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 챕터63. 뒤를치다 (4)
“상단이나 피난 가는 백성들은 아니겠지?”
“먼지구름이 퍼지는 속도로 봐선 도보로 이동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우리가 그렇게 들쑤시고 다녔는데, 상단이 움직이겠습니까?”
피식 웃는 소대장을 보며, 중대장은 질겅질겅 어포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준비해라. 가까이 오면 친다.”
“옙!”
중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에서 내려 편히 쉬고 있던 중대병들이 산세의 나무 사이사이로 자리를 옮겼다.
험준한 조선과 북방의 산을 타넘으며 사냥을 하던 이들답게, 기병 주제에 어찌나 잘 숨고 움직이는지... 멀리서 보면 이곳에 기병이 있다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산속에 녹아 들었다.
“산해관 기병이라. 기사를 할 줄 알까요?”
“글쎄. 진짜 정예병들을 할 줄 알겠지만, 많지는 않을 걸?”
“그렇습니까?”
“광녕성 출신 요동군이 그랬으니 맞겠지. 우리한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까.”
중대장과 소대장은 망원경을 들고 먼지구름을 살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몽골과 여진을 상대해야 했던 요동기병이 산해관 출신 기병보다 실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건 당연한 말. 물론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그러했다.
기병이라고 해서 모두가 기사를 할 줄 아는 건 아닌 바... 특히나 명이 망한 후로, 유목민 기병과 싸워볼 일이 없어진 북평군 기병은 그 수가 더 적지 않을까?
“거용관을 지키는 병사들이라면야 또 모르지만, 우리가 거용관을 무너뜨리고 난 후에는 속수무책이 되지 않았냐?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예.”
소대장은 중대장의 말에 동의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평군에 기병이 많다지만 그거야 중국의 다른 지방에 비해서 많은 거지, 요동이나 몽골, 조선에 비해서 많은 건 절대 아니다.
게다가 지난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산산맥과 태행산맥의 샛길을 통해 넘어온 몽골남부연맹의 몽골기병들이 북직례 북부를 들쑤시고 다녔다.
기병의 손실이 없던 게 아니니, 정예 기병을 키우는 건 더욱더 힘들어졌겠지.
그렇게 대기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중대장과 소대장의 망원경에 적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소대장의 예상대로 기병이 맞았는데, 백호대가 아닌 대략 오십명 정도 되는 기병이 관도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역시 여기로 오는 군.”
“여기 말고 더 좋은 곳을 찾기 힘들 테니까요.”
아무리 정찰대라고 해도, 무작정 개별로 뿔뿔이 흩어져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적진 근처에 임시 주둔지를 설정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적을 살피는 게 기본.
이건 어느 군대나 매한가지니, 당연히 임시 주둔지로 삼을 만한 지형과 구역 또한 서로 읽을 수 있지 않나.
“병력을 쪼개서 이곳을 따로 정찰할 줄 알았는데...”
“급한 건 저들이니까.”
중대장은 어느 소대장의 말에, 어깨를 으쓱 거렸다.
시간은 북평군이 아닌 조선군 편 아닌가. 저들로서는 빨리 난하를 해방시켜야 하니, 임시 주둔지를 위한 정찰을 포기하고 저렇게 무작정 달려오는 거지.
아마 정찰병들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위에서 시키는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을 거다.
“준비해라. 2소대와 3소대는 뒤를 치고.”
“옙!”
“충성!”
관도는 이들이 매복해 있는 산 아래에 위치해 있었고, 중대장 곁에 모여 있던 소대장들이 각자 부하들에게 흩어졌다.
조용히 몸을 일으킨 소대원들은 말 위에 올라타 활을 꺼냈고, 잠시 기다리기 무섭게 먼지구름을 뚫고 적 기병들의 모습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저들 또한 목적지에 가까워진 터라 속도는 점점 줄어드는 게 보였고, 몇몇이 따로 움직이려는 찰나.
삐빅! 중대장의 호각소리가 울려 펴지기 무섭게, 중대원들 모두가 곧장 달려 나갔다.
히히힝! 우르르. 나지막한 산중턱을 타고 내려오면서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소대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알아서 소대장을 중심으로 진형을 맞췄다.
쐐기꼴도 아닌 초승달과 비슷한 진영을 짜고 서로 거리를 두고 달려 나가자, 관도 한복판에서 먼지구름이 확 피어올랐다.
적들 또한 갑자기 튀어나온 조선군을 보며 반응을 시작했고, 쉐엑! 누가 따로 명령할 것도 없이 사거리에 들어오기 무섭게 화살비가 날아갔다.
쉑쉑쉑! 60여발의 화살은 순식간에 적 기병들을 향해 쏟아졌고, 몇몇 기병이 화살에 맞고 쓰러지기 무섭게 적들은 거리를 좁히며 조선군을 향해 달려 들었다.
‘저렇게 일단 달라붙으려고 하는 걸 보면, 저들 중에선 기사를 할 줄 아는 이들이 얼마 없나 보군.’
중대장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삐비빅! 입에 물고 있던 호각을 힘차게 불었고, 동시에 말고삐를 잡아채 옆으로 달려 나갔다.
선두에 선 중대장 뒤로 다른 중대원들 또한 줄줄이 따라 붙었고, 조선군은 옆구리에 적 기병을 둔 꼴을 하고서 구릉 옆으로 달려갔다.
다들 그러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앞에서 마주보고 쏘는 것보다, 서로 비슷한 속도로 옆에서 보고 쏘는 게 훨씬 맞추기 쉽지 않나.
이곳 영평부 평원은 관도 주변에 농지만 있는 게 아니라 개간되지 않은 황무지와 돌밭도 흔했기에, 기병들은 관도에서 살짝 비켜나 달리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나.
쉑쉑쉑! 계속해서 날아가는 화살은 적 기병뿐만 아니라 적 전마를 향해서도 쏟아졌고... 퍽퍽퍽! 전마들은 피를 흘려가며 한두발 맞는 건 어찌저찌 버텼어도, 목덜미에 맞은 화살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쿠릉. 재수 없게 목에 화살이 박힌 전마는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몸을 비틀었고, 고삐를 잡고 있던 기병이 균형을 잃자 함께 뒤엉켜 땅을 뒤집었다.
풀쩍풀쩍 묘기하듯 쓰러진 전마를 뛰어넘은 기병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기병도 있기 마련.
먼지구름을 피워내며 퍽퍽 낙마를 이어가자 적 기병의 속도가 살짝 느려졌고, 그에 맞추듯 조선군 또한 속도를 늦추고 화살비를 먹여줬다.
스웜전술 아닌 스웜전술이 펼쳐지는 동안. 어느덧 본래 매복해 있던 구릉의 반대편으로 전장이 옮겨졌는데...
“와아아!”
“쳐라!”
우렁찬 함성과 함께, 반대편에 숨어 있던 2소대와 3소대가 적 기병의 뒤로 따라붙으며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적들은 조선군이 얼마나 상륙했는지 모르는 게 분명. 자신과 비슷한 숫자의 정찰대라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튀어나온 조선기병을 보며 화들짝 놀란 모습을 숨기질 못했다.
적 기병들은 살짝 앞서가던 중대장의 병력과 갑자기 튀어나온 2,3소대 기병 사이에 낀 꼴이 되고 말았고.
“흩어져라!”
“빠져나가라!”
아니나 다를까. 적들은 진형을 풀고 뿔뿔이 흩어져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숫자에서 밀리고, 기사 때문에 따라 붙지도 못하는데 더 버틸 필요가 있을까.
정찰을 하지 못했다는 실패가 뼈아프지만, 적 정찰대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소득이다.
‘잘하는군.’
중대장 또한 적 기병 중 한명의 꽁무니를 따라 달리면서 화살을 쏘는 와중에도, 힐끔힐끔 전장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특전대가 위력정찰을 한두번 한 게 아니고, 이게 본업이지 않나. 딱히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특전대원들은 각자 알아서 자신의 목표를 찾아 2,3명씩 뭉쳐서 적 기병 하나를 추적해 들어갔다.
‘나도 질 수 없고.’
쉐엑! 중대장은 그리 각오를 다지며, 말발굽에 맞춰 위아래로 흔들리는 시선을 애써 고정했고.
‘지금!’
마음속에 그려놓은 궤적과 적 기병의 등판이 맞아떨어지자, 숨까지 참아가며 당겼던 활시위를 풀어냈다.
쉐엑! 순식간에 날아간 화살은 운 좋게 전마의 엉덩이에 틀어 박혔다.
히힝! 아무리 전마의 엉덩이 살이 두툼해도, 화살을 맞았는데 안 아플 리가 있나.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적 기병의 속도가 점점 늘어지는 게 느껴졌고, 중대장은 연거푸 화살을 날려 계속 전마의 엉덩이와 적 기병을 맞췄다.
‘오!?’
퍼퍽! 다시금 운 좋게 갑옷을 뚫고 적 기병의 옆구리에 화살이 틀어박혔고, 적 기병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게 보였다.
휘릭. 순식간에 손을 놀려 활을 허리춤에 껴놓은 화살집에 담고, 물 흐르듯 다음 동작이 이어졌다. 안장에 비스듬하게 꽂혀 있던 기창을 뽑아들기 무섭게 적 기병이 뒤를 돌아봤고, 퍽! 중대장은 사정없이 창대로 적 기병의 등짝을 후려쳤다.
적 기병은 말 위에서 휘청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중대장의 뒤를 따라온 소대원이 옆으로 치고 나가, 퍽! 적 전마의 목덜미에 기창을 꽂아 넣었다.
히힝! 고통을 끝내주는 마지막 일격에 적 전마는 단박에 다리에 힘이 풀려 무너졌고, 안 그래도 중심을 못 잡고 있던 적 기병은 말에서 튕겨나가 땅을 굴렀다.
쓰러진 적 기병을 두고 앞서나갔던 소대원과 중대장은 속도를 줄여 다시 되돌아왔고.
“잘했다.”
“예. 고분고분하게 붙잡히지. 이거야 원...”
소대원은 중대장의 칭찬에 머쓱해하며,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고 기창날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
중대장은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는 적기병을 향해 다가가면서, 쓱 주변을 살폈다.
갑자기 벌어진 추격전 탓에 다들 한참을 멀어져 흩어졌지만, 먼지구름이 하나둘씩 줄어드는 게 보였다.
몇몇은 놓쳤겠지만, 어쨌든 잡은 게 중요한 것 아니겠나.
“다 잡진 못하겠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소대원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작게 중얼거렸다.
이내 적 기병 앞에 도착하자, 소대원은 냉큼 말에서 내려 기창을 꼬나들고 적 기병을 툭툭 때리며 무장을 해체시켰다.
“으으...”
적병은 말에서 구른 고통이 만만치 않은지, 뼈마디가 부러진 곳이 없음에도 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윽고 소대원은 말 안장에서 밧줄을 가져와 능숙하게 손을 묶여 안장에 연결했고, 둘은 곧장 포로를 질질 끌고 산으로 되돌아갔다.
포로는 걷는 건지 끌려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 되었지만, 어차피 입만 살아 있으면 그만 아닌가.
둘은 아무렇지 않게, 적 기병을 험하게 다루면서 본래 자리에 도착했다.
“다친 부대원은?”
“에이. 뭐 하지도 않았는데 다칠 리가 있겠습니까.”
중대장은 꽤나 먼 곳까지 쫓아갔었는지, 미리 도착해 있던 소대장 중 한명이 능글거리며 대답을 던졌다.
“포로는 많이 잡았나?”
“일곱입니다.”
“나쁘지 않네. 바로 취조하자.”
“옙!”
중대장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대장은 몇몇 대원들을 불러 모아 취조를 시작했다.
취조라고 해서 뭐 별거 있겠나. 포로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린 후에, 그냥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서 정보를 교차대조 하는 거지.
특전대뿐만 아니라 조선군에는 한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이 꽤 있어서, 취조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한어를 할 줄 알았던 몽골, 여진인도 있고, 귀화한 요동인과 고려인, 기타 한족 출신이 있었으니까.
조선은 과거 그들이 살던 나라보다 훨씬 선진적이고 잘 사는 나라인 건 분명했다.
다만 개혁 이후 매일 같이 변해가는 조선의 시대상에 적응하는 게 무작정 쉬운 일은 아니고, 또 그 시대에 발맞춰서 돈을 버는 것도 낯설고 어려운 건 당연한 말.
그런 이들에게는 어디서든 기피되었던 군문의 길이 오히려 해답이 되곤 했다.
적어도 조선군은 녹봉을 꽤 많이 줄뿐더러, 군인은 몽골이든 한족출신이든 그 생활상이 비슷비슷했으니까.
해서 취조는 전혀 어렵지 않게 순식간에 진행됐고, 중대원들 모두가 무탈하게 합류할 때 쯤엔 완전히 정보가 취합됐다.
“본대가 벌써 온단 말이지.”
“오천이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인데 말이죠.”
“화포가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중대장이 한마디 던지자, 땀냄새를 풀풀 풍기며 옹기종기 모여 있던 소대장들도 한마디씩 곁들였다.
산해관에선 정찰대를 뿌리는 동시에, 관도를 따라 본대가 벌써 출발했다고 했다. 난하에서부터 산해관까지는 말을 타면 이틀이면 도착할 거리고, 보병들이 체력을 보존하면서 움직여도 5일이면 도착할 거리다.
“그러니 본대가 도착하는 데, 이틀 밖에 안 남았단 말이지.”
“그보다 당산, 준화, 난주의 병력이 함께 동원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연락을 서로 취한 걸까요?”
“그야 산해관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거겠지.”
“애초에 고작해야 1개 대대로 영평부 전체를 막는 건 불가능하잖아?”
소대장 중 한명이 의문을 던지자, 각자가 알아서 답을 찾아냈다.
적들의 정찰대를 먼저 찾아내 없애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어도, 이 넓은 영평부에서 홀로 달랑 움직이는 전령을 모조리 잡아내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산해관에서 보낸 전령이 한두명이 아닐 테고 말이다.
또한 해군이 난하를 점거 했어도, 그들도 난하 전체를 완전히 가로 막고 지킬 수 없는 법. 이 또한 숨겨 놨던 나룻배나 뗏목. 하다못해 수영해서 난하를 건너가면 뭔 수로 잡아내겠나.
애초에 특전대의 임무는 아군의 병력과 위치를 헷갈리게 해서 시간을 버는 거였지, 동쪽의 산해관과 서쪽의 북평이 전령을 주고받는 걸 막는 게 아니었다.
“저들이 노리는 곳이 정안진이라...”
“우리가 불태운 곳 아닙니까?”
“하긴 강폭이 좁아 보이긴 했습니다.”
정안진은 난하 하류에서 살짝 위쪽에 위치한 곳으로, 이미 특전대가 한번 밟고 지나간 곳이었다.
특전대만으로 해치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나루터였고, 반대로 말하면 아주 작은 나루터만 만들어질 만큼 물살이 거세거나 강폭이 넓은 곳이 아니라는 뜻.
“진짜로 도하를 하려는 건가?”
“그렇지 않겠나?”
“거짓은 아닐 테지만... 다른 곳에서도 동시에 도하하려는 걸 수도 있겠군요.”
소대장들은 이런저런 의견을 냈지만, 딱히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이들은 해군의 움직임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없지 않나.
“그거야 해군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본대를 살피러 가야겠지요?”
“그래야지. 전령과 정찰병이야 평원을 아무렇게나 돌아다닐 수 있어도, 오천 쯤 되는 대병은 아무렇게나 못 움직인다. 보나마나 관도를 따라 움직일 터. 대기하고 있다고 살펴보면 될 거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1소대장. 해군과 다른 중대에 전령을 보내라.”
“옙!”
중대장은 그리 명을 내렸고, 모두 모인 중대원들은 포로를 저 세상을 보내주고서 곧장 채비를 갖추고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