마디씩 던지며 북평부의 반응을 예측해 봤다.

“그러니 북평부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난하에서 밀어내야 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만 지금쯤이면 천진항이 함락 됐을 거고, 북평부에서도 알아차렸을 겁니다. 허면 북평부는 천진으로 병력을 보내고 모집하고 있을 텐데...”

“갑자기 우리가 등장하면서 병력이 부족해졌을 테지. 그럼 어찌해야할까?”

박무양은 그리 말을 하면서 히죽 웃었고, 오손 또한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남부에 있던 병력과 호족사병까지도 긁어모아서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거야.”

“다만. 북평을 수비하고 있는 병력을 보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글쎄...”

오손의 물음에 박무양은 말을 흐리고 말았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떻게 될지 솔직히 애매하기 때문. 북평부도 파벌싸움이 심하니 자기 병력을 소진하기 싫어할 게 분명하긴 한데... 또 한편으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마당에 파벌이 무슨 상관일까.

“상관없지 않나? 북평의 병력을 보낸다면 다른 병력을 북평으로 모집할 테니까.”

“음...”

결국 북평부는 기존의 산해관 전선에, 추가로 천진항과 난하라는 전선이 추가되는 꼴 아닌가.

문제라면 북평부는 조선이 유도한 전장이자 전선을 피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천진항 포위를 포기하면 천진이 공략당할 거고, 천진이 공략당하면 북평으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린다.

난하를 포기하면 조선군이 산해관을 양쪽으로 두들겨 산해관을 함락시킬 거다.

최악의 경우에는 조선군이 산해관을 뛰어넘어, 곧장 북평을 공략 할 수도 있다.

동쪽에서 산해관을 공략하는 걸 포기하고, 전부 난하를 통해 서쪽에 상륙시켜서 역으로 산해관의 대병이 북평을 구원하러 오는 걸 막을 수도 있고.

아예 전 병력을 동원해, 산해관을 무시하고 북평을 먼저 칠 수도 있는 거지.

“뭐가 됐든 북평부로서는 포기할 수 없으니, 결론은 하나. 다른 곳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을 뽑아서 일단 이곳에 투입해야 하는 거지.”

“예.”

박무양과 오손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북평부가 다른 해법을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니 결국 이 난하를 두고 싸움이 벌어진다는 말인데... 지금까지 부순 진이 몇이지?”

“작은 나루터를 제외하고도, 악정진, 난주진, 건안진을 불태웠습니다. 지금 저곳이 건안진이죠.”

“이제 슬슬 돌아가야 겠군.”

“예. 일단은 적들이 도하하기 쉬운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난하의 하구에 위치한 마을을 점거하고, 난하를 거슬러 올라 난하를 끼고 만들어진 진. 포구를 전부 불태우는 것이었다.

그래야 북평에서 오든, 산해관에서 오든, 서로의 병력이 쉽게 오갈 수 없을 테니까.

2차 목표는 이제 도하하려는 적들을 막는 것.

‘다른 건 다 미뤄두더라도, 산해관이 뚫리면 아군이 물 밀 듯이 밀려들어 올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을 거다.’

아무리 천진과 요동이 가까워도, 배로 병력과 보급품을 수송하는 것과 육로로 이동하는 건 천지차이. 특히나 조선군에 기병이 많은 걸 북평부 또한 알고 있을 터, 산해관이 뚫리면 기병이 쏟아져 나올 거라는 건 확신하고 있을 거다.

‘어떻게든 산해관이 양면으로 포위당하는 건 막으려 할 테니... 반드시 도하지점을 찾고 그곳을 지켜서 산해관과 연계하려 할 거다.’

박무양은 미리 들었던 작전계획이 그대로 진행될 거라고, 다시금 확신했다.

난하의 강폭과 수심은 천차만별이고, 이들이 불태운 포구는 이전까지 북평부가 곧잘 활용하던 큰 포구였다.

큰 포구인 만큼 당연히 강폭도 넓고 수심도 깊은 바. 고기잡이 나룻배마저 전부 불태워 버렸으니, 맨몸으로 여길 도하하는 건 불가능할 거다.

그러니 이제 강폭과 수심이 얕은 지점을 찾아 도하하려 하지 않겠나. 상류로 올라오면서 측량을 철저히 했으니, 전장이 될 만한 곳도 다 알아뒀다.

“움직이지.”

“옙!”

오손은 재깍 고개를 끄덕였고, 항해사에게 명령하기 무섭게 돛대 위에 올라 있던 견시병이 재깍 깃발을 갈아 끼워 깃발신호를 전파했다.

난하를 점거한 조선군 전함. 정확히는 무장 조운선의 숫자는 무려 20척이었다. 허나 고작해야 20척으로 길고 긴 난하를 전부 순찰하고 점거할 수는 없지 않나.

4척으로 이뤄진 무리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강물을 따라 오르내렸고, 진짜 정찰 병력은 따로 있었다.

북직례에 민들레 씨처럼 흩날리며 흩뿌려진 육군기병들.

그것도 언제나처럼 누구보다 앞서서 적진을 누비고 다니는 무력정찰대인 특전대 1개 대대가 이곳 영평부에 흩어져 있었다.

“중대장님. 저기 보이십니까.”

“음...”

말린 어포를 야금야금 뜯어먹고 있던 중대장은, 소대장이 저 멀리 가리킨 먼지구름으로 시선을 돌렸다.

북직례 대부분이 그러하듯, 영평부 또한 끝도 없는 평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크고 작은 산들이 있긴 하지만... 어딜 가도 앞산, 뒷산이 있는 조선본토와 북방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지.

특전대 1개 중대는 구릉이라도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낮은 산 중턱에 모여서, 주변 전체를 조망하고 있었다.

이런 낮은 산 위에서 봐도 시야가 가리는 곳 없이 확 트여서, 정찰하기엔 딱 좋은 곳이니까.

“몇이나 될 거 같냐?”

“저들도 정찰을 보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충 중대 정도 되지 않을까요?”

“백호대?”

“예. 2중대가 정찰대를 잡았다고 했는데, 그 정도 병력이라고 했잖습니까? 산해관의 기병들은 어차피 공성전에 쓸모도 없으니, 이쪽으로 보내서 정찰하겠죠.”

“음.”

특전대는 영평부 해안에 흩어져 상륙한 후에, 어촌 마을을 점거해 마을주민을 전부 강제 이주시켰다.

그렇게 해안가를 쓸고 내려와서 난하 하류의 어촌마을에서 한 덩어리로 뭉쳤고, 이후 곧장 난하와 산해관 사이의 드넓은 영평부 평야를 들쑤시고 다녔다.

적들에게 상륙한 병력이 몇인지 알려주지 않으려는 의도와 함께, 영평부 백성들을 산해관으로 도망치게 만듬으로서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과부하를 일으키기 위해서였지.

고작해야 1개 대대. “기병 오백으로 뭐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무려 기병 오백이다.

어지간한 마을쯤은 그냥 밟아버릴 수 있는 숫자고, 낮든 높든 성벽이 있는 도시는 그냥 위협만 줘도 알아서 난장판이 벌어졌지.

그 결과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난하를 공략한지 3일이 지난 지금.

산해관이든 북평부든 이곳의 사정을 알고, 정찰병을 뿌려 조선군의 위치와 병력을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반대로 특전대 또한 중대별로 흩어져서, 그 정찰병들을 처리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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