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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533화 (533/538)

533. 챕터64. 진입하다 (7)

이윽고 식사가 모두 끝나자, 군진 전체가 벌떼를 풀어놓은 듯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부터 진짜 전쟁의 시작 아닌가. 거용관 함락과 북직례 입성이라는 첫 단추를 잘 꿰었으니, 이제 시간을 다투며 남하하는 일만 남았다.

잠시 부대를 정비하며 기다리고 있자.

“대장군!”

요왕부 전령이 후다닥 달려와 훌쩍 말에서 뛰어내려 그들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과연 기병의 민족답게, 조선기병 못지않게 날렵한 마상술을 선보였다.

“전하께서 이제 움직인다고 하셨습니다.”

“무운을 빈다고 전해라. 정리를 끝마치면 북평에서 만나자고.”

“옙!”

연오랑의 짧은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전령은 곧장 되돌아갔다.

그리곤 그의 대답이 요왕에게 전해졌는지, 요왕부 병력은 “와아아!” “진군!” 하늘이 부르르 떨 정도로 거하게 기합을 외치고선, 사방으로 흩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군요.”

“잘 되겠지요?”

“안 되면 요왕부가 망할 테니, 어떻게든 잘 하겠지.”

“큭...”

“훗.”

연오랑은 대책 없는 말을 날렸고, 사단장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흘려댔다.

5만에 달했던 요왕부 병력들은 만명, 5천, 2,3천등으로 각 천호장이 이끄는 대로 수십개의 작은 부대로 잘게 쪼개져 나아가기 시작했다.

요왕부는 군량과 말먹이를 약탈로 해결해야 하는데, 5만의 병력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다니면 어떻게 되겠는가.

도시를 점령하는 거야 해일처럼 밀려와 쓸어버릴 수 있으니 쉬울지 몰라도, 이들이 잠깐 머물렀다가 가면 북직례 백성들이 날 겨울식량까지 전부 거덜 난다.

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마냥 황무지가 되어버리는 거지.

이러면 결국 남는 건 난민과 거지떼 뿐. 이래서야 북직례를 온전히 차지할 수나 있겠나.

당연히 쪼개서 움직여야 했고, 또한 저게 어제 요왕 쿠타리가 말한 내부정리이자 교통정리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이번 전쟁은 어찌 보면 퍽 이상한 형태로 전개되는 전쟁이었다.

요왕부는 북직례를 완전히 정복해야 했다.

몽골군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시원하게 약탈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형태가 아니지. 또한 북평을 노려 왕을 굴복시키는 참수작전도 불가했다.

북평부는 호족,군벌의 연합체인데, 북평을 점령했다고 전쟁이 끝나겠는가. 오히려 머리가 없어진 이상, 온 사방에서 새로운 머리가 솟아날 거고... 그럼 전쟁은 언제 끝날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결국 해답은 모든 머리를 일제히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

해서 요왕부 천호장들은 각자 정해진 구역. 즉. 앞으로 다스릴 구역이자 지역이 정해져 있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지역의 호족, 군벌파벌, 지역유지, 지주들을 때려잡고 지배층의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

북직례를 온전히 집어삼켜 다스리기 위해선, 기존의 기득권층이자 지배층을 모조리 처단해 그 자리에 몽골족을 끼워 넣어야 하니까.

더불어 북직례의 일반 백성들은 최대한 덜 건드리면서 말이다.

그랬기에 저들은 북평군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북평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행군하고 전투하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구역에 도착해 전투를 치러야 했다.

어찌 보면 명확한 적이 없는 셈이지.

그럼에도 승리를 자신할 수 있는 건. 각자가 차지해야할 지역의 호족, 군벌파벌에 대한 정보를 얼추 알고 있고, 싸우기 유리한 전장도 얼추 알고 있다는 점.

일이 요상하게 흘러가... 북직례 내부에서 전장이 펼쳐졌는데, 어째 요왕부가 선택한 전장에 무작정 동쪽으로 향하던 북평군이 유인당해 딸려오는 형세가 된 거다.

“요왕군이 각 지방으로 흩어져 고향을 위협하면, 동부전선으로 가던 병력이 어떻게 움직일까? 고향을 지키러 되돌아오겠나? 아니면 북평의 명령에 따라 동부전선으로 향하겠나?”

“글쎄요...”

“각양각색 아니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북평은 지키지 않겠습니까?”

음흉한 미소를 짓는 연오랑의 질문에, 대답이 갈렸다.

“거봐. 우리조차도 적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이 힘든데, 그 당사자들은 어떨까? 북평의 명령을 무시하는 이들도 있을 거고, 따르는 이들도 있을 텐데... 그렇게 따로 놀면 자연히 북평부가 계획한 전투는 벌어지지 않을 거다.”

“그렇게 머리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손발이 따로 놀면, 저희로선 더욱 쉬워지겠군요. 수십개의 자잘한 전장이 형성되어 전투가 벌어지게 될 거고, 그럴수록 기동력이 월등한 기병이 활동하기 유리할 테니까요.”

“그렇겠지.”

연오랑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적들을 향해, 옆구리에서 또 뒤통수에서 달려와 후려칠 요왕부 기병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이내 곧 히죽 미소를 지우곤, 기운차게 명을 내렸다.

“이순몽. 유은지.”

“옛!”

“옙!”

다들 이게 마지막인 걸 알아차렸는지, 자세를 바로하고 목청을 높였다.

“너흰 연산산맥을 끼고 남하해 동부전선으로 향한다. 앞을 막는 적이 있다면 시원하게 밟고 지나가라.”

“흐흐.”

“알겠습니다.”

“적들이 난하를 차지했는지 아니면 해군에게 막혀 아직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최악의 경우라도 해군은 계획대로 난하 하류에 머물며 적들을 붙잡고 있을 거다.”

“...”

다들 동부전선의 작전계획은 알고 있었기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난하를 끼고 있는 준하, 난주, 당산을 직접 점령할 필요는 없다. 해군을 밀어냈다면 적은 산해관으로 향했거나 난하를 지키고 있을 것이고, 해군을 밀어내지 못했어도 난하에 주둔하고 있을 거다.”

“...”

“그들의 뒤통수를 쳐서 무너뜨리고 해군과 합류. 그 후에는 산해관을 포위해라.”

“직접 공성할 필요는 없겠지요?”

“물론. 화기대가 따라가지 못하니 공성은 무리. 그저 산해관이 보이는 곳에 숙영지를 건설하고 적들의 사기만 떨어뜨려도 충분하다.”

“성 밖으로 기어 나오는 적은 알아서 처리하고 말이지요.”

이순몽은 한바탕 시원하게 몸을 풀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지, 살기 어린 미소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건 알아서 해라. 단. 쓸데없이 공훈을 세우려고 병력을 낭비하지 마라. 어차피 산해관은 동쪽에서부터 열릴 테니까.”

“옙!”

“너흰 산해관이 무너지면 적이 북평으로 퇴각하지 못하게 막는 게 목표다. 아예 항복을 시키면 더 좋고.”

“알겠습니다.”

“충성!”

연오랑이 다시금 당부의 말을 던지자, 이순몽과 유은지는 냉큼 고개를 조아렸다.

“가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순몽과 유은지가 이끄는 지휘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

연오랑 근처에 모아 놨던 큼지막한 사단장 기가 펄럭이며 나아가자, “와아아!” “전군 준비!” 깃발이 움직이는 곳곳에서 기운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박강. 정창손.”

“옙!” “넵!”

식사를 끝마쳤을 때쯤. 화기대와 보급대를 이끌고 산길 밖으로 나온 두 사람.

둘 또한 기운차게 대답하며 연오랑 앞에 섰다.

“화기대와 보급대는 둘로 쪼갠다. 하나는 우릴 뒤따라 이동하고, 다른 하나는 북평 서쪽을 향해 남하한다. 행군로에 위치한 마을은 요왕부가 정리를 해놨을 터, 큰 무리는 없을 거다.”

“흐흐. 걱정하지 마시죠.”

“옙!”

둘 또한 진지하면서도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을 날렸다.

둘이 비록 화기대와 군수부 소속이라고 해도, 휘하의 병사들은 전부 육군소속이다. 즉. 그들 또한 전부 기병이며 다른 연대병과 똑같은 훈련을 받았다는 뜻.

화포와 보급마차를 버렸을 땐 엄연한 연대기병과 다를 게 없고, 어지간한 적과는 그냥 맞붙어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병력이 오천인데, 박강과 정창손이 북평군을 겁낼 리가 있겠나. 오히려 북평군이 이들을 더 겁내야 할 거다.

“만약 요왕부의 병력이 공성을 요청할 경우에는, 알아서 판단해서 도와줘라.”

“예.”

이 또한 미리 계획된 사안. 박강은 나름 분산해서 파견할 병력을 정해놨었기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쟁은 한마디로 빈집털이나 다름없기에, 본대가 빠져나간 도시와 마을을 요왕부 기병으로 점령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거다.

다만 그래도 성벽은 성벽 아닌가.

공성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고, 화기대가 끌고 온 공성포가 활약할 전장도 분명히 있을 거다.

“가라.”

“옙!” “충성!”

연오랑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기대와 보급대 또한 움직이기 시작.

온 사방이 부르르 떨며 지축이 흔들렸고, 조선군들 또한 그에 합세해 움직이기 시작.

이윽고 한차례 먼지구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 또 다른 먼지구름이 연오랑이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대장군.”

큼지막한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온 세 몽골장군은 연오랑 앞에 서서 고개를 조아렸고.

“바투한, 가루탄, 후부타이.”

연오랑 또한 작게 목례하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연오랑이 대장군은 아니지만 호칭이 뭐 중요한가.

연오랑의 오묘한 입지는 높은 사람들일수록 대충 알고 있었기에, 몽골 출신들은 그저 경외를 담아 그를 높여 불렀다.

서로 이름은 오랫동안 들어왔고, 지난해에 밀약이 진행되면서 연오랑과도 안면을 튼 인물들.

과거. 조선군이 거용관을 무너뜨릴 때 처음 연을 맺었던 이들로. 그 시절에는 그저 항명출신 만호장, 천호장이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몽골남부연맹의 연맹호족이 된 장군들이다.

그런 이들이 연오랑에게 이렇게 공경을 표하는 건, 십여년 전과 지금 조선의 위상이 천지차이로 벌어졌기 때문.

정체성과 구심점이 없어서 애매한 처지에 있던 항명출신들은, 조선 덕분에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는 몽골남부연맹으로 뭉치게 됐다.

비단길이 열리면서 몽골남부연맹은 급속도로 견고해지는 동시에 부유해졌고, 이번 전쟁으로 인해 이젠 조선과 몽골남부연맹이 국경선을 맞대게 됐다.

지금껏 조선이 보여준 깡패짓이 있고, 또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깡패짓이 있으니... 몽골남부연맹이 조선에게 납작 고개를 숙이는 건 당연한 말.

“지금쯤이면 연맹이 산서 북부를 두들기고 있을 테지?”

“물론입니다.”

바투한은 냉큼 답을 했고, 연오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자기가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이니, 몽골남부연맹이 딴 마음을 먹었을까. 산서를 패서 뜯어내는 건 연례행사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거다.

“출정 준비는 끝났나?”

“예.”

“물론입니다.”

“누가 도마로倒馬路로 가지?”

“제가 가기로 했습니다.”

연오랑의 물음에 가루탄이 답을 했다.

“도마로로 가는 길은 훤히 열렸고, 도마로가 비록 험준하다고는 하나, 지금껏 밀수로를 넘나든 그대라면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을 걸세. 산서는 우리가 북직례를 통해서 넘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을 테니까.”

“예.”

가루탄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연오랑과 조선군 지휘관들을 보며 히죽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무운을 빌지.”

“감사합니다.”

가루탄은 대답을 하기 무섭게 떠나갔고, 이내 곧 비어 있던 군진 저편에서도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그대들은 우리와 함께 가겠지?”

“예.”

“그렇습니다.”

남아 있는 두 사람. 바투한과 후부타이가 냉큼 답을 던졌다.

“자형관紫荊關이 비록 이름 높은 관문이라곤 허나, 거용관보다 대단하겠나? 나아가 동쪽에서 공격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터, 공성은 문제없을 걸세.”

“지당한 말씀입니다.”

“맞습니다.”

연오랑은 저 멀리서 벌써부터 출정준비를 끝마치고 있는 화기대를 가리켰고, 둘은 이미 거용관을 두들기던 화기대를 봐왔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몽골남부연맹을 이번 전쟁에 끼워 넣기에는 애매한 면이 없지 않았다.

“북직례를 정복해 요왕부에게 넘겨준다.” 이 과정에서 몽골남부연맹이 이득을 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지 않나.

물론 조선의 눈치를 봐야 하니 길을 열어주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2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

조선조정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고, 결국 해답을 찾아냈다.

바로 산서를 더 뜯어먹기 쉽게 도와주는 것.

나아가 산서가 북평부 정벌에 끼어들지 못하게 막는 동시에, 훗날 요왕부와 몽골남부연맹이 쉽게 대립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지.

결국 지금 북평부 정벌이 빈집털이이자 뒤통수치기라면, 산서 또한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무려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 시대에 건설된 후로, 통일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꾸준히 보수 확장이 이뤄졌다.

만리장성뿐만 아니라 관문도시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무너졌다가 세워지길 반복했는데, 이는 단순히 몽골초원을 따라 만들어진 것뿐만 아니라 태행산맥을 끼고도 만들어졌지.

북직례는 서쪽의 태행산맥과 북쪽의 연산산맥에 둘러싸인 곳이고, 명이 들어서기 수백년 전부터 요충지였던 곳.

당연히 이곳을 방비하기 위한 성벽과 관문이 존재했는데, 이중 유명하고 중요한 관문을 흔히 내삼관內三關이라고 불렀다.

첫째는 북쪽을 막는 거용관. 둘째는 태행산맥에 위치해 산서-북직례를 이어주는 자형관. 셋째는 자형관 남쪽에 위치해 산서-북직례를 이어주는 도마관이지.

자형관은 기남제일웅관畿南第一雄關이라고도 불리며 숫하게 전쟁이 벌어졌던 유명한 곳으로. 징기즈칸이 금나라를 공격할 때, 토목의 변 이후 오이라트가 여길 무너뜨린 적이 있었다.

도마관도 하북평원에서 태행산으로 진입하는 험준한 요도要道에 위치한 곳인데, 명나라 시절에 지어진 터라 지금 역사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도마관이 아니라 도마로라 불리고 있었고.

그리고 이 두 곳을 북직례에서 돌파해 산서로 넘어갈 수 있다면, 온통 북쪽에 집중하고 있는 산서의 뒤통수를 살벌하게 후려칠 수 있던 거지.

몽골남부연맹도 바보는 아니지 않나.

그들은 조선의 제안에 열심히 수지타산을 재어봤고, 만약 자형관과 도마로를 뚫고 산서로 진입할 수만 있다면, 전황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날 꾸준한 침입으로 산서북부에 병력이 집중되어 있는데, 만약 이번에 뒤통수를 치게 된다면 산서북부를 넘어 산서중부까지 차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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