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532화 (532/538)

532. 챕터64. 진입하다 (6)

“저희도 갑니까?”

수만명의 기병이 일제히 거용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보면서, 흥분을 참지 못하는지 이순몽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물었고.

“저길?”

연오랑은 피식 웃으며 망원경으로, 기병으로 인해 꽉 막힌 거용관 앞길을 가리켰다.

이들의 예상대로 2~3미터정도까지 무너져 내린 거용관의 토성벽은 비탈길이나 다름없었고, 성문과 성벽 구멍이 막힌 걸 보고서 요왕부와 몽골남부연맹의 기병들은 겁도 없이 성벽을 타넘으며 성 안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기병이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는데, 조선군까지 가세하면... 기병이 기병답게 싸울 수나 있겠는가.

“어차피 거용관은 요왕부 몫이었어. 우리가 공훈을 다투거나 전과에 욕심낼 필요가 있나.”

“아쉬워서 말입니다.”

“아쉬울 것도 많다. 참...”

나이도 많이 먹은 이순몽이 애처럼 투덜거리는 걸 보며, 연오랑은 다시금 만류하며 웃고 말았다.

조선군을 빼고도 물경 6만에 달하는 기병이 한곳으로 몰려드는 건, 과연 장관이었다.

거용관으로 향하는 길목은 말발굽으로 인해 피어난 먼지구름이 가득 차 있었는데, 저 안에 껴 있으면 과연 앞이 제대로 보이기나 할지 모르겠다.

“성안도 난장판이겠군.”

“예. 워낙 서로 차이가 나니 오인전투가 벌어지진 않겠지만... 너무 많이 들어가서 제대로 움직일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성 밖으로 도주하지 않을까?”

“특전대와 저격대 일부가 반대쪽에서 대기하고 있을 텐데... 그걸 봤으면 항복하겠지.”

전투를 계속 지켜보던 연오랑이 한마디 하자, 각자 비슷한 감상을 내뱉었다.

거용관을 수비하고 있는 병력은 대략 만명이 조금 넘을 걸로 추산되는데... 저렇게 많이 몰려갔으면 싸우기보다 항복을 택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아직 병력이 전부 거용관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와아아!” “승리다!” 저 먼 곳에서부터 승리의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겼군.”

“싱겁지만... 어쨌든 빨리 끝나서 좋군요.”

“그럼 그럼.”

연오랑은 이순몽의 아쉬운 대답에 피식 웃고 말았다.

과거. 멀쩡했던 거용관을 공략할 땐,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포탄을 주고받으며 공성전을 했지 않나. 이번에는 고작해야 3,4일만에 끝이 났으니 싱거워도 너무 싱거웠다.

더욱이 칼과 창이 오가는 백병전은 고작해야 두시간 남짓밖에 안됐는데, 진짜로 전투가 끝나버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서 보면 더 확실해 지겠지.’

연오랑은 그런 생각을 했고, 이윽고 조선군도 거용관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호오...”

“과연. 요왕부는 확실히 북직례를 집어삼킬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요왕 쿠타리가 괜히 요왕이 된 게 아닌 것 같아.”

일행은 거용관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피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전투가 이제 막 끝났으니 난장판이 된 건 당연한데... 뭐랄까 “생각보다 정적이다.”라고 표현 해야할까. 흔히 생각하는 약탈자, 인정사정없는 유목군대와는 퍽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적어도 온 사방에 피를 칠하며 학살을 저지르거나, 연기를 피워내며 방화를 저지르지도 않았으니까.

항복한 거용관 병사들은 두려움과 경악이 깃든 눈동자를 숨기지 못하고 분산되어 모여 있었고, 요왕부 병사들은 그런 거용관 병사들의 갑옷과 무구를 챙겨서 무장해제를 시키고 있었다.

“여길 온전히 먹을 생각이겠죠?”

“그야 당연하지. 앞으론 거용관이 몽골남부연맹과의 국경이 되지 않겠나? 그치들과도 무역을 시작하긴 하겠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선 거용관을 그대로 써먹겠지.”

“그럼 거용관을 복구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습니까?”

“힘들겠지.”

연오랑은 사단장들의 대화를 들으며,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게 엉망이 된 거용관을 과연 원래 모습으로 복구할 수 있을까.

요왕부가 북직례를 차지하게 되면 한족을 다스리며 내치에 집중하는 것도 힘에 부칠 터... 몽골남부연맹을 견제하겠다고 거용관에 돈과 인력을 쏟아 붓는 짓은 쉽게 하지 못할 거다.

‘그보단 요왕이 그래도 제정신이 박혀 있다는 게 다행이군.’

연오랑은 어제 만났던 요왕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다시금 그의 비범함을 느꼈다.

요왕 자체는 확실히 눈이 뜨여서 유목민이자 몽골의 습성을 얼추 지웠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이끄는 군대가 얼마나 그의 이상에 따라줄 지는 미지수였으니까.

다만 지금 포로를 대하고 다루는 모습을 봐선... 이들은 진심으로 북직례를 집어삼켜, 지배자이자 통지자로서 한족을 다스리겠다는 배포와 깜냥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기 백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언제나 몽골족이 한족을 대하듯 사정없이 채찍과 칼부터 날아들었을 테니까.’

어차피 노예로 삼을 거고 전리품은 넘쳐나니, 한족이 몇이나 죽든 신경이나 썼겠나.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사는 거지.

허나 지금은 꽤나 잘 대해주는 걸로 봐서, 온건한 방법을 통해 한족의 반항의지를 꺾으려는 프로파간다가 아닐까 싶다.

‘설마 저런 것도 우릴 보고 배운 걸까?’

순순히 무장을 해제하고 모이는 한족포로와 그런 한족포로를 나름 정중히 대하고 있는 요왕군을 보며, 연오랑은 불연 듯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조선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공부한 요왕 쿠타리라면... 지금까지 조선이 어떻게 여진을 집어삼키고 요동한족을 다루는지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겠나.

아마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최대한 조선을 따라하려 할 것 같다.

이윽고 조선군이 모두 거용관에 입성했지만... 승전의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비록 거용관이 관문도시로서 수만명이 살았던 곳이라지만, 이번 원정군 전체가 머물 수 있을 정도는 절대 아니지 않나.

요왕부의 주 병력은 이미 성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고, 몽골남부연맹의 병력이 그들을 뒤따르고 있었다.

조선군 또한 마찬가지.

거용관을 관리하고 후속 정리할 요왕부의 천인대만 남겨두고, 모든 병력은 그대로 거용관을 지나쳐 산길로 접어들었다.

거용관에서 남구까지의 길은 비록 잘 다져져 있지만, 그렇다고 대병이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큰 길은 아니지 않나.

9만이 넘는 병력이 산길을 빠져나와 평원에 도열했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다가 슬슬 내려오고 있었다.

“벌써 밥 먹을 때가 됐나...”

“뭐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렇게 됐나 봅니다.”

“쯧...”

연오랑은 숙영지가 아닌 그냥 대충 소속별로 뭉쳐 있는 병력을 보며, 작게 혀를 차고 말았다.

어째 직접 전투한 시간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거 같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깃발과 기병 뿐.

많아도 너무 많아서 전 병력이 한눈에 들어오긴 커녕, 가장 외곽에 위치한 부대에서 반대쪽 끝까지 가려면 말을 타고도 한참을 달려야 했을 정도니까.

‘많은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군. 명나라나 옛 왕조들은 대체 뭔 수로 십수만명씩 끌고 다닌 거지?’

연오랑은 슬슬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군진을 보며,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있나. 아마 엉망진창도 그런 엉망진창이 없을 거다.

조선군이 요동정벌에 동원한 병력은 십오만에 가까웠지만, 그 중 대부분이 해군이었다.

해군은 배에 보급품 및 군수품을 싣고 다니는 터라, 준비과정은 오래 걸릴지언정 막상 전투 시에는 꽤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지.

또한 조선군은 이렇게 대병을 한자리에 모아 움직이지 않고 만명 단위로 잘게 쪼개서 움직였기에, 이 시대 기준으론 꽤나 경쾌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힘들고 굼뜨다면, 옛 명나라 군이나 원나라 군대는 진짜 엉망진창이었을 거다.

싸우는 시간보다 행군과 숙영, 대기하는 시간이 훨씬 길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북평군은 우리보다 더 심할 거라는 거지.’

연오랑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답답함이 느껴지는 현실을 애써 밀치고, 그나마 위안을 찾았다.

매년 꾸준히 산서와 북직례를 약탈하면서 실전을 겪은 몽골남부연맹, 타안위를 복속시키며 꾸준히 내부개혁과 체제전환을 해온 요왕부, 압도적인 행정력을 바탕으로 정예 상비군을 만든 조선군.

동 시대 기준으로 꽤나 정예병이라 할 수 있는 군대조차, 연오랑 기준으로 이렇게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면... 북평군은 더 말할 필요가 있겠나.

그 치들은 “요동을 정벌할 거다!”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뒤로는 자기들끼리 파벌싸움을 하며 이권을 챙기느라 바빴을 테니... 아군보다 훨씬 굼뜨고 조잡할 게 분명.

갑자기 전개된 동부전선을 막기 위해서, 무리하고 있지 않을까.

‘분명히 그럴 거야.’

연오랑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 앞에도 야전식기가 놓여 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죽과 밥의 중간 쯤 되는 음식을 숟가락으로 거침없이 퍼먹으면서, 그와 사단장들은 공성전투를 살피고 온 특전대 대대장의 설명을 들었다.

“...”

“그랬단 말이지.”

“예. 거용관주는 요왕부 병력이 성벽을 넘어 몰려오기 무섭게 항복했습니다.”

“병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거니와, 아군의 병력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고... 그보단 요왕부, 아국, 몽골남부연맹이 손을 잡을 줄은 생각도 못한 눈치였습니다.”

“호...”

“역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셋이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나?”

“에이. 그간 우리가 요왕부를 어떻게 대했는지 떠올려보게, 요동을 장악한 아국은 당장이라도 요왕부와 전쟁을 일으켜도 시원찮은 판에, 손을 잡고 북직례를 칠거라고 예상이나 하겠나? 대체 뭘 위해서?”

“맞는 말이야. 요왕부로 변모하기 전 우랑카이 3위이던 시절에 흥안령 일대를 차지하고 나서, 요왕부는 몽골남부연맹과 각을 세웠지 않나. 전쟁이 벌어지진 않더라도 소규모 전투는 꾸준히 있어왔는데... 갑자기 과거를 잊고 손을 잡을 줄은 몰랐겠지.”

사절단마냥 요왕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온 특전대 대대장의 설명에, 사단장들이 한마디씩 곁들였다.

“맞습니다. 오히려 대체 요왕부가 북직례를 왜 노리냐고 되묻더군요.”

벌레처럼 우글우글 거리는 수만명의 대병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거용관주의 반응을, 특전대 대대장이 맛깔나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 거용관주는 파벌싸움에 밀려 끈 떨어진 신세였을 거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역시나군.’

연오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용관이 멀쩡했던 시절에도 거용관주는 다른 관문도시에 비해 한직이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몽골남부연맹의 침공을 받는 지금은 더욱 그렇지 않겠나.

앞에는 감히 막을 수도 없는 대군. 그것도 원수사이였던 이들이 하나 같이 손을 잡고 몰려왔다. 뒤에는 자신을 죽을 자리로 내몬 자들.

거용관주나 거용관에 배속된 병사들이나, 과연 얼마나 목숨을 걸고 싸울 의지가 있었을까.

그래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곧장 항복한 모양이다.

“남구와 보권성에 대한 정보는?”

“특전대가 조사한 내용과 크게 다를 건 없는데, 예상보다 훨씬 약한 모양입니다. 거용관주조차 보권성을 이야기 할 땐 열분을 토하더군요.”

“보급이 제때 안 와서?”

“예. 본래 남구는 거용관뿐만 아니라 북직례 전체의 군수물자 생산기지였지 않습니까. 남구가 약탈당한 후에 다른 곳에서도 군수물자를 생산하긴 했는데 시원치 않았고, 남구를 재건하면서도 거용관은 다른 도시와 지역에 비해 후순위로 밀린 모양입니다.”

“몽골남부연맹이 그렇게 때렸는데도 그랬단 말이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용관과 북직례 북부를 노리는 것보다, 산서를 노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하더군요. 북평부 입장에선 몽골남부연맹이 대대적으로 북직례를 노리느니, 차라리 산서를 노리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몽골남부연맹은 당연히 손을 거들지 않았을 테니까요.”

북평부의 예상은 솔직히 일리가 있었기에, 거용관이 왜 찬밥신세가 됐는지도 쉽게 이해됐다.

“그럼 보권성도 복구가 안됐겠군?”

“예. 특전대가 보고한 것처럼, 실제로도 보권성을 수비하고 있는 병력은 몇 없다고 했습니다.”

과거 조선군은 재기불능을 위해, 말 그대로 남구 전체를 깡그리 불태워 버렸다.

남구의 중심이었던 보권성 또한 거용관을 지원하기 위해 보관해 놨던 보권성의 화약으로 성벽을 날려버리고, 성 전체를 불태워 버렸지.

허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거용관도 복구를 못했는데, 그보다 후방에 위치한 보권성을 복구했겠는가.

당연히 안 해놨고, 옛 위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불타버린 작은 마을을 재건하는 것과, 완전히 잿더미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니까.

“그렇게 복구를 하느니, 차라리 안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렇지만 어찌됐건 토성벽이라도 있으니, 마냥 버릴 수도 없었을 테고.”

“그래서 대충 어떻게든 써먹을 만큼만 복구했겠지.”

“맞습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사단장들의 의견에, 특전대 대대장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거용관주를 취조한 결과, 같은 내용을 뽑아낼 수 있었으니까.

“북직례에서 이동하고 있는 병력에 대한 정보는?”

“딱히 없습니다. 거용관주도 그것까진 모르고 있더군요. 오히려 거용관주는 동부전선의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 줄도 모르고, 그저 북평이 요구하는 대로 병력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아국이 동부전선을 열었으니, 북쪽의 거용관을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테니까?”

“예. 그래서 아군이 몰려왔을 때, 더욱 놀란 듯 했습니다.”

“음...”

특전대 대대장은 뒤이어 계속해서 이야기를 풀었으나, 딱히 영양가 있는 내용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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