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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522화 (522/538)

522. 챕터63. 뒤를치다 (5)

“다 챙겼냐?”

“이것만 채우면 됩니다.”

강변에 몰려 있는 병사들. 갑옷조차 벗어 놓고서 망태기를 메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모래톱과 강변을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줍고 있었는데, 흡사 보석을 감별하듯 손아귀에 든 돌조각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이들이 줍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작은 자갈.

“흠. 정말 이걸 다 쓸 수나 있을까?”

“글쎄요. 적이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부하들을 이끌고 온 갑판장은 손에 쥔 자갈을 굴리며 화포장에게 물었고, 화포장은 숙제검사를 하듯 부하들이 펼친 망태기를 살피며 무심히 답을 던졌다.

아무렇게나 쏴도 괜찮은 조란탄이지만, 그래도 제대로 쓰려면 크기와 형태가 고른 게 낫지 않나.

너무 뾰족하거나 날카로우면 상처를 더 깊게 입힐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화포의 포신 안쪽에 부하를 많이 준다.

가장 좋은 건 잘 가공된 구슬처럼, 작고 둥글둥글한 게 최고. 화약의 힘으로 날아가는 이상 사실 날카롭든 무디든, 맞으면 살과 뼈가 분리되는 건 마찬가지니까.

“뭐. 어찌됐건 포탄 걱정은 덜어서 좋군요.”

“그야 그렇겠지만... 설마 부족하진 않겠지?”

“예. 선창에 잔뜩 쌓아놨으니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게다가 여긴 자갈이 꽤나 좋네요. 하류라서 그런가.”

“음.”

화포장은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들이 있는 곳은 난하 하류. 모든 강이 그렇겠지만 하류로 갈수록 토사가 많아지고 자연히 마모된 자갈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난하 하류에는 변변찮은 도시가 없었고 작은 어촌마을만 있었는데, 특전대가 기습 상륙하면서 마을주민들은 전부 이주당한지 오래.

그럼에도 저 멀리 보이는 유령마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건, 마을을 차지한 해군병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 챙겼으면 이제 가지.”

“예.”

갑판장과 화포장이 말을 나누기 무섭게 병사들이 모여들었고, 다들 땅에서 캐낸 천연의 수확물을 등에 지고서 마을로 돌아왔다.

돌아온 병사들은 함선으로 돌아가 자갈을 적재하기 무섭게, 동료들이 만들어 놓은 모닥불 근처로 모여들었다.

먼 바다를 돌아다니는 전함이라면 조리실이 따로 존재해 취식을 준비해 줬겠지만, 조운선에는 조리실 자체가 없었다.

애초에 조운선은 마을과 도시를 오가는 데, 굳이 배에서 취식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해서 이들은 육군이 사용하는 야전식기. 미래의 코펠을 기술력이 떨어지는 15세기에 맞춰 변형한 물건을 챙겨왔고, 반합처럼 생긴 사각냄비에 가져온 식자재를 몽땅 넣고 죽을 끓여 먹었다.

이러한 식사는 함장이든 일반 병사든, 지휘고하를 가릴 것 없이 다 똑같았기에, 박무양을 비롯한 함장들도 병사들과 똑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숟가락을 뜨고 있었다.

“산해관과 당산, 준화, 난주의 병력이 동시에 오고 있다라... 얼추 내일이면 도착하겠군.”

“어쩌면 벌써 도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니, 재촉하면 행군속도를 당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랬다면 특전대가 알려줬겠지.”

“난하 동쪽으로 나가 있는 특전대는 산해관 병력의 이동을 알 수 있어도, 서쪽 사정은 모르지 않겠습니까?”

“흐음...”

함장들은 연신 배를 채우면서도 각자의 의견을 털어놨다.

난하와 산해관 사이에는 거대한 평원이 자리 잡았고, 이곳엔 그리 큰 도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특전대가 흡사 마적떼마냥 활개치고 다닐 수 있었지만, 난하 서쪽 사정은 정 반대다.

난하 서쪽에는 난하를 끼고 형성된 당산, 준화, 난주 등과 같은 도시가 존재했고, 그 도시들은 하나같이 2만명이 훌쩍 넘는 인구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사람 많고 땅 넓은 중국이니까 2만명이 사는 도시를 그냥 도시라고 부르는 거지, 조선에선 2만명이 사는 도시는 충분히 대도시라 부를 만하지 않나.

그러니 제 아무리 특전대라고 해도 서쪽을 헤집고 다니는 건 무리여서, 서쪽에 대한 정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뭐.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올 걸 알고 있었고, 우리가 난하와 붙어 있는 도시의 포구를 전부 불살랐으니 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보다 당산, 준화, 난주의 병력이 벌써 집결할 수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미리 준비되어 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럴 거야.”

“맞는 말이지.”

오손이 의견을 내자, 박무양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에는 난하 서쪽지역이 거대한 공업도시로 발전하면서 탕산시로 묶이게 된다. 허나 이 시대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당산, 준화, 난주 등의 도시와 현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제각각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 대부분이었지.

그런 만큼 북직례 호족세력과 군벌세력의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군호 또한 자신들의 세력을 채우기 위해 얽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치역학적인 문제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난하에 조선군이 튀어나오기 무섭게 병력이 소집된다? 이건 일찌감치 교통정리를 해놓고, 병력을 모집할 준비를 끝내놨다는 뜻이리라.

“북평부는 우리와 싸울 준비를 해둔 걸까요? 그런 것 치고는 천진항에서의 전투가 너무 싱겁지 않았습니까?”

“파벌이 달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천진항이야 천진수군이 없으면 차지할 이권이 없지만, 이곳 난하의 도시들은 난하가 없어도 이권이 존재하는 땅이지 않나? 사정이 다르겠지.”

미래에 탕산시가 제대로 개발되었다고 해서, 이 시대에 쓸모가 없는 곳은 아니었다.

탕산 일대는 이 시대에도 탄광과 철광이 존재했고, 도자기로도 유명하며, 비옥한 전답은 당연히 존재했으니까.

“아마도...”

“...?

박무양이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우리가 산해관을 공격할 때부터, 미리 지원 병력을 준비해 둔 게 아닌가 싶군. 난하가 공격당할 것은 상상도 못했을 테니, 북평부로서는 당연히 산해관을 방어해야하지 않겠나?”

“음...”

“하긴 이미 지원군이 조금씩 가지 않았습니까.”

지난 수개월 동안 해군함대는 산해관을 두들기고 나서, 북직례 해안을 따라 남하해 천진항을 훑어보고 가지 않았나.

영평부가 워낙 넓은 탓에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어도, 해군들은 해안도로를 타고 지원군 일부가 산해관으로 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편으론 이렇듯 나름 중요한 난하에 “왜 다리를 건설하지 않았냐?”라고 물을 지도 모르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있었다.

중국본토. 북직례. 나아가 북평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은, 적이 중국본토로 들어올 수 있는 좁은 입구인 산해관에서 막는 거다.

산해관이 뚫리는 상황이라면 다른 방어선은 의미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난하에 다리를 놓는 건 오히려 북평으로 더 빨리 진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지.

나아가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이 다리를 잘 안 놓는 이유와 일맥상통했다. 다리를 놓아 강을 막고 통행을 쉽게 해서 얻는 이득보다, 차라리 강의 수로를 활용하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육로보다 수로가 훨씬 빠르고 많이 옮길 수 있는데, 아무리 사람이 넘쳐나는 중국이라도 이런 당연한 이치를 거부할 수 없었던 거지.

“그런데 이젠 육군이 산해관을 본격적으로 두들기고 있으니, 당연히 지원군을 요청하지 않았겠나?”

“그렇겠지요.”

“그렇지 않을까?”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댔다.

“아마도 그래서 다른 곳도 아닌 정안진을 목표로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곳에선 어떻게든 도하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음... 당산, 준화, 난주에서 오는 병력이 산해관으로 가기 위해 온다고 생각하나 보군?”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박무양의 물음에 어느 한 함장이 답하며, 동의를 구하듯 다른 함장들을 바라봤다.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사실 그게 아니고서야, 적들은 도하할 게 아니라, 오히려 이곳 두가포를 노리고 와야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것도 그렇긴 한데...”

어느 함장의 의견에 다들 숟가락을 내려놓을 정도로, 고심에 찬 모습을 보여줬다.

북평부 입장에선 조선군의 난하 점령은 난제難題 그 자체였다. 도무지 조선군의 의도를 알 수가 없고, 조선군의 선택지가 너무 많으니까.

난하 동쪽으로 상륙해서 산해관을 앞뒤로 포위한다. 서쪽으로 상륙해서 북평을 압박한다. 그냥 난하만 차지해서 난하를 끼고 있는 도시를 공략한다. 난하의 점령은 미끼고 천진항 및 산해관에 집중한다. 등등.

생각하면 할수록 조선군의 선택지는 점점 불어나고, 북평부로서는 뭐가 됐든 찍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건 역시나 조선군을 난하에서 밀어내는 거다. 하지만 조선군의 기습으로 인해 난하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배가 전부 불타버린 이상, 배를 통한 공격은 불가능했다.

난하는 장강이나 황하처럼 거창한 수전을 할 만큼 큰 강도 아닐뿐더러, 지금까지 난하를 오가는 배는 작은 상선이었지 군선으로 쓸만큼 큰 배가 아니었으니까.

천진수군이 있는데, 굳이 난하를 끼고 있는 각 도시에서 수군을 키울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허면 강을 타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조선군을 어떻게 밀어낼까?

보급을 차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조선군은 보급선을 따로 준비해서 보급하고 있었고, 나아가 난하 하류를 빠져나가 바다에서 재보급을 하고 다시 난하로 들어올 수도 있다.

“그러니 적들에게 있어서 최선은 어떻게든 이곳 두가포를 점령해서, 우리가 아예 난하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화포를 쓰는 건 적들도 익히 알고 있으니, 이곳에 해안포대를 건설하고 화포를 다수 배치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 않겠나? 하지만...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지.”

해안포대. 그것도 막강한 화력을 이미 증명한 조선해군을 상대할 해안포대를 건설하는 건, 말 그대로 성벽을 새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이게 하루 이틀 사이에 될 턱이 없으니, 이미 난하 하류가 뚫린 이상 이제 와서 여길 차지해 본들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 두가포를 마냥 놔두면, 죽었다 깨나도 우리의 움직임을 막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정안진이 우리를 끌어낼 미끼일 수도 있다는 거군?”

“예.”

한 함장이 우려를 표하자, 다시금 모두의 미간이 구겨지며 침묵이 감돌았다.

이 자리는 함장끼리 토의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함대장인 박무양이 지켜보는 자리다.

박무양이 함장을, 그것도 이제 막 건조된 따끈따끈한 신형전함의 함장을 임명할 인사권을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추천은 할 수 있으니까.

그랬기에 다들 머리에 김이 나도록 맹렬하게 머리를 굴려가며, 북평부의 의도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그려냈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입니다. 적이 미끼를 던지든, 두가포로 오든, 심지어 정안진 뿐만 아니라 다른 도하지점에서 일제히 도하를 감행하든...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싶군요.”

“흠...”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럼 적은 우리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가?”

오손이 한 마디 던지자, 잠깐 도떼기시장으로 분위기가 변해서 이런저런 의견이 튀어나왔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하지.’

박무양 또한 마찬가지. 그도 오손의 의견에 동의하며 속으로 생각을 거듭했다.

신형조운선은 중국상선, 그것도 조선무역항을 오가는 무역선의 최소 2배, 최대 3배에 가까운 크기를 가진 거대한 배다. 다만 조운선은 호족연맹과 북평부에게 전함만큼 익숙하면서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북방과 조선본토의 수로, 한반도 근해만 돌아다녔으니, 이들이 조운선에 대해서 잘 아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그러니 이 배가 전함만큼의 화력을 가진 걸 알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설령 안다고 해도,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습니까. 두가포를 차지하면, 우린 난하로 진입하지 않고 바다에서 포격을 할 수 있는데, 적들이 그걸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오손이 쐐기를 박자, 다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결론은... 저들은 어떻게든 난하를 도하할 생각으로, 강폭이 좁고 수심이 낮은 정안진으로 온다는 말이군.”

“정안진 뿐만 아니라 다른 도하지점으로도 올 가능성이 높겠지요.”

“난하을 방비하는 것보다, 산해관에 병력을 더 보내서 지키는 게 낫다고 보는 건가?”

“그렇지 않겠나? 보급이야 산해관에 쌓아놓은 보급품이 많으니, 병력이 불어난다고 해서 당장 부족하진 않을 테니까 말일세.”

이런 저런 토의 결과. “조선군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지원군을 산해관으로 보내려는 게 아닐까?”라는 결론이 나왔다.

“뭐... 설령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저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건, 함대의 엄호를 받으며 아군의 대병이 난하를 통해 상륙하는 걸 겁니다. 그러니 만약 지원군을 산해관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면...”

“함포에 얻어맞지 않는 범위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병력을 긁어모아 난하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할 거라는 말이군?”

“예.”

박무양이 또 다른 결론을 내자, 모두가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찌됐건 적들과 한판 붙어야 하겠군. 저들은 우리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공격을 할테니까 말이야.”

“옙!”

“그렇습니다.”

다들 전의에 타오르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큰 목소리로 외쳐댔다.

“특전대를 통해 분견대에게 연락을 하지. 적들이 다른 도하지점으로도 올 수도 있으니까... 막을 수 있다면 막고, 힘들면 내빼라고 하면 되겠군.”

“충분히 막지 않겠습니까.”

박무양이 약한 소리를 하자, 함장 중 한명이 히죽 웃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특전대의 급보가 전해진 후. 4척씩 쪼개져 있던 함대는 박무양이 이끄는 8척의 본대와 6척으로 이뤄진 2개의 분견대로 재편했다.

난하는 생각보다 긴 강이고, 그만큼 도하를 할 수 있는 지점이 여러 곳이었으니까.

조선군은 돌아다니면서 측량한 정보를 통해서, 함선을 활용하기에 가장 편한 곳을 정해서 머물고 있었다. 가장 덩치가 큰 본대가 이곳 난하의 하류이자 입구인 두가포에 머물렀고 말이다.

아마도 6척이면 어지간한 병력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다.

“그럼 식사가 끝나면 바로 움직이지. 우리는 정안진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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