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526화 (526/538)

526. 챕터63. 뒤를치다 (9)

“하나!” “합!”

우렁찬 기합과 함께 창날이 날아들고.

“헙!” “끄...”

그 창날을 피하지 못한 적병들은 머리와 어깨, 재수 없게 몸을 일으킨 적병은 몸통에 창날이 찍혀 강물에 처박혔다.

물론 저렇게 창날에 맞는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부상을 입는 것 자체가 이미 전력 이탈 아닌가.

기어오르는 적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화포병들을 보호하기 위한 소대원들이 더 많이 갑판에 투입됐고, 그럴수록 풍덩풍덩! 강물에 퍼지는 물보라가 늘어만 갔다.

공성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적들을 기계적으로 찔러죽이고 있을 때. 또 다른 해군병들이 갑판벽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의 손에 들린 건 손 떼가 반들반들하게 묻은 전투도끼.

항상 어딘가 삐걱거리고 문제가 생기는 목제 범선에서, 해군병들의 필수무장인 전투도끼는 무기가 아니라 생활도구였다.

한쪽에는 도끼날이 달려 있고 다른 한쪽엔 망치머리가 달려 있는 물건. 이건 나무를 자르고, 밧줄을 자르고, 못을 박아 넣는 생활도구로서, 해군병들이 가장 사랑하는 물건이었지.

그런 물건이 오랜만에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몸이 비틀렸다.

“흣차!”

“사다리를 무너뜨려라!”

손도끼보다 조금 큰 도끼날이 장창의 파도를 헤치며 날아들었고, 퍽퍽퍽! 갑판벽에 삐죽 걸쳐 있던 사다리의 끝을 사정없이 내리 찍었다.

해군병이 지금까지 벌목한 나무가 몇 그루고, 그렇게 벌목한 나무를 잘 가공해 갑판과 갑판벽, 각종 자재로 만든 세월이 얼마인가.

숙련된 나무꾼이라고 해도 무방한 해군병들의 도끼질은,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도 두터운 공성사다리의 끝을 무디게 만들고 쪼개지게 만들었다.

“아아악!” “억!”

공성사다리는 그리 높지 않게 걸쳐 있던 터라, 부서진다고 해서 밑에 있던 적병을 전부 깔려죽일 수는 없지만... 그 위에 타고 있던 적병들까지 멀쩡한 건 아니지 않나.

사다리에 줄줄이 매달려 기어오르던 적들은 갑자기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고선 당혹한 비명을 내질렀고, 이내 강물과 강바닥에 떨어져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잘 막는군.”

박무양은 딱히 지시하지 않아도 톱니바퀴처럼 척척 움직여, 적들의 비책을 파헤치고 있는 부하들을 보며 작게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을 위해 지난날 피땀을 흘리며 훈련을 해왔는데, 그 결과가 빛나는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저들이 농부나 다름없는 징집병이 아닌 호족사병이자 정예병이라고 해도, 아군만큼 돈을 쏟아가며 지독하게 키워낸 건 아닌 모양이다.

허나. 적들에겐 아직도 숨겨놓은 패가 있었나 보다.

“... 저기!”

오손은 저기 강 중앙에 있던 함선을 계속 살피더니, 뭔가를 발견하고선 화들짝 놀라 박무양의 감격을 깨트렸다.

“...?”

“모래주머니입니다. 보이십니까?”

“아...!”

화포가 토해내는 검은 연기를 속에서, 둘은 용케 망원경을 들어 저 멀리 보이는 광경을 살폈다.

선수루와 선미루가 갑판보다 높다고 한들, 함선의 무게 중심 때문에 중간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기서도 시야각의 문제가 발생했고, 그랬기에 선미루와 선수루 바로 밑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할 수 없었던 것.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던 사태를 오히려 먼 곳을 보고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로 공성전을 한단 말이지? 허.”

“...”

박무양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고야 말았다.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유심히 살펴보니, 조란탄에 갈려나가는 후속제대 중에서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갑옷도 입지 않은 적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오는 게 보였는데, 그들은 무기가 아닌 흙더미를 짊어지고 있었다. 흡사 부두의 일꾼마냥 쌀가마니 대신 흙가마니를 들고 오고 있었던 것.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진짜 공성전이 벌어졌을 때. 해자를 메꾸기 위해 하는 짓과 똑같지 않나.

“오면서 정안진에서 봤던 그 흔적들 말입니다. 아무래도...”

“자네 생각이 맞는 것 같군. 저들은 강변의 흙을 긁어모아 강 전체를 메꾸려 하는 걸세. 수심은 그리 깊지 않고, 아군 함선에 닿으면 그만이니까.”

“예.”

둘은 그리 결론을 내리고 눈빛이 교차했고, 이내 곧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저들이 다시 한 번 비책을 냈으면, 아군 또한 그에 맞는 비책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21소대!”

“22소대!”

그의 명이 선창 밑으로 퍼지기 무섭게, 또 다시 쉬고 있던 해군병들이 갑판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백병전과 활을 쏘는 해군병들은 갑판 위에서도 쉬었지만, 아예 선창 아래로 들어가 푹 쉬면서 교대를 했는데... 지금 올라오는 누가 봐도 쌩쌩하고 전투의 흔적 따윈 보이지 않았다.

진짜 마지막으로 남겨놨던 예비대가 움직인 건데, 그런 만큼 그들은 특별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다른 무기가 아닌 창대마냥 길쭉하면서도 우중충한 색깔을 뿜어내는 짧은 철창을 들고 있었으니까.

“강을 메꾸려는 적들을 막아라.”

“옙!”

소대장은 오손의 명령을 듣기 무섭게 후다닥 선미루 끝으로 달려가, 겁도 없이 갑판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밑을 살폈다.

그렇게 상황을 확인하고선, 곧장 목청을 높였다.

“총통대 준비!”

“준비!”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창병과 궁병대 사이에 자리 잡은 총통대 40명은 곧장 허리춤의 화약단지를 펼쳐 총통에 장전을 시작했다.

과거. 돈에 쪼달리던 조선은 화포의 개발에 힘쓰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하면 적게 돈을 들이고 화기를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 시대의 화포는 구리로 만들고, 강역이 늘어나기 전엔 구리는 일본에 수입하는 원자재였으니까. 화약 또한 마찬가지. 괜히 조선초기 화포가 후기에 비해 소형인 게 아니었지.

그런 면에서 보면, 화포를 아주 작게 축소한 총통은 꽤나 매력적인 무기였다.

과거 조선이 상대하던 여진이나 일본은 화약무기에 취약해 겁부터 집어먹으니,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적들의 사기를 꺾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화약을 적게 먹고, 구리가 아닌 철로 만들 수 있고, 크기는 작으면서 화포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거지인 조선이 총통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허나 개혁 이후 모든 상황이 뒤집혔고, 총통은 애매한 위치로 전락했다.

이러한 총통이 다시 관심을 받은 건, 남주도 개척을 하면서 개인화기로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과 서양과 교류하면서 판금갑옷이 들어와 냉병기의 날카로움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연오랑이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총통은 조정과 군부의 지도하에 개량되었고, 지금 만들어진 물건은 임시로 창설된 총통소대가 활용하는 프로토 타입이었지.

총통소대는 재빨리 장전을 끝마치고서, 후다닥 달려가 창질을 하고 있던 동료 옆에 섰고.

“발사!”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밑을 살피고선, 총통을 어깨 높이로 들고서 아래를 향해 겨누었다.

총통이 개량되었다고 해서 발사방식이 바뀌진 않았기에, 총통 끝자락에 박아 넣은 도화선은 빠르고 검게 변해가며 불꽃을 총통 안쪽으로 전달.

파팡! 화포의 굉음에 묻혀버린 약한 폭발음을 내며, 안쪽에 있던 쇠구슬을 사방을 향해 날려 보냈다.

“끄억.” “컥.” “뭐...!?”

폭발음과 함께 회색 연기가 한줄기 피어오르는 동시에, 밑에선 괴상한 신음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피어올랐다.

손가락만한 조란탄에 맞나,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쇠구슬에 맞나, 갑옷을 뚫고 부들부들한 살가죽을 찢어발길 수 있는 건 마찬가지.

15세기식 산탄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총통은 강물을 향해 흙가마니를 집어던지던 적병들을 일순간에 집어삼켰다.

장전하는 데 오래 걸리고 사정거리도 짧은 이 총통은, 오롯이 화력 그 하나만 보고 사용하는 물건 아닌가.

말 그대로 쇠구슬이 비가 쏟아져, 갑판벽 아래를 흥건하게 피로 물들였다.

장군 멍군. 엎치락뒤치락 하며 서로가 가진 패를 모조리 깠으니, 남은 건 “누가 더 오래 버티냐.”의 싸움 뿐.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시작한 전투는 어느새 정오를 향해 달려갔고, 적들도 조선군도 점점 지쳐갔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화포는 죄다 진흙으로 덥혀 있었는데, 이는 화포의 열기를 식히기 위함. 열기를 식히겠다고 찬물을 뿌리면, 화포가 쪼개지거나 안에서 폭발할 위험이 있었다.

해서 진흙을 활용해 식히는 방법을 오래전부터 해왔었지.

어깨가 빠져라 화살을 쏴대던 궁병들도 계속 선창 밑으로 들어가 쉬었다 나오기를 반복했고.

적 공성사다리를 담당하고 있는 백병전 소대도, 강을 메우려는 적들을 상대하던 총통소대도 번갈아가며 출전을 이어갔다.

“으음...”

“...”

“위험하군. 그렇지 않나?”

“예. 위험합니다.”

병사들과 달리 밥도 먹지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망부석마냥 선미루에 올라 계속 전장을 살피고 있던 박무양과 오손.

둘은 이제 힘이 슬슬 빠져, 무질서한 돌진과 후퇴가 이뤄지고 있는 전장을 살피며 대화를 나눴다.

적의 패도 다 까였지만, 아군의 패도 다 까였다.

화포는 터질 정도로 화력을 투사해서, 강변은 이미 시체의 산으로 뒤덮인 상황.

적들은 머릿수를 앞세워 차륜전이자 축차공격을 감행했지만, 조선이 이끌면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바뀐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따라오지 못했다.

화포라는 변수. 피로를 느끼는 사람과 달리 앞도적인 화력을 끊임없이 퍼부어 낼 수 있는 화포를 적들은 경시했다.

차륜전을 펼치기 위해 투사했던 적의 1파, 2파 제대는 아군의 힘을 빼는 목적을 달성하고 후퇴하기 전에, 제대 자체가 깡그리 휩쓸려 날아가는 큰 피해를 입고 말았으니까.

제대가 살아남아야 번갈아가며 공격을 하지, 공격할 때마다 아군은 멀쩡한데 적만 죽어나가면 차륜전이 되기나 하겠나.

그럼에도 위험하다고 말을 하는 건, 아군에게 이로움을 줬던 전장이 이젠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기 때문.

“적들은 아예 강을 메워버리려고 하고 있어.”

“...”

오손은 답하지 않고, 박무양이 열심히 고민해 놓은 추리와 해답을 경청했다.

“강물을 해자로 삼았지만 진짜 해자는 아니지. 만약 계속 여기에 머물러 흘수선까지 메우게 된다면, 우린 움직이지도 못하는 꼴이 될 거다.”

“...”

함선이 성벽처럼 사용된다고 해서 진짜 성벽이 아니다.

성은 없고 성벽만 있는 꼴이고, 이대로 흙더미에 파묻혀 함선이 오도 가도 못 하게 된다면 결국 보급을 받지 못해 적의 머릿수에 파묻히게 된다.

“해자를 메꾸듯 공성을 할 줄 알았지만, 적들의 의도는 아예 강 자체를 메꿔서 우리를 결박하는 것. 나아가 도하를 위한 흙다리를 만드는 것이겠지.”

“...”

“헌데 왜 그렇게 해야 할까. 강을 메우는 건 쉬워도 다시 복구하는 건 지난한 일. 우릴 그렇게 까지 위협적이라고 판단하는 건가.”

“...”

“이 반나절도 안 되는 전투에서, 적들은 아무리 못해도 삼천명 이상 갈려 나갔을 터. 적들은 사력을 다해 달려들고 있다.”

적들의 움직임을 대부분 예상했지만 이들의 예상을 빗나간 건, 적들이 전투가 시작하기 무섭게 온 힘을 쏟아 부었다는 거다.

북평군으로선 아군 전함. 그것도 개조한 조운선과 처음 전투를 벌이는 건데, 쿡쿡 찔러보며 허실을 파악하기도 전에 전력을 다한다? 이건 상리에 벗어나는 일이니, 예측이 빗나갈 수밖에.

아마 적들은 지금도 온힘을 쏟아 붓고 싶겠지만, 너무도 많은 병력이 죽어나간 탓에 전투를 지속하긴 커녕 전력을 보존하기에 급급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적들은 또 공격을 감행할 것이고, 어떻게든 강을 메워 강을 건너갈 게 분명. 허면...”

“적들은 당장의 우리를 겁내기 보단, 산해관에 병력을 보내는 게 더 우선이라고 판단한 모양이겠군요. 설령 이곳에서 병력을 많이 소진하더라도, 산해관이 포위되어 뚫리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그럴 것이야. 그러니 광녕성을 공격하기 위해 훈련시킨 정예병까지 전부 투입한 것이겠지.”

조선군이 택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적들은 그걸 가장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그럼 빠져나가지요. 다른 함대도 불러들여야겠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군. 이곳만큼은 아니지만 보나마나 난주와 준화에서도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을 거야.”

“예... 적들은 아군이 예상치 못한, 전력을 다한 일격을 날렸으니까요. 저들이 예상하지 못한 건, 아군의 화력이 이렇게나 강력할 줄 몰랐던 것이겠지요.”

“맞는 말이다.”

박무양과 오손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마치고선,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게 엉망진창으로 슬슬 물러나는 적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신호탄을 쏴라. 북쪽에 나가있는 함대를 불러들인다.”

“옙!”

박무양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갑판장은 조선군이 요긴하게 써먹는 폭죽신호를 날려 보냈다.

쉬잉! 지상은 피바다가 되었지만 여전히 청명한 푸른 하늘에서 붉은 꽃이 피어올랐다.

저 신호는 이 전장 근처에서 사냥감을 노리는 늑대처럼 배회하고 있는 특전대에게 보였을 거고, 특전대는 곧장 난하를 따라 달려가 다른 함대에게 퇴각명령을 전파할 거다.

“함대를 퇴각시키면 준화와 난주. 그 일대의 도하가능 지점에서 강을 메워 도하가 이뤄지겠지만...”

“어찌됐건 저희의 목적은 달성한 게 되지 않겠습니까.”

박무양은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오손은 반대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평군을 많이 죽이는 게 아니라, 북평군을 최대한 많이 유인하는 것이었으니까. 적들이 도하에 성공해 산해관으로 간다면, 그거야 말로 아군이 바라는 상황이었다.

*****

북직례 동부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북평군이 도하에 성공해 난하의 하류. 두가포 일대에 진을 치고 조선해군을 견제하고 있을 때.

저 멀고먼 북쪽 땅에서도 전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게르. 말 그대로 땅에 종기처럼 박힌 게르는 끝도 없이 평원에 솟아 기이한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온 천하를 말똥냄새로 채워버리려는 듯, 게르 주변에는 말. 말. 그리고 또 말.

전마 수만마리가 바글바글 거리고 있어서, 평원 한쪽을 유유하게 흐르는 강줄기는 말에 파묻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 중에서 유독 거대하고 큰 게르. 오래전 몽골제국 시절에 대칸이 사용하던 게르는 그 자체로 전각에 버금갈 정도로 컸다곤 했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게르는 그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거대했다.

그 게르에서 나온 게르의 주인 연오랑은 쌀쌀한 바람을 맞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백호갑옷을 여미며 느긋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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